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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무림 견문록-134화 (134/150)

134화.

냉기와 피비린내가 기분 나쁘게 뒤섞인 드넓은 냉동창고의 벽면에, 온갖 종류의 총알이 박힌다.

타타타타타-!

기관단총, 개틀링건, 권총까지.

총구에서 불을 뿜으며 쏘아진 뒤, 3면의 벽면에 유려한 궤적을 그리는 총알들. 정체불명의 남자가 방금까지 있었던 곳을 따라 박힌 총알들이 냉동창고 안에 화려한 흔적을 남겨 놓은 그때.

“(무공 익힌 놈이다! 지원 요청하고, 한쪽으로 몰아! 어설프게 흩어져서 공격하지 말고 같은 방향으로 집중사격 해!)”

“(잠깐.)”

미하일이 공격을 제지한다.

그러자, 방금까지 천장 위를 뛰어다니다가 냉동창고 입구 앞에 여유롭게 떨어지는 남자.

타닥-!

그 남자가 차고 있던 칼을 바라보던 미하일이 그 주변으로 시선을 뿌린다.

천장, 바닥, 벽면···.

그곳에 어지러이 그려진 총탄 자국 흔적들을 멍하니 감상하던 미하일이, 번개처럼 칼 쥔 반대 손을 움직여 꺼내든 권총을 쐈다.

━━━탕!

그때, 표적이었던 남자가 칼 든 손을 들어 마치 파리 쫓는 듯한 동작으로 칼을 휘저었고.

틱, 티틱.

미하일은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자신의 예민한 청각에 도달한 소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형제! 우리도 같이···.)”

“(총알을 자르다니.)”

“(뭐?)”

“(마스터 수준이네.)”

“(그, 그래도 우리가 다 같이 공격하면···.)”

“(저런 놈은 같이 공격하는 것도 전술이 있어야 해. 인원이 아무리 많아도, 훈련된 움직임으로 교묘하게 작전을 짜서 총탄을 박아넣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왼손에 쥐고 있던 권총을 바닥에 던진 미하일이, 칼 든 쪽 손목을 우득우득 풀며 부하들을 향해 지시한다.

“(칼 든 놈은 나 하나면 되니까 지원 요청은 군인 출신 형제들로 불러. 웬만하면 저격 훈련을 받은 놈들로. 무기도 정확도 떨어지는 기관단총 같은 거 말고, 저격용으로만 챙겨 오라 그래.)”

“(형제! 아예 연막탄도···.)”

“(아니, 마스터 경지를 넘은 칼잡이들은 연막탄이나 섬광탄, 사실 저격총 같은 것도 큰 의미가 없어.)”

불안한 표정을 짓는 부하들을 향해 씩 웃음 짓는 미하일.

“(······왜냐면, 내가 그렇거든.)”

대답과 함께 그의 신형이 사라진다.

그대로 바닥을 박차고 정체불명의 남자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몸을 날리는 미하일의 얼굴에 새겨진 묘한 웃음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볼크 미하일.

포식자의 가문에서 태어나,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이 늑대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러시아 마피아. 쓸 수 있는 많은 무기가 있었지만, 제일 좋은 건 칼이었다.

총과 달리, 이 몸뚱이와 함께 한계가 없이 강해질 수 있는 살인 무기. ‘일’을 하느라 얼간이 같은 놈들만 상대하던 요즘, 자신의 한계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알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쐐애애애애애액-!

바람을 가르며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나풀대는 머리를 느끼며, 미하일이 어느샌가 허리춤까지 젖힌 칼자루를 반대 손으로 바꿔 잡는다.

첫 격돌.

일검(一劍)이 튀어나오기 직전, 미하일이 기대감을 품었다.

‘(어디 실력 좀 볼까.)’

반대 손을 비틀어서 잡은 칼자루.

그뿐만 아니라, 그는 도약을 시작했을 때부터 전신에 회전을 먹인 상태다. 마치 고속으로 회전하는 총알처럼, 전신에 품고 가는 소용돌이 같은 에너지는 칼끝을 쏘아낼 때 극한으로 터질 터.

사냥에 임하는 늑대처럼.

다른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과감하게 쏘아 낸 이 회전격은, 상상 이상의 공격반경을 자랑하는 동시에 ‘닿는 것’만으로도 검을 타고 상대방의 전신에 끔찍한 마찰상을 남긴다.

이렇게.

━━━━━━펑!

매캐하게 피어오른 탄내.

냉동창고 바닥에 새카만 흔적을 남김과 함께 공격을 터뜨린 미하일이, 바닥에서 몸을 굴리는 동시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간신히 피했네?)”

미하일은 보았다.

