# 72
72화
장준은 곧장 소흥으로 떠나지 않았다.
준비할 것이 있다며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여기저기 연통을 넣는 한편 일부 부하들을 소흥 옆에 있는 항주로 먼저 보냈다.
청운은 활동자금을 충분히 내주었다.
은자로 치면 수만 냥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장준이 은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인, 소인의 무기가 너무 부실합니다. 무공도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고요.”
“흠. 무공을 알려달라는 건가?”
“예, 일반 하오문도야 문제가 안 되지만, 고수를 만날지 모르니 구명절초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딴에는 맞는 소리였다.
“좋네. 자네에게 괜찮은 무공을 알려주지. 단, 하루아침에 익힐 수 없으니 꾸준히 노력해야 할 거네.”
“대인! 감사합니다!”
장준은 무릎을 꿇고 청운에게 큰절을 했다.
청운 역시 명령을 내리면서도 찜찜했는데, 마음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을 듯했다.
마침 자룡궁에서 얻는 무공 중 장준에게 맞는 것이 있었다.
장준이 열심히 노력하면 빠른 시일 안에 절정 경지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청운은 백호들을 소집해서 각자에게 맞는 일을 맡겼다.
의외라 할 정도로 혁련휘의 움직임이 없었다. 당분간은 쉽게 움직일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모르는 일. 영풍장에 대한 감시는 철저히 하게끔 지시했다.
그 후 청운은 장준을 대동하고 개봉 풍운장으로 이동했다.
* * *
청운은 풍운장에 도착한 뒤 자신이 풍운장에 있다는 사실을 주위에 알렸다.
이는 영풍장에 있을 혁련휘를 안심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미 풍운장이 청운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무공 사부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숨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풍운장을 주시하고 있다면 대번에 자신을 알아볼 터. 그럴 경우 역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풍운장은 청운의 지시로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그중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머물고 있는 인원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무공비급과 엄청난 자금 때문에라도 풍운장을 지킬 사람이 필요했다.
청운은 석덕조에게 지시해서 금의위를 그만둔 인물 가운데 쓸 만한 자들이 있으면 추천하라 했다.
관직을 그만두고 떠난 인물들도 많았고, 그들 중 뜻을 함께할 인물도 제법 되었다.
십여 명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이번에 만나게 되었다.
“어서들 오게. 이청운이라 하네.”
“대인, 처음 뵙겠습니다.”
대표인 듯한 중년의 사내가 청운에게 인사를 했다.
절정경지에 오른 듯 제법 단단해 보였다.
지금 자신의 일을 봐주는 인물 중 절정 무인은 넷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 명이 더 생겼으니 흡족한 마음이 아닐 수 없었다.
“철산검 홍산길이라 합니다.”
그는 석덕조의 동기로, 몇 년 전 금의위를 나와서 할 일 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던 인물이었다.
무공은 석덕조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웅천보다는 반 수가량 높아 보였다.
“이야기는 석 천호에게 들었네. 그대가 다시 천호장으로 움직여 줘야겠네.”
“믿고 맡겨주신다면 분골쇄신(粉骨碎身)하겠습니다.”
“고맙군. 앞으로 홍 천호로 부르겠네.”
“예, 대인!”
청운에게는 진무사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필요에 의해서 부하를 둘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천호장 한 명, 백호장 두 명. 그리고 십호장 다섯까지 둬도 된다는 교지를 받은 상태였다.
청운은 먼저 홍 천호에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북진무사 천호에 임명했고 모인 이들 중 둘에게 십호장의 위를 내렸다.
백호장을 줄 수도 있지만 뒤에 올 인물들을 생각해서 일단은 아껴두었다.
청운은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앞으로 해야 할 일과 계획을 설명했다.
그러고는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그들에게 각자의 임무를 알려주었다.
“이곳 풍운장의 안전과 외부의 침입을 중점적으로 막는 데 힘을 쓰게. 그리고 최대한 믿을 수 있는 인물을 모아주게. 인원은 상관없네.”
석덕조가 대답했다.
