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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27화 (27/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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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그건 나도 알아. 그래서 동창 놈들이 들어와서 기웃거렸었잖아.”

동창에서 은밀하게 정보를 수집했지만 이미 개방의 거지들은 동창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소문이 나지 않은 이유는 황실과 엮여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해서 모른 척 지켜보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쯤에 들어와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던 놈들 기억나십니까?”

“어. 그 개뼈다구같이 깐깐한 새끼들. 어떻게 거지들에게 동냥도 안 해.”

“그자들도 황실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또 황실이야?”

“예, 요즘에 동창 놈들하고 수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다는 첩보입니다.”

“뉘미럴. 개봉에서 활동하려면 최소한 개새끼라도 몇 마리 적선해줘야 할 거 아냐!”

방주의 입에서 걸쭉한 불평이 튀어나왔다.

다른 곳도 아닌 개방의 총본산이 있는 개봉이다. 자신들의 안마당에서 허락도 받지 않고 일을 벌이고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방주는 화를 참지 못하고 동창에게 욕을 퍼부었다.

“이 잡놈들이… 어디 거지 집에 들어와서 동냥질이야, 동냥질이! 확 불알을 깨버릴까?”

곁에 있던 거지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방주를 불렀다.

“저, 방주…….”

“왜?”

“그놈들 없습니다. 이거 없어요.”

주먹을 쥐고 위아래로 흔들면서 고개를 흔들자, 방주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는 탄식했다.

“아! 불알 없는 불쌍한 놈들이었지.”

방주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일 년 전에도 불알 없는 불쌍한 놈들이라서 그냥 놔두었었다.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볼 수도 없고….”

중얼거리던 그가 지저분한 더벅머리를 움켜쥐었다.

모여 있던 거지들은 방주가 머리를 쥐어뜯자 움찔 놀라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방주가 성질을 못 이겨서 지랄발광하기 전에 취하는 행동이었다.

괜히 그의 별호가 광견신개(狂犬神丐)겠는가.

“후우……. 아! 성질 많이 죽었네.”

방주는 심호흡하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가 이내 앞으로 확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 새끼들하고 한판 붙을까?”

“헉!”

“안 되네!”

“밥 먹기도 힘든 판에 무슨 싸움을 한다고…….”

거지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어디 붙을 때가 없어서 황실과 붙는단 말인가.

이들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방주는 곧장 수긍했다.

“그래 안 되겠지? 그치?”

거지들은 안도했다.

“예, 숫자에서 우리보다 많습니다.”

“잘 생각했네, 방주. 싸우면 누가 밥 준다던가?”

방주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이런 뉘미럴! 숫자는 우리가 가장 많아야 하는 거 아냐?”

“방주. 그런 뜻이 아니고, 싸울 수 있는 사람 숫자를 말하는 겁니다. 붙으면 무조건 다 죽습니다.”

방주가 방금 말한 거지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이야, 똑똑하시네.”

“저, 저기 방주…….”

“그렇게 똑똑하신 분이…… 왜 빌어먹고 있을까?”

방주가 얼굴을 들이밀며 으르렁거렸다.

“그럼 우리 똑똑한 거지 양반이 한번 이야기해보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그게…….”

“말 잘하쇼. 빡 돌았으니까.”

방주, 염악의 손에는 어느새 커다란 뼈다귀가 들려 있었다.

* * *

개봉부의 서문 근처에는 부자들이 모여 사는 장원이 많았다.

개봉은 수로가 발달된 곳이다 보니 장원 내부까지 물길이 이어져 있었다.

덕분에 이곳 장원들은 연못이 딸린 정원을 가진 곳이 많았다.

그중 한 장원.

커다란 인공연못 중앙에 지어진 전각 난간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충! 진무사님을 뵙습니다.”

연못가에 한 사내가 나타나서 전각에 서 있는 사내에게 군례를 올렸다.

