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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40화 (4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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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생각이냐?”

혁련종도는 옆에 서 있는 총관에게 눈빛을 보냈다. 총관이 읍하며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청운에게 말했다.

“네놈은 누구이기에 아침부터 소란을 떠는 것이냐?”

“그건 나중에 따지고. 이렇게 모인 것을 보니 무언가 흉계를 꾸미는 것 같은데…… 맞나?”

“흉계라니. 발칙한 놈이로구나!”

총관이 언성을 높이고는 당장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라렸다.

“네놈이 우리 혁련장의 무사들을 죽이고 남은 자들을 잡아들였지 않았느냐!”

“하하하. 한 무리의 도적들이 선량한 자들을 공격하러 가기에 잡아들인 것이다.”

“네 이놈! 어린 것이 못 하는 말이 없구나. 선량한 자들이라니. 사마외도의 쓰레기 같은 자들이 우리를 먼저 공격했기에 벌하기 위해서 출동한 것이다.”

명분 싸움은 중요한 일이었다. 누구의 잘잘못은 말 한마디에 결정되기도 했다.

총관이 청운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어서 정체를 밝혀라! 그렇지 않으면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총관이 뭐라 하든 말든 청운은 신경 쓰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룡궁에서 온 자들이 어느새 검을 뽑아 들고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다.

청운이 혈황을 보며 말했다.

“더 시간 끌 것 없이 확인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라. 나도 지루하던 참이니.]

청운은 내공을 끓어 올렸다.

평범했던 백면서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순식간에 잘 벼려진 한 자루 명검으로 변했다.

칠백 년 전 무성으로 불렸던 천은자의 천명신공에 수록된 천명심법이 청운의 몸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혈황신공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 청운이 운용할 수 있는 최고의 심법이었다.

웅웅, 우우웅!

잔잔한 으르렁거림이 청운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온몸에 내공이 충만해지고 팽팽해졌을 때 청운이 차갑게 말했다.

“그만 떠들고 검으로 말하는 건 어떤가?”

“저, 저놈이!”

총관이 버럭 화를 냈다.

청운의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 도발을 그냥 넘길 혁련종도가 아니었다.

“굳이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원한다면 그리 해줘야겠지.”

혁련종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른편에 서 있는 여러 무인들 중 한 명을 보며 말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 사내가 포권을 하며 혁련종도에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사내는 자룡궁에서 파견된 벽산검(霹散劍) 구호용(歐狐龍)이란 자였다.

제마대주인 그가 펼치는 벼락같은 검법에 수많은 사마외도들이 명을 달리했다.

구용호는 청운을 한 차례 노려보더니 앞에 도열해 있는 제마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발진하라!”

“충!”

제마대가 일제히 답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칠십이 명이 앞으로 나섰다. 나머지 인원은 뒤로 물러섰다.

수백 명이 동시에 진법을 펼치기에는 자리가 협소했다. 그래서 제마대 일개단만 검진을 발동한 것이다.

청운은 곁에 있는 혈황을 보았다.

혈황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천교 무공은 아니구나.]

자룡궁이 천교와 관련이 있다면 천교의 진법을 사용할 텐데 아니었다.

청운은 깊이 숨을 내뱉으며 살짝 무릎을 굽혔다가 폈다.

쾅!

쩌저저정!

청운의 신형이 번개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청운이 서 있던 자리가 거미줄처럼 금이 갔고, 수십 개의 검기가 청운이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퍼버버벙!

후두두둑!

돌가루와 먼지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제마대의 검진이 발동되었다. 혁련장의 경천검대가 펼쳤던 탈혼무정검진과 달리 사방으로 검기가 뻗어 나갔다.

한 몸처럼 움직이는 제마대의 위력은 청운도 경시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차자자장.

청운은 하나처럼 움직이는 제마대의 검진에 주춤했다. 한 명씩은 별 볼 일 없었지만 하나로 뭉친 제마대의 힘은 매섭고 날카로웠다.

여덟 개의 검이 한곳을 동시에 공격해왔다.

