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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69화 (69/257)

# 69

69화

“대인, 자룡궁주의 제자가 되면 천이라는 돌림자를 받습니다. 그가 받은 이름은 삼천이었습니다. 그러나 궁주제자의 신분에서 벋어난 뒤 더 이상 삼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렇구려.”

청운은 무공 사부를 다른 이들이 삼천이라고 부르던 것을 기억했다.

‘그래서 삼천이라 부르는 것을 싫어했군.’

청운은 그제야 무공 사부라는 자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공야대사는 청운이 수긍하는 것 같자 불호를 외우며 말했다.

“아미타불. 삼천이 일반궁도가 된 시기는 일 년 전입니다. 이를 증명할 서류는 이미 찾아놓았습니다.”

“흠, 일 년 전이라면 내가 습격받은 이후구려.”

청운의 말에 이번에는 공야대사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가 폈다.

청운이 공야대사를 향해서 다시 물었다.

“대사, 자룡궁에서 혁련장에 많은 무사를 파견한 일은 어찌 생각하시오?”

가장 문제 되는 부분 중 하나였다. 공야대사는 청운의 질문을 예상했는지 막힘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대인, 자룡궁에서는 혁련장의 역모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혁련장은 정파에 속한 곳이고, 잘 아시겠지만 혁련세가의 방계가문입니다. 정파를 수호하는 자룡궁 입장에서는 그들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을 겁니다.”

“대사의 말이 맞소. 그러나 모르고 행한 일이라 할지라도 죄가 없다고 볼 수 없소. 누군가를 실수로 죽이면 죄가 없는 것이오? 어떤 일에 모르고 동참했다 할지라도, 그 일이 역모라면 똑같이 역적이 되는 것을 모른다 하지는 않겠지요?”

“아미타불. 물론입니다. 그러나 억울한 것도 사실입니다.”

“본인 역시 자룡궁에 억울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소. 그러나 자룡궁은 역도를 숨겨주고 도주로를 제공했소.”

이미 비밀통로가 밝혀졌다.

죄가 하나 추가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걸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 부분을 인정하면 역모를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아미타불. 소승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들을 숨겨주었다는 것은 잘못된 말씀입니다.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서 의심하지 않고 자룡궁에 들인 것뿐입니다. 도주를 도왔다는 것도 그들이 몰래 지하통로를 이용한 것이니 자룡궁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공야대사는 필사적으로 변론했다.

어찌 보면 억측이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청운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정파인들을 더 강하게 몰아붙일까? 아니면 적당히 하고, 나중에 확실한 증거가 나오면 처리할까.

그런데 혈황이 귀신처럼 그의 마음을 눈치채고 말했다.

[무림에서 생활하다 보면 원치 않아도 은원에 관련되게 된다. 될 수 있으면 적을 만들지 말고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물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자들에게만 그래야겠지. 지금 상대하는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의와 협을 부르짖는 멍청이들이다. 그러니 너무 몰아세우지 마라.]

그의 말대로 굳이 정파와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여기서 자신이 조금 더 몰아붙인다면 앞으로의 무림행보에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다.

청운은 결론을 내리고 담담히 말했다.

“대사와 여기 계신 분들의 마음은 충분히 알겠소. 본인 역시 과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오.”

청운의 말에 달리 방법이 없던 공야대사는 안도의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다행히 앞뒤가 꽉 막힌 관리는 아닌 듯했다.

청운이 수그러든 모습을 보이자 공야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인, 이처럼 여러 가지 정황을 놓고 보면 자룡궁에 가하는 압력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그들이 중원무림을 수호하면서 수많은 악적을 벌한 사실을 반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야대사가 꺼낸 마지막 패는 예상대로였다.

과가 있지만 공이 있으니 그것으로 덮어달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자룡궁은 정파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너무도 많은 피를 흘렸고, 알려진 것과 달리 탐욕에 젖은 자들이었다.

모든 일을 다 알려줄 수 없는 청운 입장에서는 돌려서 좋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대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오. 그러나 연관이 전혀 없지는 않소. 이 모든 일을 덮어두고도 조사 중에 여러 잘못이 드러나고 있소. 그러니 모든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시면 좋겠소.”

