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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38화 (38/257)

# 38

38화

츠캉!

사내는 청운의 일검을 쳐냈다.

아니 쳐내려고 했지만 너무도 강력한 공격이었다.

단순한 일격이 아님을 깨달은 사내는 빙그르르 몸을 옆으로 틀어서 청운의 공격을 겨우 피했다.

순간 청운은 조소를 지었다.

일 수에 끝낼 수 있었지만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을 했다. 그럼에도 상대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

결국 사내의 실력이 그 정도라는 뜻이었다.

척.

바닥에 내려선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옆구리와 청운을 번갈아 보았다.

‘놈은 분명히 일검에 나를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상처 하나 없이 옷만 찢어놓았어.’

옆구리가 길게 찢어져 있지만 피가 나지는 않았다. 자신이 적절하게 피한 것인지, 아니면 청운이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인지 가늠이 안 되었다.

와락.

사내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런 사내의 얼굴을 보며 청운이 한마디 했다.

“방금 그 동작이 비룡번천인가? 나는 미꾸라지가 꿈틀거리는 줄 알았네.”

“이노옴!”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나를 상대하려고 했나?”

“뭐라?”

사내는 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철저하게 무시를 당했다. 자존심에 강한 상처를 받았는지 얼굴에 비장함이 묻어났다.

이내 숨을 고른 그는 기수식을 취했다.

그런 사내를 보며 혈황이 한마디 했다.

[쯧쯧, 이 정도 도발에 발끈하는 것을 보니 이놈도 멀었구나. 대단한 놈인 줄 알았더니 거지 놈이 훨씬 낫구나. 그래도 숨겨둔 한 수가 있겠지.]

-예. 실망이긴 합니다만, 이번엔 제대로 공격했으면 좋겠습니다.

혈황은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며 청운에게 말했다.

[그보다 천교의 무공을 더 이상 모르는 것인가?]

-조금 아쉽네요. 꼬리를 완전히 잡은 줄 알았는데요.

일 수에 목을 베지 않은 이유였다.

놈들이 천교의 멸문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나왔다. 좀 더 증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살려둔 것이었다.

[한번 잡힌 꼬리니 또 보이겠지. 그래도 조심해라.]

-예.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를 수 있으니 조심해야지요.

청운은 혈황과 대화를 마치며 내공을 모으고 있는 사내를 보았다.

잘 벼려진 한 자루 명검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어떻단 말인가.

청운이 검을 잡은 오른손을 옆으로 서서히 들어 올렸다. 어깨 높이로 검을 올린 그가 환우구검의 기수식을 잡았다.

“천강여의탕마지검은 네놈 같은 사마외도를 상대하기 위한 검이니…….”

사내는 허공에 검을 몇 번 휘두르더니 곧장 신법을 펼쳐서 청운을 향해 날아갔다.

쉐에엑!

사내의 일검은 태산이라도 부술 듯 강맹했다.

청운은 사선으로 쏟아지는 검기를 빙글 검을 돌리며 가볍게 막았다.

챙.

강력한 일격이 막혔지만, 사내는 멈추지 않고 몸을 회전시키며 청운의 가슴과 배를 향해서 연속 칠연격을 날렸다.

슈슈슈슈슉!

가까운 거리였기에 피할 수 없는 회심의 일격.

청운의 몸을 꿰뚫으며 허공으로 검기가 치솟았다.

허공을 수놓는 아름다운 검기를 보며 사내는 조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 아니, 느낌이 없다.’

사내의 심장이 털컥 요동쳤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분명히 청운의 몸을 꿰뚫었는데 관통하는 느낌이 없었다.

그 순간, 검기에 꿰뚫린 청운의 몸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사내의 두 눈이 커졌다.

“이, 이형환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사내의 두 눈이 커졌을 때 사내의 왼쪽 볼에 강력한 일격이 가해졌다.

쾅!

콰당!

사내의 몸이 삼 장이나 날아가서 마당을 장식하는 사자상에 부딪혔다.

청운의 몸이 연기처럼 흩어졌다가 사내의 우측에서 나타나서는 얼굴을 가격한 것이다.

청운은 더 이상 사내를 공격하지 않았다.

사내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미, 믿을 수 없군.”

여전히 사내는 약관으로 보이는 청운의 실력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차갑게 눈을 빛내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 사내의 모습에 청운이 한마디 했다.

