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31화 (31/257)

# 31

31화

피비린내가 실내에 진동했다.

여럿이 쓰러져 있었고, 붉은 두건을 쓰고 있는 십여 명의 사내들이 복면인을 에워싸고 있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 무렵, 복면인이 갑자기 난입해서 혈겁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술상이 엎어지고, 한쪽 구석에서는 반라의 여아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복면인은 청운이었다.

그는 흑검방에 이어서 곧장 적건방으로 왔다.

처음에는 흑검방처럼 힘으로 어르고 달래려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눈이 돌아갔다.

적건방 간부들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짐승 같은 놈들.”

청운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잘해야 열 살이 조금 넘은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채 여물지 않은 꽃봉오리들이 놈들의 노리개가 되는 모습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

혈황은 처음 계획과 달리 청운이 살인을 저지르는데도 말리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인상을 굳히고 청운을 물끄러미 볼 뿐이었다.

이때 한쪽 팔이 잘려서 뒤로 물러나 있던 사내가 악을 쓰며 청운에게 소리쳤다.

“이년들은 우리가 정당한 값을 주고 샀다.”

“뭐라? 사람이 돈 주고 사고파는 물건이더냐!”

청운은 일갈을 터트렸다.

우르르릉.

푸스슥.

청운의 사자후 같은 소리에 전각이 흔들리며 먼지가 떨어졌다.

이미 청운이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고수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소란을 듣고 몰려온 부하들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어정쩡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을 죽이겠다는 놈에게 순순히 목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이, 이년들 부모가 팔았단 말이오.”

“…….”

그때 한 아이가 소리쳤다.

“아니에요! 거짓말이에요.”

“닥쳐라!”

곁에 있던 사내가 소리친 여아를 향해서 발길질을 했다.

청운의 손에서 한 줄기 붉은 기운이 번쩍였다.

뽁.

아이에게 발길질하려던 사내가 머리에 구멍이 뻥 뚫려서 픽 쓰러졌다.

“계속 말해봐라.”

청운은 부드러운 소리로 아이에게 말했다.

여아는 두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소리치듯이 말했다.

“일하러 온 거예요. 오늘 하루 일하러 온 거란 말이에요. 엉엉.”

청운의 두 눈에서 혈광이 번뜩였다.

“거짓말을 했군.”

적건방 간부 하나가 화들짝 놀라서 변명했다.

“아, 아닙니다. 그, 그래요. 몇 명은 일하러 온 것은 맞지만 다, 다른 아이들은 팔려온 게 맞습니다요.”

“닥쳐라! 한 놈이라도 움직이면 모조리 죽을 줄 알아라.”

공포에 질린 적건방 사람들은 석상처럼 굳어져서 숨소리마저 죽였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한쪽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만이 울렸다.

청운은 일단 악독한 놈들을 솎아내기로 마음먹었다.

“힘에 눌려서 어쩔 수 없이 악행에 동참한 자는 나서라.”

청운의 말에 서로 눈치를 살폈다.

이내 눈이 가늘고 얍삽하게 생긴 사내가 번쩍 손을 들며 앞으로 나섰다.

“저입니다요. 저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무릎까지 꿇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이들도 서둘러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여전히 몇 명은 병장기를 꽉 쥐고 강한 적개심을 보였다. 당장 달려들고 싶었지만 청운의 강함을 알기에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럼 너희들 중 가장 악독한 놈은 누구냐?”

앞으로 나와서 무릎 꿇은 자들에게 말했다. 이내 서로를 둘러보더니 서로를 가리켰다.

총 일곱 가운데 세 명이 복수로 가리킴을 당했다.

서걱.

청운은 그중 한 명의 목을 베었다.

“또 누구냐? 한 명만 골라봐라. 정말 죽여야 할 악인이 있다면 누구인지.”

덜덜 떠는 사내들은 서로의 눈을 보더니 한 사내를 가리켰다. 가장 지적을 많이 받았던 세 명 중 한 명이 다시 지적을 당했다.

사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곧 사내의 머리가 어깨에서 데구루루 굴러떨어졌다.

“그럼 이제 뒤에 서 있는 놈들 가운데 꼭 죽여야 할 놈은 누구냐.”

남은 다섯 사내들은 한 사내를 가리켰다.

청운은 사내들이 가리킨 사내를 보았다.

모두가 그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눈치를 살필 인물은 한 명밖에 없었다.

