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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67화 (67/257)

# 67

67화

조광이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청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자룡궁에서 오래전부터 앵속을 몰래 취급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소. 사실…… 그 일을 밝히려다가 우리 조가의 어른들이 몰살당하고 나만 살아남았소. 그래서 저번에 이 형이 나를 잡으러 온 거라 생각했던 거요.”

청운은 문득 조광의 눈이 무척 예쁘고 맑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썹도 길었다.

“그게 아니어서 다행이긴 했소만.”

조광이 말을 맺으며 슬쩍 눈을 돌렸다.

멍하니 말을 듣던 청운이 흠칫하며 정신을 차렸다.

“아…….”

청운은 조광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의문을 느끼고 다시 물었다.

“조 형이 백풍장에 있는 것을 그들이 모르고 있었소?”

“그렇소. 십오 년 전 섬서로 도망갔다가 삼 년 전에 돌아왔소. 목숨을 걸고 복수를 하기 위해서 왔는데… 이 형이 내 대신 복수를 해준 거요.”

그제야 청운도 대략적인 이해할 수 있었다.

“어쨌든 영풍장의 상행이 그 많은 돈으로 구입하려는 게 앵속일 가능성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군.”

영풍장이 상행도 별로 하지 않으면서 그 정도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게 의아했었다.

그런데 거래 물품 중 앵속이 있다면 그러한 이유가 설명이 되었다.

“조 형 덕분에 궁금증이 많이 해소되었소.”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오.”

“여러모로 도움만 받으니 미안하군요.”

“그런 말씀 하지 마시오. 덕분에 원수를 갚을 수 있었고, 이렇게 공부도 하고 있지 않소?”

“그대 때문에 벌인 일은 아니오. 그러니 은혜랄 것도 없소.”

청운은 조광의 학문 실력을 파악한 상태였다. 그의 실력이라면 회시에 합격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조광이 돌아가자 청운은 고개를 돌려서 혈황을 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앵속 같지요?”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자룡궁이 연관되어 있다면…….]

“앵속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일도 가능할까요?”

혈황은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직접적으로 조종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환각을 일으키게 해서 정신을 혼몽하게 할 수는 있을 거다. 사실 혈사만마살진도 그러한 환각 작용을 이용한 거다.]

“역시 그렇군요. 저도 앵속 이야기를 듣고 혈사만마살진을 떠올렸습니다.”

혈사만마살진이 펼쳐지고 청운을 공격했던 자들 중 일부는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앵속에 중독되었든,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든 무언가에 취한 행동이 분명했다.

“혈황님은 조 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광? 왜?]

“벌써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무언가를 해줘야지 싶은데…….”

[생각하고 있는 거라도 있느냐?]

“무공을 익히다 생긴 신체의 불균형을 고쳐주는 건 어떨까요? 가능할까요?”

[흠, 어려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그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다.]

“그런가요? 제가 볼 때는 음기가 너무 강하고, 양기가 부족한 것 같은데요.”

[그야 그렇지. 그렇다고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가 익힌 소수마공의 특징이기도 하니 말이다.]

소수마공은 남자가 익힐 무공이 아니라 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여인이 익히는 무공인데 사연이 있어서 익혔음이 분명했다.

“가문의 복수를 위해서 익힌 것이니 무공을 포기하라고 하면 할까요?”

[너라면 복수가 끝났다고 무공을 폐지할 거냐?]

“아니요.”

[이놈아. 너도 싫으면서 다른 이에게 강요할 생각이냐?]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혈황의 말이 옳았다.

힘이 없을 때는 몰랐지만 힘이 생기니 생각이 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학문만으로는 풍진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려웠다.

‘하긴 혈황님의 말씀이 맞다. 그래서 무공을 배웠지 않은가. 지금 돈을 벌고 휘하 세력을 구축하려는 것도 남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는 이유가 아니던가.’

청운은 세상이 얼마나 혹독한지, 힘없고 돈 없고 뒷배가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역시 어렵겠네요.”

[쯧쯧. 그 아이가 마음에 든다면 그리해도 좋겠지만, 생각 잘해라. 그 아이에 대해서 네가 모르는 것이 있으니.]

“네? 모르는 것이라니요? 무엇인지요?”

[네놈이 알아봐라. 직접 가서 물어보던지. 클클.]

좀처럼 웃지 않는 혈황이 소리까지 내면서 웃는 것을 보니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청운이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혈황 역시 조광을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청운은 금의위 조장들을 소집했다.

조광의 말이 사실이라면 영풍상단이 문제가 아니었다.

금의위 백호들이 모인 가운데 청운은 조광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백호들의 반응은 같았다.

“정말 그들이 앵속을 들여오는 거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맞습니다. 이번 일은 따로 보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앵속이 민간에 퍼져나간다면 그 중독성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 뻔했다.

얼마나 빨리 퍼져나갈지 모르지만, 한 번 앵속을 사용한 이들은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청운은 금의위의 생각이 자신과 같다는 것을 알고는 명령을 내렸다.

“먼저 개방을 통해서 정보를 모을 생각이네. 황도에 연락하는 것은 영풍상단의 표물이 도착한 뒤에 하세. 물품이 앵속인지 확인해봐야 하니까. 그동안 그대들은 수련에 좀 더 힘을 쓰게.”

“예, 대인.”

금의위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뜻하지 않게 수련하고 있지만 싫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청운이 무공을 봐주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었다.

금의위 조장들이 돌아가자, 청운은 따로 사람을 보내서 개방 삼장로를 불렀다.

