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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55화 (5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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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혈황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몇 놈하고 나면 더 나서는 자들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 저놈들이 딴지를 걸 수 있으니 확실하게 못을 박아라.]

다행히 혈황의 말대로 십여 명이 나서서 이름을 밝힌 것을 끝으로 더 인사를 청하는 이는 없었다.

청운은 이들이 입을 열기 전에 선수를 쳤다.

“여러 영웅들께서도 아시겠지만 이번 일은 역모와 관련되었소. 본인 역시 자룡궁이 역모를 꾀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증거가 너무 확실하오. 또한, 이번 일은 황명이니 나서지 말아주시오.”

청운이 재차 무림인들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서는 자가 있었다.

청운의 누그러진 말투와 앳돼 보이는 외모가 그자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흥. 아무리 황명이라지만 관과 무림은 서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오랜 관례였다. 이제 와서 이렇게 자룡궁을 겁박하…….”

사내는 말을 다 하지 못했다.

서걱!

툭.

목에 붉은 선이 그어지더니 그대로 쩍 갈라지며 피분수가 뿜어졌다.

“이, 이…….”

사내는 주춤주춤 두어 걸음을 물러서다 그대로 쓰러졌다.

청운이 상대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목숨을 취한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라 두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러나 곧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 증거로 청운의 손에 시리도록 맑은 검이 들려 있었다.

“이 무슨.”

“사람을 함부로 죽이다니, 미쳤소?”

“진무사, 무슨 짓이오!”

사방에서 청운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웅성거리며 금방이라도 청운에게 죄를 물으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하지만 선두에 서 있는 정파 핵심 인물들은 나서지 않았다.

그런 무림인들을 향해서 청운이 차갑게 말했다.

“내가 어려 보인다고 우스운 것이오? 아니면, 황명이 우스운 것이오?”

안색을 굳히고 차갑게 말하는 청운의 서슬 퍼런 말에 주위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청운은 못을 박듯이 다시 으르렁거렸다.

“분명히 말했거늘, 내 말이 그리도 우스웠소? 또 누가 나설 거요? 죽고 싶은 자는 누구든 나서시오!”

누그러들었던 청운의 말투가 사납게 바뀌었다. 주변 공기마저 차갑게 변했다.

구파를 비롯한 대문파의 인물들도 숨을 죽였다. 방금 펼친 청운의 일검을 제대로 본 자가 없었다.

조금 전 성문을 부순 것이 청운이었음을 상기하며 침묵을 지켰다.

청운은 더 나서는 이가 없자 뒤에 서 있는 금의위에게 명령을 내렸다.

“금의위는 현 시간부로 자룡궁을 폐쇄하고 관련 자들을 모조리 추포(追捕)하라!”

“명을 받드옵니다!”

금의위가 뒤쪽에서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무림인들이 청운의 기세에 밀려서 나서지 못했다. 단순한 힘이 아닌 권력이 가미된 힘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림인들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지만 그들에게도 체면이 깎일 일은 없었다.

청운은 두 차례나 양해를 구했다. 말투도 적당히 존대를 해주었다.

진무사인 청운이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으니 물러날 명분은 얻은 터였다.

일 처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천 명에 가까운 금의위가 나서자 자룡궁은 빠르게 무장해제 되었다.

이곳에 모인 무림인들도 한 명씩 자신의 사문과 별호를 적어야 했다.

가끔은 반발하는 자들도 있었다.

한 덩치 좋은 사내가 인상을 써가며 들고 있는 붓을 내동댕이쳤다.

“내가 누군지 몰라서 다시 묻는 것이오?”

“그러는 당신은 내가 금의위인 것 말고 아는 것 있소?”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그러니까 잔말 말고 적으시오. 여기 사문이 빠졌잖소. 당신 별호를 내가 어찌 안단 말이오. 뒤에 사람들 많이 기다리니까 어서 사문부터 다시 적으시오.”

금의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의 신상을 자세하게 파악했다.

* * *

안휘성을 넘어서 중원에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강호에서 승승장구하던 안휘의 자룡궁이 역모에 관련되었다는 소문이었다.

