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65화 (65/257)

# 65

65화

며칠이 빠르게 흘렀다.

자룡궁 문제로 황도가 다시 들끓었다.

정파도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일개 관리가 진무사라는 직위를 이용해서 유서 깊은 정파인 자룡궁을 피로 물들이고,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파직을 요청했다.

묘청 선생은 구대서원의 원주들에게 서찰을 보냈다.

자신의 제자이며 학사인 청운을 저 무도한 무림인들이 겁박하고 있다며 도움을 청했다.

구구절절 청운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 자세히 써 내려간 서찰을 받아들고 구대서원 원주들은 불같이 노했다.

여기에 산동 곡부에 있는 공자 후손들이 청운의 손을 들어주자 미적거리던 학사들도 동참했다.

-간악한 무인들이 연중삼원을 한 학사를 암습해서 죽이려 했고, 그 와중에 황제의 친위병인 금의위까지 수십 명이나 죽였다! 이러한 짓이 역모가 아니면 무엇이냐!

-이 일을 모른 척하고 그냥 넘기면, 앞으로 힘없는 학사와 관리들은 칼 든 무인들에게 짓눌려 지내야 한다!

두려움이 수만 학사들 마음을 흔들었다.

정파와 연관 있던 관리들도 학사들이 들고 일어서자 몸을 사리고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전국에 있는 서원과 학사들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서자 정파의 압박도 느슨해졌다.

덕분에 청운의 행보에 여유가 생겼다.

청운은 급박하게 돌아가던 황도의 상황이 진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놓았다.

사실 황도의 흐름에 대해서는 큰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위정자들이야 무서울 것 없었다. 파직도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관직은 복수와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했던 것일 뿐.

이제 관직이 아니어도 복수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허울 좋은 관직은 언제든 내던질 수 있었다.

문제는 자신의 일에 스승님이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승님이 다치는 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진정이 되었다니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청운은 황도의 일이 안정되었다는 걸 알고 영풍장 처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가 올 것처럼 구름이 잔뜩 낀 밤.

세 사내가 탁자에 둘러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청운과 공선, 조광이었다.

“영성은 너무 외각에 위치해 있습니다. 중원의 중심에 장원을 하나 구입해서 중심을 잡고 세를 불리는 게 좋습니다.”

“제 생각은 조 학사와 조금 다릅니다. 이곳이 외곽이기는 하지만 안휘와 산동 등 주변 성으로 이동이 용이합니다. 본거지를 옮기는 것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물류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낙양, 정주, 개봉 같은 부(府)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니까요.”

공선과 조광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청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에는 그와 조광이 역용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공선이 들어와서 상단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조광이 툭 끼어들며 자기 생각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결국 청운은 빠지고, 공선과 조광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치열하게 말싸움을 벌였다.

한참 동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청운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둘의 대화에 마침표를 찍었다.

“두 분 생각은 잘 들었소.”

소모적인 언쟁이었다.

상단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공선이었다. 조광은 그저 잠깐 놀러온 객이고.

“본단을 옮기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긴 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야 하오. 지금은 그보다 기존 상단의 이익구조를 확실히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하오.”

“공자 말씀이 맞소이다.”

공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청운의 의견을 환영했다.

반면 조광은 입술을 두어 번 씰룩거리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럼 쉬시구려. 저는 이만 가보겠소이다.”

공선은 조광이 또 말을 걸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이 남게 되자 청운이 조광에게 물었다.

“조 형, 상단에 대해서 잘 아시오?”

“원래 상인 집안이었소. 어려서부터 주판을 가지고 놀았지요.”

“아! 그랬군요.”

청운은 아직 조광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았다.

심지어 조광이 본명인지, 가명인지도 몰랐다.

그저 자룡궁과 원한이 있다는 것, 그리고 회시를 준비하는 거인학사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

“공부는 잘되고 있소?”

“솔직히 말해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소.”

조광의 앓는 소리에 청운은 미소를 지었다.

