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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56화 (56/257)

# 56

56화

자룡궁은 예로부터 있던 장원을 개조하고 증축한 곳이었다.

비밀통로와 지하공간이 생각보다 많았고, 미로처럼 복잡한 곳도 있었다.

덕분에 발견하고도 그 내부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곳도 있었다.

전대 주인이 누구인지 몰라도, 심지어 기관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통로조차 있었던 것이다.

청운도 그런 사실을 보고 받고 비밀통로에 들어가 보았다.

기관진식만으로는 그의 발길을 붙잡기에 역부족이었다.

쾅!

후드득.

앞을 막아섰던 두꺼운 청강석 문이 박살 났다.

성큼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공간이 나왔다.

십 장이 넘을 것 같은 제법 큰 공간은 창고로 사용되었는지 제법 많은 상자와 병장기들이 있었다.

한쪽 벽에 자리한 선반에는 작은 상자들이 늘어서 있었고, 다른 벽에는 커다란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청운은 그중 맨 앞의 상자 뚜껑을 열었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지만 청운의 손길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철컥.

“이곳은 금고군요.”

[제법 부를 축적했구나.]

상자 안에서 가지런하게 쌓여 있는 은원보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청운은 다른 상자들도 열어 보았다.

상자 가득 은원보가 쌓여 있었다.

얼마인지 가늠도 안 될 만큼 엄청난 금액이었다.

청운은 터벅터벅 걸어서 다른 쪽 벽면으로 갔다. 그곳에도 큰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여기에는 금원보나 금괴가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혈황은 힐끔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선반을 보았다. 하지만 황금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시선을 거뒀다.

혈황과 달리 청운은 발걸음을 돌려서 상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고는 길게 늘어서 있는 상자 중 하나를 골라서 열어 보았다.

예상대로 금원보가 노란빛을 뿌리며 가지런히 잠을 자고 있었다.

청운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상자를 열어 보았다.

금원보 외에도 황금두꺼비와 금으로 만든 동물들, 그리고 금불상도 보였고, 금괴도 있었다.

전부 확인한 청운은 무덤덤한 얼굴로 한 바퀴 둘러보았다.

“딱히 볼 것은 없군요.”

[금고에서 볼 거라고는 돈밖에 더 있겠느냐? 돈이야 상인 놈들이나 좋아하지. 아마 이곳을 보여주면 미쳐서 날뛸 것이다.]

청운은 발길을 돌려서 금고를 빠져나갔다. 길게 이어진 통로를 걸으며 혈황에게 말했다.

“다른 곳도 기관장치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쪽으로 가시지요.”

[그러자꾸나.]

두꺼운 철문이 앞을 막고 있었다.

사신수가 한데 어우러진 조각이 멋들어진 철문이었다.

십여 명이 각가지 병장기를 가지고 철문을 두들겼다.

쾅쾅 콰앙!

재질이 무엇인지 병장기로 때려도 꿈쩍하지 않았다.

이들을 지휘하고 있는 자는 육조장인 하만이었다.

일의 진척이 없자 하만이 부하에게 물었다.

“옆면을 뚫을 수는 없느냐?”

“당장은 어렵습니다. 이곳은 암석 지대입니다. 벽면 전체가 단단한 암석인데 얼마나 두꺼운지 몰라서 시일이 상당히 걸릴 것 같습니다.”

철문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한다면 벽면에 구멍을 내서 뚫고 들어가면 된다. 그러나 벽면 역시 단단한 화강암으로 되어 있어서 쉽게 뚫기가 어려웠다.

진척 없이 막혀 있는데 뒤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잘 안 되는가?”

모두의 시선이 말소리가 들린 뒤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백의를 입은 청운이 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청운은 하만의 인사를 받으며 난감해하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무작정 부수고 들어가서는 안 되네. 자칫 기관장치가 있다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예, 대인, 그만하고 뒤로 물러서라.”

금의위들이 뒤로 물러서고 청운이 앞으로 나섰다.

천천히 철문을 살폈다.

-안에 좀 살펴주시겠습니까?

[그러마.]

혈황의 몸이 철문의 미세한 틈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후 혈황이 스르르 모습을 보였다.

[무고가 분명하다. 비급도 있고, 제법 괜찮은 무기도 있다]

혈황의 말을 들은 청운은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보고 있는 하만에게 물었다.