청운은 판결을 보류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양측의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단지 누가 판결을 내리느냐에 달린 문제였다.

그 판결을 내리는 인물이 지금은 청운이었다. 만일 오늘도 청운이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한다면 이들은 황도로 올라가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청운이 여지를 남겨두자 희망의 씨앗을 보게 되었다.

회의 아닌 회의가 끝나자, 청운 곁으로 몇 명이 다가왔다.

오룡 중 삼룡이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청성의 강호풍이었다.

“이 공자가 진무사 이청운이었다니, 놀랐네.”

“소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무사가 이청운이라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이 공자였을 줄은 몰랐습니다.”

남궁룡 역시 오랜만에 보는 청운을 반가워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명은 비웃기라도 하는 것인지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광마가 진무사라고? 황도 사람들이 전부 배꼽을 잡고 쓰러질 일이군.”

질긴 인연의 팽도천이었다.

청운은 팽도천을 보며 툭 던지듯이 말했다.

“광견, 잘 있었느냐?”

“지랄하네. 네놈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처박혀서 수련만 했다. 이번에도 안 오려다가 노친네가 하도 성화를 부려서 어쩔 수 없이 온 거다.”

“쯧쯧, 소가주라는 작자가 부모님에게 하는 말하고는. 아무래도 네놈은 좀 맞아야겠다.”

청운은 반가움에 핀잔을 주었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보고 있는 둘에게도 인사를 했다.

“두 분 모두 잘 계셨습니까?”

“우린 잘 있었네. 그날 대련 이후로 얻은 게 있어서 실력이 조금 늘었다네.”

“안휘에 오시면 남궁세가에 들린다고 약조하셔 놓고 그 약속을 잊으신 겁니까?”

“하하 남궁 형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보시다시피 황제 폐하의 밀명을 받고 움직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까운 날에 찾아뵈려고 했었습니다.”

“하하하, 농입니다. 이 공자가 진무사라는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오히려 도움을 드렸을 텐데 아쉽군요.”

남궁룡은 여전히 청운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보다 아까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이 공자는 광룡 형님을 어떻게 아신 겁니까?”

팽도천과 청운이 스스럼없이 대하는 모습에 놀란 남궁룡이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팽도천에게 친우가 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는 무공에 미쳐서 언제나 쌈박질을 하고 다닌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광룡이라 불렸다.

그런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청운은 깜짝 놀라워했다.

“광룡? 설마 여기 광견 말하는 것이오?”

“하하, 천 형님 무공이 얌전하지는 않지요.”

남궁룡은 오룡 중 광룡으로 불리는 팽도천에게 광견이라고 부르고 살아 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었다.

남궁룡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청운은 별 상관없다는 투로 말했다.

“광룡은 무슨? 광견이면 몰라도. 오다가다 미친개가 있길래 좀 두들겨줬었습니다.”

팽도천도 지지 않았다.

“크크, 분명히 말하지만 네놈에게 딱 한 번 패했다. 어디서 폐관수련하고 와서는 비겁하게 덮치기나 하고 말이야. 그런데… 어디 절벽에서 떨어진 거야? 나도 한번 떨어져 보게.”

“절벽이라니?”

“그렇잖아. 일 년 만에 나타났는데 감당이 안 될 만큼 강해졌다면 기연을 얻었겠지. 역시 기연하면 절벽 아니겠어?”

“에라이, 미친놈아. 백날 떨어져 봐라. 몸만 상하지.”

청운은 차마 절벽이 아니라 벼락 맞으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저 오랜만에 만난 팽도천이 반가워서 농을 주고받은 것이다.

밖으로 나가려던 무림인들은 가던 길을 멈췄다.

오룡 중 셋이나 청운과 친분이 있는지 살갑게 대하고 있었다.

더욱이 팽도천과는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동안 청운과 연관된 무림인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한둘도 아니고 셋이나 되었다.