전각 난간에 서서 연못의 잉어를 보고 있는 사내는 청운이었다.

그가 있는 장원은 금의위가 관리하는 천하의 수많은 거점 중 하나였다.

“어서 오시게. 석 천호장.”

군례를 올린 인물은 금의위 천호장인 석덕조(石德助)였다.

이번 황제의 밀명을 받은 청운을 보필하는 부대장이었다.

“회의 준비는?”

“지금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가세.”

풍운장의 내원 깊숙한 곳의 제법 넓은 방 안에는 여러 인물이 식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중앙에 앉아 있는 인물은 청운이었고, 그 양옆으로 빙 둘러앉은 자들은 금의위였다.

개중에는 금의위 천호장인 석덕조도 있었다.

부대장인 천호장 석덕조가 일어나서 주위를 환기시키며 인사를 했다.

“대인. 회의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청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덕조는 다시 청운에게 읍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흘간 조사한 부분을 보고하겠습니다.”

석덕조가 두루마리를 청운에게 전했다.

청운은 두루마리를 죽 펼치며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혁련장의 첫째인 혁련휘는 장원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한 달 전부터 혁련휘가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석덕조가 그 이유를 말했다.

“정보에 의하면, 기연을 얻어서 두문불출하고 무공수련에 전념하고 있다 합니다.”

혁련휘는 예전에도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러나 남 앞에 잘 드러내지 않아서 어느 정도 실력인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기연을 얻었다고?

청운은 힐끔 혈황을 봤다.

‘기연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그가 대단한 기연을 만났다고 할지라도 자신에 비할 수 있을까.

어쨌든 혁련휘가 무공을 본격적으로 익힌다고 하자 청운의 입가에 절로 냉소가 걸렸다.

‘재밌군. 전시에서 떨어진 후부터는 완전히 무공 쪽으로 방향을 틀었나 보군.’

어쩌면 운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못지않은 기재라 불렸던 혁련휘가 지난 일 년간 얼마나 변하고 강해졌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네놈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자신은 물론 아버지마저 그들에게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만약 사실이라면… 혁련장에 혈풍이 몰아칠 것이다.

“놈의 동태만 파악하고, 무리해서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혁련휘가 어떤 무공을 익히고 어떤 기연을 얻었는지 알 필요는 없었다.

놈이 어떤 모습으로 덤빈다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청운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생각을 정리할 때, 석덕조가 다른 안건을 꺼냈다.

“다음은 혁련장의 재산 변화입니다.”

처음에는 딱히 혁련장의 재산 변동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지난 일 년 전과 비교하면 열 배 이상 커졌다는 보고입니다.”

“열 배?”

청운이 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뛰어난 상인이라 할지라도 쉽게 열 배의 이익을 남기지 못한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놈들의 재산 변화가 심하군. 누가 알아보고 있소?”

금의위들은 혁련장의 정보를 부대별로 모으고 있었다.

청운의 물음에 덩치가 좋은 인물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했다.

“백호 웅천(雄天)입니다.”

강인한 인상의 사내였다.

그는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섬세한 성격인 듯했다.

“혁련장은 지난 일 년간 급성장을 했습니다. 특히 표국에서 벌어드리는 금액이 제일 큽니다.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 년 전과 비교하면 열 배 이상의 이문을 남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흠. 그래?”

“혁련장의 규모 역시 일 년 전보다 세 배 이상 커진 상태입니다. 여기에 무인들의 숫자도 오십에서 삼백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삼백?”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혁련장은 혁련세가의 방계일 뿐이다. 일개 방계가 세운 장원에 무인만 삼백이라니. 그에 딸린 식솔들까지 합치면 천 명이 넘는다는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많군.”

“대부분 표사들입니다.”

상행위가 잘되어서 열 배의 이문을 남겼다면 표사들을 더 모집하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청운이 고개를 끄덕일 때 웅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무언인가?”

