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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8화 (8/257)

# 8

8화

혈황은 청운의 몸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두들겨 맞으면서 혈을 타통하는 방법이 있다. 주요 혈을 일정한 힘을 가해서 타통하는 방법인데, 일종의 추궁과혈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지.]

“그럼 저놈들이 저에게 추궁과혈이라는 것을 해줬다는 이야기입니까?”

[비슷해. 네가 환골탈태를 했지만 반쪽짜리라는 건 알고 있지?]

“예. 그렇다고 하셨지요.”

청운은 이미 혈황에게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서 들었다. 육체는 무공을 익히기 최적의 상태가 되었지만, 내공이 온몸에 흩어져 있다고 했다.

[보통은 심법수련을 통해서 온몸에 퍼진 내공을 모아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그런데 어쩌면 훨씬 빨리 내공을 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청운은 혈황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눈치챘다. 그래서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설마 저놈들에게 또 맞으란 말입니까?”

[원래 무공은 맞으면서 배우는 거다.]

혈황의 말에 청운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조금 전보다 온몸에서 전해지는 청량감이 컸다. 혈황의 말에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거 근거 있는 이야기입니까?”

[너 나 못 믿냐? 내가 천교의 교주 혈황이야.]

지금까지 한 말이 사실이라면, 혈황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절대자였다.

그런 사람의 말이니 안 믿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다시 맞아야 한다는 것은 찜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또 맞는 건 좀 그런데요.”

[어허! 원래 무공수련은 맞으면서 하는 거라니까.]

“…….”

* * *

거대한 장원이 눈앞에 있었다.

수백 채가 넘는 건물이 들어선 곡부에서 제일가는 장원이었다. 공식적으로 황제가 기거하는 황궁 말고는 중원에서 가장 큰 장원이 이곳이었다.

공가장.

중원의 모두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공자의 후손들이 사는 곳이라서 규모가 엄청났다.

여러 문을 지나서 안으로 들어선 청운은 한곳에 멈췄다.

전상방이라는 편액이 수수하게 자리한 건물 앞.

“여기가 공자의 후손들이 사는 곳입니다.”

[한참 안에 있구나.]

“예. 향화객과 여행객들은 공묘와 대당까지만 들어옵니다. 이곳은 공가에 볼일이 있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죠.”

청운은 학문을 익히는 학사이기에 곡부의 공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여러 차례 이곳에 들러 먼발치에서 제사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어디서 오신 분이신지요?”

전상방의 앞에 있던 하인인 듯한 중년의 사내가 청운의 앞에 섰다.

사내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서 인사했다. 청운의 행색이 남루하고 좋지 않았는데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청운은 미소를 지은 채 담담히 말했다.

“반갑네. 내 이곳에 오는 길에 횡액을 당해서 지금 행색이 남루하네. 공가의 식솔을 볼 수 있겠는가?”

“이런, 산적이라도 만나셨나 보군요. 잠시 기다리시면 제가 접객당에 연락을 하겠습니다.”

가끔 산적이나 수적을 만나서 거지꼴로 이곳에 오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공부의 하인들은 손님의 옷보다 얼굴과 말투를 더 중시했다.

청운의 경우는 뽀얀 살결과 반듯한 이목구비가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누가 봐도 험한 일을 하고 사는 백성이 아니었다.

게다가 목소리는 낮은데도 은연중 힘이 실려 있었다.

잠시 후, 접객당을 책임지고 있는 당주라는 사람이 나와서 청운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운치를 자아내는 곳에 들어선 청운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만일 자신이 거지꼴로 이곳에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학사들은 고지식한 부분이 있었다. 불의에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우기도 했다. 더욱이 이곳은 공자의 후손들이 모인 곳이었다.

금의위를 공격한 자들이 공자의 후손들이라 해서 살려둘 리 없었다.

“하남성에서 온 이삼원입니다.”

이청운은 가명을 댔다.

“횡액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에 계시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십시오.”

청운의 바른 몸가짐에 접객당주는 흡족해하며 편히 쉬기를 권했다.

예법에 맞는 기품 있는 행동은 오랜 세월 몸에 배어야 나올 수 있었다. 청운은 어려서부터 천향서원에서 학문을 닦은 터라 공가 사람들의 눈에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지필묵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청운이 지필묵을 찾자, 눈치 빠른 접객당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숙소에 가시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접객당주가 나가고 청운은 하인을 따라서 숙소로 사용할 방으로 향했다. 여럿이 함께 쓰는 방 같았다.

천하에 널리고 널린 게 학사였다. 그들 모두를 융숭하게 대접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청운은 일단 그곳부터 벗어나기로 했다. 혈황과 할 일이 있는데, 다른 자들과 함께 방을 쓰면 제약이 많이 따랐다.

그는 지필묵이 있는 곳으로 가서 한참 먹을 간 다음 종이를 펼쳤다.

여섯 자 길이의 기다란 종이 위에 일필휘지로 글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획 한 획을 그을 때마다 곁에서 지켜보던 혈황이 탄성을 자아냈다.

용사비등한 필체로 한 호흡에 써내려간 글씨는 금성옥진(金聲玉振)이라는 네 글자였다.

[무슨 뜻이냐?]

“공자님의 완성된 인격을 기릴 때 사용되는 글입니다.”

[흠…… 좋구나.]

청운은 글을 쓴 다음 한쪽에 잘 내려놓았다.

잠시 후, 글귀가 마르자 종이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지나가는 하인을 불러서 공가의 식솔에게 전하라 일렀다.

하인은 깊숙이 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름 높은 학사들이 오면 자신의 재주를 뽐내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자의 후손들에게 인정받는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공가에서도 따로 학문을 논하는 식솔들이 있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흐르자 헐레벌떡 누군가가 뛰어왔다.

