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46화 (46/257)

# 46

46화

강소성 서주(徐州)는 강소성과 안휘성을 잇는 북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안휘성 소현(蕭縣)과 연결되어 있어서 많은 이들이 오가는 교통의 요지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소현에서 말을 타고 두 시진만 더 올라가면 안휘성 최북단인 탕산이 나왔다.

탕산은 네 개 성과 연결된 큰 성읍으로, 물산이 풍부하고 사람의 이동이 많은 교통의 요지였다.

덕분에 상단이 많고 무림문파들도 많았다.

특히 탕산에는 자룡궁이라는 백도문파가 있었다.

그들은 이백 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지닌 정파 세력으로, 그동안 수많은 사마외도가 발호할 때마다 선봉에 서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덕분에 탕산 일대에는 사파가 없었다. 그저 동네 흑도들이 뭉쳐서 만든 흑도문파 몇 곳이 있을 뿐.

혁련휘와 일행이 탕산에 들어선 것은 어둠이 내려앉는 초저녁이었다.

그들은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는 곳에서 기다렸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자룡궁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던 청운은 곧장 어디론가 경공을 펼쳤다.

청운은 자룡궁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 장원으로 들어갔다.

청운이 나타나자, 한 인형이 빠르게 다가와서는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청운이 전각 안으로 들어가자 십여 명이 예를 취했다.

자룡궁을 감시하고 있던 금의위 위사들이었다.

“충!”

“충!”

상석으로 가서 앉은 청운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백호인 웅천을 비롯해서 아는 인물도 있었고, 처음 보는 인물도 있었다.

그중 중년의 사내가 포권을 하며 청운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인, 안휘성 금의위 위소를 책임지고 있는 송인호라 하옵니다.”

천호장 송인호는 제법 단단한 몸을 가진 중년의 사내였는데, 도를 주로 사용하는지 허리춤에 날이 넓은 한 자루 도가 매어 있었다.

이청운은 인사가 끝나자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받았다.

천호장 송인호가 먼저 보고했다.

“자룡궁이 분주합니다. 밖으로 나가 있는 제자들을 불러들이고, 상당한 숫자의 정파인들이 모인 상태입니다.”

“특이사항은 없소?”

“예, 대인. 무림인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을 빼면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명분을 세우려면 상대의 허점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한 달 가까이 지켜봤는데도 별다른 소득이 없는 듯했다.

그렇다고 없는 것을 내놓으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시도 눈을 떼어선 안 될 거요.”

“예, 대인.”

청운은 송인호가 나간 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찾지 못하면, 만드는 수밖에…….’

* * *

이틀이 지났을 때 전서구가 날아들었다.

금의위에서 지급을 요할 때 사용하는 천리응(千里鷹)이었다.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전서응인데 황도에서 날아든 것이다.

[문제 발생. 감찰관 출발. 급.]

짧은 글이었지만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하남성 안찰사가 올린 상소가 문제가 된 것 같았다.

실제로 오군도독부에서 강하게 들고 일어났다. 금의위에서만 막아내기에는 힘에 부쳤다.

결국 황제도 사방에서 올라오는 상소와 오군도독부의 거센 공격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금의위에 비해서 군부의 힘이 너무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군.’

하지만 청운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황궁에서 치고받는 권력 싸움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감찰관이 오면 귀찮은 일이 생길 터. 그가 오기 전에 증거를 찾아야 했다.

* * *

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은 밤. 사위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달빛마저 수줍은 듯 구름에 얼굴을 숨겼다.

휙.

한 마리 커다란 야조가 밤하늘을 날았다.

너무 빨라서 형체를 구분할 수 없었다.

저 멀리 궁궐같이 거대한 장원이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 장에 달하는 높다란 담장에 둘러싸인 곳, 자룡궁이었다.

자룡궁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나뭇가지 위에 한 마리 야조가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야조는 온몸을 검은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마저 복면을 쓰고 있었다.

청운이었다.

도둑이나 자객이 입을 법한 복장을 한 청운은 눈을 빛내더니 이내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만화은신사형.

