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71화
“다른 뜻은 아닙니다. 그저 장원에 한번 들려주십사 하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청운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건지 무사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대답했다.
청운은 멈췄던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일간 찾아가지.”
“그리 전하겠습니다.”
이미 백살마녀와 뇌신룡 사이에 벌어진 일이 전해진 상태였다. 무사가 십여 명이나 죽었건만 영풍장은 개의치 않았다.
뇌신룡이라면 새롭게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신진고수 아닌가. 영풍장 입장에서는 어찌 되었든 강호 고수를 영입할 좋은 기회였다.
해서 무사들에게 뇌신룡을 다시 만나면 초대하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운 좋게 오늘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명령을 완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청운은 포구와 제법 떨어진 곳에 와서 모습을 다시 바꿨다.
겉옷을 벗어서 뒤집어 입었다.
안과 겉이 다른 색상과 문양으로 된 옷이었다.
청운은 그렇게 완벽한 역용을 하고 다시 포구를 살폈다.
남들이 본다면 포구에 구경 나온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청운같이 이리저리 포구에서 오가는 물건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었기에 의심을 하는 자는 없었다.
배는 물건이 다 실리자 떠나려 하고 있었다.
[따라가서 물건을 빼앗을 생각이냐?]
혈황은 청운의 생각이 궁금해서 물었다.
-그냥 보낼 생각입니다.
[놈들이 움츠러들까 봐?]
-예,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고 싶지 않습니다.
운송 중에 사고가 생긴다면 영풍장이나 다른 거래처가 이상함을 느끼고 숨죽일 수도 있었다.
아직 영풍장이 거래하는 곳을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 그래서 사천성으로 떠난 상단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저들에 대한 추적은 개방에 부탁할 생각입니다. 금의위 중에서도 추격술에 뛰어난 자들을 보낼 겁니다.
자신이 나서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만 몸을 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영풍장에 숨어 있는 혁련휘였다.
놈이 또다시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긴다면 다시 찾아낸다는 보장이 없었다.
청운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포구와 그리 멀지 않은 건물 안에 개방 삼장로와 몇몇 개방도가 모여 있었다.
“대인, 어서 오십시오.”
“모이느라 고생했소.”
간단한 인사가 오간 후 청운이 운을 띄웠다.
“삼장로, 이번에도 개방이 해줘야 할 일들이 많소.”
“말씀해 보시구려.”
“소흥객이 다시 소흥으로 돌아갈 거요. 그러니 소흥과 소주, 그리고 항주에 개방도들을 보내서 그들의 움직임을 살펴주시오.”
소흥으로 곧장 갈 수도 있지만, 향락의 도시라는 향주와 소주를 들릴 수도 있었다.
괜히 천상천당(天上天堂) 지하소항(地下蘇杭)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라고 할 만큼 인세의 천국이었다.
그에 비하면 소흥은 인세의 지옥이니 지옥과 천국이 같은 곳에 있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삼장로의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청운은 이를 알아차리고는 삼장로에게 물었다.
“삼장로, 무슨 문제라도 있소? 혹시 자금이 더 필요한 것이면 말하시오.”
“자금은 충분하오. 그것이 아니라 지시하신 일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소.”
“문제?”
딱히 어려운 명령은 아니었다.
그저 그들의 동선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아무 문제 없이 했던 일이었기에 의아했다.
삼장로는 청운의 의문을 풀어주듯이 이유를 설명했다.
“항주와 소주는 문제 될 것 없소. 그런데 소흥이 문제요.”
“무슨 말이오?”
“소흥은 저희 개방이 힘을 쓰지 못하는 몇 안 되는 지역 가운데 한 곳이오.”
“이해가 안 되는군. 범죄자가 숨어 들어가는 곳이면 거지들도 많을 텐데, 왜 힘을 못 쓴다는 거요? 설마 경쟁자라도 있소?”
아무리 범죄자들이 숨어 들어가는 곳이라지만 소흥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거지들이 있다. 소흥 같이 범죄자가 많은 곳이라면 더욱 거지가 많은 게 일반적이다.
