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44화
“뭐야? 비급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안다고?”
같은 자리에 있던 조금 덩치 큰 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덩치가 큰 만큼 목소리도 커서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쉿.”
깡마른 사내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주의를 주었다.
덩치 큰 자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떤 놈이 비급을 얻었는데? 누가 천원검법을 얻은 거야?”
“거 왜, 혁련장이라고 알아?”
“개봉 혁련장? 얼마 전에 망했다는 곳 말인가?”
“맞아. 그곳의 아들인 혁련휘가 고서점에서 오래된 책을 살펴보다가 발견했다고 하네. 그런데 그가 상구 어딘가에 숨어 있다지 뭔가.”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개방에서 나온 정보야. 그 때문에 개방 방주인 개망나니 염악도 상구에 들어왔다고 하네.”
“제길, 개방 방주까지 왔으면 우리가 얻긴 글렀군.”
“아직 실망할 건 없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직은 많지 않으니까. 게다가 듣기로는 부상을 당했다고 하더군. 혹시 알아? 다 죽어가는 놈을 어디 구석에서 찾을 수 있을지.”
“그건 그렇군. 그럼 당장 찾아보세.”
“밥 나왔으니 밥이나 먹고 가세.”
쓰윽.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개중에는 식사를 하다 말고 일어선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급히 계산을 하고 객잔을 빠져나갔다.
조금 전에 이야기를 하던 자들도 후다닥 식사를 마치고 객잔을 나섰다.
객잔에서 일어난 일과 비슷한 일들이 동시에 상구 성내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곳에서 벌어졌다.
삼삼오오 짝을 이룬 사내들이 돌아다니면서 소문 아닌 소문을 냈다. 어떤 때는 장사치들이 떠들고 다녔고, 어떤 때는 무림인들이 떠들며 소문을 키웠다.
-혁련휘란 자가 천원검법을 얻어서 상구 성내에 숨어 있다.
-부상을 입어서 발견하기만 하면 비급을 얻을 수 있다.
모두가 청운이 흑검방을 시켜서 낸 소문이었다.
흑검방주와 부하들이 노력한 덕분에 소문이 퍼지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 * *
상구의 치안을 담당하는 위지휘사사에 때아닌 불똥이 떨어졌다.
무림인들이 사방을 휘젓고 다니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험악하게 생긴 자들이 무장하고 돌아다니자 일반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백성들은 상구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위지휘사사에 청원을 넣었다. 덕분에 치안을 맡은 위지휘사사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에는 어디라고 하느냐?”
회의청 중앙의 의자에 앉아 있는 중년의 사내가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짜증 섞인 음성을 뱉었다.
“이번에는 서문 쪽입니다. 현천장 옆에 붙은 영보장원입니다.”
중앙에 앉아 있는 사내는 상구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위지휘사였다.
상구는 상구부이기에 일위(一衛)의 위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오천 명이 넘는 병사를 거느린 위지휘사가 이곳 상구의 병권을 쥐고 있는데 그는 이번 일로 골치가 아팠다.
“서문?”
“예”
위지휘사는 보고하는 지휘첨사에게 다시 물었다.
“무인들이 찾는다는 인물이 개봉 혁련장의 혁련휘가 맞느냐?”
“예, 그자가 상구의 고서점에서 무공비급을 얻었다고 합니다.”
“나도 누가 무공비급을 얻었다는 말은 들었다. 그런데 그 소문이 사실이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림인들이 그 난리를 칠 이유가 없습니다.”
첨사의 말에 위지휘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자고 비급이 발견되어서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뱉었다.
평온하기만 했던 상구가 시장통으로 변해버렸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곁에 있던 덩치가 좋은 지휘동지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무엇이 말이냐?”
“소문이 너무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한 것처럼 말입니다.”
지휘동지의 말에 이곳에 모인 인물 일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지휘사가 다시 이마에 내 천 자(川)를 만들며 손을 짚었다.
“끄응.”
