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39화
“예, 누가 오실지 모르겠지만, 이곳 개봉부에 사파가 준동한다고 했으니, 어쩌면 제마대 전부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만 된다면 무얼 걱정하겠는가.”
혁련종도는 뛸 듯이 기뻐했다.
제마대는 총 네 개 대로 나뉘는데 각기 칠십이 명으로 되어 있다. 전부 합치면 이백팔십팔 명인데 대주와 부대주들을 합치면 총 삼백 명으로 이뤄진 전투부대였다.
“빠르면 내일 새벽이나 아침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니 미리 준비해주십시오.”
“알겠네. 걱정하지 말게.”
혁련장에 위기가 찾아왔지만 어쩌면 이번 기회에 개봉성 내의 사파 힘을 완전히 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혁련종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번 싸움의 명분은 우리에게 있다. 소속 무인들이 동요하지 않게 잘 다독여라. 놈들이 먼저 걸어온 싸움이니 끝을 볼 것이다. 그러니 총관은 자룡궁 무인들이 도착하면 편히 쉴 수 있게 모든 준비에 소홀함이 없게 준비하도록.”
“예, 장주.”
장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혁련종도는 자리에 앉아서 숨을 깊게 내쉬었다.
“후우. 이 답답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낮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마치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부하들이 죽임을 당해서 그러나?’
많은 무인들이 죽음으로써 전력에 큰 구멍이 생겼다. 지난 일 년 간 준비한 것이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사라졌으니 답답할 만도 했다.
‘아냐. 아직 자룡궁이 남았어. 그리고 놈들을 쓸어버린 후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최대한 흡수하면 돼.’
그는 자룡궁의 정예가 온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위기 속에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여전히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 * *
“놈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장원에 불을 밝히고 경계를 강화했습니다.”
석덕조가 청운에게 보고를 올렸다.
아직도 풍운장의 넓은 뜰에는 거지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청운이 보고서를 살펴보며 말했다.
“흑검방에게 조심하라 이르게.”
“예, 대인.”
염악을 통해서 이미 적건방이 멸문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들을 보호할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흑검방이 온전하다는 것이다.
그들 역시 살인을 저지르고 힘을 앞세워서 남을 핍박하긴 했지만, 그래도 적건방처럼 인간이길 포기한 사악한 짓은 덜 저질렀다.
갱생의 여지가 있다고나 할까?
‘안 되면 두들겨 패서라도 사람을 만들어 보지 뭐.’
* * *
날이 밝았다.
개봉성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흉흉한 소문은 나지 않았다. 개방에서 정보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명과 싸움 소리가 크게 들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더욱이 이른 아침에 삼백이 넘는 무인들이 개봉성 내로 들이닥치는 것을 여러 사람이 봤다.
그들이 혁련장으로 들어서는 것을 본 사람들이 많아서 곧 큰 싸움으로 번질 것이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청운은 연못가에 자리한 전각의 난간에 서서 물속을 내려다보았다. 많은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었다.
그런 청운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혈황이 물었다.
[어찌할 것이냐? 이대로 놈들이 먼저 움직이기를 바랄 것이냐?]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놈아 내가 먼저 물었지 않느냐?]
청운의 반문에 혈황이 타박을 했다.
청운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돌려 혈황을 보았다.
“혈황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뭐라? 하하하.]
혈황은 청운의 말에 크게 웃었다. 이심전심이라고 청운과 많은 이야기를 안 해도 뜻이 통한다고 생각했다.
[언제 움직일 것이냐? 나라면 진작 갔을 텐데.]
“저도 그러고 싶지만, 밥 먹을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밤을 새워서 달려왔다는데요.”
[그도 그렇구나. 놈들에게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르니…….]
새벽녘에 청운은 염악의 방문을 받았었다.
그가 연신 투덜거리면서 청운에게 정보를 전해주었다. 자룡궁의 무사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아직 개봉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개방에서는 이미 정보를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청운은 어찌해야 할지 고민을 했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청운이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석 천호장 있는가?”
“예, 대인.”
석덕조가 달려와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청운은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한참 동안 명령을 받은 석덕조는 청운이 건네주는 물건을 품속에 잘 갈무리하고 자리를 떴다.
곧 풍운장이 어수선해졌다.
청운 역시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 * *
커다란 대문에 용사비등한 필체로 ‘혁련장’이라는 글귀가 써진 현판이 걸려 있었다.
금분을 칠했는지 글씨와 현판의 테두리를 감싼 용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혁련장 입구는 무사 십여 명이 철통같이 틀어막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기도가 범상치 않은 자들이었다. 기존에 정문 경비를 서던 자들과 다른 자들이었다.
여느 때와 다른 혁련장의 모습에 지나가는 자들이 수군거렸다.
저벅, 저벅.
비어복(飛魚服)을 입은 한 사내가 혁련장의 입구에 나타났다.
사내의 등장에 입구에서 경비를 서던 자들이 긴장했다.
비어복은 금의위 고위직이 입는 무관복인데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단순히 관복 비슷하다는 생각만 했을 뿐.
“멈춰라!”
한 사내가 청운의 앞을 막아섰다.
청운은 무심한 눈으로 사내를 보았다.
사내가 청운을 살피며 말했다.
“처음 보는 인물이군. 혁련장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지금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 신분을 밝혀라.”
강압적인 부분은 있었지만 정중한 태도였다.
그런 사내를 보며 청운이 발걸음을 옮겼다.
“멈추라 했다. 더 다가온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오는 청운을 보며 사내는 눈매를 좁혔다.
“좋은 의미로 온 자는 아니군. 안에 기별을 넣어라, 적이 찾아왔다고.”
“예.”
