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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15화 (15/257)

# 15

15화

“무고에 들어가겠다고?”

황제가 놀란 표정으로 청운을 바라보았다.

황궁무고는 황실에서 관리하는 무공비급과 진귀한 무기들이 보관된 금지 가운데 하나였다.

황제의 직계 혈손과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자들에게 일부 개방하고 있는 최고의 금지.

그런 곳에 들어가게 해달라니 황제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청운은 재차 자신의 뜻을 황제에게 말했다.

“아직 신의 무공이 부족해서 황상의 지엄하신 명령을 완수할 수 없사옵니다. 하나, 한 달만 황궁무고에 있을 수 있게 해주신다면 신이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하겠사옵니다.”

“아. 무고에서 부족한 힘을 얻겠다?”

“예, 폐하!”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흐음……. 한 달이라.”

아직 황궁무고에서 한 달을 보낸 이는 없었다. 보통은 황궁무고에 사흘을 들여보내고 한 가지 무공을 고를 수 있게 했다.

그런데 한 달이라니.

이때 청운의 청을 듣고 있던 풍천호가 눈빛을 번뜩이더니 황제 앞에 엎드리며 읍소했다.

“황상! 삼원 이청운의 청을 물리치지 마시옵소서.”

“삼원의 청을 들어주란 말인가? 황궁무고가 어떤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자네가 그리 말하다니, 그 이유가 궁금하군.”

“황상. 무공비급을 가지고 나오는 포상이라면 삼 일이면 충분하옵니다. 그러나 무공비급을 골라서 익히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옵니다.”

“흠. 그 이유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황제는 청운에게 특혜를 줄 수 있었다. 부족하지만 명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망설여졌다.

평소 우유부단하고 단칼에 결정짓지 못하는 황제의 성격을 풍천호는 잘 알고 있었다.

무언가 다른 명분이 필요했다. 풍천호는 평소 자신이 생각했지만 꺼내지 못했던 말을 했다.

“황상. 황궁무고에는 천하의 수많은 비급이 쌓여 있사옵니다. 너무도 많아서 사흘의 시간만으로는 삼원이 원하는 무공을 찾지 못할 것이옵니다.”

황제는 한동안 말없이 청운과 풍천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쉽게 들어줄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렇다고 시간을 끌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삼원은 듣거라.”

“네, 폐하!”

“진정 자신이 있는 것이냐?”

“믿고 맡겨 주신다면 뼈가 가루가 되도록 노력하겠사옵니다.”

청운의 대답에 황제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다. 그러나 노력만으로는 안 될 것이야.”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삼원의 청을 수락하노라. 금일부터 삼원에게 황궁무고를 개방할 것이다.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

청운과 풍천호는 동시에 황제에게 대례를 올렸다.

이로써 청운의 황궁무고 입성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모든 일은 비밀에 부쳐졌다. 청운이 살아 있다는 것을 원수들이 눈치챌 수 없도록.

* * *

이화원이 자리한 만수산 앞에는 곤명호라는 커다란 호수가 있고, 그 위에는 석방(石舫)이라는 돌로 만든 배가 떠 있었다.

누각과 같은 기능을 하는 석방 위로 휘영청 밝은 달이 밝게 빛을 뿌렸다.

“이리 앉게, 삼원.”

“예, 대인.”

황제를 알현한 풍천호와 청운이 석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이 서로를 보았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풍천호였다.

“무사히 이곳에 돌아와 줘서 고맙네.”

“소인 때문에 금의위 위사들이 명을 달리했사옵니다. 송구하옵니다.”

아무리 황제의 명이 있었다 할지라도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자들이었다. 청운에게는 은인과 같았다.

“삼원이 그리 생각해준다니 아이들도 기뻐할 것이네.”

풍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곳으로 청운을 부른 이유를 밝혔다.

“황상께옵서 황궁무고를 장시간 개방한 건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네.”

“대영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순간 풍천호의 눈빛이 반짝 빛을 발했다.

“그리 생각한다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게.”

청운은 풍천호의 눈을 쳐다보았다.