조금 전 청운의 부탁을 받고 어디론가 사라졌던 하인이었다.

“대인. 지객당의 공대 어른께서 뵙기를 청하시옵니다.”

청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앞장서시게.”

* * *

청운의 숙소가 독채로 바뀌었다.

작은 정원과 마당이 딸린 별채였다.

청운의 글씨를 대번에 알아본 공가에서는 청운을 극진히 대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단 한 자의 글씨만으로도 상대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 또한 청운의 독특한 글씨는 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삼원이라는 이름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더욱이 청운과 차를 마시면서 학문을 논하였는데 거침없이 펼쳐지는 청운의 학식에 깜짝 놀랐다.

결국 공가의 식솔 중 학식이 높은 이들마저 참석했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청운은 청운대로 흡족했고, 공가에서는 오랜만에 가문을 찾아온 학식 높은 학사라며 청운을 높였다. 이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따로 배정받은 별채에서 청운은 혈황과 마주 앉아서 차를 마셨다.

“그런데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물자는 말씀이 진심이십니까?”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은 너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좀 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있을 것 같구나.]

의외의 말이었다. 어디 깊은 산속에라도 들어가 힘을 기른 후에 복수를 시작하자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쉬었다가 가자고 하니 의아했다.

“공부하라는 말씀은 아니실 것이고, 이유가 뭡니까?”

[공부야 네가 알아서 하면 될 것이고, 무공수련 좀 하다 가자.]

“무공을 여기서 익히자고요?”

혈황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가에서 수련을 못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모두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었다.

“이유가 있습니까?”

[낮에 이야기했지 않느냐?]

혈황의 말에 청운은 무언가를 떠올리며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맞아야 합니까?”

[잘 아는구나. 그놈들에게 좀 맞자.]

“후우우.”

청운은 한숨을 푹 쉬었다.

낮에 분명히 혈황이 좀 더 맞아야겠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자신도 딱히 반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현실이 되고 보니 앞이 캄캄했다.

그렇게 청운의 기이한 무공수련은 곡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 *

“조져!”

“어린노무 시키가 어디서 어르신들에게 덤벼?”

해가 지기 전에 청운은 공가에서 나와 낮에 두들겨 맞은 곳으로 향했다. 자신을 두들겨 팬 자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놈들을 찾는 건 쉬웠다. 낮의 다섯 가운데 두 놈이 어슬렁거리면서 배외하고 있었다.

청운은 곧장 놈들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부딪쳤다. 놈들은 청운을 알아보고 다시 주먹질을 했다.

한참 후.

“헉헉헉. 이 자식이 아주 죽으려고 용을 쓰네.”

“야, 헉헉. 됐다. 그만해라. 후우…. 잘못하면 송장 치우겠다.”

쉬지 않고 때렸다. 온몸이 노곤해지고 숨이 찰 때까지 밟았다.

자신들이 지칠 정도니 청운이 반병신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닥에 쓰러져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청운은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널브러져 있었다. 크게 낭패한 모습이었다.

“카악 퉤! 너 이 자식 한 번만 더 이 거리에서 우리 눈에 띄면 디진다.”

“야야! 가자, 가. 가서 화주나 한잔하자.”

두 사람이 사라지자, 청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사방이 욱신거리는군요.”

[욱신거려도 죽진 않아.]

“피도 납니다.”

[쯧쯧. 당연히 맞았으니 피도 나는 거지.]

“정말 이렇게 해서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건 확실한가요?”

[나 혈황이라니까. 못 믿어?]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 * *

청운의 일과는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공부의 인사들과 학식을 논했고 오후에는 별실에서 무공을 수련했다.

혈황은 먼저 권장술을 가르쳤다.

[손가락을 갈퀴같이 움켜쥐어라.]

그는 하나하나 청운의 자세를 잡아주었다.

청운은 무공을 펼치는 게 어색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되자 흥이 났다.

“이거 쉬운데요.”

혈황은 별말 하지 않고 여러 가지 권법과 장법을 알려줬다.

[되었다. 그 정도면 일단 형은 익혔고. 운용법에 대해서 알려주마.]

형을 익혔다고 무공의 고수가 되는 건 아니었다. 초식을 어떤 상황에서 펼쳐야 되는지 알아야 했다.

실전을 치르기 전에 대련을 통해서 반복 숙달도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청운은 실전을 치르기 전에 해야 하는 대련이 빠졌다.

[상대의 주먹이 가슴을 노리고 들어오면 기본적으로 네 가지 방법으로 상대할 수 있다. 피하거나, 흘리거나, 막거나,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혈황은 동작과 함께 직접 초식의 운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머리가 좋은 청운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배우는 것을 흡수했다.

[방금 배운 응조수는 매의 발톱과 같은 손 모양을 하고 상대를 낚아채는 것이 핵심이다.]

혈황은 청운의 손을 낚아채는 동작을 하며 손발을 휘둘렀다. 청운 역시 혈황을 상대로 응조수를 펼쳤다.

파지직.

여전히 혈황이 청운의 몸에 손을 대려고 하면 몸에서 뇌기가 일어나서 혈황을 튕겨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뇌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구나.]�

“제가 잡으면 괜찮네요.”

서로를 움켜쥘 수는 없다. 그러나 혈황이 잡을 때는 반발력이 생겼다. 신기한 일이지만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수련은 이쯤하고, 시간되었으니 어서 나가 보자.]

“정말 또 가서 맞아야 됩니까?”

청운은 걱정이 되었다.

하룻밤 지나자 온몸에 들었던 멍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래도 맞는 느낌이 좋을 리 없었다.

[너도 학문을 익히면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무공을 익히는 일은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래도…….”

[복수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와신상담이란 말이 그냥 생긴 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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