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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62화 (62/257)

# 62

62화

청운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자신이 처음에 반대해놓고 이제 친다고 하니 심통이 난 듯했다.

천하의 혈황이 삐지다니.

-그동안 천면만화신공을 살펴보았습니다. 조금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혈황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얼굴을 바꾼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설프게 흉내 내다 잘못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근육을 이동시키고 뼈를 뒤틀어서 얼굴을 바꾸는 방식이기에 자칫 원상태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혈황은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내가 얼굴로 먹고사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잘생긴 얼굴을 망칠 필요가 없었다.

그 내면에는 그만이 아는 비밀(?)이 숨어 있지만, 그것까지는 청운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

청운도 듣고 보니 조금 불안했다.

그런데 문득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천면만화신공의 맨 뒤에 적힌 글을 보셨습니까?

[구절구절 잡소리 적힌 거?]

-예.

[그건 자세히 읽지 않았다. 무공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신세 한탄 이야기라…….]

그랬다. 천면만화신공 비급 뒤에는 무공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 비급을 만든 사람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끄적거려 놓은 글이었다.

읽는데 짜증이 나서 다 읽어보지도 않았다.

-거기 보면 그 비급을 만든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 나옵니다. 보셨습니까?

[다 안 읽어봤다니까.]

-여깁니다.

[뭐?]

-영성요. 그 비급을 만든 사람이 여기에 살았습니다. 백풍장이라는 곳에 살았는데, 아마도 자룡궁이 그들에게서 그 비급을 얻은 모양입니다. 빼앗았을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마침 정보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있으니 한번 찾아보지요. 그 비급을 만든 자의 후예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후예가 만약 천변만화신공을 익히고 있다면 부작용에 대한 것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청운은 백풍장에 대해 알아보았다.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점소이가 그곳을 알고 있었다.

“저쪽으로 쭈우욱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져서 다시 이십 장쯤 가면 왼쪽으로 꺾어지는 골목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또…….”

점소이의 말에서 골목이 아홉 번이나 꺾어졌다.

머리 좋은 청운도 처음에는 대충 듣다가 나중에는 하나하나 되새기며 정리해야 했다.

그렇게 백풍장의 위치를 열심히 설명하던 점소이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더니 커진 눈으로 말했다.

“어? 저기 백풍장의 공자님이 가시네요.”

뭐라고?

청운도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기 부채 든 공자님 보이시죠?”

준수한 얼굴에 멋들어진 비단옷을 입고 섭선을 흔들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가 지나칠 때마다 사람들이 뒤를 돌아볼 만큼 미남자였다.

“저분이 지금은 백풍장의 주인입죠.”

청운은 그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눈에 기이한 부분이 들어왔다.

‘응?’

섭선을 흔들고 있는 사내의 손목 안쪽이 흔들림에 맞춰서 살짝 보였다. 손목 안쪽 팔의 피부가 푸르스름하며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무언가 균형이 틀어져 있었다. 정상적인 부분은 얼굴과 손뿐이었다.

‘아무래도 역용을 한 것 같군. 그런데 손은 어찌 된 거지?’

사내의 손은 여인네처럼 섬섬옥수였다. 어찌나 희고 고운지 얼굴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혈황이 말했다.

[소수를 익힌 것 같군. 소수계열의 무공을 익히면 손이 희고 부드러워져서 여인의 고운 손처럼 되지. 보통은 여인들이 익히는데…….]

-일단 만나보는 게 좋겠습니다.

뜻하지 않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물이었다.

청운은 곧장 청년의 뒤를 쫓았다. 청년은 산책이라도 나온 듯 한적하게 거리를 거닐었다. 느긋한 그의 움직임에 맞춰 청운도 발걸음을 늦췄다.

청년은 점소이의 말대로 골목을 계속 꺾어지더니 한 장원으로 들어갔다.

청운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장원을 확인하고는 곧장 발길을 돌려서 주변에 있는 개방도를 찾았다.