“이미 여러 곳에 인편과 서찰을 보냈습니다. 얼마나 응할지 모르지만, 상당한 인원이 몰려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는 일처리를 제대로 해놓았다.
앞으로 일을 처리하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믿을 수 있는 인물들로 구성해서 새로운 세력을 구축할 생각이었다.
청운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이야기했다.
“그들이 온다 해서 이곳의 모든 일을 알리지는 말게. 시간을 두고 살핀 뒤에 적절하게 임무를 주도록 하게.”
“예, 대인.”
* * *
지하 비고에는 자룡궁에서 가져온 비급과 무기가 있었다.
청운은 그곳에서 흑검방주에게 줄 비급을 골랐다.
비급은 따로 필사해서 주석을 달고 무공의 허점을 상세하게 적었다. 대처할 방법과 새롭게 변형된 초식을 적었다.
처음부터 새로운 초식으로 만들어 줘도 된다. 그러나 원형을 두고 새로운 초식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비급을 완성시켰다.
청운이 사용하는 집무실에 장준이 공손하게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 놓인 건 차 대신 깨끗한 책자였다. 청운이 필사해온 무공비급이었다.
청운은 뚫어지게 비급을 보고 있는 장준에게 말했다.
“앞으로 그대가 익힐 무공이네.”
“가, 감사합니다.”
청운의 귀에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장준의 눈이 탐욕에 젖어 번들거렸다.
그나마 이성은 남았는지 비급에 손을 대지는 않고 있었다.
청운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일을 지금처럼 잘 처리한다면 이보다 더한 것도 줄 수 있네.”
“이놈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겠습니다!”
쿵!
장준이 벌떡 일어나서 바닥에 오체투지(五體投地) 했다.
이마를 어찌나 강하게 바닥에 부딪혔는지 탁자가 다 들썩였다.
“총 세 권을 준비했네. 첫 번째 비급은 그대가 익혀서 문파의 지존무공으로 삼도록 하게. 검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것 같아서 괜찮은 검법을 준비했네.”
흑무검이라는 별호에서 보듯이 그는 검을 썼다. 본인은 절정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여전히 일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유는 그가 익힌 검법 자체가 상승의 검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운은 대성할 경우 초절정의 무인이 될 수 있는 괜찮은 비급을 내주었다. 그가 그 무공을 대성하느냐 못 하느냐는 그의 능력 문제였다.
청운은 두 번째 비급을 집었다.
“이건 장로급 간부들이 익힐 무공이네. 이 비급에는 모두 세 가지 무공이 들어 있네. 상편의 무공은 공동으로 익히게 하고, 나머지 두 가지는 무공 성질이 다르니 각자가 원하는 무공을 선택하게끔 하게.”
청운은 무공을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방주만 강해져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간부들은 물론이고 일반무사들까지 강해지도록 할 작정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두꺼운 비급을 집은 청운이 장준을 보며 말했다.
“이 비급에는 총 다섯 종류의 무공이 수록되어 있네. 문도들의 특성에 맞게 가르치면 될 거네.”
청운의 배려를 느낀 장준은 탐욕을 털어버리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언뜻 커다란 두 눈에 물기가 고인 듯 보였다.
“어려운 곳에는 주석이 달렸으니 익히는 데 어렵지는 않을 것이네. 이곳에서 앞으로 일주일간 나에게 비급의 무공을 배우게.”
“감사합니다, 대인!”
“아참. 그리고 비급은 그대로 내주지 말고 필사를 한 다음 보여주게. 각 단계마다 따로 만들어야 할 거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그럼 가볼까?”
“예, 대인!”
청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장준도 비급을 소중히 안고 뒤를 따랐다.
일주일간 장준은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수련했다.
수련은 풍운장이 아닌 흑검방에서 이뤄졌다.
이를 위해서 청운은 역용을 했다.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치고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 알려져서 좋을 일이 없었다.
장준은 문도들에게 청운을 사파의 전대 고인이라 소개했다.
