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35화
“혁련휘의 스승을 알아냈다고?”
“스승인지는 모르겠으나 무공 사부라 불린다고 합니다.”
누군가 뒤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무공 사부와 연관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윤 백호가 두루마리 하나를 집어서 청운에게 내밀며 말했다.
“자룡궁에서 파견 나온 자로, 자룡궁주의 일곱 제자 중 셋째입니다.”
청운은 두루마리를 펼쳐서 빠르게 내용을 읽었다.
삼십대 나이에 절정고수라면 대단한 실력이었다.
청운은 두루마리를 다 읽고 자룡궁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두루마리를 내려놓은 그가 윤 백호에게 말했다.
“상단은 어찌 되었나?”
“며칠 내로 혁련장에서도 알게 될 것입니다.”
“수고했네.”
청운은 적건방을 시켜서 혁련장의 상단을 공격하게 했다. 그곳에서 얻는 물품은 적건방이 차지하라고 했다.
대신 사람을 죽이지 말고 포로로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덕분에 지난 사흘간 적건방은 개방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혁련장의 상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직 부족해. 더 정보가 필요해.’
이대로 놈을 잡기에는 애매했다.
전갈문신이 흔한 것은 아니기에 수소문하면 누구인지 알겠지만, 그랬다가는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놈들을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청운은 조금 더 정보를 모으기로 마음먹었다.
* * *
시끄러웠던 개봉성이 조용해진 다음 날, 혁련장의 무사들이 움직였다.
두 패로 나뉘어서 몰려가기 시작했다.
한 패거리는 흑검방 쪽으로 갔고, 다른 패거리는 적건방으로 갔다.
혁련장 무사들을 이끄는 자들은 이번에 영입한 절정고수들이었다.
흑검방으로 향하는 무리에 쌍혈단악 추강원과 염라수 오권이 포함되었다.
적건방 쪽으로 가는 무리는 섬전창 예내추와 신수귀검 제천이 이끌었다.
각기 무사 백 명씩 이끌고 나섰다.
혁련장을 지킬 무사 오십 명을 제외하고 전부가 나선 셈이었다.
“놈들이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 당도한다는 보고입니다.”
십조장인 윤 백호가 청운 곁에서 말했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넓은 뜰에 섰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인피면구를 쓰고 있어서 얼굴만으로는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서지 말고 주위를 경계하게.”
“알겠습니다.”
윤 백호는 그 즉시 모습을 숨겼다.
“흑검방 건물들도 이렇게 보니 괜찮군.”
청운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라도 하려는지 주위를 둘러봤다.
그가 있는 곳은 흑검방이었다.
흑검방 식솔들을 다른 곳으로 옮긴 후에 홀로 남았다.
적건방 역시 식솔들이 피했지만 무사들은 남아서 금의위와 함께 혁련장 무인들을 상대하기로 했다.
“이놈들!”
호통과 함께 일단의 무리가 흑검방 정문을 통해서 들이닥쳤다. 정문을 활짝 열어놓아서인지 정문을 부수고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앞에 서 있는 청운을 포위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누군가가 말했다.
“다른 놈들은 어디 있느냐?”
“…….”
“이 자식이!”
백 명이 넘는 인원이었다. 그렇기에 홀로 서 있는 청운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서 흩어져서 놈들을 찾아라!”
명령을 들은 무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보무도 당당하게 쳐들어 왔는데 흑검방 놈들이 보이지 않자 힘이 빠졌다.
잠시 후, 이리저리 흩어졌던 자들이 돌아왔다.
“놈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뭐야? 그럼 이 정신 나간 놈 하나라는 말이냐?”
모두의 시선이 청운에게 쏠렸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딘지 범접치 못할 기운이 흐르는 듯했다.
한 사내가 턱짓을 했다. 곁에 있던 다른 사내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앞으로 나섰다.
“정체를 밝혀라!”
호통 치듯이 청운을 닦달했다.
청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무슨 짓을 하건 기다렸다.
앞으로 나선 사내가 터벅터벅 걸어가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사내는 뜻을 이룰 수 없었다.
턱!
청운이 한 손을 뻗어서 사내의 손을 쳐내고 목을 잡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컥!”
사내는 숨이 막히는지 발버둥을 쳤다. 그 모습에 혁련장 무인들의 두 눈에서 살기가 솟구쳤다.
“감히!”