“부하들을 부를 생각인가? 잘 생각했다. 혼자는 힘들지?”

청운은 가볍게 웃으며 검을 한 차례 빙글 돌렸다. 담 너머에서 수십 개의 암기가 소리 없이 날아들었다.

따다다당!

후드득.

암기들이 청운의 검에 막혀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내 장원의 담장 위에서 다시 한번 암기들이 쏟아졌다.

청운은 훌쩍 자리를 이동하며 검기를 날렸다.

곧장 날아간 청운의 검기가 담벼락을 후려쳤다.

펑!

후드득. 휘리릭.

사방에서 옷자락을 펄럭이며 비조처럼 솟구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곧장 청운에게 쏘아지며 연신 암기를 날렸다.

청운은 유령기환보(幽靈奇幻步)를 펼치며 환영을 만들어냈다.

암기의 비를 모두 피해내는 청운을 보며 사내는 눈을 빛냈다.

“유령보의 일종인가?”

흐느적거리며 잔상을 남기는 보법은 유령보 계열이다. 사파의 대표적인 경공술 중 한 가지였다.

그렇다면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 이형환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령보라면 한번 해볼 만한데…….’

청운을 제압하고 잡혀 들어간 혁련장 무인들을 구해야 했다. 그런데 청운을 다시 공격하기에는 어딘지 찜찜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신경을 자극해서 선뜻 공격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부하들과 함께 합격술을 펼치면 가능할까?’

거대문파의 장로급 무인이라 할지라도 이길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러나 사내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도 자신을 보호하듯이 내려선 부하들의 암기술을 막아내기만 할 뿐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어딘지 어설픈 것 같은데, 또 어떻게 보면 감히 범접하지 못할 위엄이 엿보이기도 했다.

사내가 고민에 빠진 사이 청운은 검을 살짝 늘어트리고 말했다.

“부하들 뒤에 숨을 생각인가? 남의 휴식을 방해했으면 어울려줘야 예의 아닌가?”

“흥. 사마외도치고는 실력이 뛰어난 건 인정하마.”

사내는 이를 갈며 청운을 노려보았다.

사파에게 밀려서 분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사내를 보며 청운이 따지듯이 말했다.

“이봐. 자꾸 나를 사파로 모는데, 나도 정파 사람이야.”

청운의 고개가 혈황에게 돌아갔다. 무언가 동의를 얻어야겠다는 표정이었다.

때마침 눈이 마주친 혈황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흠. 암, 정파지. 그럼!]

혈황은 고개를 돌리며 다른 곳을 봤고, 청운은 다시 사내를 보며 인상을 썼다.

“저분도 정파가 맞다잖아!”

“도대체 누구랑 이야기하는 것이냐? 미쳤느냐?”

사내는 청운이 혼잣말을 하며 자신을 비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다시 발끈할 수는 없었다.

이형환위가 아니더라도 방금 펼친 유령보의 일종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보법이었다.

사내는 결론을 내리고 부하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여기까지. 신속히 퇴각한다.

사내의 명령이 떨어지자. 사내와 부하들이 일제히 청운을 공격했다.

사방에서 청운을 향한 검기와 암기가 쏟아졌다.

슈슈슈슉!

투두두두둥!

청운은 유령기환보를 펼치며 유유히 상대의 공격을 흘렸다.

이내 놈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주를 시작했다.

청운은 그자들을 쫓지 않았다.

혈황이 도망치는 자들을 보며 말했다.

[잘했다. 어차피 놈들이 이곳을 급습했다면 이미 이곳이 노출되었을 것이다. 굳이 네 힘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렇겠지요.”

청운은 혈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놈들을 모조리 잡을 수 있었다. 아무리 사방으로 흩어진다고 해도 청운에게는 무영신투의 비천무영신법이 있었다.

“으악.”

그때 장원 밖에서 비명이 들리더니 시커먼 인형이 담벼락을 뛰어넘어서 장내에 내려섰다.

양손에 각기 한 명씩 축 늘어진 자들을 데리고 내려선 자는 개방의 염악이었다.

청운은 사내들을 바닥에 던지는 염악을 보며 말했다.

“방문하기에는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아,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자네 집에 도둑이 들은 것 같아서 내가 잡아 왔네.”

염악은 씩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차례 싸움이 벌어졌을 텐데 싸운 흔적이 많지 않았다.