자룡궁과 연관이 있는 곳에서 말도 안 된다며 황제에게 수많은 상소를 올렸다.

자룡궁이 그동안 사마외도를 상대로 활동한 일과 절대로 역모와 관련이 없다는 상소가 대부분이었다.

백도무림인들과 연관된 관리들도 황제에게 나아가 부당하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외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건 청운은 자기 일을 했다.

“그래, 스승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

“예, 대인, 저와 함께 스무 분의 학사님께서 오셨고, 안휘에서도 학사님들께서 도움을 주실 거라 하셨습니다. 여기 묘청 선생님의 서찰이 있습니다.”

자룡궁에는 방대한 양의 자료가 있었다.

병사들의 힘으로 처리한다면 수 년이 걸려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개봉부까지 빠르게 달리면 반나절. 청운은 자룡궁의 방대한 서류를 분류하고 파악하기 위해서 스승님이 계신 천향서원에 도움을 청했다.

위진천은 서찰을 받자마자 부리나케 학사들을 선발대로 보내주셨다.

“고생이 많았네. 함께 오신 학사님들께서 원로에 노고가 많으실 것이니 불편함이 없도록 잘 보필해야 할 것이네.”

“예, 대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그분들께는 일이 끝나는 대로 찾아뵙겠다고 전하게.”

“알겠사옵니다.”

학사들을 데려온 사내가 나갔다.

“상단에서는 사람들이 왔는가?”

청운이 묻자, 한쪽에 서 있던 윤석평 백호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하남과 안휘의 여러 상단에 도움을 청했는데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거절이라.”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백도와 마찬가지로 상계에서도 청운의 이번 행보를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특히 안휘를 비롯한 인근 성의 상계가 수군거렸다.

“대인, 자룡궁과 거래하던 곳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조사에 도움을 주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의리를 지키겠다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무림이나 상계나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무림보다는 상계 쪽이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었다.

상인들은 신용과 의리를 중요시했다. 이번 일이 그런 부분과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청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고 상인들의 도움을 안 받을 수는 없었다. 장부를 살피고 자금의 흐름을 알려면 절대적으로 상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흐름을 살피다 보면 자룡궁과 연관된 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천교를 멸망시킨 자들의 꼬리를 잡으려면 꼭 필요한 조사였다.

“상관없으니 상단주들과 자리를 마련하게. 오지 않는 상단은 기억해 두겠다는 말도 덧붙이고.”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을 넣겠습니다.”

청운의 말에 윤 백호가 대답했다. 협박해서라도 자리를 마련하라는 명령이었다.

나라에 물품을 납품하는 상단들이 상당히 많았다. 만일 협조하지 않으면 납품처가 바뀔 수도 있다는 협박이었다.

청운은 상인들과 기싸움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할 일이 산더미였다.

윤 백호가 한 발 뒤로 물러서자, 이번에는 다른 이가 앞으로 나섰다. 웅천의 부장인 백호 설중이었다.

“대인, 놈들을 심문하고 있지만 사라진 자들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합니다.”

혁련휘와 무공 사부가 귀신같이 사라졌다.

분명히 자룡궁을 빙 둘러서 포위하고 있었고, 개미새끼 한 마리 벗어나지 못하게 천라지망을 형성하고 지켰었다.

그런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대체 이놈들이 어디로 사라진 것이지?’

청운은 이번에 혁련휘를 잡아들이려 했다. 그런데 귀신같이 빠져나가버린 것이다.

인상을 찡그린 청운은 덩치가 좋은 백호장 중 한 명을 바라보았다.

“자룡궁 수색은 계속하고 있는가?”

“예, 모든 곳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육조 조장인 백호 하만이 수색을 맞고 있었다. 생긴 것과 다르게 꼼꼼한 성격이어서 여러 곳의 비밀통로를 하루 만에 발견했다.

하지만 자룡궁이 워낙 넓고 오래된 곳이어서 숨겨진 곳도 많았다.

“잘 찾아보게. 자룡궁의 비밀도 중요하지만, 놈들을 잡는 것도 중요하니까.”

“예, 대인.”

육조장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청운은 여전히 명을 기다리고 있는 설중을 보며 말했다.