“이곳을 알고 있는 자는?”

“저희뿐입니다.”

“그럼 당분간 함구하라.”

“존명!”

하만은 청운의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청운과 함께한 시간은 겨우 두 달 남짓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청운의 행보를 지켜보았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처리하는 능력과 부하들을 아끼는 마음을 잘 알기에 마음으로 따르고 있었다.

이번 명령도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하만을 보며 청운이 재차 명령했다.

“이곳과 내가 조금 전에 다녀온 곳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라. 그리고 그만 다른 곳을 살펴보도록 해라.”

“존명!”

하만은 부하들을 이끌고 이곳을 벗어났다.

여러 가지 의문이 들 텐데 아무 말 없이 명령에 따랐다. 송인호와는 너무도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홀로 남게 된 청운은 혈황을 보았다.

“열쇠가 있어야 합니까?”

[기관이 복잡해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 여기 사신 조각을 조작하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구나.]

이 정도 철문을 만들 정도라면 기관장치가 간단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혈황은 철문을 들락거리면서 이리저리 살피더니 청운에게 말했다.

[여기와 여기에 각각 두 개씩 기둥이 고정되어 있다. 열쇠를 이용하면 안으로 밀려들어가는 구조다.]

한참을 살펴서 알아낸 사실만으로 철문을 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청운은 혈황이 가리킨 곳을 유심히 보며 말했다.

“혈황님. 다른 장치는 없습니까?”

[여러 가지 장치가 되어 있다. 독이 분사되는 것과 암기들이 쏟아지는 것도 있다.]

생각대로였다. 단순히 단단한 철문으로 입구를 막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암기도 문제지만 독이 더 신경 쓰였다.

자신은 독공을 익히지 않았기에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청운이 머뭇거리며 무언가 고민을 할 때 혈황이 말했다.

[독 때문이라면 혈황신공으로 몰아내면 된다.]

“그게 됩니까?”

[독이 몸에 들어오면 내공을 이용해서 몰아내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네 녀석에게는 혈황신공과 천명신공이 있지 않으냐. 웬만한 독으로는 중독시킬 수 없다.]

청운은 혈황의 말에 두 눈을 빛내며 철문을 보았다.

스르릉.

허리춤에 맨 검을 뽑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명신공을 끌어올렸다.

찌이잉.

검에 내공이 모이기 시작했다. 환우구검의 기수식을 잡고 철문을 노려보았다.

쉐에엑-

츠캉!

첫 번째 공격이 철문을 강타했다.

취이이익.

슈슈슈슉.

철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졌다. 연기 속에서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쏟아졌다.

차자, 자자장.

청운은 검을 휘둘러서 자신에게 쏘아지는 암기를 쳐냈다. 작고 가느다란 바늘 같은 암기가 청운의 발밑에 후드득 떨어졌다.

암기는 쳐냈지만 가장 우려했던 독이 남았다.

독연이 사방으로 뿜어지며 넓은 석실을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쉬이이익.

우웅, 웅우웅.

청운은 천명신공을 최대로 끌어올려서 몸 주위에 둥근 막을 형성했다.

아직 호신강기를 원활하게 활용할 수는 없지만, 짧은 순간이라면 가능했다.

독연이 청운을 덮쳤다. 그러나 호신강기에 막혀서 청운에게 접근하지는 못했다.

‘이대로 시간을 끈다고 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 방법이 없을까?’

중독만 생각했지 허공에 퍼져 있을 독을 생각지 못했다.

혈황 말대로 흡수한 뒤에 몰아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때 혈황이 사방을 둘러보더니 청운에게 말했다.

[독은 수의 기운이 담겨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화로 다스리기도 했다. 열양진기를 이용해서 이곳에 퍼진 독을 태워봐라.]

청운은 혈황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곧장 심법을 바꿨다.

염천열화신공(炎天熱火神功).

황궁무고에서 얻은 양강무학의 정수가 담긴 열화공이었다.

화르르륵.

청운의 몸 주위로 불길처럼 뜨거운 기운이 치솟았다.

넘실거리는 기운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청운은 호신강기를 거두고 염천열화신공을 펼쳤다.

청운의 양손에서 시작된 뜨거운 기운이 손짓에 따라서 길게 꼬리를 물고 뿜어졌다.

화르륵.

