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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42화 (4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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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살기를 뿜어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글거리는 두 눈은 충분히 사람 여럿을 죽이고도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도지휘사도 만만치 않았다.

“허허, 고작 천호장 주제에 도지휘사사인 내게 반말을 하는 것이냐?”

품계나 관직을 봐도 도지휘사사가 훨씬 높았다. 한 성의 병권을 쥐고 있는 인물이기에 그 권위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도지휘사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고작 천호장? 크크, 황제 폐하의 직속 부대인 금의위 천호장에게 고작 천호장이라……. 내가 네놈 휘하의 천호장으로 보이느냐?”

“뭐, 뭐라? 네 이노오옴!”

도지휘사가 분을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이에 뒤를 따르던 자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금의위 역시 검을 뽑았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중간에 있는 안찰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이, 이러지들 말게. 석 천호장도 그만하시게, 도지휘사님도 참으십시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고 왜소한 편인 안찰사는 양쪽을 번갈아 가며 싸움이 벌어지지 않게 만들려고 진땀을 흘렸다.

짝짝짝.

험악해지는 분위기 속에 박수 소리가 들렸다.

한쪽에서 웃음 짓고 있는 청운이 친 박수였다.

“하하하. 이거 오군도독부의 위세가 대단하다고 들었지만, 고작 일개 성의 도지휘사의 위세가 금의위의 천호장보다 높은지는 몰랐습니다.”

“뭐, 뭐라?”

“왜요? 도사께서는 금의위 중에서도 정예인 북진무사가 누구인지 잊어버리신 것입니까? 아니면…… 오군도독부의 위세를 믿고 계신 것입니까?”

“…….”

청운의 날카로운 지적에 도지휘사사는 입을 닫았다. 굳어진 그의 안색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는 분노를 터트릴 수 없었다. 청운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청운은 예전 생각을 했다.

‘권력이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지. 감히 쳐다도 볼 수 없었거늘.’

청운은 안찰사와 도지휘사를 여러 차례 만났었다. 나라의 동냥이라며 청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때는 감히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었다. 지금은 이처럼 바뀌었지만.

청운은 웃음 띤 얼굴로 도지휘사사와 안찰사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두 분께서 이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크흠, 알 수 없는 무리에게 혁련장이 공격을 받고 있다는 첩보가 있었소. 그래서 이렇게 달려오게 된 것이오.”

안찰사가 빠르게 대꾸했다. 여전히 도지휘사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청운은 그런 도지휘사를 놔두고 안찰사를 향해 말했다.

“이제 금의위가 나선 일이라는 것을 아셨으니 병사를 물리고 그만 돌아가십시오.”

웃으며 말했지만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끄응.”

안찰사가 신음을 흘렸다. 권력 싸움에서 밀렸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도지휘사의 생각은 달랐다.

“그럴 수는 없다.”

“그럴 수 없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청운은 도지휘사를 보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딱딱했다. 그러나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

도지휘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강하게 말했다.

“이곳은 내 관할이다. 미리 언질도 없이 불법으로 저지른 일을… 나는 용인할 수 없다.”

장판교의 장비라도 되는 양 온몸에서 기세를 뿜어냈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몰라도 청운에게는 가소로운 일이었다.

피식.

청운이 웃음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도지휘사의 얼굴이 실룩였다.

“웃어?”

“도사께서는 재밌는 말씀을 하시는 군요.”

“재미? 내가 네놈에게 농을 하고 있다는 말이더냐?”

“하하하.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억지를 부리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청운이 크게 웃으며 하는 말에 도지휘사는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억지를 부린다는 것을. 그러나 그의 말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잘 들어라. 관례에 따르면 병력을 움직일 때는 반드시 그 성의 군권을 쥐고 있는 나에게 와서 미리 보고를 하고 움직여야 하느니라!”

“아! 관례……. 예법을 따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네놈이 아무리 진무사라지만 품계를 받지 않은 자다. 내 허락도 없이 내 관할에서 병력을 운용했다는 것은… 역모나 마찬가지이니라.”