그에게도 앵속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앵속 중독자를 발견하면 알려달라는 말을 전했다.

삼장로는 ‘앵속’이라는 말을 듣더니 당장 표정이 변했다.

“알겠소이다. 허어, 자룡궁이 정말로 앵속에 손을 댔다면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거요.”

그 점은 청운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렇군. 어쩌면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이후 삼장로에게 몇 가지 지시를 더 내린 청운은 곧장 조광을 만나기 위해 백풍장으로 향했다.

아침에는 조광의 글을 봐줘야 했다.

조광의 처소는 단아했다.

특별하게 꾸며지지 않았지만 몇 점의 그림과 글씨가 벽에 걸려 있어서 운치를 더했다.

특히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곧장 보이는 벽에 걸린 산수화가 눈에 확 들어왔다.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에 나오는 ‘산중문답’을 상상하며 그린 그림이 압권이었다.

절벽 사이로 흘러내리는 계곡물과 그 물가에서 물을 먹고 있는 사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이 흘러나오게 했다.

이 그림은 조광이 그림 한 점 부탁한다고 해서 청운이 그려준 작품이었다.

‘흠, 내가 봐도 정말 잘 그렸단 말이야.’

청운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이놈아, 침 흘린다. 그만 웃어라.]

혈황이 곁에서 핀잔을 주었지만, 청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런 청운의 모습 때문인지 조광 역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용정차가 주전자에서 우려지기를 기다린 후에 찻잔에 쪼르륵 채워졌다.

차가 잔에 다 채워지자 조광이 입을 열었다.

“오늘 이 형께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소.”

“부탁? 말해보시오.”

안 그래도 도움받은 것에 대해서 보답을 해주고 싶었던 청운이었다.

“저번에 말씀을 드리려다가 부담이 되실까 봐 미처 말을 못 했는데, 가문이 멸문당할 때 가솔들이 자룡궁에 끌려갔었소.”

“그래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소. 그동안 자룡궁 내부와 근처를 모두 살펴봤는데도 보이지 않더이다.”

그 정도라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흠, 그 일이라면 내가 알아보겠소.”

“정말이오?”

조광이 환하게 웃었다.

청운은 그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후다닥 눈을 돌렸다.

‘험, 내가 왜 이러지?’

어색해진 청운은 서둘러 말을 돌렸다.

“가는 대로 알아볼 것이니 걱정 마시고, 이제 공부를 하지요.”

“고맙소, 이 형.”

백풍장은 나선 청운은 자룡궁으로 갔다.

경공을 펼치면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자룡궁에 도착한 청운은 석덕조를 불러서 백풍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니 백풍장 인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게.”

“알겠습니다, 대인.”

점심이 될 무렵 석 천호장은 백풍장에 대한 서류를 가지고 왔다.

백풍장에서 끌려온 인원이 자룡궁에만 일백 명 가까이 되었다. 끌려온 이들은 다행히 모두 살아 있었다.

“자룡궁에서 운영하는 사업체에 분산되어 있군.”

조광의 말대로, 백풍장 사람들은 자룡궁에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편한 곳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룡궁이 운영하는 광산에서 노역에 동원된 상태였다.

청운은 석덕조가 가져온 서류를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서류를 확인하면 할수록 청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서류를 모두 살핀 청운은 마지막 서류를 내려놓으며 석덕조에게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 서류에 쓰여 있는 게 사실이란 말인가?”

“지금 관련자들을 따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한 시진이면 만족할 만한 내용이 나올 것입니다.”

백풍장 혈사에 관련된 자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미 자룡궁도들에게 채찍과 당근을 적당히 사용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사가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자룡궁도의 협조가 필요했다.

역모와 관련된 일로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엄포를 놓자 많은 자들이 협조했다.

실제로 몇 명은 끌려가서 목이 달아났다. 대부분 자룡궁의 비밀스런 일을 처리하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금의위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자들은 대부분 자룡궁의 악랄한 행위를 알고도 묵인하거나 그 일에 직접 관여한 자들이었다.

오히려 자룡궁의 더러운 뒷모습을 몰랐던 자들은 금의위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협조는커녕 정의를 위해 일한 자룡궁을 핍박한다며 목을 내놓고 항거했다.

그들은 자룡궁주 구호량을 중원 제일의 협의지사로 생각했다.

증거를 내밀어도 믿지 않았다.

모두 조작된 증거라며 코웃음 쳤다.

“깨끗하다고 자랑하는 놈들이 알고 보면 더 더럽다니까.”

청운은 서류를 톡톡 두드리며 중얼거리고는, 석 천호장에게 물었다.

“자룡궁에서 만났다는 관리는 이들이 다인가?”

“확보한 증언으로는 그들이 다입니다.”

“자네 생각에는 이들이 전부라 생각하나?”

“더 있을 겁니다. 최소한 총독부의 고위직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꼭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 있다.

뇌물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 규모에 맞게 윗선이 정해진다. 상납과 암묵적인 허락은 황궁의 고질적인 관행이었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백풍장 말고도 이런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이들의 수법을 봤을 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닙니다.”

석덕조의 생각도 청운과 같았다.

청운은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함을 느꼈다.

“도찰원에서 파견한 감찰관에게 이 일을 알리고 당분간 은밀히 조사하겠다고 하게. 그리고 백풍장 식솔들을 모두 이곳으로 데려오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석덕조가 물러나고 홀로 남은 청운은 의자에 몸을 누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서 피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거 같았으면 시작도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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