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3화
쩌정! 쨍!
쏴아아아아!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방갓을 쓴 사내도 달려들며 백호장을 향해 커다란 기형도를 사선으로 올려 쳤다.
백호장이 한 발 물러서며 기형도를 튕겨냈다. 그러고는 검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방갓을 쓴 사내의 목을 향해 찔렀다.
팅! 챙!
방갓 사내가 어느새 기형도를 들어 막았다. 동시에 몸을 허공으로 띄우더니 기형도를 강하게 찔렀다.
몸과 함께 회전하며 들어오는 공격에 백호장의 검이 빨라졌다.
차자자장!
백호장은 연속으로 기형도를 쳐냈지만 힘에서 밀렸다. 상체가 뒤로 숙여지며 공격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호위하는 입장에서 길을 터주게 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곁에 같이 있던 다른 자가 강하게 검을 휘둘러서 방갓 사내의 공격을 막아냈다.
백호장이 그사이 빈틈을 발견하고 뛰어올랐다.
“이놈!”
그러고는 몸을 비틀며 방갓 사내ㅍ를 향해 일검을 찔러 넣었다.
채앵!
방갓 사내는 기형도를 들어서 백호장의 검을 막고는, 뒤로 밀리는 탄력을 이용해서 다른 금의위 대원의 허리를 베었다.
“크억!”
비명과 함께 피분수가 뿜어졌다.
방갓 사내는 머뭇거리지 않고 청운이 있는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목적했던 바를 이룰 수 없었다.
백호장이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서는 요혈을 향해 검을 찌르고 있었다.
“물렀거라! 이놈!”
히이힝.
그때 뒤에서 말울음 소리가 울렸다.
순간 백호장은 아차 했다.
부하들의 방어를 뚫고 다른 자들이 이청운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는 급히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런데 방갓 사내가 놓아주지 않았다.
방갓 밑으로 씨익 웃는 모습이 흡사 지옥의 야차가 웃는 듯했다.
“흐흐흐, 어딜 가려고?”
“놈!”
백호장이 일갈과 함께 방갓 사내의 공격을 쳐냈다.
방갓 사내의 공격이 강에서 유로 바뀌었다.
도는 강함을 기본으로 한다. 유(柔)의 묘리로 펼친다는 것은 그의 무공이 지금까지 드러난 것보다 강하다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갓 사내는 백호장의 검을 놓아주지 않았다.
순간 백호장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대로라면 호위 대상인 이청운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삼원을 모시고 이곳을 벗어나라!”
그가 악을 쓰듯 소리쳤다.
그 틈을 이용해서 방갓 사내가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쫙아악, 서걱.
서늘한 고통에 중년 호위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조장님!”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온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주르륵.
가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래도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방갓 사내를 노려보았다. 절대 길을 터주지 않겠다는 듯.
“빨리…… 도망… 쳐.”
“길을 뚫어라! 어서 삼원을 모셔라!”
검은 피풍의를 입은 금의위 대원 중 살아남은 자는 다섯.
대원 하나가 청운이 타고 있는 말고삐를 움켜쥐고 어둑해지는 숲속을 향해 내달렸다.
다른 대원 하나는 복면인들을 막으며 함께 달리고, 나머지 세 명의 대원들이 후미를 막아섰다.
아무도 보내지 않겠다는 듯 그들의 두 눈에서는 흉흉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에 방갓을 쓴 사내가 일갈했다.
“쫓아라! 더 어두워지기 전에 잡아야 한다!”
놓쳐서는 안 된다. 상대는 금의위다. 그들의 집요함과 악랄함은 이미 천하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황제의 직속 무력집단인 금의위를 건드린 이상 뒤를 말끔히 정리해야만 했다.
방갓 사내는 앞에 서 있는 백호장을 향해 쇄도하며 기형도를 휘둘렀다.
백호장은 이미 기력이 다한 터였다. 마지막 한 줌의 진기로 버티고 서 있던 것일 뿐.
서걱!
방갓 사내의 기형도가 그의 가슴을 길게 갈랐다.
백호장은 방갓 사내를 노려보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제야 자신이 백호장의 허세에 속았다는 걸 안 방갓 사내가 이를 갈며 명령을 내렸다.
“살아남은 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흔적을 지워라!”