주변이 술렁거렸다.

결코, 나와서는 안 되는 단어가 나왔다.

하지만 청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도지휘사를 향해서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관례를 안 지켰다고 역모라… 그럼 황제 폐하의 황명을 수행하는 관리의 앞을 막은 자는 무엇입니까?”

“뭐, 뭣이라? 네 이노오오옴!”

“이런, 모르고 오셨습니까? 혁련장이 역모를 꾀했다는 사실을요?”

청운의 말에 도지휘사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곳에 금의위가 왜 왔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저 억울하다는 말과 함께 금의위가 나타나서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말만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역모라고 했느냐? 네놈이 꾸민 거짓 역모겠지!”

도지휘사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자신은 나라에 열다섯 명밖에 없는 도지휘사였다. 열세 개 성 중 하나인 이곳 하남성의 군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

더욱이 금의위와 자신이 속한 오군도독부는 힘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물러설 수 없었다.

‘새파란 애송이 놈이 감히 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냐!’

빠드득.

도지휘사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대로 물러섰다가는 천하인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미 기호지세였다.

그런 도지휘사의 입장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일은 양보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나 혈황이나 원수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래서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힘 싸움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신지요?”

“못 할 것도 없지!”

도지휘사는 충분한 힘이 있었다. 청운이 금의위라 할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오군도독부가 뒤에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물러서지 않았다.

“좋습니다. 정녕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다면 그리하지요.”

“이노오옴! 정녕 네놈이 죽고 싶은 것이더냐!”

후아악!

도지휘사사의 몸에서 뿜어진 강력한 살기가 청운을 덮쳤다. 참고 참았던 분노였다.

“어디 감히 학사 나부랭이가 나와 맞서겠다는 것이냐!”

지금은 뚱뚱한 몸의 돼지가 되었지만 젊었을 때는 북방을 호령하던 만인장 출신이었다.

‘이제 네놈은 피똥을 싸며 내게 살려달라고 하게 될 것이다.’

도지휘사는 속으로 청운을 비웃어 주었다.

무장보다 체면을 더욱 중시하는 자들이 학사들이었다. 자신의 살기를 온몸으로 받았으니 바지에 실례할 것이 뻔했다.

즐거운 상상을 하는데 반응이 이상했다.

“만인장 출신이라시더니 살기가 대단하시군요.”

청운이 손사래를 쳐서 살기를 흩어버리며 말했다.

“어?”

도지휘사가 입을 쩍 벌렸다.

청운의 가벼운 손짓에 자신의 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에 두 눈만 끔벅이며 청운을 보았다. 청운은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며 명령을 내렸다.

“금의위는 명을 받들라!”

“충!”

모두의 시선이 청운의 입으로 모였다.

청운은 도지휘사를 뚫어지게 보며 천천히 말했다.

“하남성 도지휘사를 역모죄로 잡아들여라!”

“존명!”

금의위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장내가 난리가 났다.

“뭐라?”

“이보시오, 진무사!”

도지휘사는 물론이고 곁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안찰사까지 청운에게 따졌다.

청운은 그저 침묵을 지켰다. 이미 금의위들이 도지휘사를 포위했다.

“순순히 포박을 받아라.”

“당장 무기를 버려라!”

그러나 도지휘사를 따르는 군관들 역시 만만한 자들은 아니었다.

“감히 네놈들이 죽고 싶은 것이더냐?”

“도사님을 보호하라!”

서로 대치가 이뤄졌다.

밖에서도 장원을 포위하고 있는 병사들이 금의위와 병장기를 겨누었다.

도지휘사는 얼굴이 벌겋게 변했고 청운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저 훈계나 해주고 말려고 했던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남은 건 안찰사였다.

청운은 안찰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안찰사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중간에 끼어들었다.

“두 분 다 그만하십시오.”