조금 전 지나온 길에 거지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일반 거지가 아니라 개방도였다. 아마도 정보를 모으기 위해 풀어 놓은 개방의 제자 중 하나인 듯했다.

청운은 개방도에게 철전을 던져주며 전음을 보냈다.

-진무사 이청운이네. 서둘러 삼장로에게 내가 보자고 한다 전하게.

“나리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것이옵니다.”

개방도는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휭하니 청운이 돌아서서 한쪽으로 가자 개방 제자도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백풍장이 보이는 길거리 노점에서 꼬치를 하나 베어 물고 있던 청운의 귀에 삼장로의 전음이 들려왔다.

-부르셨소이까?

청운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사정을 이야기했다.

-저기 장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소? 그리고 약관으로 보이는 청년이 들어갔는데 그의 정체도 알아봐 주시오.

-조금만 기다리시오.

청운은 근처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 식경이 되었을 때쯤 삼장로가 돌아와서 청운에게 전음을 다시 보냈다.

-백풍장이라는 곳으로 주인은 약관의 청년이오. 이름은 조광이라는 자고 학사라 합디다. 남경 고관의 아들로 회시를 보기 위해서 운당서원에 다니며 준비 중이라 하오.

운당서원은 이곳 영성에서 제법 이름 있는 곳이다.

청운도 이름을 들어봤을 만큼 주변 주(州)와 현(縣)에서 학생이 모여들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지시를 해뒀으니 금세 연락이 올 거요.

청운은 급한 대로 대략적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삼장로가 떠나고 청운 역시 자리를 벗어났다.

그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늦은 밤, 청운은 백풍장의 담을 넘었다.

대략적인 장원 내 건물 위치를 알아둔 터라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저 전각이 그자의 거처라고 했지.’

청운은 아담한 정원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았다.

제법 잘 꾸며진 정원이었다.

청운은 모습을 드러내고 건물로 다가갔다.

그때 창문에서 무언가 날아왔다.

슈슉.

청운은 상체를 틀어서 날아든 물체를 피했다.

슈슈슉.

연이어 무언가가 다시 청운의 요혈을 노리고 날아왔다.

매서운 기세를 품고 있었지만 청운을 어찌하지는 못했다.

가볍게 피한 청운은 정원의 중간에 우뚝 섰다.

더 이상 걷지 않고 암기가 날아온 창문을 보았다.

끼익.

창문이 열리며 낮에 보았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심한 밤에 월담을 하다니, 누구시오?”

말뜻은 예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말투는 청운을 집어삼킬 듯이 위협적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실례를 무릎 쓰고 이리 온 것이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소?”

악의가 없는 청운의 태도와 음성에 청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시오.”

청운은 곧장 청년의 거처로 들어섰다.

정갈한 실내는 청년의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게 했다.

청운이 의자에 앉자, 맞은편에 앉은 청년이 차를 한 잔 따라 주었다. 시비도 없고, 오가는 식솔도 없었다.

청년이 청운을 보며 물었다.

“그래, 야심한 밤에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소.”

말을 빙빙 돌릴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월담을 해서 찾아왔으니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다.

청운은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갔다.

“부탁? 그래, 무슨 부탁을 하겠다는 거요?”

“역용술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어서 조언을 구하고자 왔소.”

청운은 품속에서 천면만화신공 비급을 꺼내서 탁자에 올려놓았다.

비급을 바라보는 청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이 비급은 어디서 났소?”

탁.

청년은 비급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부드럽던 기세를 바꿨다. 그의 두 눈도 차갑게 변했다.

“어디서 얻었을 것 같소?”

청운의 반응에 청년이 기세를 끌어올리며 살기를 뿜었다.

우웅.

온몸을 옥죄어오는 살기가 청운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 정도 살기에 꿈적할 청운이 아니었다.

청운이 손짓 한 번으로 살기를 걷어내며 사내에게 물었다.

“자룡궁 사람이시오?”

청년은 청운의 손짓에 자신의 무형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지자 대답도 잊은 채 깜짝 놀랐다.

손짓 한 번으로 흩어버릴 만큼 하찮은 무형살기가 아니었다.