“쳐라!”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와 함께 공격을 시작했다.
청운은 들고 있던 사내를 달려오는 자들을 향해서 던지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쉬익!
날카로운 검이 청운의 목이 있던 곳을 가르며 지나갔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공격이었다.
‘죽이겠다는 말이군.’
혁련장에서는 이곳 흑검방 인물들을 모조리 죽일 작정으로 온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인정을 베푸는 건 사치겠지.’
상대가 목숨을 빼앗겠다고 공격한다면 이쪽도 손속에 사정을 둘 이유가 없었다.
청운의 허리춤에서 검이 뽑혔다.
팟!
촤악.
청운을 스치며 지나간 사내들의 목에서 피분수가 터졌다.
빙글, 청운의 몸이 회전하며 숙여졌다. 주저앉듯이 몸을 꼰 그는 검을 뒤쪽에 뒀다.
“뭐하느냐! 고작 한 놈이다 어서 죽여!”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중년 사내의 호통에 무인들이 사방에서 병장기를 찔렀다.
차자자장.
청운은 일 수에 병장기를 쳐내며 튕겨 나갔다.
슈슈슉.
검기가 허공에 비산했다. 마치 화살을 쏘아내듯 연속으로 뿜어지는 시퍼런 검기에 앞쪽에 있던 다섯 무인이 짚단처럼 허물어졌다.
청운은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훑어보며 말했다.
“살고 싶은 자…… 물러서라.”
북풍한설의 차가운 공기가 흑검방을 휘감았다.
굳이 안 봐도 될 피라면 사양하고 싶었다.
그러나 흑검방을 치기 위해서 온 혁련장 무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수 있는 것 같은데 어쩌나… 그럴 마음이 없는데.”
예의 중년 사내가 나서며 말했다.
염라수(閻羅手) 오권.
절정의 무인으로 일 수에 지옥의 문을 연다는 그의 독문 무공은 무림일절로 알려져 있었다.
오권이 쌍장을 가슴으로 모았다. 붉은 기운이 양손에 맺혔다. 그는 상체를 비틀며 쌍장을 허공으로 휘둘렀다.
펑펑펑펑.
가죽 터지는 소리가 오원의 쌍장을 통해서 허공에 울렸다.
청운도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우웅. 팡!
먼저 움직인 건 염라수였다. 차갑게 눈을 빛낸 그는 튕기듯이 청운을 향해서 쌍장을 찔러 넣었다.
합장을 하고 찔러 들어오는 기세가 강맹했다.
청운은 슬쩍 상체를 옆으로 돌리며 오권의 첫 공격을 흘렸다.
청운을 지나친 오권은 신형을 빙글 돌리며 허공을 박차고, 이내 몸이 회전하며 일직선으로 청운을 공격했다.
웅!
청운은 스르르 눈을 살짝 내리깔며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뒷발을 뒤로 살짝 물리며 굳건하게 하고 앞발을 내디디며 정권을 찔러 넣었다.
쾅!
허공에서 주먹과 손끝이 부딪쳤다.
낭패를 본 건 염라수 오권이었다. 합장한 손이 주먹의 강도를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꺾였다.
청운은 곧장 다른 주먹을 오권의 가슴을 향해서 묵직하게 찔러 넣었다.
팡!
휘리릭.
오권은 절정의 무인답게 격돌하는 순간 몸을 틀어서 청운의 공격을 흘렸다.
그렇다고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슴에 묵직한 기운이 남았는지 자세를 잡은 오권은 왼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며 남겨진 청운의 기운을 흘렸다.
“제법이군.”
오권은 청운을 보며 씨익 웃었다.
자신과 동수, 혹은 그 이상의 실력이라는 생각을 하며 청운의 허점을 찾았다.
‘제길 빈틈투성이인데 막상 공격하려니 틈이 없군.’
청운의 자세는 허점투성이였다. 그런데 막상 공격하려고 몸을 움직이려고 하면 그 틈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다른 곳에 허점이 나타났다.
오권은 청운의 허점이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이놈, 나보다 위다.’
강호 경험이 많은 오권이다. 그가 절정의 무인이면서도 강호에서 위명이 높았던 건 그의 안목도 한몫했다.
“추 대협, 아무래도 합공해야겠습니다.”
오권은 결론을 내리자마자 곧장 쌍혈단악(雙血斷岳) 추강원(鄒剛元)에게 도움을 청했다.