은신술의 최고라 할 수 있는 무공답게 청운의 모습이 허공에서 자취를 감췄다.

자룡궁은 아홉 개의 독립구역이 하나로 연결된 형태를 띠고 있다.

구궁팔쾌를 응용한 아홉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육십사효의 이치를 건물 배치에 적용했다.

구궁팔쾌를 모르는 사람은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구조였지만 청운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청운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사방을 돌아다니며 자룡궁을 파악했다.

‘저곳은 경비가 심하군. 숙소인가?’

경비들의 위치와 숙소는 물론이고 주요 거점과 경비가 삼엄한 곳을 따로 기억했다.

하나하나 수상한 부분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한참을 자룡궁 안을 돌면서 살피던 청운은 길게 늘어트려진 처마 아래에 몸을 숨겼다.

‘딱히 이상한 부분은 안 보이는데.’

넓은 자룡궁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없었다. 여타 다른 문파들과 다름이 없었다.

‘겉은 되었고, 이제 속을 살펴볼까?’

밖에서 살필 때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안에 들어와서도 이상한 부분이 없었다.

결정을 내린 청운은 곧장 몸을 날렸다.

콰앙!

창고로 보이는 건물의 문짝이 굉음을 내며 부서졌다.

청운은 연이어 사방으로 쌍장을 휘둘러서 장풍을 쏘아 보냈다.

슝슝슝!

콰콰쾅!

장풍이 날아갈 때마다 굉음이 났다.

고용한 야밤에 울려 퍼진 굉음이다. 어둠에 싸여 있던 자룡궁 곳곳에 불이 밝혀졌다.

“무슨 소리냐?”

“식량창고 쪽이다!”

사방에서 경비를 서는 자들이 고함을 질렀다. 창고가 있는 건물을 포위하듯이 수십 명의 경비 무사들이 내려섰다.

하지만 그들은 박살 난 문짝만 볼 수 있을 뿐, 정작 문짝을 박살 낸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삐이익! 삐이익!

“침입자가 있다! 비상!”

“흩어져서 찾아라!”

호각 소리와 함께 자룡궁 전체에 경비가 깔렸다. 건물 안에서도 무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청운은 자신을 찾아 헤매는 경비들을 보이는 족족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퍽, 퍼퍽!

그나마 정파로 알려진 곳이어서 검을 꺼내지 않은 게 자룡궁 무사들에게는 천행이었다.

아름드리 굵은 기둥이 열두 개나 될 만큼 커다란 대전 안.

백색에 검은색 용이 새겨진 곤룡포를 입은 중년인이 분노한 표정으로 호통을 쳤다.

“아직 잡지 못한 것이냐?”

“송구합니다. 습격한 자들이 누구인지, 몇 명인지 파악도 못 했습니다.”

보고를 올린 자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중년의 곤룡포를 입은 사내는 탕마대협 구호량이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그의 나이는 이미 예순에 가까웠다. 아직도 그의 현류십삼검은 강호일절로 사마외도가 가장 두려워하는 무공 중 하나였다.

“이런 바보 같은 놈들을 보았나!”

나이답지 않게 쩌렁쩌렁한 호통 소리에 사내는 고개를 더욱 깊숙이 조아릴 뿐이었다.

“청라이십사수는 무얼 하고 있느냐?”

자룡궁이 자랑하는 또 다른 힘이 청라이십사수다. 이들은 푸른 비단옷을 입고 다닌다 해서 청라(靑羅)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적이 신출귀몰하여 따라잡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뭐, 뭐라? 청라이십사수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무언가 이상했다.

자신이라 할지라도 청라이십사수의 표적이 된다면 완벽히 따돌릴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일각이 넘은 지금까지 적의 실체조차 파악을 못 했다는 말에 분통이 터졌다.

그는 요즘 혁련장 일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혁련장을 돕기 위해 파견한 제마대가 박살난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도 그와 관련이 있는 듯했다.

‘아이들 말에 의하면 이번 일이 후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 같던데.’