매캐한 냄새가 퍼졌다. 독이 타는 냄새였다. 청운은 호흡을 멈추고 계속해서 뜨거운 기운을 쏟아냈다.

삽시간에 석실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한참 동안 염천열화신공을 운용하던 청운을 향해서 혈황이 말했다.

[그만하면 됐다. 독이 다 탄 것 같다.]

청운은 염천열화신공을 멈추고 철문을 향해서 서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쉐에엑. 서걱.

청운의 일검이 철문을 파고들더니, 안쪽을 고정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을 갈랐다.

검을 가슴으로 끌어당긴 그는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츠캉!

반대편 걸쇠마저 두부 잘리듯이 잘려나갔다.

취이이익.

시커먼 연기가 솟구쳤다. 아직도 뿜어낼 독이 남아 있었나 보다.

청운은 서둘러서 염천열화신공을 끌어올리고는 흑연을 불살랐다.

치이이익.

독이 타는 비릿한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다. 독연이 얼마나 지독한지 청운이 입고 있는 의복 일부가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청운은 좀 더 내공을 끌어올려서 독으로 만들어진 연기를 모조리 태웠다.

잠시 후 독연이 그치자, 청운은 철문을 힘껏 밀었다.

그그그긍.

굉음과 함께 철문이 안쪽으로 밀려들어갔다.

바깥보다 넓은 석실이 드러났다.

천장과 벽면에는 어둠을 몰아내려고 설치한 야명주가 있었다.

석실 안에는 서대가 무기대가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었다.

청운은 안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많군요.”

[그러게 말이다. 여기 있는 책들이 모두 비급이라면 제법 모았는데?]

삼류 비급이야 저잣거리에서도 구할 수 있다. 고서점이나 일반 서점만 가도 무공비급이라며 종류별로 팔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자룡궁이다.

자룡궁이 삼류 비급을 이런 곳에 관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번 살펴볼까요?”

[그러자꾸나. 한 번 해봤으니 며칠이면 다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청운과 혈황은 무고를 살펴보며 마음에 드는 비급과 무기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 * *

탁자를 중심으로 청운과 금의위 백호장들이 둘러앉았다.

탁자 위에는 자룡궁 지도가 놓여 있었다.

웅천이 청운에게 보고했다.

“대인, 감찰관들이 하루 거리까지 왔습니다. 산동 단현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었다는 보고입니다. 내일 정오면 도착할 예정입니다.”

안휘 탕산 바로 옆에 있는 성읍이 산동의 단현(單縣)이다. 천천히 가도 길이 잘 뚫려 있어서 한나절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오늘 중으로 혁련휘의 행방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찰관들이 문제를 제기할 것입니다.”

여전히 혁련휘와 무공 사부의 행방이 묘연했다. 자룡궁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들이 빠져나간 비밀통로를 찾지 못했다.

청운이 생각에 잠기자 웅천이 보고를 멈췄다.

잠시 생각이 빠져 있던 청운이 백호장들을 보며 말했다.

“그들이 진짜로 관심을 두는 것은 혁련휘가 아니네.”

“하오면……?”

“잘 알지 않는가? 그들은 자룡궁에서 뭘 얻을 수 있을지, 뭘 챙길 수 있을지 그것만 신경 쓸 거네.”

웅천도 그 말에는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들의 행태를 어디 한두 번 봐왔던가.

“해서 말인데, 자룡궁 지하통로에서 발견된 비밀금고에 대한 것은 감찰관들에게 비밀에 부칠 생각이네.”

“예?”

“말 그대로네. 비밀금고의 막대한 돈에 대해서는 보고를 올리지 않을 거네.”

“대, 대인, 그럼 그 돈을……?”

“나는 그 돈을 욕심 많은 돼지들의 입에 넣어줄 생각이 없네. 차라리 목숨 걸고 명령을 이행하는 자네들을 위해서 쓰는 게 나아. 이미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 않았는가. 그리고 일부는 이번 사건을 파헤치는데 기본 자금으로 사용할 거네.”

백호들은 청운의 말뜻을 알아듣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특히 웅천은 청운이 돈을 챙기려 한다는 걸 알고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말씀은 알겠습니다만, 저희 때문에 대인의 청정을 더럽히지는 마십시오.”

“저희는 괜찮습니다. 괜히 돈을 챙겼다가 대인께서 다치실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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