자신의 검풍이 닿기 직전, 반격하려는 듯한 자세로 검을 고쳐잡은 남자. 하지만 간격을 잘못 계산했는지 이쪽에 맞서 돌진한 남자가 휘두르려는 검의 궤도는, 미하일이 뿌린 검의 간격과 몇㎜ 차이로 빗나간 듯 보였다.

“(하지만 축하해. 부딪치지 않은 덕에 목숨은 부지···!?)”

고개 돌린 미하일의 눈이 커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커헉!)”

“(윽!)”

“(하악!)”

자신을 스쳐 지나간 남자의 칼이, 뒤편에 있던 부하들의 피로 흠뻑 젖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털썩-!

마지막 남아 있던 부하가, 자신의 양손으로 피가 새어 나오는 목을 감싸며 바닥에 쓰러지고.

“(무슨···.)”

“후, 일단 따까리들은 전부 정리했고.”

알아듣지 못할 말로 중얼거린 동양인 남자가, 칼에 묻은 피를 촥 뿌리며 이쪽을 돌아보았을 때.

미하일은 바로 직감했다.

‘(내 공격을, 간신히 피했던 게 아니다.)’

놈은 처음부터 저쪽을 노렸다는 것을.

애초에, 자신의 공격을 피하면서 조직원들을 죽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몸놀림을 통해 종이 한 장 차이로 자신을 넘어 움직였다는 사실을.

‘(······평범한 수준의 마스터가 아니야.)’

여기가, 잘못하면 자신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긴장한 탓에 칼자루를 꽉 쥐는 미하일.

꽈악.

하지만 느껴진다.

가문의 상징인 늑대 문양이 새겨진 칼자루. 그리고, 이 칼자루를 제대로 쥐기 위해 아버지 대부터 유명했던 수많은 마스터들에게 집중 교육을 받았던 시절들이.

“(나이 먹고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한 건 오랜만이네.)”

“뭐하냐? 빨리 안 덤비고.”

“(하지만 그 정도로 기세등등하면 안 되지.)”

“그렇지, 자세 좋고 느낌 좋고.”

“(우리 볼크 가문이, 어떻게 뒷세계의 정점에 올랐는지 보여 주마.)”

미하일일이 반대 손으로 칼자루를 비틀어 잡는다. 상대에게 쏘아지는 와중에 반대 손을 이용했던 아까와는 다른 자세였다. 아니, 영 다르다곤 할 수 없었다.

회전격을 사용하는 건 그대로였으니까.

하지만, 기세가 달랐다.

“(이 한 방에, 끝낸다.)”

미하일이 끌어올리는 무거운 기도. 그리고,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끓기 시작한 살기(殺氣). 늑대의 야수성을 표방하는 볼크 가문의 시그니처 기술이었다.

펑-!

콘크리트 바닥을 찍은 발부터 전신을 회전하며 쏘아진 미하일.

그의 전신에 묘한 기운이 일렁인다.

흉흉하게 피어난 야성과 살기.

공격 직전 전신의 기운을 터뜨려, 회전하며 쏘아지는 내내 전신의 모든 동작 하나하나에 흩뿌린 야성과 살기를 페이크로 사용하는 가문의 비전절기였다.

아까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범위와 강도를 자랑하는 검격을 쏘아 낸 미하일.

콰콰콰콰콰콰콰-!

살짝 긴장하긴 했지만, 막상 몸을 쏘아내니 확신했다.

절대 질 리가 없다는 사실을.

진짜와도 구분할 수 없는 이 페이크 에너지를 동작 하나하나에 녹이는 이 기술을 상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생사의 경험이다.

비슷한 나이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생사(生死)를 다툰 싸움을 해 본 경험으로 결착이 날 것이다.

콰콰콰콰콰콰-!

누가 더 많은 사선(死線)을 넘어 보았나.

그건 당연히, 러시아 전 지역에서 최고의 마피아가 되기 위해 온갖 더러운 짓거리를 해 왔던 자신이라고, 미하일은 생각했다.

“(뒤져········· 얽!)”

날아가는 와중에.

━━━쫘악!

싸대기를 맞기 전까진.

━━━쫘악!

“············?!?!”

━━━쫘악!

━━━쫘악!

━━━쫘악!

* * *

얼얼해진 손을 바라보는 백창규.

- 지금 네 경지는, 암마! 예전에 네가 고수라고 생각했던 애들조차 함부로 쳐다보기 힘든 그런 고수들조차 눈을 마주치기도 힘든 그런 고수보다 더···.

“아오, 그만 좀 해요.”