마치 덫에 걸린 것처럼 무언가 압박해 들어오고 있는 듯했다. 사방을 옥죄는 느낌에 기분이 언짢았다.

그래서 벼르고 있었다. 자신과 자룡궁을 업신여기는 자가 있다면 뼈째 씹어 먹겠다고 말이다.

특히 이번 일이 그 일과 관련이 있다면 그냥 두고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상태였다.

빠드득.

“놈들이 계속 움직인다고 했느냐?”

“예, 한곳에 오래 있지 않고 사방을 돌며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좋다. 현현미리말살진을 펼쳐라!”

“명을 받듭니다.”

사내는 이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밖에 나오자마자 궁주의 명령을 전했다.

“놈들이 있을 만한 곳에 현현미리말살진을 펼쳐라!”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에 자룡궁이 일순간 정지된 것처럼 고요해졌다.

이내 화답하듯이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존명!”

그그그긍 그르르릉.

기관 움직이는 소리와 어딘지 듣기 거북한 소리가 들리며 사람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거짓말처럼 자룡궁이 침묵에 빠졌다.

청운은 주변의 공기가 변하자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봤다.

“변화가 생겼군요.”

[진법이 펼쳐지는 것 같구나.]

“진법이라…….”

청운은 자신을 향해서 몰려오던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딱히 변한 것은 없는데 감각은 위험을 알려왔다.

청운은 위험을 알리는 신호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기감을 펼치며 변화를 기다렸다.

부산한 움직임이 보였다.

현재 청운이 자리한 곳은 팔괘방위의 24좌향 중 감궁(坎宮) 위치였는데, 감궁 전체에 긴장감이 흘렀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 드디어 반응이 왔다.

“개진!”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진법이 발동되었다.

스으윽.

으스스한 기운이 자룡궁 내부에 흐르기 시작했다. 어디서 흘러나왔는지 모르지만 검붉은 색의 안개가 서서히 끼기 시작했다.

안개가 사방에서 밀려들자 청운의 미간이 좁혀졌다.

‘안개 색이 이상하군. 설마 독이 섞인 건 아니겠지?’

무림에서 독을 쓰는 자는 생각보다 많다. 직접 병장기에 묻혀서 상대를 중독시키는 자들도 있고, 암기에 독을 바른 자도 있다.

특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자는 상대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중독시키는 자들이다. 지금처럼 안개를 이용한다면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혈황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조심해라. 아무래도 혈사만마살진 같다.]

“아시는 진법입니까?”

[내가 생각하는 진법이 맞다면 환영 속의 검을 조심해야 한다. 안개에도 환각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변화무쌍해서 진의 중심을 찾지 못한다면 탈진해서 말라죽을 수도 있다.]

혈황은 스멀거리며 음부의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검붉은 안개를 보며 인상을 썼다.

끼에에에엑!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먼저 반응한 건 혈황이었다.

[젠장, 맞군.]

기우이기를 바랐건만 실제였다. 혈사만마살진이 시공을 넘어서 자신의 눈앞에 펼쳐졌다.

[진을 깨기 전에는 나도 믿지…….]

안개가 퍼지며 혈황의 모습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혈황의 목소리가 뚝 끊기고, 안개가 일대를 가득 메웠다.

곧이어 안개 속에서 기이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응?”

스르르륵.

안개가 퍼지는 소리와 조금 다른 이질적인 소리였다.

청운은 기감에 집중했다. 그러나 소리는 들리건만 기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빠르게 접근했다.

순간 청운은 반사적으로 우수를 휘둘렀다.

펑!

무언가 장풍에 맞아서 가죽 포대 터지는 소리를 냈다.

청운은 다시 여덟 방위를 점하며 빠르게 쌍장을 내쳤다.

퍼버벙 펑펑!

연이어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무언가가 목줄기를 노리고 쑥 들어왔다.

청운은 고개를 젖히며 본능적으로 왼손을 뻗었다.

물컹!

기분 나쁜 느낌이 드는 정체불명의 물체가 손에 잡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