“말씀하시지요. 혹시… 찾고 계신 거라도 있으신지요?”

풍천호는 무릎을 딱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하늘이 내린 기재라더니 틀리지 않군. 맞네. 찾는 비급이 있다네.”

황제의 신임을 받으려면 강한 무력이 필요했다. 누군가 독주를 한다면 다른 곳은 권력에서 밀려날 것이 뻔했다.

“한때 우리는 동창이나 구문제독부와 손을 잡은 적도 있었네.”

처음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서로에게 이익이었으니까.

“그런데 구문제독부에서 황궁무고의 비급 하나를 얻으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네.”

“뛰어난 비급인가 보군요.”

“뛰어나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보물이라네.”

“무슨 비급이기에 보물이라고 표현하시는지요?”

청운은 궁금했다. 대단한 비급이 분명했다. 곁에 있던 혈황도 흥미로운지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대영반은 고개를 저었다.

“자세한 건 말해줄 수 없네. 비밀에 부쳐진 일이라서.”

“비밀이시라면 굳이 알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청운은 바로 선을 그었다.

황궁은 비밀로 시작해서 비밀로 끝나는 곳이라는 것을 청운은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 후부터 다시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했지. 사실 구문제독부가 힘을 얻으면서 우리 금의위의 힘이 줄어들었네.”

“그 이야기라면 스승님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황궁경비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맞네. 성문 경비와 황도의 치안을 돌보던 자들이 슬슬 황궁의 치안까지 넘보더니, 결국 가져갔다네.”

힘이 없으면 빼앗기는 곳이 황궁이었다.

결국, 황도 전체의 치안업무를 구문제독부에서 차지하게 되었다.

“그 후로 합의는 결렬되었네.”

황궁의 습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흠…….”

풍천호는 낮게 한숨을 쉬며 청운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우리가 원하는 비급을 외워서 전해주게.”

“몇 개면 되겠습니까?”

“열 개면 되네.”

“열 개라…….”

청운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한 번 본 것을 좀처럼 잊어버리지 않았다. 책 열 권 외우는 것은 이틀이면 충분했다.

“어려운가? 하긴 자네도 무공을 익혀야 하니 따로 열 권을 외워서 알려주기가 쉽지는 않겠지.”

“아닙니다. 제 능력껏 외워서 전해드리지요. 원하시는 비급이 있으면 말씀해 보시지요.”

풍천호는 자신이 원하는 비급 열 가지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중 아홉 가지의 위치는 대충 알고 있네. 그런데 하나의 위치를 알 수가 없네. 그러니 쉽지 않겠지만 최대한 알아봐 줬으면 좋겠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고맙네.”

풍천호는 청운의 손을 잡으면 기뻐했다. 청운 역시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런데 그때, 혈황이 다급히 말했다.

[손 놓아라. 네 무공을 파악하려고 한다.]

청운은 서둘러 풍천호의 손을 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풍천호는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스윽.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이 팔을 타고 들어왔다.

풍천호의 웃고 있는 얼굴 너머로 깊은 무언가가 보이는 듯했다.

청운은 풍천호를 강제로 떨쳐내지 않았다. 대신 서둘러서 그에게 말했다.

“제 무공이 궁금하신지요?”

“미안하네.”

청운의 말에 풍천호는 넌지시 청운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청운에게 말했다.

“황제 폐하의 명이라 어쩔 수 없이 자네의 무공을 알아보았네.”

청운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황제 역시 자신의 무공을 궁금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풍천호에게 파악하라고 명령을 내린 듯했다.

“정파인지 사파인지도 알아야 해서 벌인 일이니 너무 나무라지 말게나.”

“아닙니다. 그래, 알아보셨는지요?”

“흠. 글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삼원의 내공에는 제마의 기운이 있는 것 같군. 맞나?”

파사의 기운이 담긴 뇌기를 느낀 것 같다.

청운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사문을 알려줄 수 있나?”

“송구합니다. 아직 밝히기 어렵습니다.”