“설 부장은 지금부터 하만 백호를 도와서 비밀통로나 숨어 있을 만한 공간이 있는지 찾아봐라. 포로들과 일을 하던 하인들을 잘 구슬리면 무언가 나올 것이다.”

“예, 대인.”

다행히 혁련휘가 이곳에 있었다는 증거와 증인은 확보했다. 한시름 놓았지만 완벽하게 일 처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시간은 벌었다. 이제 놈들만 찾으면 되는데…….’

며칠 내로 감찰관이 올 것이다.

오군도독부와 동창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금의위에서도 오려고 했지만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결국 금의위는 이번 감찰관 일행에서 빠졌다고 급하게 연락이 왔다.

“모두 각자가 맡은 일을 빠르게 처리하라.”

청운은 금의위들을 내보냈다.

모두가 나간 줄 알았는데 한 명이 남았다.

안휘 금의위 위소의 위소장인 송인호 천호였다.

청운은 송인호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보았다.

“할 말이 있소?”

송 천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를 앙다물며 입을 열었다.

“대인, 아무리 생각해도 일이 너무 커진 것 같습니다.”

“뭐, 문제라도 되오?”

“이곳은 자룡궁입니다. 자룡궁을 건든 일로 상소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니요? 백도의 정파 무인들을 달래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조사범위를 좁히시고 잡아드린 자룡궁 무인들 중 죄가 경미한 자는 풀어주십시오. 이미 혁련휘가 도망친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점점 송인호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는 조금씩 흥분하고 있었다.

청운은 그런 송인호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왜 그리 해야 하오? 자룡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의 잘못을 덮어주자는 말이오?”

납득할 수 없는 송인호의 말에 청운은 살짝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송인호는 물러서지 않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대인, 뒷감당을 어찌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제게도 많은 정파인이 찾아와서 부당하다며 성토하고 갔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대인께서 감당하실 수 없으실 것입니다.”

언뜻 들으면 청운을 걱정하는 것 같이 들렸다. 그러나 청운의 귀에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걱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일은 온전히 내가 감당할 일이오. 송 천호는 신경 쓰지 말고 명령대로 움직이시오.”

딱 잘라 말하는 청운의 말에 송인호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청운에게 따지고 들 수도 없었다. 이미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고 했으니 더 맞서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좋습니다. 그 문제는 그렇다고 하시고,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무엇이오?”

“자룡궁주와 정예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은 조사하지 않고 다른 일을 조사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들이 죽은 걸 왜 우리가 조사해야 하오?”

“그건…….”

“그들은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죽었소. 그리고 그들은 일반 양민이 아니라 무림인들이오. 잘 알겠지만, 강호의 일은 우리가 상관해선 안 되오. 몇 명이 죽었든, 누가 죽었든 그건 그들 일이니까.”

송인호가 청운을 보며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인, 감찰관들이 온다면 분명히 그 일을 지적당할 것입니다. 자칫 불똥이 대인과 금의위 전체에 튈 수도 있습니다.”

“왜? 감찰관들이 언제 강호무림의 일에 관여한 적이 있소?”

“그건 아닙니다만…….”

“그보다 왜 그렇게 그 일에 관심을 가지는 거요?”

“관심이 아니라, 사람이 수십 명이나 죽었으니…….”

“그 일은 나중에 자룡궁의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조사하면 될 일이오. 사실 나도 조사하고 싶지만, 아마 우리가 그 일을 조사하면 강호의 무림인들이 더 싫어할 거요. 관이 무림의 일에 관여한다고.”

송인호도 그 말에는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 일은 자룡궁 내부의 일이었다. 청운의 말대로 굳이 자신들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안 그래도 강호의 정파를 건드린다고 난리가 아닌가 말이다.

“그만 가보시오.”

결국 송인호는 고개를 숙인 채 방을 나갔다.

청운은 그제야 혈황을 보았다.

“혈황님, 혁련휘가 숨어 있을까요? 아니면 도망쳤을까요?”

[내 생각에는 도망쳤을 것 같구나. 분명히 어딘가 비밀통로가 있을 것이다.]

비밀통로라는 말에 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한번 찾아보러 가시죠.”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심심했는데 잘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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