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63화 (63/257)

# 63

63화

청운은 바닥에 구르고 있는 비급을 집어 들며 물었다.

“혹시 이 비급에 있는 역용술이 형장이 지금 펼치고 있는 역용술이오?”

“알고 온 것 아니었소?”

“혹시 부작용은 없소?”

“부작용이라니?”

“얼굴을 바꾸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형장처럼 온몸이 푸르고 검붉은 색으로 변하는 것 말이오.”

청운의 질문에 조광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어찌 알았소?”

“낮에 그대가 섭선을 부칠 때 보았소. 팔뚝 안쪽으로 언뜻 보이더이다.”

그제야 조광은 청운이 자신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몸이 이렇게 된 것은 역용술이 아닌 내가 익힌 무공 때문이오.”

“아! 그 소수마공 때문에 그리된 것이구려.”

“소수마공을 알고 있다니. 점점 당신의 정체가 궁금해지는군.”

“정체야 얼마든지 알려줄 수 있소. 그보다 내 질문에 대한 답부터 해주시오.”

“자룡궁 사람이라면 그 비급에 대해서 잘 알 텐데, 정말 아닌가 보군.”

조광은 하던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이내 무언가 결심했는지 닫았던 입을 열었다.

“당신이 들고 있는 비급은 자룡궁에서 빼앗아간 내 가문의 비급이오.”

역시 빼앗아갔나 보다.

조광이 왜 그렇게 악착같이 덤볐는지 사연을 알게 되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조광은 청운이 궁금해하는 비급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제대로만 익힌다면 천변만화의 얼굴을 가질 수 있소. 단지, 너무 여러 사람으로 변하면 원래의 모습을 잃고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소. 그러니 너무 오랜 세월 다른 이의 얼굴로 살면 안 되오.”

“아, 그 점이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내 잠깐 역용할 일이 있어서 말이오.”

뜻하지 않게 기연을 만났다. 가짜일까 봐 불안해서 익히지 못하고 있던 비급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뻐하는 청운에게 조광이 물었다.

“당신 정체가 혹시…… 금의위?”

“어찌 아셨소?”

“맞나 보군. 이번에 자룡궁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소. 내심 기뻤는데 그 당사자를 보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군.”

조광의 말투가 변했다. 날카롭게 벼른 한 자루 칼과 같았었는데 이제는 무딘 칼이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 상대하기에는 자룡궁의 힘이 너무 거대했다. 복수도 못 하고 그 주변을 맴돌았었다.

그래서 혹시 모를 기회를 기다리며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금의위에 의해서 자룡궁이 풍비박산 났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그 당사자인 금의위가 자신을 찾아오다니.

조광은 몸을 돌리며 청운에게 말했다.

“원한다면 그 무공에 대해서 알려주겠소. 나를 따라오시오.”

“폐를 끼치겠소.”

청운은 조광의 뒤를 따라서 방을 나섰다.

가만히 조광을 지켜보던 혈황이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가만, 저놈 저거……?’

* * *

영성의 남쪽을 흐르는 강은 커다란 배가 오갈 만큼 깊고 넓어서 뱃길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하란포구는 영성에서 좀 더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어느 날 장사진을 이룰 만큼 많은 사람이 오가는 그곳에 중년의 사내가 허리에 장검을 차고 나타났다.

하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어서, 누구도 그를 유심히 바라보지 않았다.

강어귀의 포구 쪽으로 걸음을 옮긴 사내는 멈춰 서서 한곳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조운선에 가득한 양곡을 내리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그와 떨어진 포구의 한쪽에서는 작은 상자들이 내려지고 있었다.

사내가 보고 있는 곳은 조운선에서 내려지는 양곡이 아니라 한쪽에서 내려지는 상자들이었다.

사내는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그는 곧바로 상자들을 하선하는 곳으로 향했다.

사내가 점점 접근하자, 주변에 있던 무사들이 울타리를 치듯이 길게 늘어섰다.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들고 있는 검을 검집 채 앞으로 내밀었다.