“회시가 어찌 보면 전시보다 까다롭기는 하지요. 그렇다고 그리 어렵지는 않소. 가장 중요한 건 팔고문을 얼마나 멋들어지게 작성하느냐, 하는 건데…… 몇 가지 방법이 있지요.”

청운이 말한 팔고문(八股文)은 옛 성인의 문체를 모방해서 격률(格律)에 맞게 작성하는 형식을 말한다.

“보통 심사관들은 격식을 많이 따지지요. 그들은 설명이 편하고 운율에 맞는 글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소. 특히 옛 성인의 문체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으면 무조건 합격이오.”

씽긋 웃는 청운의 모습을 보고 조광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떠오르는 듯했다.

청운은 조광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내일부터 아침을 함께 듭시다. 조식이 끝난 후에 문체 몇 개를 알려주겠소. 그 후 자습을 하다가 오후에 운당서원에 가도록 하시오. 운당서원 선생들은 학식이 높은 분들이니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오.”

사실 그들보다 청운의 학식이 더 높았다. 하지만 그는 조광을 하루 종일 붙잡고 가르칠 수 없었다.

조광은 벌떡 일어나서 청운에게 포권지례(抱拳之禮)를 취했다.

“고맙소,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이다.”

청운은 그런 조광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그의 손이 어깨를 두드릴 때마다 조광의 눈꺼풀이 떨렸다.

“하하, 내 가장 자신 있는 분야니 우리 한번 힘내봅시다.”

“예… 나도… 좋소이다.”

청운과의 이야기가 끝나자, 조광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조광이 나간 후 혈황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 참하구나.]

“네?”

청운은 혈황의 혼잣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느냐?]

“왜 그러냐니요? 혈황님 설마 남자 좋아하십니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혈황이 발끈했다. 어디서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하냐며 인상을 팍 썼다.

그런 혈황의 반응에 청운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의 눈초리로 말했다.

“조 형을 보시는 눈빛이 여인을 보는 것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요.”

[머, 뭐라? 조 형? 에라이, 눈치 없는 놈아. 그리고 네놈이야말로 정 소감을 좋아하는 것 아니냐?]

“아니, 거기서 정 소감이 왜 나오는 겁니까? 아닌 것 잘 아시면서 그러세요? 정 소감과 저는 신분과 나이를 떠나서 우정을 나누는 사이입니다.”

이번에는 청운이 펄쩍 뛰었다.

그런 청운을 골려주고 싶은지 혈황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퍽이나 그렇겠다! 황궁 가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봐라. 둘이 어떤 사인지.]

“혈황님!”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느냐? 아니면 말 것이지.]

혈황은 자기 할 말만 하고 휭하니 몸을 돌렸다.

더 이상 말하기 싫을 때 하는 혈황의 행동이었다.

덕분에 청운은 얼굴을 붉힌 채 혈황의 뒤통수만 노려볼 뿐이었다.

* * *

영풍장에 관한 감시는 철저하게 이뤄졌다. 개방도들이 영성에 쫙 깔려 있다 보니 그들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청운이 기다리던 일이 발생했다.

“영풍상단에서 원행을 간다는 소식이오.”

“드디어 움직이는군!”

청운은 안달 삼장로의 보고를 받으며 기뻐했다.

영풍상단이 행하는 일 중에서 의심되는 부분은 딱 한 가지였다. 그들이 한 번씩 나선다는 원행이었다.

아마 그 일조차 없었다면 정말 영풍장을 공격했을지 몰랐다.

“내일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선다고 하오. 도착지는 사천성 성도라고 했소.”

“사천성이라…. 그곳으로 자주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최종 목적지는 알아냈소?”

“그것까지는 모르는 눈치였소.”

개방이 쟁자수들을 구워삶아서 원행의 행선지는 대충 파악했다. 문제는 최종 목적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성도에는 연락을 해두었소?”