청운은 정면에서 쑥 질러오는 검에 맞섰다.

챙!

두 걸음 물러선 그는 몸을 회전시키며 적의 공격에서 벗어났다.

혈황이 따라붙으며 조언을 했다.

[힘으로 막지 말고 흘려라. 단번에 깨버릴 것이 아니라면 맞서지 마라.]

차자자장!

청운이 물러서자 적의 공세가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청운은 연신 상체를 놀리며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제마대의 공격은 아홉 번을 몰아쳤다.

여덟 명이 하나가 되어서 쏟아지는 공격을 일일이 쳐내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청운의 옷깃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유유히 검진을 상대하는 청운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지 제검대주가 진에 변화를 줬다.

“잔멸(殘滅)!”

제마대원들이 일제히 멈춰 서서 일자로 길게 늘어섰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일 것 같던 검진이 멈추자 청운도 따라서 멈춰 섰다.

제마대원들이 청운을 향해서 아홉 줄기의 해바라기 모양을 만들었다.

각 줄마다 여덟 명이 한 조가 되어서 각기 다른 자세를 취했다.

다시 제마대주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공격이 시작되었다.

“멸사!”

선두에 있던 자들이 여덟 방향에서 일직선으로 청운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차자자장!

일사불란한 움직임 속에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아홉 번째 줄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덟 줄기의 공격 사이사이에 끼어들며 검을 펼쳤다.

여덟 줄기의 무인들과 다른 검법이었다. 어딘지 날카롭고 살기가 짙은 검이었다.

그들의 달라진 검진의 변화에 혈황이 한마디 했다.

[드디어 꼬리를 잡은 것 같구나. 검진에 녹아든 자들이 펼치는 검법은 구유수라마검(九幽修羅魔劍)이다.]

고개를 젖혀서 숨겨진 검을 피한 청운이 혈황의 말에 대꾸했다.

-천교 무공입니까?

[제법 쓸 만한 검법이다. 일순간에 검이 변할 것이다. 유속에 강의 묘리가 담겨 있으니 자칫 가볍게 생각했다가는 당할 수 있다.]

청운은 빙글 몸을 돌리며 두 명의 검을 피했다. 연이어 찔러 들어오는 검을 살짝 뛰어서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강한 일격이 밀려왔다.

챙!

검을 들어 막아낸 청운은 묵직하게 전해지는 힘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혈황님, 말씀대로군. 자칫 낭패를 볼 뻔했어.’

별것 아닌 자들이었다. 그런데 하나가 되어 펼치자 그 위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다.

[머리 조심하거라. 그래, 거기서는 앞으로 치고 나가면 검진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저기 그림자에 숨은 놈의 상단 찌르기는 조심해라. 노리는 곳은 미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명치다. 현혹되지 말고.]

혈황의 조언을 들으며 청운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적을 상대로 실전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차자자창.

청운은 부드럽게 흘리던 검을 기합과 함께 폭발시켰다.

끝없이 청운을 물고 늘어지던 자들이 기세에 밀려서 훌쩍 뒤로 물러섰다.

스르르.

청운은 천천히 한쪽 팔을 서서히 들어서 어깨와 나란히 했다.

환우구검의 기수식이다.

“네놈들의 무공은 잘 견식했다.”

청운의 차가운 한마디가 혁련장에 울려 퍼졌다.

지켜보던 자들이 볼 때 청운은 별거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청운이 잡힐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쥐새끼처럼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녔다.

손에 담을 쥐고 지켜보던 자들도 있을 만큼 아슬아슬한 대결이었다.

그런데 기세부터 달라진 청운의 모습에 긴장 아닌 긴장을 했다.

검진을 펼치던 자들도 심상치 않은 기세에 잔뜩 긴장했다.

청운의 고개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시 말했다.

“이제 그만 끝내도록 하지.”

우웅!

청운의 검이 낮게 울음을 토했다.

검명이 울리자 청운을 둘러싸고 있던 제천검대가 잔뜩 긴장했다.

제천대주는 청운의 기세가 폭풍처럼 변하는 것을 보고 다급히 공격명령을 내렸다.