“멈춰라. 귀한 물품을 내리고 있으니 더 접근하지 마라.”

등 뒤로 십여 명의 무사들이 버티고 있어서 그런지 기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중년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발 더 나서며 피식 웃었다.

“여기를 네놈들이 전세 냈느냐?”

“뭐라?”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지금 시비를 걸겠다는 것이냐?”

“시비는 무슨. 그저 강을 보고 싶을 뿐이니 길을 열거라.”

중년 사내가 다시 한 발 내디뎠다.

강한 기세는 아니었다. 너무도 당당한 사내의 모습에 앞에 나섰던 사내가 움찔하며 살짝 뒤로 밀려났다.

자신이 밀려난 것을 알아차린 사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경고하는데, 강을 보고 싶다면 다른 곳으로 가라.”

“눈앞에 강이 있거늘, 내가 왜 다른 곳으로 간단 말이냐? 내가 가는 게 싫으면 네놈들이 배를 다른 곳으로 대라.”

빠드득.

앞을 막아선 사내의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중년 사내가 어느새 지척으로 다가섰다. 손만 뻗으면 되는 거리였다.

뒤에 늘어섰던 무사 중 둘이 앞으로 나서며 중년 사내의 팔을 잡았다.

중년 사내는 반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서 고개만 돌렸다.

“뭐하는 것이냐?”

“까불지 말고 순순히 따라와라.”

“경을 치기 전에 말 들어.”

두 무사가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중년 사내를 끌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아무리 당겨도 중년 사내의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중년 사내는 둘을 매달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보다 덩치가 좋은 둘이 중년 사내의 몸에 매달려서 끌려갔다.

“무슨……?”

“어어어…….”

“뭣들 하느냐. 놈을 어서 치우지 않고!”

깜짝 놀랄 만한 광경이었지만,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대응했다.

평소라면 칼을 뽑아 들고 당장 목을 칠 텐데, 아쉽게도 보는 눈이 많았다. 더구나 조운선에서 내리고 있는 양곡 때문에 관리와 병사들이 포구에 나와 있는 상태였다.

피를 보면 그들이 개입할 것이 뻔했다. 지금도 이쪽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결국 다른 자들도 중년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중년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달고 앞으로 나아갔다.

십여 명이 아무리 잡아당겨도 중년 사내의 힘을 당할 수 없었다.

몇 명은 주먹을 휘둘러서 중년 사내를 쳤다.

소용이 없었다. 중년 사내는 아무런 충격도 없는 듯 묵묵히 걸음만 옮겼다.

그제야 모두들 중년 사내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멈칫거렸다.

그사이 중년 사내는 자신이 원하는 강가에 우뚝 섰다.

“그만 떨어지지.”

무미건조한 중년 사내의 음성이 들리고서야, 필사적으로 붙잡고 늘어지던 자들이 후다닥 떨어졌다.

“이익.”

“두고 보자, 이놈!”

저마다 한마디씩을 하며 도망치듯 멀어졌다.

정말로 강을 구경하고 싶은 것인지 중년 사내는 말없이 강을 볼 뿐이었다.

“놈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짐을 내려라!”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는 이를 갈며 하던 일을 마저 했다.

건방진 저놈을 죽이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될 일이었다. 군병들만 가면 저놈은 죽은 목숨이었다.

이윽고 나룻배에서 내려진 짐이 마차에 실렸다.

짐꾼들과 함께 영풍장 무사들이 포구를 나섰다. 뒤를 힐끔 보며 여전히 강을 보고 있는 사내를 향해서 강한 적개심을 내비쳤다.

그들이 다 사라지고 나자 중년 사내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다음 작전대로 움직여야지.]

중년 사내는 역용한 청운이었다. 백풍장의 조광에게 천면만화신공상의 역용술을 배우고 모습을 바꾼 것이다.

청운은 잠시 그렇게 강을 보다가 모습을 감췄다.

영풍장 무사들은 두 대의 우마차에 짐을 가득 싣고 이동했다.

하란포구에서 영풍장까지는 한 시진 정도 걸렸다.

