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64화 (64/257)

# 64

64화

청운은 다시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어이없는 상황에 내원 무사는 피식 웃었다.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것이냐?”

“이거 아랫것들이나 상전이나 예의가 없군. 시비는 그쪽이 먼저 걸었는데, 죄를 나에게 묻겠다고?”

“하하하. 웃기는 놈일세. 오리발 내밀 필요 없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겠지만 명년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 될 것이다.”

우웅!

쉐엑.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원무사가 검을 뽑아 들고 횡으로 그었다.

청운의 상체가 뒤로 넘어가며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했다.

한번 시작한 공격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쉐엑 쉑쉑.

빠르게 연결되는 사내의 공격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했다.

검의 고수만이 보일 수 있는 빠른 공격이었다.

청운은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했다. 남들 눈에는 금방이라도 상대의 검에 몸이 꿰뚫릴 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쉭 쉬쉭.

짧은 순간에 십여 합이 흘렀다.

무사의 검이 청운의 가슴을 뚫고 심장을 파고들었다.

푸욱.

청운의 가슴이 뚫리자, 공격한 내원무사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런데 청운의 몸이 허공에서 스르륵 흩어졌다.

“헉!”

공격한 무사의 두 눈이 커지며 화들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빠르게 고개가 돌아가며 멈췄던 검을 뒤로 뿌렸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콰앙!

우당탕!

내원무사의 몸이 이층 바닥을 뚫고 일층으로 떨어져 내렸다.

즉사를 했는지 움직임이 없었다.

“무슨!”

“이형환위?”

주변에서 함께 온 무사들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고수다! 모두 조심하라!”

한 사내가 크게 외치며 청운에게 검을 겨눴다. 함께 온 다른 무사들도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며 청운을 포위했다.

청운은 무심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힘이 있다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려 들다니. 아무래도 네놈들은 살아 있을 이유가 없구나.”

스르릉.

청운은 검을 뽑아서 머리 위로 천천히 들어 올렸다. 검과 몸이 하나가 되었을 때, 검에서 푸르스름한 불꽃이 튕겼다.

파직, 파지지직.

정전기 같은 뇌기가 번쩍임과 동시에 뿜어지더니, 청운의 몸을 한차례 휘감았다.

그 독특한 모습에, 청운을 포위하고 있던 무사 중 한 명이 비명처럼 외쳤다.

“서, 설마 뇌룡검?”

그 소리에 다른 이들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뇌룡검은 뇌룡표풍검(雷龍飄風劍)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뇌룡문의 삼대지존공 중 하나였다.

오래전 혈교의 준동에 맞섰다가 사라져버린 신비문파가 있었다.

파사의 기운이 담긴 그들의 무학은 사마외도의 천적이었다. 덕분에 제일 먼저 제거된 문파가 뇌룡문이었다.

뇌룡문의 멸문에 강호가 슬픔에 잠겼었다. 그들의 후인을 찾아 나섰지만 어디에서도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후 뇌룡문의 후예임을 자청하는 많은 무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익힌 무공이 뇌룡문을 대표하지는 못했다. 그저 뇌룡문에서 흘러나온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을 뿐.

그런데 청운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 검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뇌룡문의 삼대절기 중 하나가 분명했다.

그들의 생각을 확인시켜 주기라도 하려는지 청운이 입을 열었다.

“보는 눈은 있구나!”

한 소리 내지른 청운이 빠르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번쩍! 빠지직!

번개처럼 빠른 공격이 줄기줄기 뿜어지며 폭풍처럼 사방을 휘감았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무사들이 휘감아오는 푸른 뇌기를 향해 각자의 무기로 맞상대했다.

파징 파징 빠지지직.

내공을 잔뜩 실어서 공격을 막았지만, 무기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뇌기를 온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찌르르, 온몸을 울리는 뇌기에 자세가 흐트러졌다. 그 후에도 연이은 공격이 영풍장 무사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셋이 쓰러졌다.

뇌룡문의 무공이 가진 특징 때문이었다.

뇌룡문의 무공에는 뇌기가 담겨 있어서 무기를 맞댔다가는 뇌기가 흘러 들어갔다. 그 바람에 상대는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대장인 듯한 사내가 검을 움켜쥐며 이를 악물고 외쳤다.

“모두 물러서라!”

영풍장 무사들이 몸을 빼내려고 할 때, 청운이 호통 치며 다시 움직였다.

“도망치겠다고? 어림없다!”

청운의 신형이 다시 흐릿해지더니 폭풍 같은 뇌기가 사방으로 폭사했다.

빠지지지직!

푸른 뇌기가 허공에 그물처럼 펼쳐지더니, 도주하려고 몸을 돌렸던 풍운장 무사들의 몸을 강타했다.

몇 사람이 더 쓰러졌다.

그래도 실력이 있는 자들은 겨우 버텼지만, 대부분 온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낭패한 모습이었다.

“셋 남았나?”

청운의 싸늘한 목소리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사내를 일깨웠다.

“이놈!”

사내가 빠드득 이를 갈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놈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네놈은 뇌룡문의 후예인 것 같구나. 제법 강하다마는 명년 오늘이 네놈의 제삿날이 될 거라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시간을 끌어야 했다. 어차피 놈의 상대가 아니라면 놈을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이 올 때까지 잡아둬야 했다.

그런데 청운이 뜻밖의 소리를 했다.

“누구든 데려와라. 기다려주지. 어떤 자를 데려올지 나도 궁금하군.”

‘놈, 지금은 강자의 여유를 부리지만 곧 그 여유가 객기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대로라면 자신과 두 부하는 살 수 있고 죽은 부하들의 복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푹!

가슴이 뜨끔했다.

