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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37화 (37/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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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조금 전까지 술판을 벌이던 적건방 사람들은 난데없이 비명이 들리자, 모두들 소리가 들린 정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웬 사내 하나가 피 묻은 장검을 늘어트린 채 정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주 신이 났군.”

사내는 비릿하게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래서 근본 없는 사파 놈들은 안 되는 거야.”

쉐엑-

서걱.

사내의 검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그대로 쏘아졌다. 그의 옆으로 슬금슬금 접근하던 자의 허리가 잘렸다.

저벅, 저벅.

사내는 한 걸음 한 걸음 앞마당에서 술판을 벌이던 자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놈을 죽여라!”

“모두 쳐라!”

적건방의 무인들이 병장기를 꺼내 들고 사내를 향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부나방 같은 것들.”

사내의 입에서 차가운 소리가 들리며 손에 들고 있던 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들린 시리도록 맑은 검은 붓이라도 되는지 허공에 혈화를 그렸다.

차아아악.

적건방 무인들의 피가 허공에 비산했다. 비명과 고함 소리가 끊임없이 적건방에 울려 퍼졌다.

그때 일단의 무사들이 담장을 넘어서 날아들었다.

“놈들을 모두 죽여라!”

그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적건방 무사들을 공격했다.

결코 혁련장 무사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보다 훨씬 더 강했다.

일각도 되지 않아서 싸움이 멈췄다.

적건방 무사들이 대부분 죽임을 당했고, 육장홍도 피투성이가 되어서 무릎이 꿇렸다.

그는 살기 위해서 사실대로 말했다.

“살려주시오! 우린 누가 시켜서 혁련장을 공격했을 뿐이오!”

살인귀처럼 적건방 무사들을 죽인 사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자들, 어디 있지?”

“살려주신다면 말씀드리겠소.”

“처절하게 고문을 당하면서 죽을 건지, 아니면 곱게 죽을 건지, 그것만 선택해.”

정말 독한 놈이었다. 얼굴을 보니 정말로 고문을 할 생각인 듯했다.

육장홍은 할 수 없이 자신들이 알아낸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들은… 서문의 풍운장에 있소.”

육장홍의 말에 사내는 눈을 빛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런 사내의 웃음에 육장홍은 희망을 꿈꾸었다.

잘하면 살 수 있을 듯했다.

“잡아들인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그놈들이 데려갔소.”

사내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눈빛도 다시 차갑게 변했다.

“그럼 이곳에서 볼일은 다 끝났군.”

철컥.

사내는 검을 한 번 휘두르고 검집에 집어넣은 후 몸을 돌렸다.

육장홍의 고개가 자신의 가슴으로 향했다.

심장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고 있었다.

“씨…….”

철퍼덕.

육장홍의 몸이 허물어졌다.

그날로 적건방은 개봉성에서 사라졌다.

* * *

염악이 뼈 사이에 붙어 있는 마지막 한 점의 살점까지 먹겠다며 낑낑거리고 있을 때 거지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방주, 큰일 났습니다.”

뼈다귀를 핥고 있던 염악은 힐끔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빠르게 소식을 전했다.

“적건방이 박살 났습니다.”

염악이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혁련장의 무공 사부로 있는 자와 혁련장의 무리라고 합니다.”

“얼마나 됐어?”

“한 식경 정도 됐습니…….”

휘익, 퍽.

보고하던 사내는 말을 다 하지 못했다. 방주 염악이 날린 뼈다귀가 머리를 강타했다.

“이런 빌어먹을 거지새끼야! 그걸 이제 보고하면 어쩌자는 거야!”

꽝!

휘리릭.

염악이 바닥을 박차며 경공을 펼쳤다. 그가 있던 자리가 움푹 들어가며 거미줄처럼 박살이 났다.

방주가 사라진 방향에서 장로들에게 전음이 들려왔다

-풍운장으로 애들 데려오쇼!

전음을 들은 장로들이 지시를 내렸다.