“이미 성도지부에 연락을 넣었고, 추가로 고수들을 파견했소이다.”

개방에서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힘을 보태고 있었다.

청운도 개방의 목적을 모르지 않았다.

모두가 비천무영신법을 노린 광견신개 염악의 지시일 것이다.

그러나 청운은 아직 비천무영심법을 줄 마음이 없었다.

염악도 그걸 알고 대신 은전을 듬뿍 뜯어갔다.

문득 궁금함이 든 청운이 물었다.

“염악 방주는 무얼 하고 계시오?”

“언제나 똑같소이다. 개뼈다귀 뜯으면서 지난번에 주신 진악신권에 푹 빠져 있소.”

염악이 상구 장씨고서점에서 가져간 비급이다.

오십여 년 전 하북일권으로 이름을 날린 악일추의 독문무공이 담긴 비급을 혁련휘 일행을 꾀어내려고 사용했었다.

그때 청운은 도움을 주는 대가로 상급 비급을 내걸었고, 염악은 개방도들이 익혀야 하니까 병장기보다는 적수공권이 좋다며 권법서를 요구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이 먼저 익히는 중이었다.

삼장로가 돌아가자, 청운도 움직일 준비를 했다.

그들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사천성까지 간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말이었다.

* * *

하남의 동쪽 끝인 영성에서 서쪽 끝에 자리한 서협을 거친 뒤에 섬서성으로 넘어가는 관도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섬서 장안과 한중을 거쳐서 사천성으로 간다.

하지마 청운은 그곳까지 따라갈 생각이 없었다.

놈들이 운반하는 품목을 확인하고, 그들이 누구와 거래하는지 알기만 하면 되었다.

청운은 영성으로부터 백 리쯤 떨어진 숲에서 잠복한 채 영풍장의 상단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오후의 나른함이 온몸에 전해질 때 저 멀리서 다섯 대의 우마차와 한 대의 지붕이 있는 마차를 끄는 수십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르륵. 덜컹 덜컹.

우마차 끄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에 청운도 준비했다.

으드득 으득.

청운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며 꿈틀거렸다. 근육이 이상하게 변하더니 점점 형체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꿈틀거림이 멈춘 다음 드러난 얼굴은 뇌신룡이라 알려진 청운이었다.

청운은 대로 옆에 있는 나무 그늘에 앉아서 상단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청운의 지척까지 그들이 다가왔을 때, 쟁자수 중 한 명이 그를 알아보고 기겁했다.

“헉! 뇌신룡이다!”

그의 외침에 표행을 이끌던 무사들이 검을 뽑아 들며 경계했다.

청운은 그들의 반응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지척이었기에 몇 발자국 움직이지 않아서 그들 앞에 설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그때 내 말은 잘 전했나?”

청운을 알아본 자는 지난번 객잔에서 청운이 말을 전하라고 했었던 쟁자수였다.

“예, 예 물론입니다요.”

쟁자수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상대는 영풍장의 무시무시한 무사들을 도륙하다시피 한 고수였다.

청운은 그런 쟁자수를 두고 앞의 무사에게 말했다.

“섬서에 급한 볼일이 있어서 이제야 돌아가는 길인데, 이런 곳에서 만나네.”

우연을 가장한 만남처럼 보이기 위한 행동이었다. 문제는 영풍상단의 누구도 청운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청운 역시 믿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소문을 낼 것이다. 알아서 이리저리 부풀리고 더해져 그럴듯하게 변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되지도 않는 말은 할 필요 없다. 무슨 일로 우리 앞을 막은 것이냐?”

“이거 서운한데? 난 또 나를 찾아서 온 것인 줄 알았는데.”

무사의 눈 근육이 실룩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친했던 동료의 죽음 때문에 뇌신룡을 벼르고 있었다. 친우의 복수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실력 한번 볼까?”

파밧.

바닥을 박차며 무사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는 몸을 낮춘 채 검을 사선으로 휘두르며 청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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