청운은 장준뿐만 아니라 흑검방도들도 가르쳤다. 워낙 기본이 안 된 자들이 많았기에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수련의 효율을 높이고, 기간을 줄이기 위해 실전 같은 대련을 했다.
자신이 무식하게 실전을 치르며 배운 터라 가르치는 것도 그게 편했다.
“무공은 맞으면서 배우는 거다.”
“크윽, 아, 알겠… 커억!”
장준은 공포심이 생길 정도로 많이 두들겨 맞았다.
청운은 힘겨워서 피하려고 하는 장준을 보며 그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했다.
“맞는 걸 두려워하지 말게. 내가 그대의 전신 혈도를 두드리며 자극을 주고 있으니까. 일종의 타혈대법인데 혈도를 강하고 질기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네.”
“그, 그렇습니까?”
“물론이지. 심법 수련을 하다 보면 느낄 것 아닌가? 내공이 늘었다는 것을.”
“아! 그래서 내공이 늘어난 거군요. 저는 심법이 뛰어나기 때문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장준은 온몸이 쑤시는 아픔도 잊고 기뻐했다.
그는 며칠 만에 십 년이나 되는 내공이 늘어났다. 덕분에 절정 경지의 입문 내공이라고 알려진 일 갑자 내공을 앞두고 있었다.
“그 말도 맞지만, 며칠 만에 그 정도로 내공을 늘려주는 심법은 없네. 영약이 없으니 몸으로 때워야지 않겠는가? 그러니 고통스럽더라도 꾹 참고 열심히 맞게나.”
“예, 대인. 걱정 마십시오. 제가 참을성 하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 후 장준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그에게 청운은 하늘이었다. 하늘의 말은 언제나 옳았다.
* * *
일주일 후.
장준은 부하들과 함께 개봉을 떠났다.
먼저 일단의 부하들이 선발대로 떠난 상태였다.
청운은 그들에게 곧장 소흥으로 가지 말고 항주에 근거부터 확보하라고 했다.
개방의 도움을 받으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청운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한 달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두 배 강한 상태로 떠났을 것이다.
‘할 수 없지. 당장은 무사히 돌아오기를 비는 수밖에.’
아쉬움을 털어낸 청운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서 오랜만에 개봉부를 걸었다.
청운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개봉부에서 나름 유명한 객잔에 들어갔다.
이층으로 안내된 그는 창가에 홀로 앉았다.
손님이 분비는 점심에 명당이나 마찬가지인 창가에 홀로 앉는다는 건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개중에는 두 손을 맞잡고 예를 취하는 이도 있었다. 또한 같이 식사를 하자며 자리를 권하는 자도 있었지만, 청운은 손사래를 치며 그들의 성의를 물렸다.
곧 청운이 앉은 식탁에 오향육이 곁들여진 요리가 올라왔다.
자신이 시키지 않은 음식도 섞여 있었지만 딱히 주인을 부르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가면서 계산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음식은 맛이 있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말처럼 돼지고기가 부드럽게 입안을 감쌌다.
그렇게 음식을 음미하고 있는데 일단의 무리가 이 층으로 올라왔다.
‘고수들이군.’
청운은 그들이 들어서기 전부터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틀어서 살펴보니 십여 명이나 되는 자들 대부분이 도사복을 입고 있었다.
[화산파군.]
혈황의 말에 청운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화산파의 도사복을 바로 알아보았다.
-무슨 일로 왔을까요?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겠지.]
화산파 제자들은 세 개의 탁자에 나뉘어서 앉았다. 청운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청운은 식사를 하면서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소소검이 영성에 있다는 제보가 맞을까요?”
“아마 맞을 거다. 개방에서 전해준 정보이니.”
의외로 그들은 소소검 한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영풍장 내원에 숨어 있는 한매의 정체가 개방을 통해서 화산파에 전해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한매가 화산파 파문제자라고 했었지.’
한매는 한때 화산파의 촉망받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기사멸조의 죄를 짓고 파문당했다.
청운은 그들이 한매를 찾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청각을 집중하고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