“멸!”

제천검대가 그대로 청운에게 쏘아졌다.

동시에 청운의 검이 서서히 머리 위로 들려졌다.

그의 검에서 강한 빛이 터지며 사방으로 폭사했다.

환우번천.

천세검존의 환우구검 이 초식이 펼쳐졌다.

청운에게 달려들던 자들의 사지가 빛줄기에 잘려나갔다.

후두두두둑.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렸다. 우박이라도 되는지 무언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하늘을 수놓은 수채화를 보며 모두가 입을 쩍 벌릴 때 청운의 검이 다시 움직였다.

한 번, 두 번…….

청운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서너 명씩 한꺼번에 목숨이 사라졌다.

‘적당히 상대할 자들이 아니다. 어설픈 동정은 내게 사치일 뿐.’

청운은 마음을 다잡았다.

혁련장 무인들처럼 적당히 봐줄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자칫 자신이 당할 수도 있는 자들이기에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칠십이 명으로 구성된 제천검대가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서너 호흡에 불과했다.

청운은 고개를 들어 혁련종도를 쳐다보았다. 이제 어찌할 것이냐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혁련종도를 비롯해서 이곳에 모인 자들은 경악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자룡궁에서 파견 나온 제천검대주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압도적인 무위, 가공할 무공이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위.

그러나 죽은 부하들을 놓고 물러설 수도 없었다.

모두가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열릴 것 같지 않던 청운의 입이 스르르 열렸다.

“모두!”

한마디 말에 모두의 시선이 자석에 이끌리듯이 모였다.

청운이 재차 말했다.

“포박하라!”

“존, 명!”

담 뒤편에서 우렁찬 소리와 함께 일단의 무사들이 담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 명이 넘을 것 같은 숫자의 인물들이 검붉은 피풍의를 입고 서 있었다.

“금의위다!”

누군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제야 혁련장에 모인 자들이 사방을 둘러봤다.

“그, 금의위라니? 그들이 왜?”

“저자가 그럼 금의위란 말인가?”

다시 모두의 시선이 청운에게 모였다.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듯이 청운이 말했다.

“본인은 금의위 진무사 이청운이다! 황제 폐하의 명으로 그대들을 체포한다!”

우르릉.

사자후가 혁련장을 강타했다.

내공을 실은 사자후에 무공이 약한 자들이 귀를 막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금의위는 무얼 하는 것이냐! 당장 역도들을 잡아드려라!”

“명!”

금의위가 일제히 날아 내리며 혁련장에 모인 자들을 공격했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역도를 쳐라!”

“황제 폐하의 명을 따르라!”

청운과 함께 온 금의위 위사들과 하남성 위소에서 지원 온 금의위 위사들이 함께 혁련장을 포위하고 공격했다.

혁련장 무인들과 자룡궁에서 파견 나온 무사들은 이렇다 할 반항을 하지 못했다.

툭, 투드득.

하나둘 무기를 버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신들을 공격한 자들이 사마외도라면 목숨을 걸고 싸우겠지만 상대는 황제의 명령을 받는 금의위였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대인!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혈겁을 일으키시는 것이오?”

그들이 따지듯이 말했지만 청운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혁련종도가 서 있는 계단을 향해 무심히 걸음을 옮길 뿐.

계단 위에는 혁련장과 자룡궁의 핵심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이자들도 모조리 포박하라!”

“명!”

혁련종도와 제천검대주는 뒤로 물러서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곧 탈출과 반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포박을 받았다.

반항은 곧 역모. 자칫하면 본인뿐만 아니라 집안마저 몰살당할 수 있었다.

혁련세가와 자룡궁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상대는 황제 아닌가 말이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혁련장 식솔들이 모조리 끌려 나왔다.

피로 물든 넓은 마당에 수백 명이 포박되었다.

너무 많은 인원이기에 마당이 비좁을 지경이었다.

청운은 기단(基壇)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좌우에 석덕조와 웅천이 섰다.

석덕조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두루마리를 펼쳤다.

“우인들은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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