“소흥은 하오문이 관리하는 곳이오.”
“하오문?”
청운은 하오문이라는 이름은 들어봤어도 그들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대인께서는 학문을 익히신 분이라 하오문을 잘 모르실 거요. 무림에는 가장 천한 집단이 여럿 있소. 그중 대표적인 곳이 저희 개방과 하오문이오.”
개방은 말 그대로 거지들이 모여서 만든 방파였다.
반면 하오문은 오갈 곳 없는 이들과 힘없는 하층민들이 모여서 만든 곳이었다.
“소흥은 저희 개방 거지들이 들어가면 몰매를 맞고 쫓겨나는 곳이오.”
소흥객의 거처를 파악해야 하는데 난관에 봉착했다.
‘그렇다고 내가 갈 수도 없고.’
영풍장 때문에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대처할 수가 없었다.
‘놓칠 수도 있으니 그냥 잡아넣을까?’
그럴 경우 더 이상 절강의 상황을 알아낼 수가 없다.
잡을 수도 없고, 그냥 놔둘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었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하오문 문도들의 무공은 어떻소?”
“대단한 실력을 지닌 자들이 제법 있소. 그래도 그들의 힘은 무력보다 머릿수에서 나온다고 보셔야 하오.”
숫자가 많다는 것은 큰 힘이었다. 개방도의 무공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들의 힘은 무공보다 머릿수에 있었다.
청운은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물었다.
“흑검방이 소흥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 것 같소?”
삼장로는 청운의 말뜻을 바로 눈치챘다.
“그들이 자리를 잡으려면 하오문과 부딪칠 각오를 해야 할 거요.”
흑검방은 최근 급속도로 성장 중이었다. 규모도 몇 배나 커졌다.
하지만 하오문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알겠소. 아무래도 흑검방주에게 직접 듣는 게 낫겠군. 장로는 돌아가는 즉시 흑검방주에게 이리 오라고 연통 좀 넣어주고, 항주와 소주의 개방 분타에 연락해서 내가 지시한 사항을 알아봐 주시오. 물론 하오문 동태도 알아봐 주시고.”
“알겠소이다.”
하루가 지나자 흑검방주 장준이 청운을 찾아왔다.
은밀히 온 것인지 방갓을 쓰고 있었다.
최근 흑검방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름부터 흑검방에서 흑검방으로 바꿨다.
그들은 몇 차례 청운의 일을 도와주면서 얻은 자금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웠다. 흑도와 용병으로 활동하는 자들 중 의리가 있고 무공이 뛰어난 자들을 영입했다.
남들이 볼 때는 다 같이 나쁜 놈들이겠지만 흑도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의리가 있는 자들이었다.
문제는 흑검방 주요 고수들의 무위가 아직은 약하다는 것이었다.
최근 영입을 통해서 일류 고수 여럿을 영입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전체적인 전력은 중소 규모의 작은 문파를 벗어나지 못했다.
청운은 흑검방주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느라 고생했네.”
“아닙니다. 대인,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간단한 인사가 오간 후 청운은 그를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혹시 소흥이라는 곳을 아는가?”
“소흥이라면…… 혹시 항주 밑에 딸린 운하가 잘 발달된 곳 말씀이십니까?”
“그래, 잘 아는군.”
“그런데 그곳은 어찌?”
장준은 고개를 앞으로 죽 빼며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청운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손사래 치며 말했다.
“소흥에 대해서 아는 대로 이야기해 보게.”
“소흥이라면 유명한 곳이죠. 저희 같은 흑도에게 지상낙원 같은 곳입니다.”
다행히 장준은 소흥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삼 년 전 소흥객이라는 자가 소흥을 접수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소흥에 많은 흑도방파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소흥객이 하오문을 등에 업고 나타나서 판을 뒤집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장준은 같은 흑도여서 그런지 멀리 떨어진 소흥 소식을 개방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청운은 혹시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요즘도 소식을 알고 있나?”
