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무림 견문록-136화 (136/150)

136화.

축축한 냄새가 나는 지하 수로.

칠흑처럼 어두우면서도, 군데군데에서 기묘한 안광(眼光)과 살기(殺氣)가 괴상한 형태를 갖춰 번뜩이는 가운데.

찰박, 찰박, 찰박.

왠지 기분 나쁜 발소리와 함께, 세계 각지에서 비롯된 다양한 냄새들이 한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렇다, 냄새.

지금 모여들고 있는 냄새는, 뿌리 깊게 새겨진 일종의 각인 같은 것으로 향수처럼 자극적이진 않지만 이를 두르고 있는 존재 그 자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냄새였다.

찰박.

우선, 아프리카.

코끼리와 기린, 코뿔소와 사자는 물론, 하마와 악어까지. 진한 야성의 페로몬을 뿌려대는 포식자들의 공격성과, 광활한 대자연 특유의 진한 생명력이 어우러진 기묘한 냄새.

찰박.

그리고, 남미.

온갖 독이 가득한 화려한 수풀이 우거진 죽음의 정글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움막에서부터 피어나오는 톡 쏘는 냄새. 동시에, 가장 가까운 도시의 빈민가에서부터 시작된 잔인한 사투의 냄새.

찰박.

또한, 태평양 어딘가의 해안동굴.

짜디짠 바다 내음은 물론, 비린내 가득한 물고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물체들이 절박하게 피워내는 진한 냄새. 이 모든 것이 묘하게 어우러진 활기가 소금기와 함께 찌든 냄새.

찰박.

미국.

대도시 특유의 콘크리트 및 매연 냄새와 함께, 기름으로 범벅이 된 인스턴트 냄새가 뼛속까지 스며든 풍요로운 냄새. 동시에, 화학약품이 기묘하게 뒤섞인 마약 냄새.

찰박.

그리고, 사막.

사람을 그 자체로 바싹 마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텁텁한 냄새와 동시에, 오랜 시간 햇볕에 그을린 탓에 묘하게 더운 열기를 지닌 모래 냄새.

찰박, 찰박, 찰박.

이 모든 냄새가, 한곳으로 모여든다.

지하 수로 특유의 쿰쿰한 물비린내와 함께.

“(내가 제일 늦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안 보이는 놈들이 있네.)”

“(멍청한 새끼. 둘은 죽었어.)”

“(그딴 건 알아.)”

타클라마칸 사막 쪽에서 온 혈교 제사장이 입을 연다.

진백현과 류웨이.

그 멍청한 놈들이 죽었다는 사실쯤이야 이미 알고 있다.

아니, 모르는 게 병신이지.

혈교의 열두 제사장은 서로의 몸에 진법과 함께 새겨놓은 특유의 문신 때문에, 누군가가 죽으면 그 사망 당시의 감각들이 모두에게 공유되지 않는가.

“(걔들을 빼도 5명이 남는 거 안 보여, 병신아?)”

“(아, 숫자 셀 줄 아는구나. 난 또 맨날 그 음침한 강시랑 같이 사막에서 헛짓거리하느라 대가리가 녹아 버린 줄 알았지.)”

“(음침한 건 너겠지. 그 역겨운 독개구리 같은 거나 만지던 손으로 할렘가 약쟁이들이랑 이상한 짓이나 하고 다니는 새끼가···.)”

“(다들 그만.)”

혈교 제사장 둘 사이에 일어난 짧은 말싸움을 말리는 또 다른 혈교 제사장.

“(나머지 놈들은 이미 왔다가 갔어. 따로 움직이겠다는군.)”

“(왜.)”

“(알잖아.)”

같은 혈교에 속한 제사장들이라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가 그 성격이 다르다.

혼자 은밀히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놈이 있고, 도시와 외떨어진 곳에서 혈교도들만 데리고 사는 사회를 꾸린 놈이 있고, 제일 먼저 죽은 그 진백현처럼 애매한 국가의 집단에 기생하여 때를 노리던 놈이 있고, 저번의 류웨이처럼 노예들을 꾸려 움직이는 놈이 있고, 아예 다른 세력과 합작하여 세를 과시하며 조직 놀이를 하는 놈들이 있으니까.

이렇게 모두의 특징이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우린 경쟁하는 관계야. 또 다른 꿍꿍이가 생겼나 보지.)”

혈교 열두 제사장.