그 셋이 정파의 기둥이라는 청성과 남궁세가, 그리고 팽가였으니 더욱 잘된 일이었다.

어쩌면 자룡궁 일이 생각보다 좋게 끝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청운은 그런 그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다.

굳이 다른 이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이들이 곤란을 겪을 수 있었다.

“광견, 그만 나가지.”

“어? 그럴까?”

“그거 좋죠. 제가 한잔 사지요.”

“안 되네. 관리는 남의 술을 함부로 얻어먹으면 안 되거든.”

“에이, 우리가 어디 남인가?”

* * *

그날 밤 강호풍은 사문 존장들의 부름을 받고 숙소로 불려갔다.

숙소에 들어선 강호풍은 인사를 하고 중앙에 섰다.

강호풍을 사이에 두고 빙 둘러앉은 사문의 어른들이 강호풍에게 물었다.

“풍아, 진무사와는 어떤 사이냐?”

“몇 달 전에 하북 진가장에서 만난 사이입니다. 그때 황제 폐하의 밀명을 받고 어딘가를 가는 도중이었다고 했습니다.”

강호풍은 자신과 청운 사이의 일을 가감 없이 알렸다. 딱히 숨길 이유가 없었다.

“진가장이라면 진천표국을 운영하는 곳을 말하는 것이냐?”

“예, 화산파 제자인 진설난의 가문입니다.”

강호풍이 그 말을 하자,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허허, 무림오봉 중 설봉과도 인연이 있다는 말이군. 잘하면 자룡궁 일을 쉽게 마무리 지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될 걸 그랬습니다.”

청성파 사람들은 껄껄 웃으며 좋아했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남궁룡과 팽가의 팽도천도 가문 어른들에게 불려가서 청운과 사이를 설명해야 했다.

특히 팽가는 두 곳보다 더 뜨거웠다.

“그럼 네 녀석 말은, 그가 우리에게 오호단문도의 잃어버린 초식을 전해준 친우란 말이냐?”

“예, 그놈… 아니 그 녀석이 알려줘서 가져왔다고 전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하북 팽가에서는 그동안 진무사인 청운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성정이 불같기로 유명한 하북팽가의 무인들답게 기회가 생기면 한판 붙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문의 은인 아닌가 말이다.

덕분에 자룡궁에 파견 나온 팽가의 무인들도 머리를 싸매야 했다.

“형님,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큰일인데. 이러면 한판 못 붙는데.”

“붙긴 뭘 붙습니까? 은인한테 그 무식한 도를 들이밀려고요?”

터질 것 같은 팔 근육이 다른 이보다 도드라진 사내는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팽가의 사람들을 이끌고 온 추혼도 팽자경이었다.

그는 현 가주의 동생으로 팽도천의 작은아버지였는데, 그 역시 팽가의 피가 진한 자에 속했다.

“형님, 아무튼 진무사께 무례하면 안 됩니다. 만일 이번에 도부터 뽑아 들었다가는 아버님께 알릴 겁니다.”

“야! 잘 쉬고 계신 분 귀찮게 하는 거 아니다. 너는 어릴 때부터 일만 생기면 일러바치더니,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쳤냐?”

팽자경이 펄쩍 뛰었다.

“형님이 하실 말씀은 아닙니다. 어떻게 강호행만 나오시면 사고를 치려고 하십니까? 형님이 이러시니 천이 녀석이 따라서 하는 것 아닙니까?”

“천이가 어때서? 씩씩하고 좋기만 하고만.”

둘의 시선이 한쪽에 서 있는 팽도천에게 향했다. 한쪽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한쪽은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둘이 옥신각신할 때 다른 이가 나섰다.

“두 분 진정하십시오. 그보다 우리 팽가가 진무사를 압박하는 일에서 빠져야 하는 것이 아닌지, 그 일부터 의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청운이 팽가에 베푼 은혜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가문의 숙원이나 마찬가지인 오호단문도가 돌아왔고, 덕분에 팽가의 무예가 더욱 강해졌지 않은가 말이다.

은원이 확실한 팽가답게 청운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결론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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