- 그러니까, 예전에 네가 피똥 쌌던 혈교 제사장 같은 애들쯤이야 이젠 평타로 잡을 수 있다는 얘기야.

“알아요, 알아.”

지금 그의 앞엔, 벌써 이빨 몇 개가 나간 러시아 마피아가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볼크 미하일.

그가 한 손으로 움켜쥔 입에서 흘러내린 선혈(鮮血)이 냉동창고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참이다.

- 그런 애 앞에서 그렇게 깝쳐 대고도 정신을 못 차리니, 쯧쯧. 얘 눈 봐라.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는 것 같은데?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녀석의 눈.

지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하는 듯한 녀석의 뺨을 향해, 그대로 따귀를 올려붙이는 백창규.

쫘악-!

후두둑 피를 흘리며 반대편으로 쓰러진 미하일이, 깜짝 놀란 표정과 함께 창규를 향해 소리지른다.

“(이, 이 새끼 뭐야! 암살자냐? 빌어먹은 개 같은 새끼! 너 어디 조직에 있는 놈이야!)”

말은 그렇게 해도 창규가 두려운지 슬금슬금 뒤로 몸을 빼며 비명을 지르는 미하일.

- 시작해, 너 이제 러시아어 할 줄 알잖아.

“러시아어는 발음이 좀 세서, 욕하는 것 같고 기분이 좀 그래요.”

- 사람 팬 새끼가 기분은 염병하고. 빨리 햄마!

“아오, 알았다고요.”

처음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본어를 배웠을 때처럼 천마에 의해 러시아어 지식을 주입받은 창규가 미하일을 보며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너, 마피아 아니지! 원하는 게 뭐야, 이 개 같은 새끼. 사람 잘못 건드렸어, 넌.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안다면···.)”

“(마피아니, 뭐니 해도, 위험할 때 빽부터 찾는 건 만국공통이구만.)”

“(뭐, 뭐야.)”

빽 운운하는 창규의 유창한 러시아 말을 들은 미하일의 얼굴이 붉어졌다.

“(여, 역시. 암살자냐? 어디서 의뢰했어, 어?)”

“(질문은 내가 한다.)”

“(대체 어디 조직에서··· 크아아아아악!)”

그대로 칼을 들어 미하일의 허벅지를 쑤신 백창규. 그가 안광(眼光)을 형형하게 빛내며, 미하일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질문은 내가 한다니까.)”

“(끄아아아아악!)”

다시 한번 반대편 허벅지에 칼을 꽂았다 뺀 창규가, 본격적으로 질문을 시작했다.

“(너희가 공급하는 이 얼음, 최종 목적지가 어디냐?)”

“(모, 몰라!)”

“(착각하지 마. 시간을 들이면 이 정도야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어. 하지만, 괜히 번거로운 수고를 하고 싶지가 않아 물어보는 거야.)”

맞는 말이었다.

볼크 마피아가 취급하는 얼음들은, 그 최종 목적지를 외부인이 알아채지 못하게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니까. 심지어 외부인이 아닌 대부분의 내부 조직원들도, 얼음의 최종 목적지를 모른다.

구간별 기사 바꿔치기, 트럭 바꿔치기, 화물칸 속이기, 암호로 된 일정표 작성 등등.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물건을 운송하는 기사들조차 자신이 무얼 운반하는지 모르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아는 이들은, 볼크 마피아 중에서도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빨리 말해,)”

“(차, 차라리 죽여라! 그건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비밀이다! 내가 쥐새끼처럼 아버지를 배신할 것 같으냐! 우리 가문의 긍지로···.)”

“(꼴에 자식 구실은 하고 싶다 이거지?)”

“(그래! 차라리 죽여라!)”

피곤한 표정을 짓는 백창규.

“(가문의 비밀을 팔고 목숨 구걸할 바에야 당당하게 고개를 펴고 죽는 것이······ 끄아아아아아아아!)”

“(어차피 너도 무고한 사람 많이 죽였을 테니까, 이 정도는 각오했겠지.)”

그의 칼이 미하일의 손을 잘라냈을 때 터지고 만 비명. 비명 지르며 바닥에 뒹구는 녀석에게서 고개 돌린 창규가, 녀석의 품 안에서 찾은 스마트폰을 꺼내 그 잘린 손을 가져다 댔다.

삐리리.

지문 인식으로 잠금이 풀린 스마트폰.

적혀 있는 연락처를 잠시 찾아보던 창규가, 곧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끄, 끄아아아아! 이런 개자식이이!)”

“(좋아, 계속 소리 질러.)”

정확히는, 이 러시아 전역을 접수한 서열 1위의 조직 대부를 향해 말이다.

“(·········그래야 너희 아버지한테 정보를 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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