“아닙니다. 당시 싸움이 끝난 뒤로는 소흥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흘러 들어오던 정보가 끊겼다면 정보를 전해주던 자가 사라졌다는 의미였다.
더군다나 삼 년이 흘렀다. 장준이 알고 있는 소흥에 대한 정보가 지금도 유효할지 의문이 들었다.
‘삼 년이면 많은 것이 바뀌었을 텐데.’
이대로 장준을 소흥에 보내기가 찜찜했다. 무엇보다 소흥객과 하오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게 문제였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했거늘.’
이대로 장준을 보냈다가는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자기 일을 봐주고 있는 자 아닌가. 함부로 부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청운이 고민에 빠져 있자 곁에 있던 혈황이 한마디 했다.
[부하들을 아끼는 것은 좋지만, 너무 품에 안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원래 강호에서 살아가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죽음이 두렵다면 시골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야지.]
괜히 비정강호라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혈황의 말이 맞았다.
-그래도 흑검방은 너무 약합니다. 가면 모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죽어? 저놈들이? 그리고 약하다고? 네가 아랫것들을 아낄 줄은 알아도 그들의 능력은 모르는구나.]
혈황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게 변했다. 한심하다는 눈빛.
[흑도는 무공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고 말했지 않느냐.]
-기본적으로 무공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네가 흑도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흑도는 말이다. 무공으로 안 싸우고 악으로 싸우는 곳이다.]
여러 차례 혈황에게 들은 이야기였지만 아직 이해가 안 되는 청운이었다.
한편 청운이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자, 장준은 위화감이 들었다.
‘이거 잘못하면 소흥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큰일 날 소리였다. 그곳이 어디라고 간단 말인가?
절로 한 줄기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 청운이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인 후 장준에게 말했다.
“자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네.”
“무, 무엇인지요?”
“혹시, 소흥에 갈 수 있겠는가?”
장준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도살장이나 마찬가지인 소흥으로 갈 수는 없었다.
“저기 대인, 거기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만만치 않다니?”
“소흥은 온갖 잡놈들이 다 모이는 곳입니다. 인신매매와 매춘은 기본입죠. 백주에 강도 살인은 물론이고, 밤만 되면 강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장준은 소흥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절대 갈 수 없다는 말을 빙 돌려서 늘어놓았다.
“그동안 쟁쟁한 흑도문파가 여럿 박살 났습니다. 저희같이 어정쩡한 문파가 갔다가는 하룻밤도 못 버팁니다.”
“그래?”
“예, 더욱이 그곳은 하오문이 활개 치는 곳입니다. 개방하고는 완전히 다른 놈들입니다. 개방은 적선하면 좋아하지만, 그놈들은 적선하면 보따리마저 빼앗는 악질입니다.”
흑검방주는 열변을 토하며 자신이 갈 수 없는 이유를 수십 가지나 쏟아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청운의 마음은 점점 굳어졌다.
“하오문에 대해서도 제법 아는가 보군.”
“잘 알다 뿐이겠습니까?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매춘부는 물론이고, 기녀와 소매치기, 도둑 같은 하류 인생들이 모여서 만들었는데, 얼마나 독한 것들인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흑검방주는 침을 튀겨가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그러니까, 자네가 그들에 대해서 잘 안단 말이군.”
“그렇습니다요. 그러니 저 말고 다른 분을 보내시지요.”
장준은 겨우 청운을 설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혈황이 장준을 보며 한마디 했다.
[내 말이 맞지? 저놈처럼 눈치 빠르고 그들에 대해서 잘 아는 놈을 보내야 한다. 봐라! 지옥에서도 어떻게든 살아 돌아올 놈으로 보이지 않느냐?]
혈황의 말에 청운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장준에게 말했다.
“자네가 가게, 소흥.”
단호한 명령에 장준은 사색이 되었다.
청운의 성격을 잘 알기에 거부할 수도 없었다.
거부했다가는 그날로 흑검방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씨바, 간다고 해놓고 그냥 도망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