“혹시 적건방 방주인가?”

“그렇다.”

적건방 방주인 적건사자(赤巾使者) 육장홍이었다.

훤칠한 키에 강인한 인상을 지녔지만 어딘지 비열한 느낌의 사내였다.

놈은 당당하게 말했다. 기가 죽을 만도 상황인데도 의연한 척했다. 그러나 놈 역시 죽음은 두려운지 늘어트린 검이 떨리고 있었다.

그런 적건방 방주를 보며 청운이 말했다.

“모두 네놈이 가장 악독한 놈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흥. 그러니까 내가 방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딴에는 맞는 소리였다.

그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지만, 여기 온 목적은 이들을 박멸하는 데 있지 않았다.

“만일 살 기회가 있다면 어찌하겠느냐?”

“크크크. 살 수만 있으면 못할 일이 뭐가 있겠나?”

놈은 의외로 담담하게 청운의 물음에 답했다.

눈앞에 죽음이 다가왔는데도 제법 침착했다.

게다가 복면을 쓰고 있는 청운의 심리를 파악하고는 오히려 묻기까지 했다.

“혹시 시킬 일이 있어서…….”

청운은 일단 냉랭하게 대했다.

“나를 떠보려고 하지 마라. 너희가 아니어도 내가 일을 시킬 사람은 개봉에 많아.”

청운의 차가운 말에 적건방 사람들은 입이 바짝 타들어 갔다.

누구든 자신의 마음이 간파당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육장홍은 눈치 빠르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납작 엎드렸다.

“번거롭게 다른 자들 찾으실 필요 있으십니까? 개봉에서 저희만 한 놈들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시키실 일이 무엇인지요?”

적건방 방주의 태도와 말투가 바뀌었다.

항복 선언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바짝 엎드린 그를 보며 청운은 차갑게 눈을 빛냈다.

* * *

흑검방에 이어 적건방마저 한바탕 뒤집어지고 한 시진이 지난 시각.

풍운장 깊숙한 곳에서 청운과 금의위들이 모였다.

상석에 청운이 서 있고 그 곁에 천호장 석덕조가 시립했다.

두 사람 앞에는 백 명에 가까운 금의위 위사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청운이 그들을 둘러보며 명령을 내렸다.

“이제 때가 되었다. 일조부터 오조까지는 복면을 착용하고 내일부터 흑검방으로 가서 지시에 따라라.”

“충!”

“오조는 전면에 나서서 혁련장을 견제하라.”

“충!”

청운은 남은 금의위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육조부터 구조까지는 안가에서 대기한다. 대장은 팔조장 설진중 백호가 맡아라. 설 백호는 언제든 출동할 수 있게끔 준비해 놓도록.”

“충!”

“십조만 이곳에 남는다.”

“충!”

풍운장에 있는 금의위는 대영반이 특별히 신경 써서 보내준 정예였다. 몸에서 뿜어지는 기도가 사뭇 날카로웠다.

청운은 자신 곁에 바위처럼 서 있는 석덕조에게 말했다.

“석 천호가 수고스럽겠지만 흑검방에 가줘야겠네.”

“명을 받드옵니다!”

선임 조장인 웅천에게 맡겨도 되지만 확실한 무력이 필요했다.

이곳에 온 금의위 중에서 절정급 무인은 네 명.

천호장과 일조 조장인 웅천이 절정이고, 팔조와 십조 조장 역시 절정고수였다.

청운은 그들을 분산시켰다. 동시다발적으로 혁련장을 공격해서 혼란에 빠트릴 계획이었다.

자신도 직접 움직일 생각이지만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

모두가 나가고 홀로 남은 청운에게 혈황이 말했다.

[이제 시작이군. 진즉 시작했어야 하는데 조금 늦었어.]

“시작이 반이라잖습니까. 그보다 저도 움직여볼 생각입니다.”

[생각해 놓은 방법이라도 있느냐?]

“예. 이왕 시작했으니 제대로 해야지요.”

[어떻게 할 생각인데?]

“납치를 해볼까 합니다.”

[납치?]

“예, 납치요.”

청운은 그렇게만 대답하고 차갑게 씩 웃었다.

그동안에도 혁련장 인물들을 납치할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놈들이 경계할까 봐 하지 않았을 뿐.