이들은, 교단 내에서 누가 가장 먼저 혈마(血魔)를 현세에 강림시키냐를 두고 경쟁이 붙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혈마를 현세에 강림시킨 제사장은, 혈교의 교주가 되어 혈마를 등에 업은 세상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

모두가 적인 지금, 서로가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고 각자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각자의 실력을 키워왔던 게 상식으로 통용됐던 지금.

“(하여간 바보 같은 놈들. 아직도 따로 떨어져서 자기들끼리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군.)”

“(내버려 둬. 경쟁자 줄이고 좋지.)”

이 러시아 어딘가의 지하 수로에 5명의 제사장들이 모여, 단독 행동을 하려는 나머지 제사장들을 비웃는 덴 다 이유가 있었다.

“(마음대로 움직이라고 해.)”

녀석들이 왜 여기까지 와서 홀로 움직이려고 하는가.

백창규.

여태까지 준비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스케일로 혈마를 현세에 강림시키는 데 필요한 ‘천마’의 환영을 지닌 제물.

그 제물을 혼자서 꿀꺽 삼키고자 이러는 것 아닌가.

하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알고 있다.

“(쉐프가 좋은 음식을 차리면 뭐 해, 먹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하여간.)”

“(2번이나 ‘그걸’ 느끼고도 모르나?)”

“(학습능력 없는 새끼들.)”

“(욕심이 과한 거지.)”

“(아니, 멍청한 게 맞아.)”

그들이 느낀 백창규라는 놈은, 이제 혈교 제사장들이 단독으로는 잡기 힘들 정도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두 번.

진백현과 류웨이가 죽었던 그 각각의 순간, 모두의 심상(心想)에 그 녀석의 이미지가 비쳤을 때 머리가 좀 돌아가는 놈들은 확신했다.

이 녀석의 성장은 끝나지 않았다고.

“(간단한 이치잖아. 첫 번째와 두 번째 순간들 사이에 있었던 실력의 격차. 그것만큼을 마지막 순간부터 기간을 따져 곱해 주면 충분히 답이 나오잖아.)”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미국의 정보국에 잠입한 적 있었던 혈교 제사장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녀석은 이 러시아로 오기 전 거쳤던 일본에서 꽤 많은 일들을 겪었다고 했으니까.

아무리 환영이라고 해도 녀석은 천마가 담긴 그릇.

그것들이 일으킬 화학반응을, 먼저 간 녀석들은 욕심 때문에 간과하고 있다고 이들은 생각했다.

“(뭐, 어떤 멍청한 놈은 그것조차 자기네들이 키운 개들로 잡아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말이야.)”

당연히 좋은 건 혼자 백창규를 차지하는 것.

그리고, 녀석을 이용해 현세에 강림하는 혈마를 혼자서 오롯이 받아내어 당당히 혈교의 교주가 되는 것이겠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지. 안 그래?)”

여기 모인 다섯의 제사장들은 이미 합의를 보았다.

“(공동 교주 정도로 끝내지.)”

“(그래. 어차피 숫자도 딱 여기 다섯까지 줄어들 텐데.)”

“(5인의 교주라. 딱 좋군.)”

피비린내 나는 냄새를 풍기며 서로 시선을 맞추는 제사장들. 입은 웃고 있지만, 그들은 서로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진한 불신(不信)의 냄새를 맡는다.

당연히, 완전히 신용할 순 없다.

개인행동을 선언하고 먼저 밖으로 나간 다른 제사장들이 차례로 죽은 뒤, 기회를 잡아 백창규 그 제물의 목숨을 바쳐 혈마를 현세에 강림시키려고 할 때.

분명, 이 중에서 그 마지막 순간에 배신하는 놈이 나올 것이다. 애초에 여기 있는 모두는 여태까지 득이 된다면 서로의 등에 칼을 꽂는 짓을 서슴지 않고 했던 악당들 아닌가.

하지만.

“(·········그래. 그렇게 하자고.)”

그들 모두는 굳이 입 밖으로 그런 생각들을 꺼내서 뱉지 않았다.

“(그럼 그때까지 최소한 우리끼리라도,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는 거야.)”

그들이 있는 지하수로 위.

그러니까 러시아의 모스크바.

“(······‘놈들’에게 먼저 들키지 않도록.)”

여긴, 적어도 결전의 날이 오기 전까지는 그들의 존재가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합의를 본 곳이니까.

* * *

러시아의 한 산맥.

저 멀리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지나가는 철도가 보이는 이 설산 어딘가에서, 둔탁한 충격음이 여기저기 메아리치고 있다.

퍼억-! 퍼억-! 퍼억-!

