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오싹함.

이고르는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이 감정에 큰 혼란을 느꼈다. 날아오는 도끼날을 손날로 쳐내는 익숙한 동작을 펼치면서도, 그의 얼굴엔 당혹스러움이 새겨지고 있다.

콰지직!

스다를 쳐 죽이기 직전에 나타나, 자신을 향해 도끼를 날린 이 두 녀석. 근접전에서도 자신과 호각, 아니, 솔직히 말해 상대하기 버거울 정도의 강공을 퍼붓는 이 녀석들 때문만은 아니다.

‘(······뭐야.)’

이고르는 본디 강한 싸움을 즐기는 자.

평소에는 억지로 억제해 왔던 자신의 100% 전력을 다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분명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방금까지는 말이다.

콰지지직!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도끼날을, 회전 잔뜩 먹인 오른발로 차 낸 이고르의 눈이 살짝 커진다.

‘(······이번에도.)’

방금 올라오던 도끼날이, 그의 공격을 맞았음에도 이쪽을 향해 날을 세워 다가온다.

재빠르게 손을 들어 일권(一拳)을 내리찍은 이고르는, 곧 방금 자신이 타격한 도끼날이 자기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은 이유를 발견한다.

‘(뭐야, 이 새끼들.)’

등을 맞댄 두 남자.

정확히 말하면, 괴이한 방향으로 팽이처럼 돌면서 자신과 두 요원들이 싸우는 곳마다 끼어들어 이 싸움을 ‘이끌어 나가는’ 두 미친놈들을 말이다.

콰콰콰콰콰콰-!

이번에도 회전을 멈추지 않은 채 따라와 공격을 방해한 녀석들을 보며 이고르는 오싹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강함이니 뭐니 하는 게 아니다.

이고르와 두 요원은 분명 고수 중에서도 어떤 영역을 넘었다고 자신해도 과하지 않은 초고수들.

그 초고수들의 싸움에 이렇게 끼어들 수 있다고?

경공을 펼쳐 다른 곳에서 부딪치면, 녀석들은 맞댄 등을 풀고 서로의 힘을 이용한 묘한 경공을 펼쳐 따라왔다.

본격적으로 강대강의 싸움을 벌이면, 녀석들은 그 주위를 파리처럼 맴돌며 싸움의 흐름을 방해한다.

‘(대체 목적이 뭐야, 이 새끼들.)’

이고르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방금만 해도 그렇다.

나름 균형을 이루고 있던 이 싸움에서, 이고르가 걷어찬 도끼날을 다시 가격해 이쪽으로 돌린 순간 놈들이 합세해서 이고르를 공격했으면 분명 수세에 몰렸을 것 아닌가.

하지만, 놈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콰쾅!

이고르의 공격에 요원들의 합공이 흩어지고 위험해질 때는, 허공에서 예리한 강기를 날리는 아주 조그마한 개입만으로 이고르를 방해했고.

━━━쾅!

반대로 요원들이 허초를 날린 후 퍼부은 두 도끼날들이, 사각(死角)을 먹고 이고르의 등 뒤를 치려고 할 때는 여지없이 도끼날 끝에서 불똥이 튀겨지는 동시에 놈들의 공격이 빗나간다.

━━━콰지직!

그러면서도 이고르가 녀석들에게 공격을 날리면, 마치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궤적을 바꾼다. 그렇게 한눈을 판 대가로 요원 녀석들의 도끼가 날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어느 한쪽 편을 들었다면 진작 끝났을 싸움이, 이렇게 계속되고 있는 이유. 그리고,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않은 저 두 녀석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싸움의 한복판에 끼어들고 있는 이유.

이고르는, 그 이유를 모른다.

‘(······빌어먹을.)’

그리고, 그렇게 혼란스러운 건 이고르만이 아니었다.

콰직!

콰직!

쉬지 않고 도끼날을 휘두르는 두 남녀.

그러니까, 세계무림연맹의 비밀집행기관 ‘하늘’의 두 요원인 그들 역시 방금 서로 눈빛을 교환한 참이다.

“······.”

“······.”

그들의 시선은 서로의 정장을 향한다.

특수 소재의 요원복.

