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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45화 (4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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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흑검방과 철사방 무인들이 무기를 빼들고 육가장 무인들을 향해 밀려갔다.

육가장 무인들도 무기를 빼들었다.

“막아라!”

마침내 양쪽의 무사들이 뒤엉켰다.

숫자에서 밀린 육가장 무인들이 연신 뒤로 밀렸다.

그때 안쪽에서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였다.

“이것 봐라?”

족히 백 명이 넘을 것 같은 그들의 등장에 장준의 눈이 번뜩였다.

‘위험해. 하나같이 기도가 대단한 자들이다. 그렇다면….’

위기를 느낀 흑검방주는 내공을 모아서 외쳤다.

“이곳에 혁련휘가 숨어 있다!”

그의 외침에 다른 흑검방 무인들도 같은 말을 외쳤다.

“혁련휘가 여기 있다!”

“천원검법을 가진 자가 육가장에 있다!”

수십 명이 외친 소리가 장원을 넘어서 서문 일대에 울려 퍼졌다.

막 전각을 나와서 호통을 치려던 육중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미 사방에서 무인들이 육가장 담을 넘고 있었다.

순식간에 혁련휘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퍼져 나갔다. 혁련휘와 천원검법을 찾고 있던 무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육가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런 일이.”

육중경의 입에서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몸을 돌린 그가 빠르게 안쪽으로 들어가며 외쳤다.

“놈들을 막아라!”

“예!”

한 장한이 대답하고는 외쳤다.

“백주 대낮에 월담을 한 자들이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존명!”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장원의 담을 넘은 자들을 공격했다.

“죽여!”

“막아라!”

“어딜 감히 뛰어드는 것이냐!”

육가장 무인과 몰려든 무인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숫자상으로는 몰려든 무인들이 훨씬 많았지만 그들은 육가장 무인들의 상대가 안 되었다.

“놈들을 죽여라! 어서 놈들을 죽이고 혁련휘를 잡아야 한다!”

정준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는 앞으로 나서지 않고 여전히 육가장 정문 앞에 서 있었다. 흑검방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숨어 있었구나.’

청운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웅천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들은 아무래도 육가장 무인들이 아닌 것 같네. 자룡궁 무인 같으니 금의위의 투입을 뒤로 미루고 소문을 키우게.”

“예, 대인.”

청운의 두 눈에 차가운 한기가 서렸다.

자룡궁 무인들의 실력이 뛰어났지만 고작 백여 명이었다. 그에 반해서 몰려드는 무인들의 숫자는 계속 불어났다.

개중에는 자룡궁 무인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무인도 여럿 있었다.

고수들이 합류하자 팽팽하던 싸움에 균열이 갔다.

자룡궁 무인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그보다 훨씬 많은 무림인이 덧없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지만, 탐욕에 눈이 먼 무림인들은 누구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앞을 막던 자룡궁 무인들이 대부분 쓰러질 때 누군가 크게 외쳤다.

“저기 혁련휘가 도망친다!”

육가장 서쪽 담장을 넘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 숫자가 수십 명이나 되었다.

때마침 앞을 막아선 무인들이 마지막 힘을 쥐어 차듯이 추격하려는 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어딜 가느냐!”

“이놈들 한 걸음도 못 간다.”

자룡궁 무인들도 필사적으로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밀려드는 무림인들을 다 막지 못하고 한쪽이 뚫리고 말았다.

“뚫었다!”

“추격해라! 놈들을 놓치지 마라!”

밀물처럼 밀고 들어왔던 자들이 썰물 빠지듯이 휩쓸려 나갔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청운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자룡궁 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게.”

“예, 대인.”

멀리 추격을 시작한 무인들을 보며 청운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곁에 있던 혈황이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토끼몰이를 시작해야지요.”

[클클, 토끼가 어느 굴로 도망치는지 궁금하군.]

청운은 가볍게 발을 굴러 경공을 펼쳤다.

무인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청운 역시 사라졌다.

* * *

육가장에서 도망치기 시작한 자들은 끝없이 추격하는 무림인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포위망에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지만 모두 허사였다.

천라지망(天羅地網)

하늘과 땅에 그물을 펼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현재 상황이 천라지망에 빠진 것과 같았다.

육가장을 빠져나온 십여 명은 숲속을 빠르게 달렸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면 사방에서 조여 오는 포위망에 갇힐 것이 분명했다.

혁련휘가 무공 사부에게 말했다.

“조금 쉬었다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무사들도 지친 것 같으니 이쯤에서 잠시 쉬도록 하지요.”

무공 사부는 걸음을 멈추고 수하들에게 말했다.

“모두 일각 동안 쉬도록 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가 멈춰 섰다. 대부분이 땀과 피에 절어 있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여러 차례 습격을 받았다. 모두 물리치긴 했지만 그들도 사상자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쉬는 동안 부상을 당한 자들을 치료했다.

무공 사부는 기감을 펼쳐서 접근하는 자들이 있는지 살폈다.

“다행히 이곳까지 따라온 자는 없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상구를 벗어난 지 하루가 안 되었건만, 이미 절반에 가까운 무사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놈들 손에 사로잡혔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얼마 가지 못하고 잡힐 수도 있었다.

일행 중에는 일기대협 육중경도 보였다.

반듯한 외모에 깨끗한 것을 좋아하기로 알려진 그의 모습은 크게 낭패한 모습이었다. 만약 그를 아는 이들이 본다면 까무러칠 만큼 지저분했다.

의복은 찢겨져 있고 백의는 검붉은 색으로 변한지 오래였다. 이곳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싸움을 벌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무공 사부에게 다가가서 한마디 했다.