명령을 받은 장로들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가장 선임인 이장로가 버럭 화를 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혼자 가면 어쩌자는 거야?”

“이장로님, 참으십시오.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곁에 있던 삼장로가 이장로의 말을 받았다.

“에잉. 내 이번 일만 끝나면 구지신개 님께 꼭 따질 거네.”

전임 방주이며 염악의 스승인 구지신개는 염악에게 개방을 맡기고 훌쩍 강호행을 떠나서 연락이 없었다.

이장로의 분통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삼장로가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러면 뭐합니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요.”

“하긴, 쪽박 깨진 지 오래지.”

이장로를 비롯한 주변에 있던 개방도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이 개방답지 않게 변한 지 몇 년째였다.

강호제일 방파라는 위명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나마 자신들이 버티고 있기에 어디 가서 식은 밥은 얻어먹었다.

삼장로는 차분하게 이장로에게 말했다.

“어서 서두릅시다. 이대로 혼자 가서 무슨 미친 짓을 할지 모르니까.”

“알겠네. 내가 먼저 출발할 테니 애들 데리고 오시게.”

이장로가 곁에 있던 장로들과 함께 경공을 펼쳤다. 그 뒤로 수십의 개방도들이 함께 서문 방향으로 경공을 펼쳤다.

장로들 가운데 홀로 남은 삼장로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사결 이상만 이번 일에 참여한다. 나머지는 사대문을 포함해서 개구멍까지 살펴라. 수상한 놈들이 있거나, 혹은 몰래 빠져나가려는 놈들 정보 파악 똑바로 해라. 놓쳤다가는 방주한테 다 죽는 거다.”

“예, 장로님.”

남은 자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개봉성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모두 파악해 둬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미친개에게 치도곤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 * *

풍운장의 중심에 위치한 커다란 전각에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청운과 금의위 위사들이었다.

청운은 적건방과 흑검방을 혁련장의 공격에서 구원한 후 포로로 잡힌 자들을 모조리 풍운장으로 데려왔다.

놈들을 풀어줄 수는 없었다.

최대한 혁련장에서 자신에 대해 몰라야 했다. 그들이 알아야 하는 건 흑검방과 적건방이 공격한다는 오해였다.

석덕조가 이번 싸움에 대해서 청운에게 보고했다.

“일곱이 죽고 스물둘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중 중상이 아홉이고 나머지는 경상입니다. 경상자들도 바로 움직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보고를 듣는 내내 청운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생각보다 피해가 크군.”

“예, 놈들의 이상한 진법 때문에 피해가 가중되었습니다.”

탈혼무정검진 때문이었다.

석덕조가 이끌던 일조부터 구조까지의 금의위가 습격을 감행해서 겨우 이길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절정으로 분류되는 두 명의 무인을 패퇴시켰지만 혁련장의 반격도 매서웠다.

특히 그들이 진법을 펼치면서 피해가 커졌다.

청운은 부상자들을 잘 보살피라는 말과 함께 포로들 문제를 거론했다.

“웅천, 포로들은 어찌 되었나? 순순히 응하고 있나?”

“예, 대인, 심문을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역모라는 것도 알렸는가?”

“예, 금의위라는 것과 역모에 관련되었다고 하니 한두 명씩 불고 있습니다.”

청운은 웅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포로로 잡힌 혁련장 무인들에게 황제가 금의위를 파견했다는 것을 알렸다.

협조하지 않으면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다행히 금의위 위사들이 찾는 건 자신들과 관련이 없는 자였다.

“초상을 확인시키고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자에게 포상한다고 하게.”

“알겠습니다.”

채찍질만 해서는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청운은 알고 있었다. 적당한 당근을 줘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이 나았다.

보고를 다 받고 앞으로 혁련장을 어떻게 압박하지 이야기를 할 때 가만히 지켜보던 혈황의 고개가 돌아갔다.

[응?]