거구의 사내가 무사들을 해치고 앞으로 나섰다.
쌍봉을 귀신처럼 휘두르는 추강원이었다.
가죽에 징을 박은 띠를 가슴에 교차해서 둘러맨 건장한 사내였다.
양손에는 각각 철심이 박힌 짧은 봉이 들려 있었다.
“제법 실력이 있는 놈이군.”
둘은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바닥을 차며 공격을 시작했다.
추강원의 단봉이 청운의 허리와 다리를 노리며 휘둘러졌다. 오권은 허공으로 몸을 띄워서 곧장 청운의 머리와 가슴을 노렸다.
청운은 포권을 취하듯이 양손을 움켜쥐었다가 앞으로 내밀며 다리를 벌렸다.
왼손은 곧게 펼치고, 오른손은 움켜쥔 채 상단과 하단으로 교차하더니 둘의 공격을 정면에서 막았다.
퍼버벙!
한 발 물러서며 빙글 회전하는 순간 청운의 양손에 묵빛 기운이 어렸다.
묵룡파천권.
벽력대제의 성명절학이 청운의 몸에서 재연되었다.
오권과 추강원은 연환으로 청운을 공격했다. 둘은 합을 맞춰봤는지 막힘없이 청운을 몰아붙였다.
셋의 공방이 이어질 때마다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쳤다.
팡팡 파바방!
연환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청운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쳐냈다.
순식간에 십 초가 흘렀다.
곁에서 지켜보던 혈황이 불쑥 한마디 했다.
[볼 것 다 봤다. 그만 끝내라.]
청운은 나래 치듯 양손을 휘저으며 둘을 떨어트리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한 발을 앞으로 살짝 내밀며 앞발을 틀었다. 양손은 어느새 용의 발톱을 연상시키듯이 용조수를 만들었다.
진정한 묵룡파천권의 기수식.
추강원과 오권은 달라진 청운의 기세에 깜짝 놀라며 주춤했다.
직접 손을 섞었는데도 청운의 실력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한 수면 될 것 같은데…….’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것인가? 아니면 실전이 부족한 것인가?’
둘은 혼란스러웠다.
금방이라도 청운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언가 미묘한 움직임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타나며 공방이 이어졌다.
고수가 자신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얼굴을 보면 잘해야 약관이나 되어 보이는 애송이었다.
오권은 빠르게 추강원에게 전음을 보냈다.
-추형, 조금 이상합니다. 혹시 모르니 무사들을 이용해서 공격하며 틈을 봅시다.
추강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혁련장 무인들에게 막 공격명령을 내리려고 하는데 청운의 신형이 먼저 움직였다.
“어딜!”
일갈과 함께 청운의 신형이 둘에게 접근하더니 쌍장을 휘둘렀다. 둘은 깜짝 놀라며 방어하려고 했지만 늦고 말았다.
청운의 쌍장에서 묵룡이 튀어나와 둘의 가슴을 강타했다.
“커억.”
“큭.”
짧은 신음과 함께 둘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며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청운은 쓰러진 둘을 한 차례 보더니 이내 주변을 훑어보았다.
혁련장 무인들은 주춤 뒤로 물러섰다.
절정고수 둘이 이렇다 할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쓰러지자, 공포가 밀려들었다.
청운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이들을 어찌할지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죽여야 하나?’
그런 청운의 고민을 아는지 혈황이 말했다.
[무인으로 살다 보면 손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지. 하지만 무익한 살상을 할 필요는 없다.]
청운은 그렇게 말하는 혈황을 쳐다보았다.
혈황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후회를 하는 유일한 부분이다. 피를 볼 때는 과감히 봐야겠지. 나를 죽이겠다는 자들을 살려두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싸울 의지가 없는 자들을 굳이 죽일 이유도 없더구나.]
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마음을 정한 그가 말했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그렇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차가운 한마디에 혁련장 무인들은 서로를 보았다.
이미 청운의 실력이 자신들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절정무인 둘이 합공을 하고도 이기지 못한 존재였으니 이길 수 없는 상대임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어디에든 자비를 무시하는 멍청한 자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개소리하지 마라! 우리는 대 혁련장의 경천검대다!”
한 사내의 외침에 싸울 의기가 꺾였던 무인들의 사기가 살아났다.
그 바람에 상황이 청운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렀다.
“놈은 혼자다! 합격진을 펼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