날아다니는 비행기에서 하늘 아래로 떨어져도, 바다 위를 걷어차며 달려도, 별의별 짓을 해도 내부에서는 절대 뜯어지지 않았던 옷 옆구리 쪽의 솔기가 터져 있다.

이것이 뜻하는 건 단 하나.

아까부터 그 고된 훈련 동안 한 번도 연습하지 않았던, 그러니까 자연스럽지 않은 동작들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슈걱!

지금, 허공에서 회전하며 검은 하늘을 벤 저 두 남자가 얽히기 시작한 때부터 말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자칫 잘못하다간 이고르, 저 초고수가 터뜨리는 강권에 노출될 수 있기에 함부로 합공을 흐트러뜨릴 수 없는 지금.

문득 발아래로부터 누군가가 솟구쳐 올랐다.

“(푸, 푸하하하하하하하!)”

“(······스다, 이 새끼!)”

자신들이 나타났던 아까만 해도 다행이란 표정으로 도망가던 자.

스다라고 했지.

분명, 저놈은 여기에 낄 급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아까 자신들이 이고르를 잡기 위해 도끼를 던질 때도, 그 이후 수많은 격돌이 있을 때도 그렇게 도망가지 않았었나.

하지만 왜 지금?

그런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콰콰콰콰콰-!

경공을 펼쳐 빠르게 올라오는 스다.

한데 묘하다.

마치 바다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잠수부의 전신에 해초들이 걸리는 것처럼, 그의 전신에 검은 장막이 하나둘씩 겹쳐지고 있는 듯했으니까.

콰콰콰콰콰-!

아니, 그건 장막이 아니었다.

검은 공간 그 자체.

마치 투명한 이불을 뒤집어쓴 것처럼, 이 삿포로라는 도시에 펼쳐진 어두움과 검은 일렁임을 겹겹이 전신에 겹치고 올라오는 스다.

하지만, 위협은 되지 않는다.

“(뒤져 봐, 새끼들아!)”

빠르게 올라오며 위로 향해 손을 펼친 스다.

놈이 손아귀를 쥐자, 아까 봤던 것처럼 허공에 거대한 손이 펼쳐져 이 공간 전체를 감싸고 터뜨리려 했지만.

퍼억-!

그건 이고르가 가볍게 휘두른 왼손에 그대로 터져나가고 말았다.

“(하, 너 이 새끼 곧···.)”

“(푸하핫!)”

하지만, 그럼에도 웃음 짓는 스다.

녀석의 기도 자체는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묘하게 자신 있는 듯한 웃음.

달라진 건 단 하나다.

“(설마.)”

“(저들이?)”

지금도 요원들과 이고르 주변을 스치며 회전하고 있는 두 남자.

물론.

그런 생각을 한 건 요원들뿐 만이 아니었다.

“(하하! 스다, 너 설마 얘들···.)”

“(끝까지 무식하기는.)”

스다의 말과 함께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 곳곳의 하늘. 갑작스레 일렁이는 그 검붉은 공간을 본 이고르가,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휘두르려 했지만.

“(멍청하긴.)”

예상 밖이었다.

방금까지 회전하던 두 남자의 주변에서 들끓던 하늘의 일렁임들이, 순식간에 합쳐지며 그들 주위로 거대한 장막을 만들어 낸 것은.

동시에.

슈우우욱!

이 삿포로 곳곳에 펼쳐진 기묘한 검붉은 기운들이 싹 사라진 뒤, 저들을 감싼 거대한 장막과 스다 둘만을 이어 주는 검붉은 통로가 나타났다.

“(지금 여기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못 느끼는 거야?)”

* * *

비누 방울처럼 둥그런 장막.

순식간에 사방에 나타나 자신과 하루를 감싼 검은 장막에 갇힌 그때, 백창규는 자신을 향해 잔소리하는 천마를 보았다.

- 아, 지금 딱 무공 펼칠 참이었는데!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천마.

- 얌마, 넌 나랑 같이 있는 게 얼만데 이것도 못 막냐?

“기다려 봐요.”

- 대답 나오는 거 보게? 너 심적권청 유지 안 할래?

“하이고.”

그를 향해 고개 든 창규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어차피 계산 다 끝났잖아요.”