혈황의 반응에 청운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혈황의 표정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청운은 기감을 퍼트렸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기감에 잡히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손님이 왔군.’

그런 청운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금의위에게 청운이 명령을 내렸다.

“손님이 찾아왔군. 모두 뒤로 물러서서 포로와 장원 사람들을 지키시오. 석 천호가 지휘하게.”

“충! 명을 받드옵니다.”

석덕조는 군례를 올린 후 금의위를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군가 이곳을 공격한다는 청운의 말이었지만 되묻지 않았다.

청운은 전각을 나서서 전각 앞 넓은 마당의 그늘진 곧을 내려다보았다.

백의를 입은 한 사내가 바위처럼 우뚝 서 있었다.

청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 야심한 밤에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누구시오?”

사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약관의 사내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보자 의아했다.

기도를 숨긴 것인지 아니면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내 청운을 천천히 살피더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 봐라? 하하하, 재밌군.”

사내는 자신이 파악할 수 없는 청운의 존재를 보며 즐거워했다. 무척 흥분했는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전각 앞 넓은 뜰에 우뚝 선 사내는 청운을 향해서 기를 쏘아 보냈다.

청운은 내공을 살짝 퍼트려서 상대의 살기를 차단했다.

예상했다는 듯이 사내가 피식 웃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네놈은 누구냐?”

사내는 흥분한 소리로 다시 물었다. 돌아오는 건 자신이 원한 대답이 아니었다.

“이거 웃기는 자군. 주인에게 누구냐니?”

“주인이라……. 그럼 네놈이 사파를 움직인 놈이겠구나.”

“알고 찾아온 거 아니었나?”

탁.

사내는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맞아, 그랬지. 하하하.”

사내의 모습에 청운은 별 감흥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장원을 포위한 놈들은 부하들인가?”

“역시 무공을 숨기고 있었군. 제법이야.”

“인정하는 것으로 알겠네.”

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원 주변을 일단의 무리가 포위하고 있었다.

숫자는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열두 명이었다. 그 열두 명의 기도가 제법 대단하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가 끓어올랐다.

청운이 사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서로 우정을 나눌 사이도 아니고, 밤이 깊어가니 일찍 끝내는 건 어떤가?”

“하하하. 좋지, 좋아.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군.”

사내는 검에 내공을 주입했다.

찌이잉.

검이 빛을 발하며 검기가 선명하게 맺혔다.

사내는 청운을 향해서 방긋 웃으며 말했다.

“제법 나를 웃겼다. 감히 내 앞에서 재롱을 부리다니. 입만큼 실력이 있기를 바란다.”

사내의 두 눈이 차갑게 변했다.

팟!

사내가 바닥을 차며 청운을 향해 돌격했다.

청운은 허리춤에 메어 있는 검을 잡으며 신법을 펼쳐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휘익.

청운이 뛰어오르자 사내가 달리는 와중에 바닥을 강하게 차며, 허공에 떠 있는 청운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청운은 사내가 자신을 향해서 검을 찔러 넣자 허공에서 자세를 잡으며 발도술을 펼쳤다.

스캉!

검집에서부터 솟구친 검기가 허공에 번쩍였다.

둘은 서로를 지나치며 다시 공격을 했다.

차자자장!

둘의 위치가 바뀌었다.

사내는 허공을 밟으며 방향을 전환했다.

청운은 바닥에 내려서서 하늘을 보았다.

사내의 몸이 허공에 멈추더니 이내 극상의 신법을 펼치며 청운에게 쏘아졌다.

“죽어라!”

사내의 일갈에는 청운을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청운은 검을 가슴으로 모으며 떨어져 내리는 사내를 보았다.

냉소를 지은 그는 일갈을 터트렸다.

“뜻대로 되지 않을 거다!”

슈슉!

한 줄기 날카로운 일검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 검기를 보좌하듯이 수십 줄기의 작은 검기가 회전하며 뒤따랐다.

천세검존의 환우구검 사 초식 환우등천.

청운의 검기가 사내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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