영성의 번화가를 가로지르면 장원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번화가로 가면 오가는 사람으로 북적거려서 오히려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포구의 짐을 나를 때마다 우회로를 통해서 짐을 날랐다.

영풍장 무사들이 한참 길을 가는데 강가에서 만났던 중년 사내의 모습이 저만치 보였다.

그자는 담벼락에 기댄 채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어? 저자가 왜 저기 있지?”

“글쎄요. 살짝 맛이 간 놈인가 봅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가시지요.”

우마차를 끄는 일행들은 중년 사내의 모습으로 역용한 청운을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보았다.

강변에서도 물을 보며 시간을 보내더니, 이번에는 나무 그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할 일 없는 한량이거나 미친놈이 분명했다.

그래도 조심해야 했다. 놈은 자신들보다 고수가 분명했다.

우마차가 청운의 곁을 지나갈 때였다. 열릴 것 같지 않던 청운의 입이 열렸다.

“이봐.”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신경을 바짝 쓰고 있던 이들에게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덕분에 우마차가 멈춰 섰다.

모두의 시선이 청운에게 쏠렸다. 무사 한 명이 나서서 질문을 던졌다.

“우리에게 볼일이 있나?”

“이거 서운한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던데 말이야.”

“무슨 말이지? 괜한 시비 걸지 말고 갈 길이나 가게.”

본거지인 영풍상단이 코앞이었다. 운송이랄 것도 없는 간단한 일을 하면서 굳이 분란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청운의 생각은 달랐다.

“시비? 후후, 시비를 건 것은 그대들인데, 이대로 그냥 가겠다고?”

꿈틀.

물품을 운송하는 무사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건 싸우자는 말이었다.

하지만 한 번 더 참았다. 물건을 운송하고 있는 와중에 분란을 만들면 안 되었다.

“별놈을 다 보는군. 어서들 가세. 상대할 필요 없네.”

한 사람이 나서서 상황을 무마시켰다.

멈췄던 우마차가 다시 움직였다.

미친놈을 상대로 길거리에서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었다. 어서 물건을 전하고 객잔에 가서 백주라도 한잔하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게 나았다.

그르륵.

우마차가 움직일 때 청운의 입꼬리가 묘하게 움직였다.

“큭큭, 이거 말로 해서는 안 될 종자들이군.”

성큼 한 발 내디디며 위협적으로 앞으로 나섰다.

청운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무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퍼벅.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무사 둘이 바닥을 굴렀다.

청운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졌다.

연이어 무사들이 공격했지만 청운의 옷깃 하나 건들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으윽.”

“아이구.”

무사들이 신음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누구 하나 죽은 이는 없었다는 것이다.

청운은 쓰러진 무사들을 보며 걸쭉한 침을 뱉었다.

카악 퉤!

“별 거지 같은 것들이 까불고 있어. 영풍상단이라고?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목에 힘주고 다니기는.”

청운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이내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더니 저 앞에 있는 객잔으로 들어갔다.

겨우 몸을 일으킨 무사들이 객잔을 노려봤다.

“놈 두고 보자.”

일각이 지났을 때, 영풍장 무사들이 객잔 앞에 나타났다.

그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물었다.

“놈은 아직 안에 있느냐?”

그곳에 남아서 청운을 주시하고 있던 상자수가 말했다.

“예, 저기 이층에서 식사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들자, 객잔 이층 창가에서 식사하는 청운의 모습이 보였다.

“알겠네. 자네는 그만 돌아가게.”

묵직한 분위기의 무사가 상자수에게 말했다.

상자수는 빠르게 고개를 숙인 후 몸을 돌렸다. 하지만 돌아가지 않고 무사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영풍장 내원 무사들은 곧장 객잔 이층으로 올라섰다. 혼자서 요리를 시켜 먹고 있는 중년인 앞으로 가서는 차갑게 말했다.

“귀하가 상단 무사들을 건드렸나?”

막 오향육을 한 점 베어 물던 청운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멀뚱히 무사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좋게 이야기할 때 따라나서라.”

“음식이 남아서 그건 어렵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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