- 뭔 계산.

“나도 눈이 있는데, 이게 뭔지 안 봤겠어요?”

- 그러니까 임마! 찰나가속이라도 해서 뚫었어야···.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고 계시네.”

- 뭐, 임마?

“나도 이게 다 뭔지, 만들어지는 동안 다 봤다고요.”

자신과 하루를 가둔 스다의 장막을 손가락질하는 창규.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을 향해 잔소리하는 천마의 얼굴에, 그 어떤 걱정이나 근심도 새겨져 있지 않다는 사실은 물론.

“아까 반지에서 느껴지는 것도 다 파악했고.”

지금, 스다가 그 어떤 짓을 하더라도 자신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 ·········에이, 참나.

창규의 말을 들은 천마가 김 샜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은 창규가 이번에는 하루를 쳐다본다. 아까까지만 해도 등을 맞대고 있다가, 이 순간 떨어져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하루.

“(참하늘주님이여, 이 미천한 종에게 그 거룩한 모습을 현신한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표하는 바이고···.)”

“얘도 계속 이 상태로 내버려 둘 순 없잖아요.”

- 쯧.

“그리고, 선배님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 오호.

그러자 밝아진 천마의 얼굴.

- 이 자식 이거, 그냥 해 본 소린 줄 알았는데 진짜 좀 아나 보네.

“당연하죠.”

창규가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검은 장막 너머 탐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스다의 얼굴이 보인다.

“선배님한테 배우고 같이 겪은 진법이 몇 갠데, 이 정도도 못 맞히면 되겠어요?”

- 푸하하! 하긴, 것도 그렇지.

기본적으로 만형진법은 봉인진.

지금, 저 스다라는 놈은 이 봉인진을 역으로 펼쳐 놓은 상태에서 스스로와 자신을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었다.

창규는, 적어도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슈우우욱-!

그렇기에 점점 이 공간을 메운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는 가만히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 * *

고개를 갸웃하는 이고르.

스다가 자신을 노리는 대신 저 팽이처럼 돌던 놈들에게 펼친 검은 장막. 검은 장막이 펼쳐진 동시에, 스다와 장막 사이에 빨대처럼 생긴 거대한 검은 관이 나타났다.

“(뭐야.)”

이고르는 잠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공격도 뭣도 아닌, 의미 없는 행동.

하지만.

저 일렁이는 검은 관에서 거대한 기운이 발현되었을 때, 비로소 그는 스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고.

“(머, 멈춰!)”

“(이제야 알아챘나? 멍청하긴.)”

“(스다! 이, 이 개 같은 새끼가···!)”

“(보물을 만들면 뭘 해, 써먹을 줄 모르는데.)”

이고르가 주먹을 뻗으려 할 때쯤에는.

콰콰콰콰콰-!

이미 스다의 전신에 강대한 기운들이 집중적으로 모여든 이후였다.

아니, 모여들었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까와 달리 스다가 흡수한 저 기운은, 봉인되었던 무언가가 세상에 풀려났다고 표현해야 겨우 아귀가 맞을 정도.

“(뒤져···!)”

“(흐흐흐.)”

여전히 검은 관을 통해 꿀렁꿀렁 저 검은 장막에 있는 기운들을 흡수하고 있는 스다.

얼핏 보기엔 관이 끊기지 않아야 하기에 움직임에 제한이 있어야 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너희 덕분에 이걸 알게 되었으니, 감사의 인사 정도는 해 주지.)”

자신을 노리는 이고르의 강공 앞에서, 그는 여유로운 표정만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취한 행동은 간단했다.

짐짓 고민하듯 고개를 갸웃한 스다.

크게 팔을 휘두르려던 그가, 멈칫하더니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렸다.

콰콰콰콰콰콰-!

거대한 내력을 두른 이고르의 주먹이 닿기 직전,

처억.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린 스다.

그리고.

“(지금 바로 죽이지 않는 것, 그게 내 감사 인사다.)”

가만히 손가락을 튕긴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퍼억-!

아까까지, 스다가 그 어떤 공격으로도 흠집 하나 내지 못했던 이고르의 팔 한 짝이 그대로 터져 버린 것은.

“(크, 크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