“삼천, 정녕 천원검법을 휘 공자가 얻은 것이 아닌가?”

삼천이라 불린 무공 사부의 미간에 내 천 자가 선명하게 만들어졌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 하였습니다.”

“흥. 이 판국에 이름이 대순가? 나는 평생을 쌓아온 명성을 버렸네.”

육중경이 으르렁거렸다.

그의 말대로 혁련휘와 무공 사부 때문에 육가장이 박살났고 자신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삼천이라 불린 무공 사부가 인상을 쓰며 쏘아붙였다.

“허명은 다시 찾으면 될 일입니다.”

“뭐라? 허명? 방금 허명이라 했는가?”

“크흠. 미안합니다. 제 말이 지나쳤습니다.”

“흥. 조심하게. 내 비록 자네보다 교에서의…….”

“그만! 그만하십시오. 더 이상 거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무공 사부는 소리쳐서 육중경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육중경이 얼굴을 씰룩이면서도 먼저 사과했다.

“미안하네.”

“아닙니다. 제 잘못도 있지요. 그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나 휘 공자는 고서점에 가지도 않았고, 천원검법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끄응. 그렇다면 그 소문은 무엇인가?”

“저희는 상구에 들어서자마자 육가장으로 숨었습니다. 필시 누군가가 장난을 친 것이 분명합니다.”

육중경의 질문에 무공 사부는 자신도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자네들을 잡기 위해서 소문을 냈다는 말인데, 이 또한 이상하단 말이야.”

“무엇이 말입니까?”

“생각해 보게. 자네나 휘 도련님은 역모 사건으로 쫓기는 상태네. 그런데 금의위나 병사들이 전혀 잡으러 다니지 않았네. 그럼 상구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말 아닌가?”

육중경의 말에 무공 사부의 미간이 다시 좁혀졌다.

듣고 보니 이상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금의위들을 죽이고 도주했는데 따라오는 자들이 없었지요. 방향을 여러 번 꺾은 다음에 몸을 숨기고 상구로 숨어들었으니, 그들이 이렇게 빨리 우리의 위치를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군부에도 아는 자가 있어서 알아보았는데, 자네들에 대한 추포령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더군.”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었다. 쫓기는 상황에서도 계속 생각해 봤지만 이해가 안 되었다.

자신들이 상구에 숨은 것을 금의위에서 알았다면 병사들을 보내서 추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리하지 않았고, 병사들도 모르고 있다면 금의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가 수작을 꾸몄다는 말인데…….

육중경이 무공 사부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그 일 때문이 아닐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있지 않나. 후계…….”

육중경은 말을 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채고 무공 사부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빠드득.

그의 입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두 눈에서는 흉흉한 불이 번쩍였다.

“놈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젠장. 맞아, 그게 사실이라면 이 모든 일이 설명되네.”

둘은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육중경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이곳은 산동 성무 근교다. 너희 셋은 제야를 거쳐 량산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너희 넷은 하택으로 이동한 뒤에 다시 하남으로 돌아가라. 나머지는 나와 함께 금향으로 가서 곡부로 들어갈 것이다. 그 뒤에 태산으로 이동한다.”

“예, 장주님.”

“장주님, 그럼 저희는 그 뒤에 어찌합니까? 합류합니까?”

흩어진 뒤에 다시 만날지 아니면 따로 움직일지 정해야 한다.

육중경은 따로 움직이기로 한 무인들을 보며 말했다.

“산서 태원에 있는 오가장으로 가라. 어딘 줄 알지?”

“물론입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몇 사람이 인사를 하고 빠르게 떠나갔다. 남은 사람들 역시 휴식을 마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잠시 후.

모두가 떠나간 숲에 한 인영이 소리 없이 스르르 나타났다. 청운이었다.

청운은 그들을 발견한 직후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몸을 숨기고 함께 움직였다.

때로는 포위를 당할 경우 추적자들을 점혈해서 활로를 터주기도 했다.

그런데 수상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재밌는 말을 하는군요.”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고생이라기보다 황궁무고에서 배운 은신술을 시험할 수 있어서 수련도 되고 좋은데요?”

이제까지 안 들킨 건 뛰어난 경공도 있지만 황궁무고에서 배운 만화은신사형(萬花隱身邪形)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은신술이나 은둔술은 모두 기문둔갑술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익히기 까다로운데, 네가 역법에 밝아서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거야.]

“하하하, 제가 머리 하나는 좋잖습니까.”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가자. 하나라도 더 알아내야지.]

“예.”

청운의 신형이 주위에 동화되듯이 흐릿해지며 바람결에 흩어졌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숲속은 곧 침묵에 잠겼다.

* * *

강소성의 북쪽 끝자락에 있는 신기현에 일단의 무리가 들어섰다.

혁련휘와 일행들이었다.

그들이 한 객잔으로 들어가는 것을 청운은 멀리서 지켜봤다.

혈황은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청운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놈들, 산동성 제남으로 간다더니 왜 강소성으로 길을 바꿨지?]

“부하들이 잡히면 행선지가 밝혀질 것을 우려한 행동 같습니다.”

[용의주도한 놈들이군.]

“목적지가 자룡궁인 것 같은데, 황군으로 공격하면 문제가 커질 것 같군요.”

[확실한 명분과 증거가 없다면 백도의 반발이 거셀 거다.]

자룡궁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단순하게 밀고 들어가서 수색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청운은 그들의 반발이 세다 해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증거가 있건 없건, 놈들의 잘못이 명백하다면 그 어떤 압력이 들어와도 제 뜻대로 할 겁니다. 어디 누가 이기는지 끝장을 한번 보지요.”

혈황은 그런 청운을 슬쩍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하아, 그 자식. 보기보다 성깔이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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