사문을 밝히지 않는 것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게 무림의 생리였다. 풍천호 역시 잘 아는 부분이기에 굳이 따지고 들지 않았다.

“사정이 있다면 더 묻지 않겠네.”

풍천호는 그쯤에서 일어섰다.

“이제 그만 가세.”

“어디를 말입니까?”

“어디긴? 황궁무고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풍천호는 청운을 데리고 뒤쪽으로 향했다.

“본래는 환관이 안내하네. 하지만 이번만큼은 폐하께서 나에게 직접 안내하라 하셨네.”

* * *

곤명호를 파고 나서 지하건축물을 먼저 지었다. 그리고 곤명호를 파면서 나온 흙으로 산을 만들었다. 그 후 나무를 심고 건물들을 지어서 황궁무고를 숨겼다.

석방은 커다란 바위를 깎아서 만든 선체 위에 이 층으로 건물을 올렸는데, 방이 열여섯 개나 되고 방마다 거울이 존재했다.

“여기 네 번째 방이 황궁무고로 들어가는 비밀통로네.”

“예? 여기서 황궁무고로 들어간다고요?”

“그렇다네. 이곳 말고 입구가 하나 더 있는데, 그곳은 나도 모르네. 하하하.”

풍천호는 거울 아래에 있는 일곱 개의 구슬 중 좌측에서 세 번째 구슬을 눌렀다.

거울이 걸린 벽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그긍.

생각보다 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따라오게. 여기서부터는 진법이 펼쳐져 있네. 내 발걸음을 잘 따라서 와야 하네.”

“알겠습니다.”

청운과 풍천호는 벽이 돌면서 드러난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둘의 모습이 사라지자 거울이 달린 벽이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다.

일 장 넓이의 커다란 통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통로의 중간중간에는 어둠을 밝히는 야명주가 박혀 있었다.

“한 개로 한 성을 살 수 있다는 야명주군요.”

“맞네. 그렇다고 욕심은 내지 말게.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있어서 목숨을 잃을 수 있네.”

통로에 박혀 있는 야명주만 해도 수십 개나 되었다.

‘엄청나군.’

[대단한데? 확실히 황실이 돈이 많아.]

청운과 혈황은 혀를 내둘렀다.

얼마쯤 전진했을까, 통로를 막은 석문이 보였다.

석문에 양각된 용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이 생동감이 있었다.

풍천호는 용의 여의주를 먼저 돌리고 오른쪽 발을 눌렀다.

그르릉.

용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실제로 용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았다.

풍천호는 품속에서 작은 족자를 하나 꺼냈다. 황제의 명령이 적힌 어지였다.

풍천호는 곧장 족자를 벌어진 용의 입에 넣었다.

족자가 용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에서 누군가가 가져간 듯했다.

잠시 후,

찰칵.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굉음과 함께 한쪽 벽이 스르르 뒤로 밀려났다.

안은 어두운 공간이 펼쳐져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청운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너무도 친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그것은 퀴퀴한 책 냄새였다.

“내가 안내해줄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네. 비급을 가지고 나오거나 필사를 해서는 절대 안 되네. 걸리면 주어진 모든 혜택이 무효가 되고, 오히려 극형에 처해지네.”

풍천호는 눈짓으로 한쪽 벽을 가리켰다.

아마도 그 안쪽에 황궁무고를 감시하는 경비무사가 있는 듯했다.

“매일 저녁 환관이 이곳에 음식을 가져다 놓을 것이니 나와서 취하게.”

“알겠습니다.”

“행운이 있기를 비네.”

“감사합니다.”

* * *

황궁무고에 들어서자 커다란 광장이 나왔다. 광장의 사방 벽에는 여러 개의 문이 존재했다.

광장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은은한 야명주가 벽면에서 횃불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여러 개의 돌로 된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 위의 천장에도 야명주가 달려 있었다.

책이 불에 탈까 봐서 황궁무고 안에는 불이 없었다. 이곳으로 갖고 나와서 보라는 말 같았다.

“그럼 첫날인데 가볍게 훑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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