“표사로 모집한 자들 가운데 일부가 제법 명성이 있는 자들입니다.”

“강한 무인이 필요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보통 그럴 수도 있지만, 표사로 일을 하기에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기 명단을 따로 준비했습니다. 특히 표시해둔 네 명은 절대 표국에서 일할 자들이 아닙니다.”

청운은 웅천이 건네는 두루마리를 펼쳤다.

삼십여 명의 인원이 적혀 있었다. 그중 표시해놓은 네 사람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섬전창(閃電槍) 예내추(芮內秋)

신수귀검(神手貴劍) 제천(諸千)

쌍혈단악(雙血斷岳) 추강원(鄒剛元)

염라수(閻羅手) 오권(吳權)

강호의 소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청운은 백호를 보았다.

“낭인 사회에서 절정으로 통하는 자들입니다. 실제로는 일류 끝이나 절정 초입에 든 자들입니다.”

“호. 유명한 인물들이겠군.”

“예. 이들은 어느 문파나 단체에 들어가도 장로급의 대우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혁련장이 운영하는 표국이 커졌다고 하지만 아직 지방의 작은 표국일 뿐인데…….”

“혁련장으로서는 이들을 품을 수 없다는 이야긴가?”

“예. 더욱이 염라수 오권은 어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기로 유명한 자입니다. 그리고 이들 네 명 중 확실하게 절정 경지에 든 무인입니다.”

청운은 혁련장에 무언가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혈황이 청운에게 말했다.

[다른 자들이 혁련장의 사업에 개입한 것 같구나.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거대 문파나 큰 세력이 작정하고 밀어주는 게 분명하다.]

혈황의 말에 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생각과 일치했다.

그사이 웅천이 말을 이었다.

“혁련장의 표사들을 보면 흑도로 분류되는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낭인 출신입니다.”

“흠……. 정파는 없나?”

“일부 있습니다. 실력은 조금 떨어지는 대신 평판이 좋은 자들입니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대로라면 혁련장에서는 그들 정파 출신을 전면에 내세웠을 것이다. 그리고 흑도와 낭인들을 뒤로 살짝 감춘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웅천이 말했다.

“한 가지 특이사항을 뽑자면, 실력이 떨어지는데도 정파인들이 대표두로 있다는 것입니다.”

예상대로였다.

“알겠네. 다른 특이사항은 없나?”

“아직은 없습니다.”

혁련장은 규모를 빠르게 늘리고 있었지만 불법적인 일은 없었다.

청운은 석덕조를 보며 눈을 빛냈다. 아직 중요한 사항이 남아 있었다.

“알아보라고 했던 건 어찌 되었나?”

“아직 진전이 없습니다.”

오늘 모인 이유였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서 빨리 역도들을 잡아들이고 황명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런데 금의위를 공격한 무리가 누구인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흔적도 발견 못했나?”

“예, 대인. 지난 일 년간 이곳을 방문한 자들을 살폈지만 대인께서 말씀하셨던 자는 없었습니다.”

덩치가 크고 균형 잡힌 몸매.

절정급의 검을 쓰는 자.

목소리가 굵으면서 딱딱한 말투.

무엇보다 왼쪽 목덜미에 문신인지 점인지 모를 것이 있음.

청운이 기억하는 놈에 대한 정보였다.

가장 확실한 건 놈의 목에 있는 무언가였다. 비 오는 날에 무공도 익히지 않은 청운이 정확하게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놈을 찾는 데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었다.

단지 문제라면, 문신한 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놈을 찾는 걸 일순위에 두고 혁련장과 관련된 모든 자들을 살피게. 인원을 충원하고 은밀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야.”

“네! 대인.”

“명을 받듭니다.”

회의는 길지 않았다.

중요한 사항만 보고받고 명령을 내렸다.

아직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일망타진할 생각이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증거부터 모아야 했다.

‘너를 만날 때가 가까워지는구나, 혁련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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