“존명!”
살아남은 자라고 해봐야 짐을 옮기던 짐꾼 몇 명뿐이다.
살려달라며 외쳤지만 습격자들에게 자비는 없었다.
그때 복면을 쓴 자 하나가 방갓 사내 옆으로 날아 내렸다.
“숙부님, 어쩌지요? 더 어두워지면 놓칠지도 모릅니다.”
“흥! 놈들은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말을 함과 동시에 방갓 사내는 경공을 펼치며 숲길을 달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금의위 하나가 길을 막아선 채 부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다른 둘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곳을 지나친 그는 빠르게 산길을 달렸다. 복면인 십여 명이 그를 따라 달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어둠이 더욱 짙어졌을 때쯤, 방갓 사내가 말을 찾아냈다.
그러나 말이 있는 곳까지 도착한 그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말 혼자 서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흩어져서 찾아라! 멀리 못 갔을 것이다!”
복면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청운은 어스름한 숲속을 헤치고 전진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땅이 젖어서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른다.
옷이 찢기고, 상처가 한두 군데가 아닌지 온몸이 쓰라렸다.
그래도 어쨌든 적의 추격을 따돌린 듯했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암습자들은 밤을 새서라도 자신을 찾으려 할 것이다. 어떻게든 잡아서 죽이려 할 것이다.
자신을 놓치면 황궁의 분노를 사서 본인들이 죽을 거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테니까.
‘도대체 어떤 자들이지?’
누군데 자신을 죽이려 하는 걸까.
왜?
청운은 의문을 삼키고 옆을 바라보았다.
금의위 둘이 자신을 호위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부상이 심한 듯 어깨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청운은 그들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자신을 호위하려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었다. 이미 동료들 몇은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나를 지키는 것만 아니었어도 충분히 빠져나갔을 텐데…….’
청운은 조금이라도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관복과 관모를 벗었다.
비에 젖은 관복과 관모는 움직임을 방해할 뿐 아니라 제법 무게가 나갔다. 어떻게든 그들에게 짐이 안 되려면 몸을 가볍게 해야만 했다.
그때 호각 소리가 들렸다.
삐이이익!
“흩어져서 찾아라! 멀리 못 갔을 것이다!”
분노에 찬 고함 소리도 아련히 들렸다.
청운도 그 소리를 듣고는 벗은 관복과 관모를 급히 돌돌 말았다.
“제가 들고 가겠습니다, 대인.”
금의위 위사 중 부상이 덜한 자가, 돌돌 말은 관복과 관모를 들어서 옆구리에 끼었다.
그러고는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청운도 뒤를 따라 다시 도주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는 몸의 움직임이 훨씬 자유로웠다.
분을 참지 못한 방갓 사내는 눈앞에 홀로 서성이는 말을 향해 일장을 내갈겼다.
“빌어먹을 놈들!”
펑!
히이이힝.
철퍼덕 소리와 함께 머리가 터진 말이 맥없이 쓰러졌다.
사방을 둘러본 그는 이를 악물었다.
어둠으로 뒤덮이고 있는 산중에 비마저 오고 있었다.
칙칙한 안개마저 피어나고 있는 터라 모든 것이 가려져서 공력이 약한 자는 걷는 것도 쉽지 않은 상태. 놈들이 작정하고 숨는다면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때 골짜기 쪽에서 급박한 호각 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발견한 듯했다.
그가 인근의 지리를 잘 아는 부하에게 물었다.
“저쪽으로 가면 무엇이 나오느냐?”
“폭포가 있는 계곡입니다.”
순간 방갓 사내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반드시 놈을 죽여야 한다. 한 놈이라도 살아남으면 우리가 죽는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물론입니다.”
“추격해! 하류 쪽에도 사람을 보내서 떠내려 오는 자들이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라 전하고!”
“예!”
추격은 계속되었다. 빗줄기 역시 가늘어지긴 했으나 그칠 줄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흔적을 발견했다. 나무가 부러지고 땅이 파인 흔적. 그 흔적은 계곡 아래쪽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찾았군. 쥐새끼 같은 놈들.”
하류 쪽으로 이어지는 흔적을 보며 방갓 사내가 비릿하게 웃었다.
“산을 벗어나기 전에 놈들을 잡는다. 서둘러라.”