그러나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문제는 금의위였다.

그들의 행동을 봐서는 청운이 명을 거두기 전에는 절대 물러설 것 같지 않았다. 만일 이대로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도지휘사가 이끌고 온 병사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안찰사는 청운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오늘 일 황상께 그대로 고할 수도 있습니다. 중앙권력이라고 해서 이처럼 지방관리들을 업신여긴다면 그냥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쯤 하시고 금의위를 물리시지요.”

최후의 절충안을 안찰사가 내놓았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는 건 청운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이들을 벌하러 온 진무사입니다. 그러니 내 입에서 나온 말이 곧 황제 폐하의 명입니다.”

“이보시오 진무사!”

“그만!”

청운은 안찰사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그의 몸에서 약간의 살기가 퍼졌다.

순간 주위가 싸늘하게 식었다.

청운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고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황명을 받들라!!!”

모두의 시선이 청운이 들고 있는 물체에 모였다.

무언가 번쩍이는 것이 황금으로 만든 패로 보였다.

자세히 보니 황명이라는 두 글씨가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황제를 나타내는 황금인장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황금인장을 보자 안찰사와 도지휘사가 그대로 오체투지하며 선창했다.

병사들도 함께 오체투지를 하며 외쳤다.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황제에게 예를 올렸다.

도지휘사는 온몸에 벼락이라도 맞았는지 부르르 떨었다.

‘끝장이구나.’

설마 청운이 황금인장을 소유한 관리인지 모르고 있었다. 만일 미리 알았다면 이곳에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청운은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도지휘사를 잡아서 하옥하라. 혁련장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역모죄로 다스릴 것이다!”

청운의 서슬 퍼런 명령에 도지휘사가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포박을 받았다.

혁련장 식솔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믿었던 최후의 패가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안찰사의 얼굴은 싸늘했다. 결코 굴복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청운의 명령이 이어졌다.

“당장 도지휘사의 병권을 회수하고 혼란을 막아라!”

“존명!”

웅천이 도지휘사의 품에서 병부를 취한 뒤 청운에게 받쳤다.

청운은 병부를 손에 쥐고 명령을 내렸다.

“혁련장 식솔들을 군부에 가두고 자룡궁과 혁련장 무사들을 감옥에 하옥하라!”

청운은 끌려가는 혁련종도에게 차갑게 말했다.

“그대의 아들 휘가 잡혀 온다면 그때 한꺼번에 처리해주리다. 아! 혹시 해서 말하는데, 무공을 쓸 생각은 말아야 할 거요. 그러면 죽음만 앞당길 테니까.”

청운은 말을 함과 동시에 뒤돌아서 전각으로 향했다.

사방에서 황제를 찾으며 살려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을 구원해주지는 않았다.

혁련종도도 끌려가면서 청운을 보며 악을 썼다.

“이놈!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청운은 냉소를 지었다.

‘네가 아버지에게 한 것처럼 했지. 다른 사람은 살지 몰라도 당신은 절대 살 수 없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 혈맥이 토막토막 끊어지고 처절한 고통을 느끼며 죽어갈 테니까.’

황궁무고의 무공 중에는 기이한 것도 많았다.

개중에는 진기를 주입해서 혈맥을 서서히 파괴하는 무공도 있었다. 그 무공에 당하면 처절한 고통이 뒤따른다고 했다.

그는 복수를 하기 위해서 그 무공의 구결을 외우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혁련종도를 상대로 펼쳤다.

그는 역모죄를 벗어난다 해도 처절한 고통을 겪으며 죽을 수밖에 없으리라.

‘세상이 나를 독한 놈이라 욕해도 당신과 당신의 아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다!’

* * *

“대인! 큰일 났사옵니다.”

청운이 차를 음미하며 혁련휘에 대한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웅천이 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었다.

웅천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보고를 올렸다.

“대인! 놈이 개봉성을 벗어나서 사라졌다고 하옵니다.”

“뭣이!”

청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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