그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휘첨사가 상관인 지휘동지를 거들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요 며칠간 수상한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소문을 듣고 무림인들이 달려온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그러니까 자네들 말은, 이번의 비급 관련 사건을 누군가가 조작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몇몇이 동시에 대답했다.
위지휘사가 생각해도 이상한 일투성이였다.
그가 고민하고 있는데, 수하 장수들이 나름대로 대책을 내놓았다.
“병사들을 풀어서 치안부터 빠르게 수습해야 합니다.”
“무림인들의 입성을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문을 닫으시지요.”
“당장 도지휘사사에 연락을 넣어서 증원을 부탁해야 합니다. 특히 무공을 익힌 병사들이 필요합니다.”
“무림방파에 연락을 넣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곳 상구에도 여러 문파가 있고, 마침 개방의 방주가 들어왔다고 하니 개방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모두 옳은 말이었다. 평소라면 당장 이들의 말을 따랐을 위지휘사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이들 말을 따를 수 없었다.
“자네들 말은 내 잘 알겠네. 그러나 무림인들 문제 아닌가. 그래서 대대적으로 병사를 성내에 풀 수는 없네.”
뜻밖의 말에 군관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군략에 뛰어나다고 소문난 위지휘사다. 그런데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한발 빼려고 하다니.
말석에 앉아 있던 젊은 백인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따지듯이 말했다.
“장군, 어째서입니까?”
“원래 관과 무림은 서로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장군, 그건 명분일 뿐입니다. 그들이 일반 백성을 건들지 않았을 때만 통용되는 관행입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
“그만! 알았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위지휘사는 한 손을 휘휘 저으며 모두 나가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젊은 백인장은 무언가 할 말이 더 있었지만 선배 백인장들의 손에 끌려 나가야만 했다.
모두 나가고 첨사와 동지가 남았다.
지휘첨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우 사형. 혹시 다른 일이 있으십니까?”
“끄응. 표 나느냐?”
“예, 평소라면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는 놈들을 용서하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상구의 군권을 맡은 위지휘사는 강서성 백운산 자락에 위치한 운성의 백가장 출신이었다. 위지휘사의 이름은 백연우로 지휘첨사와 동지도 같은 가문 사람이었다.
강서 백가라 알려진 백가장은 한때 무림에 이름을 떨쳤던 절대고수 백운룡의 가문이다. 이미 오래전 일이라 가문의 위세가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강서성을 대표하는 무가였다.
“사형 어서 말씀해보십시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동지가 다그치듯이 물었다.
“진무사가 찾아왔었다.”
위지휘사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둘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동지가 확인하듯이 되물었다.
“안옥 도지휘사님을 하옥한 이청운 말입니까?”
“그래, 놈이 도지휘사사 영부를 내밀면서 이번 일에 병사들을 동원하지 말라더구나.”
그의 말에 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다면 백연우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 영부로 내린 명령이라면 상관의 명령과 같기에 따라야 했다.
지휘동지가 이해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끙끙 앓기만 하셨구려.”
“그래, 나라고 이 사태를 보고만 있고 싶겠느냐?”
“어쩔 수 없지요. 위에서 내려온 명령인데요. 그렇다고 완전히 손 놓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휘동지는 그래도 불만인지 퉁명스럽게 말했다.
백연우 역시 그의 말에 동의했다.
“생각 중인데,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다. 이번 일이 개봉에서 있었던 역모 사건과 연관이 있다더군. 그래서 고민하는 거다.”
“허, 역모라면 바짝 엎드려야겠군요.”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기만 하던 첨사가 말했다. 첨사의 말에 동의하는지 한숨을 쉬며 백연우가 낮게 말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조금 더 생각해 보자꾸나.”
“예. 그럼 저희는 병사들을 단속해 놓겠습니다. 특히 사질 녀석이 걱정입니다.”
“그래. 그 녀석, 사고 칠 수도 있으니 위소경비로 돌려라. 밖으로 절대 내보내지 말고.”
말석에 앉아 있던 백호장 이야기였다.
그 역시 이들과 같은 백가장 출신으로 약관이 되기 전에 이미 절정에 오른 고수였다. 당연히 가문에서 신경 쓰는 기재였다.