추적대가 두 사람을 발견한 곳은 낭떠러지 폭포 위쪽이었다.
한 명은 금의위 복장이었고, 한 명은 관복에 부서진 관모를 쓰고 있었다.
“이놈들, 고작 도망친다는 것이 이곳이었느냐?”
차갑고 비릿한 소리가 폭포 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방갓 사내는 천천히 둘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점점 좁혀오는 포위망을 보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관복을 입은 자는 똑바로 서 있지도 못했다. 금의위가 한쪽 팔로 허리를 감싸 쥐고 있었는데, 부상이 심한지 몸이 축 처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가는 방갓 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절벽으로부터 십오륙 장 떨어진 바위틈에 숨어 있던 청운은 분노의 불길이 일렁이는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도주하던 중에 까마득한 절벽 폭포가 나왔다. 너무 높아서 내려갈 수도 없고, 뛰어내릴 수도 없었다.
산 아래 쪽에서는 암습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의위 하나가 그에게 다급히 말했다.
“위로 올라가서 숨어 계십시오. 저희가 저자들을 유인해서 도망칠 테니, 적당한 때에 산을 내려가십시오.”
어차피 그는 금의위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없는 것이 나았다.
그렇게 판단한 그는 금의위 말대로 산 위로 올라갔다. 그러다 마침 절벽 우측의 멀지 않은 곳에 쪼개진 바위가 있는 걸 보고 그 아래쪽으로 기어들어가 숨었다.
어둑한 데다 비까지 오고, 안개가 옅게 끼어서 쉽게 발견되지는 않을 듯했다.
그러나 상대는 절정고수가 섞여 있는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도 대낮같이 활동하는 자들 아닌가.
그런데 숨소리가 잦아들 때쯤 암습자들이 나타났다. 방갓 사내도 있었다.
문제는 금의위들이 퇴로가 막혀 다시 절벽 쪽으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 사람은 그의 관복을 걸치고 관모까지 쓰고 있었다.
놀란 그는 숨을 최대한 가늘게 쉬며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그때 복면인 하나가 나타나더니 방갓 사내를 향해 다가가는 게 보였다. 곧 목소리도 들렸다.
청운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드디어 잡았군요, 숙부.”
“후후후, 내가 그러지 않았느냐. 도망치지 못한다고.”
“역시 숙부님이십니다.”
복면인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절벽 쪽을 보며 말했다.
“흐흐흐, 청운.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느냐? 전시에 나오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그랬으면 네놈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는 앞에 서 있는 자들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뿌옇게만 보이는 자가 이청운임을 의심치 않았다.
고개를 푹 숙여서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문관의 관복을 입고 있었다.
“크크크, 천애고아인 천한 놈이 머리 좀 좋다고 목에 힘을 주니 네 아비처럼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이니라. 진즉 내 발아래에서 기었으면 죽지는 않지.”
그가 이죽거리며 이청운을 모욕하는데, 옆에 서 있던 방갓 사내가 나섰다.
“그만해라.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놈의 목을 치고 떠나자.”
“예, 숙부.”
방갓 사내가 기형도를 사선으로 늘어뜨린 채 두 사람을 향해 접근했다.
바위틈에 숨어서 엎드려 있던 청운은 이를 으스러지게 악다물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였더냐? 진정 너란 말이냐, 혁련휘!’
그 순간, 뭔가가 바위틈 깊은 곳에 있는 자리 위를 기어가는 게 느껴졌다. 벌레인지 뭔지 모르지만 제법 큰 물체였다.
그 물체는 점점 다리를 타고 기어오더니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와중에도 오싹 소름이 돋았다.
허벅지까지 올라온 물체가 가랑이 사이로 내려가고 있었다.
청운은 무의식중에 다리를 움직였다.
툭.
다리가 돌조각을 건드렸다. 제법 큰 소리가 났다.
‘이런!’
방갓 사내가 걷다 말고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서 오른쪽을 노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숙부?”
방갓 사내는 복면인의 묻는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좁히고는 우측으로 몸을 돌렸다.
무언가 모를 기척이 느껴졌었다. 수하들의 기척은 아니었다. 수하들은 그곳에 없었으니까.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든 그는 기척이 느껴진 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금의위 놈들 중에 살아 있는 놈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