그러나 이제부터는 전면전 같은 형국이기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 * *

개봉의 북문에는 혁련장이 운영하는 객잔이 있었다. 육 개월 전에 혁련장에서 개업한 규모가 큰 객잔이었다.

객잔은 음식을 파는 본관 건물이 앞에 있고, 그 뒤쪽에 별채가 여섯 채나 있었다.

혁련장은 음식 솜씨 좋은 숙수를 초빙해서 주방을 맡기고 점소이들 중에 몇몇 젊은 여자를 고용해서 손님을 끌었다.

보통 객잔에서는 여자를 점소이로 두지 않았다. 그런데 특이하게 여자 점소이를 두자 손님이 몰렸다.

나긋나긋한 여자 점소이가 이곳 객잔을 개봉성 명물로 만든 것이다.

점심이 되자 객잔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어 누가 밀어?”

“뭐야? 밀지 말라…….”

입구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자, 객잔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입구로 몰렸다.

이윽고 객점 출입구가 어둡게 변하더니 사람들이 밀고 들어왔다. 점소이들이 급히 제지를 해보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었다.

“손님. 안에 자리가 없습니다. 기다려주시면… 꺄악!”

“여, 예쁜데.”

“이런 곳에서 일하기에는 너무 고와.”

“이, 이러지 마세요.”

“어허, 누가 잡아먹는데? 그냥 안쓰러워서 그러지.”

“맞아. 고생하지 말고 우리랑 뱃놀이나 갈까?”

누군가가 여자 점소이의 손을 잡으며 희롱을 해댔다. 쓱쓱 엉덩이며 어깨를 주무르는 사내들도 있었다.

객잔 안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싸늘해졌다.

그러나 누구 하나 나서서 막지 않았다. 아니, 막지 못했다. 입구에 나타난 이들은 개봉에서 너무도 유명한 자들이었다.

흑검방.

개봉 사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을 막아서는 점소이들에게 화를 내며 큰 소리를 질러댔다.

“밥 한 끼 먹으러 왔다니까 그러네.”

“뭐야? 자리가 없다고?”

“이런 니미럴, 자리야 금방 나겠지.”

흑검방 사람들은 눈알을 부라리며 객잔 안을 훑었다.

눈치 빠른 손님들은 벌써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서며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저자들이 이곳에는 웬일이지? 여기 혁련장이 운영하는 곳이잖아.”

“시비 걸러 왔나 본데? 한판 붙을 것 같아.”

“젠장, 이제 음식이 나왔는데.”

“어서 나가세. 여기 있다가는 봉변당할 것 같아.”

손님들이 급하게 객잔을 빠져나갔다.

흑검방 무사들은 씨익 웃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점소이들에게 친근하게 말했다.

“아야 봤지? 금방 자리 났잖아.”

“난 이층이 좋더라고.”

“그래? 난 삼층이 좋아.”

흑검방 무사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서 거침없이 이층과 삼층으로 우르르 올라갔다.

이삼 층에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무림인으로 보이는 몇몇은 병장기를 차고 있었고, 일반인들도 보였다.

흑검방 무사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자리를 잡고, 탁자를 두들기며 음식을 재촉했다.

“빨리 가져와!”

“야! 주문받으라고!”

“아, 씨, 배고파서 숨넘어가겠네. 야! 나 숨넘어가면 책임질 거야!”

그들이 흉흉한 기세를 올리며 쌍욕을 퍼부으니 객잔 안은 예상대로 더욱 살벌하게 변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는 자가 없었다.

병장기를 차고 있는 무림인들 역시 수십 명이 몰려와서 난장판을 만들고 있으니 직접 나서지 못했다.

더 있어 봐야 좋은 꼴 보지 못할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일반인 대부분과 무림인 일부가 자리를 떴다.

순식간에 객잔이 한산해졌다. 여전히 남은 손님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흑검방 무사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음식이 나오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비어버린 객잔을 가득 채웠다.

“마셔라!”

“오늘 죽자! 먹고 마시고 즐겨라!”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객잔에는 무사들이 상주했다. 그러나 객잔 주인이 그들을 제지해서 나서지도 못하고 한쪽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참아라. 이대로 나서면 네놈들 다 죽는다.”

객잔 주인은 혁련장에서 객잔을 맡길 만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물이었다. 상재는 물론이고 오랜 세월 표국에서 일을 했기에 눈치도 빠른 인물이었다.

‘놈들은 피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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