‘싸우기는 한 것 같은데 너무 멀쩡하잖아?’

여기저기 암기들이 박혀 있는 것을 빼면, 한쪽 사자상이 조금 부서지고 담벼락이 무너진 게 다였다.

‘적어도 전각 몇 개는 무너질 줄 알았는데. 피해 없이 막은 것인가?’

새삼 청운이 달리 보였다.

‘이 자식, 어쩌면 나보다 더 강한 거 아니야?’

자신이 누구던가.

천하제일 방파라는 대 개방의 방주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가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

그런 자신이 청운에게 밀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염악의 얼굴이 수시로 변할 때 혈황이 말했다.

[어찌할 것이냐? 이대로 혁련장을 칠 것이냐?]

청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놈을 찾지 못했으니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다음번에는 쉽지 않을 것 같구나. 어쩌면 금의위 애들이 많이 상할 것이다.]

청운도 그 부분이 걱정이었다. 지금의 금의위들 실력으로 이들을 상대했다가는 죽어 나가는 자들이 제법 될 것 같았다.

청운이 혈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염악이 투덜거렸다.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힘이 다 빠졌어. 식은 밥이라도 있어?”

염악이 조금 늦기는 했지만 달려와 줬으니 고마운 일이었다. 불필요한 일이지만 밥 한 끼 적선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식은 밥보다는 따듯한 밥으로 주지.”

“잉? 정말인가? 혹시 고기도…….”

“물론, 고기반찬에 한 상 푸짐하게 주겠네.”

“하하하. 고맙군. 이거 달밤에 체조한 보람이 있어.”

염악이 한 끼 거하게 얻어먹을 생각을 하며 함박웃음을 지을 때 일단의 거지들이 장원의 담을 넘어왔다.

흉흉한 기세를 올리며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 적을 찾는 것 같았다.

청운은 염악을 보며 말했다.

“식구들도 데려왔나?”

“하하하. 저놈들이 먹는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놈들이라서……. 내 냉큼 돌려보내겠네.”

청운은 피식 웃음 지으며 말했다.

“오늘 곳간을 열어야겠군.”

“어? 정말?”

믿지 못하겠다는 염악의 표정에 청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염악이 무언가 할 말이 남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말하게.”

“저기 조금 더 올 것 같은데.”

무엇이 미안한지 염악은 더벅머리를 극적이며 말했다.

청운은 담장 밖을 보더니 피식 웃음 지었다. 이곳으로 달려오는 일단의 무리들이 느껴졌다. 개봉에 있는 거지들이 전부 몰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말했다.

“얼마든지 부르게. 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주지.”

* * *

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은 개봉성의 혁련장에 대낮처럼 불이 밝혀졌다.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시간인데도 혁련장의 핵심 인물들이 모두 넓은 전각에 모였다.

다른 혁련장 인물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서 경계에 들어갔다.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한 사내의 비분강개한 목소리가 전각에 울려 퍼졌다.

한쪽에 앉아 있는 사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적건방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흑검방을 치려고 했는데 살아남은 무인들이 서문에 있는 풍운장으로 끌려갔다기에 찾아갔습니다.”

혁련휘의 무공 사부인 사내가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풍운장 주인의 실력을 평했다.

“놈의 괴이하고 신랄한 무공 때문에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습니다. 분하지만 저보다 한 수 위가 분명합니다.”

“허어. 그대보다 뛰어나다니, 그게 말이 되나?”

혁련종도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가 아는 무공 사부는 새롭게 영입한 네 명의 절정고수가 합공을 해도 이기기가 쉽지 않은 고수였다.

그런데도 상대가 한 수 위라면 자신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말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보다 놈의 무공이 어디서 파생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보게.”

“정파의 무공인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사파의 무공 같기도 했습니다. 검법은 분명히 현기가 담겨 있었는데 보법이 유령보의 일종이었습니다.”

유령보라는 말에 혁련종도의 찌푸려졌던 두 눈이 커졌다.

“사파의 인물이란 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검법도 현기가 담겨 있었지만, 그 위력이나 형태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흠…….”

“전서응을 자룡궁으로 띄웠으니 하루 이틀이면 제마대가 출동할 것입니다.”

굳어 있던 혁련종도의 표정이 환해졌다.

“오! 제마대가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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