산맥 곳곳에 빽빽하게 퍼진 침엽수림조차 전부 흡수하지 못할 정도로 울림이 컸던 그 소음은, 마치 실력 좋은 거인이 도끼로 거대한 장작을 두드려 패는 듯 둔탁한 느낌이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살짝 날카로운 게, 마치 꽁꽁 언 얼음이 깨지는 듯한 소음.

꽤 컸던 그 소음이 산맥 곳곳을 옮겨 다니며 이어지자, 결국 산림 곳곳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새들이 죄다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가고 만다.

푸드득!

그렇게 날아가는 새들을 자세히 보니, 하나 같이 몇 방울의 조그마한 물감을 묻히고 있는 듯하다.

기묘한 일이다.

어떤 녀석은 배에, 어떤 녀석은 날갯죽지에, 어떤 녀석은 등에 조금씩 묻어 있는 검붉은 자국들.

퍼억-! 퍼억-! 퍼억-!

그때 날아가는 새를 뒤따라 솟구치는 작은 알갱이들.

핏방울들이다.

하지만 이것도 뭔가 묘했다.

핏방울이라고 하긴 알이 조금 굵고, 날아가는 속도도 약간 빨랐으며, 그 사이사이로 피가 아닌 하얀 무언가가 같이 날아가고 있지 않은가. 마치, 얼음 조각 같은···.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순간 이어지는 소름 끼치는 비명이 있었다.

방금 얼음 조각과 함께 얼어붙은 핏방울들이 날아 온 진원지.

“(후우.)”

그곳에, 이마에 묻은 땀을 닦는 군인이 있었다.

러시아 특수부대의 복장을 한 누군가.

장갑을 낀 그 두꺼운 손에 들려 있는 건, 거대한 망치. 그 망치를 들어 올리려 하기 직전, 문득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진다.

띠리리리.

잠시 동작을 멈추고 전화를 받는 군인.

“(예, 혈교 놈들입니다. 예, 제사장은··· 이제 막 잡아서 끝내려고 하는데요.)”

맞다.

지금 이 군인의 앞에서 다 죽어가고 있던 놈은 혈교 제사장.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노리기 딱 좋은 곳에 숨어 있던 녀석과 그 부하들을 전멸시킨 상황이었다.

“(근데 이것들 좀처럼 안 보이더니 왜 갑자기 튀어나온 겁니까? 아··· 그렇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변동사항 있으면 전달 부탁드립니다. 예, 숙지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숨을 내쉰 군인이 흘끗 시선을 돌린다.

눈앞에, 꽁꽁 ‘얼어붙은’ 혈교 제사장이 보인다. 마치 동상, 아니, 얼음 틀에 끼워서 얼린 것처럼 전신에 피칠갑을 한 채 얼음이 되어 있는 기묘한 모습.

그 곳곳이 애매하게 ‘깨진’ 부분들을 마뜩찮게 바라보며 통화를 이어가던 군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간다.

“(볼크, 그 마피아 녀석들 말입니까. 예? 뒤처리요? 극장 말씀이십니까. 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벌레 같은 녀석들과 관계를 이어 가는 것도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어서··· 아닙니다.)”

마피아 같은 벌레 새끼들. 그 벌레 대장의 아들이 납치된 것 따위가 뭐 어쨌다는 말인가.

하지만, 군인은 곧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의 말에 납득을 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저도 알지요.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예, 그건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통화를 마친 군인.

“(하여간, 벌레 새끼들이 너무 많아.)”

인상을 쓴 그가, 다시 망치를 들어 올린 뒤 눈앞에서 경악한 표정을 한 채 얼어붙어 있는 혈교 제사장을 향해 내려친다.

퍼억-!

예의 기묘한 소음을 내며 산산조각이 나는 얼음. 얼음이 깨지는 동시에, 그 안에 있던 혈교 제사장의 전신이 얼어붙은 채 박살나며 사방에 얼어 버린 핏방울들이 내장과 함께 튀어나간다.

그렇게 혈교 제사장이 죽은 걸 확인한 군인은 다시 고개 돌려 사방을 돌아본다.

아직 죽지 않은 벌레들이 있군.

다리가 얼어붙은 채 공포에 떠는 표정을 하고 있는 혈교도들을 향해 다가간 군인이, 다시 망치를 들어 올려 여태까지 해 왔던 행동을 가만히 반복할 뿐이었다.

파삭-! 파삭-! 파삭-!

그렇게, 산맥에는 다시 기묘한 소음이 울려 퍼진다. 오래토록 이어져 내려온, 북해빙궁 빙공(氷功)의 흔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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