조금 전 암기를 피한 것도 그렇고, 보기보다 고수일지도 몰랐다.

청운이 다시 한번 청년에게 물었다.

“자룡궁 사람인지 물었소만.”

청년이 한쪽 눈을 실룩이더니 차갑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야말로 자룡궁에서 나온 것 아니오?”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왜 그러냐고? 크크, 장난하는 것이오? 나를 잡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오!”

우웅.

쾅!

청년은 그대로 탁자를 부수며 청운의 가슴에 일장을 날렸다.

펑! 퍼벙.

청운은 쌍장을 가슴에 교차하며 청년의 공격을 막았다.

사내는 뒤로 물러서며 빙글 몸을 돌렸다. 팔을 허공에 휘두른 그가 쌍장을 기묘하게 움직였다.

하얀 손 그림자가 실내를 수놓았다. 나비가 날아오르듯이 어지러이 청운의 전신요혈을 노렸다.

청운은 양손을 터는 시늉을 했다. 양손에 하얀 서리가 살짝 끼어 있었다.

청운은 처음 공격을 막으면서 전해진 충격과 한기에 깜짝 놀랐다.

‘이게 소수마공인가?’

손바닥이 아직도 찌르르 울렸다. 그는 급히 내공을 끌어올려서 한기를 몰아냈다.

우우웅.

그러고는 덮쳐오는 소수를 향해서 묵룡파천권을 펼쳤다.

콰과쾅!

굉음과 함께 주변으로 기파가 터져 나갔다.

실내에 있는 집기류가 둘의 공방에 바스러졌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순식간에 삼 초를 주고받았다.

벽력대제의 묵룡파천권이 소수마공을 상대로 밀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압도하지도 못했다.

혈황의 음성이 들렸다.

[강을 강으로 맞서는 방법도 있지만, 유로 어루만지는 방법도 있다. 태을신권으로 상대해 봐라.]

청운은 묵룡파천권을 태을신권으로 상대의 공격에 맞섰다.

사나운 기세가 봄바람처럼 변했다.

그렇다고 흐느적거리지는 않았다. 나가고 들어오는 몸놀림이 훨씬 빨라졌으며 부드러워졌다. 마치 무당의 태극권을 펼치듯이 부드러운 손동작 속에 강인함이 숨어 있었다.

소수마공의 손 그림자가 하나둘 제압되었다.

청년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 때 결판이 났다.

파앙! 쿵!

“꺄악!”

커다란 굉음과 함께 청년의 몸이 실 끊어진 연처럼 벽으로 날아가서 부딪혔다.

“우욱.”

왈칵, 청년의 입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내상을 입었는지 뿜어진 피가 검붉은 색을 띠었다.

청운은 곧장 공격하지 않고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손속에 사정을 둔다고 뒀는데 지나친 듯했다.

“괜찮으시오?”

청운은 청년이 걱정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청년은 몸을 일으키며 이를 앙다물었다. 눈매가 날카로웠다. 아직 승복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혈황은 둘의 대결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보다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근성은 있구나.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니. 꼭 네놈을 보는 것 같다.]

무엇이 재밌는지 혈황은 금방이라도 껄껄 웃을 것 같았다.

청운은 힐끔 혈황을 보다가 다시 청년을 보았다. 청년이 재차 공격하려는지 자세를 잡는 모습이 보였다.

청운은 더 겨뤄봐야 의미가 없음을 알기에 서둘러서 말했다.

“나는 자룡궁 사람이 아니니 경계하지 마시오. 처음에 말했듯이 역용술이 궁금해서 이곳에 온 것이오.”

“정말이오?”

청년은 힘겹게 물으며 청운을 견제할 뿐 재차 공격하지 않았다.

자신이 쓰러졌을 때 청운이 공격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내가 야밤에 농이나 하러 온 사람으로 보이시오?”

“으으음…. 도대체 뭘 묻겠다는 거요?”

청년, 조광은 날 선 기세를 누그러트리며 한발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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