순간 눈앞에 서 있는 청운의 신형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이, 이형환위”

놀란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자신의 심장을 뚫고 솟구친 한 자루 검신이 보였다.

쑤욱.

무언가 가슴을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 때 부하들 등 뒤에 서 있는 청운이 보였다.

뒤를 돌아보라고 말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쿵.

그렇게 청운을 공격하던 열두 명의 사내가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주검이 되어버린 사내들을 내려다보며 청운이 한마디 했다.

“명년 제삿날은 내가 아니라 네놈들이었군.”

청운은 착검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객잔 안이 박살 나 있었다. 한쪽 벽은 뻥 뚫렸고 집기류는 모조리 부서진 상태였다.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도 몇 개는 금이 가서 금방 부러질 듯했다.

“이거 건물 다시 지어야 하는 것 아니야?”

청운은 고개를 흔들며 일층을 내려다보았다. 구경하는 자들이 여럿 보였다.

그중 일층 바닥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사내가 보였다.

팟.

청운은 몸을 날려서 그 사내 앞에 내려섰다.

“주인이오?”

“예.”

주인은 혼이 반쯤 나갔는지 두 눈에 초점이 없고 대답에도 성의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사업장이 박살 났다. 너무 심하게 부서져서 어쩌면 건물을 다시 지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툭.

무언가 노란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초점 없던 주인의 두 눈에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화, 황금?”

금자 열 냥은 될 것 같은 무게의 금원보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주인의 고개가 천천히 들려졌다. 조금 전까지 객잔을 신나게 박살 낸 청운이었다.

“미안하게 되었네. 이거면 충분할 것이니 상심하지 말게.”

“나리! 충분하옵니다!”

주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청운에게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금원보가 쥐어져 있었다.

방금까지 속으로 천하에 개x놈이라고 욕을 퍼부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이 사람을 착각했다.

나쁜 새끼는 영풍장 무사들이고, 눈앞에 있는 자는 부처였다.

청운은 인사를 하는 주인을 놔두고 구경하는 자 중 한 명을 보았다.

두 눈이 마주친 한 사내가 흠칫 놀란 표정으로 얼어붙었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 청운이 사내 앞에 멈춰 서더니 말했다.

“낮에 봤던 자군.”

“사, 살려주십시오.”

상자수가 털썩 주저앉으며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

자신을 어찌 알아보았는지 모르지만 죽은 목숨이라 생각했다.

“아, 걱정하지 말게. 자네를 죽일 생각은 없으니. 자네도 봐서 알겠지만, 저놈들이 시비를 걸고 다짜고짜 공격하지 않았나? 나야 방어를 한 것이고. 자신을 죽이겠다는 자들을 살려줄 수는 없지 않나?”

“무, 물론입니다요.”

살길이 보였다. 살려면 역용한 청운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내가 깜박했는데,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남아서 나를 찾는 자들에게 말 좀 전해주게.”

“무슨 말을 전할까요?”

“다음에 내가 찾아간다고.”

“예?”

청운은 사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 * *

소문이 영성 전역에 퍼졌다.

두 명만 모이면 객잔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그 싸움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이 뇌룡문의 후예라는 것 때문에 소문이 더욱 크게 퍼졌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그 싸움의 주인공인 중년 사내를 봤다는 사람이 어디에도 없었다.

쾅!

“그래서, 그놈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냐?”

오동나무를 두껍게 켜서 만든 탁자가 박살 났다.

비단옷을 잘 차려입은 중년 사내가 치미는 화를 참을 수 없는지 씩씩거렸다.

그의 주위에 서 있던 대여섯 명은 고개를 숙인 채 안절부절못했다.

“관리를 어찌했기에 그런 사달이 벌어졌다는 말이냐?”

“가주님 고정하십시오.”

“총관, 고정하게 생겼나? 열둘이나 죽었네! 열둘이나!”

화를 내는 인물은 영풍장주 고중월이었다.

부하들이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고 뛰쳐나가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 소식을 접하고 달려갔지만 놈의 모습은 바람처럼 사라진 뒤였다.

이리저리 알아보았지만 아는 이가 없었다.

싸운 이유를 알아봤는데 별 시답잖은 이유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누군가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화가 치밀었다.

“감히 어느 놈이 우리를 건든단 말이냐?”

그렇지 않아도 요즘 이상한 일이 연속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혁련장과 자룡궁, 그리고 육가장마저 역모와 기이한 일에 휘말렸다.

모두 영풍장과 은밀히 연결된 곳이었다.

그 모든 곳이 연달아 사달이 나서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풍장에 문제가 생겼다. 그저 흔한 시비라며 흘려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사람이 열둘이나 죽었고, 사건의 내막도 어딘지 석연치 않았다.

마음이 조금 진정된 듯 고중월이 총관에게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손님들은 잘 지내느냐?”

“예, 수련관에서 휘 공자님의 무공지도를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혁련휘와 무공 사부를 말하고 있었다.

둘은 영풍장 지하에 마련된 비밀수련장에서 무공수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번 일은 함구해라.”

“알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육가장 식솔들의 바깥출입을 금해라. 지난번에도 불공을 드린다고 한 명 다녀왔다던데.”

“송구합니다. 기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데 다시 주의를 주겠습니다.”

“에잉. 변변치 않은 것 같으니라고.”

육중경을 따라온 부하 중 한 명이 장원을 벗어난 적이 있었다. 무림인들과 비급문제로 얽혀 있어서 누군가가 알아보기라도 한다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중월은 그만 물러가라며 총관에게 손짓했다.

총관은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함께 있던 부하들도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고중월은 부서진 탁자를 말없이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씹어 먹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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