한 사내가 빠르게 안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청운은 막지 않고 그저 무심한 눈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갈 뿐이었다.
이윽고 사내와의 거리가 일곱 자로 좁혀졌다.
먼저 움직인 건 사내였다.
곧장 주먹을 쥔 그가 청운의 가슴을 향해서 대붕일격을 날렸다.
봉황이 날갯짓하는 자세를 취하며 날아간 공격은 채 펼쳐지지도 못하고 꺾여야 했다.
퍽.
우당탕.
청운의 손짓 한 번에 사내가 옆으로 날아가서 처박혔다.
지켜보던 자들이 인상을 쓰며 병장기를 움켜쥐었다.
“쳐라!”
앞의 두 사내가 먼저 공격해 들어왔다.
검을 휘두르며 청운의 몸통을 가르겠다는 듯이 매서운 공격이었다.
청운은 슬쩍 상체를 틀며 첫 번째 사내의 공격을 흘리고 발을 걸었다.
뒤이어 상체를 숙인 그가 두 번째 사내의 검을 피했다. 그러고는 일어서며 어깨를 이용해서 두 번째 사내의 가슴을 받았다.
텅.
“크윽.”
두 번째 사내 역시 바닥을 굴렀다.
연이어 사내들이 공격했다.
청운은 유령보를 펼쳐서 상대의 공격을 흘렸다. 산보를 나온 사람처럼 유유자적한 모습이었다.
살짝 살짝 몸을 튼 그는 그저 팔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할 뿐이었다.
우당탕탕.
“끄응.”
열두 명이나 되던 경비들이 어느새 모두 쓰러지고, 남은 자는 뒤에 서 있던 둘뿐이었다.
그들은 청운의 놀라운 무용에 놀라서 정문으로 도망치듯이 뛰어들었다.
“저, 적이다!”
“습격이다!”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두려움에 주인을 찾는 개새끼처럼 꼬리를 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응답하듯 사방에서 무사들이 튀어나왔다.
청운이 정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공격이 날아들었다.
청운은 양팔을 휘돌려서 왼쪽 허리로 돌린 후에 양쪽으로 펼쳤다.
후우웅, 퍼버벙.
태극반룡장(太極潘龍掌).
용이 태극의 이치를 담아서 회오리치는 장법으로 황궁무고의 개세절학이다.
풍뢰연환권과 묵룡파천권에 비해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 무공이었다.
“차핫!”
우우웅 퍼엉!
태극반룡장이 회전하며 부나방처럼 달려들던 혁련장 무인들을 날려버렸다.
혁련장 무인들은 청운의 무공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이윽고 사방에 수십 명이나 되는 무인들이 널브러졌다.
청운은 그들을 지나쳐서 더욱 깊은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혁련장 지리는 대부분 알고 있었다. 건물의 배치와 주요 전각의 위치를 숙지하고 있었기에 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솟을대문을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연무장이 딸린 큰 전각이 보였다.
혁련장의 핵심 건물이었다.
건물의 현판에는 원화(元和)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제법 이름 있는 자의 글씨였다.
“원화? 서로 어울린다고? 후후후.”
청운은 실소했다. 무엇과 어울리며 무엇과 화합한다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혈황이 앞을 보며 말했다.
[자신 있느냐?]
넓은 연무장에 수백 명이 질서정연하게 서서 청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룡궁의 무인들로 보였는데 하나같이 기도가 대단했다. 혁련장의 무인들과는 그 위세부터가 달랐다.
혈황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만그만한 자들이지만 이들이 펼칠 합격진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더욱이 혼자서 다수를 상대로 싸우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번에 싸운 자들과 차원이 달라.]
“예.”
[정히 안 되겠으면 뒤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혈황은 청운이 걱정되는지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청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혈황의 말을 곱씹었다.
“상대를 경시하지도, 제 자신을 과신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믿는 건 오직 하나입니다.”
“…….”
“최선. 오직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한편, 청운의 등장에 장내에 모인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다.
건물 앞에 서 있던 혁련종도는 눈을 매섭게 뜨며 곁에 있는 자에게 물었다.
“저자냐? 이번 일의 원흉이?”
“그렇습니다. 옷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저자가 분명합니다.”
혁련종도는 청운을 천천히 살폈다. 이제 겨우 약관이나 되었을 법한 사내였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는데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혁련종도는 곁에 있는 자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 옷 관복인가? 이상하군.”
청운이 입고 있는 옷은 금의위 고위직이 입는 비어복이다. 금의위라고 해서 함부로 입을 수 없는 최고위직의 무관복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자들은 생전 처음 보는 비어복에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었다.
만일 청운이 머리에 쓰는 관모마저 쓰고 나타났다면 이들의 대처는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저런 복색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관복처럼 보였지만 관복에는 품계에 맞는 형식이 있다. 그래서 관복의 형식을 보고 그 사람의 품계와 관직을 예상한다.
그런데 청운이 입은 비어복은 그들이 처음 보는 형식이었다.
한 사내가 혁련종도에게 말했다.
“요즘 젊은 것들이 건방지게 황금색에 용 문양을 넣은 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그래? 허허, 저놈 저거 미친놈인가?”
황금색 옷은 누구나 입을 수 있지만 용 문양을 넣는 건 조금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다.
용문양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자칫 황제에 대한 도전으로 보일 수 있기에 가급적이면 옷에 용 문양을 넣지 않았다.
설령 넣는다 하여도 황금색에는 넣지 않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혁련장에 쳐들어온 자가 황금색에 용 문양까지 수놓은 노란색 옷을 입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내들은 모두 청운에게 시선을 돌렸다.
혁련종도가 청운을 보며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저놈 혼자 온 것인가?”
“글쎄요. 밖에 다른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던 청운이 내공을 실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