지휘동지와 첨사가 나가고 홀로 남은 백연우는 다시 머리를 짚으며 생각에 잠겼다.
청운에 대한 생각이었다.
‘약관의 나이에 이미 초절정 경지를 넘어섰어. 한판 붙어볼 걸 그랬나?’
비록 지금은 관부에 메인 몸이지만 강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강서성을 넘지 말고 살라는 백운룡 선조의 유언이 없었다면 진즉 중원천하로 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젊은 혈기를 내세우기에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
그래서 심장이 식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그렇게까지는 안 된 것 같다.
‘아무래도 조만간 찾아가 봐야겠군.’
* * *
상구가 점점 혼란스러워지자 치안을 담당하는 위지휘사사에 대한 원성이 높아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상구에 자리한 세력이 똘똘 뭉쳐서 백성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너무 많이 몰려든 무림인들의 횡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었다.
“도적놈이 이곳에 들어갔다고 들었소. 수색을 할 것이니 협조하시오.”
“이 무슨 짓이오? 그대들이 관원이라도 된단 말이오?”
서문에 자리한 육가장 앞에 일단의 무림인들이 몰려왔다.
육가장은 제법 규모가 큰 곳으로 한때 일기대협이라는 이름을 날린 육중경이 세운 장원이었다.
“당장 비키지 않으면 역도를 숨긴 죄를 물을 것이다.”
“뭐라? 이놈들! 그러니까 네놈들이 관원이냐고 묻지를 않느냐?”
“악적을 잡는 데 관원이 아니면 어때?”
“그 무슨 개소리냐!”
한 치의 물러섬 없는 대치가 이어졌다.
둘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한 무림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째 수상한데? 그저 수색만 한다는데 어찌 이리 막아서는 것이오?”
“맞소! 정말 수상하니 그냥 쳐들어갑시다!”
강경하게 앞을 막아서는 육가장을 향해서 이제는 수십 명의 무림인이 동시에 으르렁거렸다.
그렇다고 육가장을 호위하는 무사들은 길을 비켜줄 수도 없었다. 위에서 무조건 막으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웃기지 마라. 네놈들이 관원이 아니거늘 어찌 비켜설 수 있단 말이더냐?”
청운과 금의위가 그들의 다툼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무심한 눈으로 육가장 입구를 보던 청운이 웅천에게 물었다.
“저곳이 의심스럽단 말인가?”
“예, 다른 곳은 대부분 몇 번씩 수색했습니다. 저곳 육가장만 한 번도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래?”
“일기대협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대협이라는 칭호를 받았다면 존경받아야 하는 인물이다. 그만큼 존경받을 일을 했고, 인의(仁義)를 펼치며 행한 인물이라는 뜻. 평상시라면 그의 말을 믿어야 했다.
그러나 청운이 봐도 수상한 면이 없지 않았다.
“만일 그가 이곳에 없다면 내 친히 사죄할 것이네. 그러니 강행하게.”
웅천은 군례를 올린 뒤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밀어붙여라!”
“예!”
명령을 받은 금의위가 빠르게 어디론가 달려갔다.
잠시 후, 육가장 쪽으로 수십 명의 인물들이 새롭게 나타났다. 한눈에 봐도 험악하게 생긴 자들이었다.
“왜 아직도 입구에서 얼쩡거리고 있어?”
장준이 흑검방 무사 수십 명을 거느리고 거드름을 피웠다.
제법 명성이 있는 흑검방이기에 상구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장 방주, 오셨습니까.”
“이런 철사방의 양철 방주시구려.”
둘은 평소에도 아는 사이인지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철사방 역시 사파에 속하는 방파로 개봉 옆 기현(杞縣)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양 방주, 시간 끌 것 있소?”
“그렇지 않아도 이제 시작하려던 참입니다. 끌끌끌.”
둘의 시선이 동시에 입구를 막고 있는 자들에게 쏠렸다.
그러고는 합창하듯이 외쳤다.
“밀고 들어가라!”
“막으면 인정사정 보지 말고 공격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