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일순 창규의 뒷목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나, 입장해도 될까나.)”
“(···.)”
“(압도적 감사.)”
끼익.
스다는, 창규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음에도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광기 어린 눈동자를 본 창규가, 문득 김두광이 예전에 말했던 ‘대장로의 기본자격’을 떠올렸다.
‘잠깐만.’
대장로가 되려면, 복음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 들어오자마자 방 곳곳에 시선을 뿌리고 있는 스다 마사오. 만약 이놈이 정말 참하늘주님성회의 대장로라면, 대체 누구의 복음을 듣는다는 얘긴가.
‘설마··· 진짜 알아본 건가?’
그리고, 그는 여기 창규와 함께 있는 천마를 감지한 것인가.
“(흐으으으음.)”
그런 의문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숙소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스다가 창규의 앞에 우뚝 선다.
“(이름이 뭐야?)”
“(갑자기 뭔···.)”
“(김치워리어쨩, 네 이름 말이야.)”
면상을 훅 들이대는 스다 마사오.
확 퍼지는 땀 냄새와 함께, 투실투실한 두 볼 사이에서 의미심장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왜, 알려 줄 이름이 또 있어?)”
찰나에 오만 생각이 든 창규.
그가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아까 너희 쪽 원로들에게 들었을 텐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다시 묻는 이유가 뭐지?)”
“(큭.)”
피식 웃음을 지으며 창규를 스쳐 지나간 스다.
“(크, 크큭! 큭큭큭!)”
창규의 옆을 지나칠 때 들썩이기 시작한 그의 어깨는, 숙소 뒤쪽 눈 내리는 창문가에 다다랐을 즈음에는 이미 발작적인 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이어이! 모르는 척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네 녀석, 너무 장난이 지나친 것 아니냐고.)”
“(모르는 척이라니.)”
“(김치워리어쨩 말고, 지금 여기 같이 있는 분 말이야.)”
“(·········!)”
순간 창규의 호흡이 멎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섬뜩한 미소.
- 뭐야, 저 새끼 설마 내가 보이는 거야?
천마조차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을 때.
실실 웃음 짓던 스다가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후우웁-!
일순, 양손 수인(手印)을 맺기 시작한다.
파파파팟!
정장 소매가 펄럭일 정도로 빠른 속도.
녀석이 손을 움직인 찰나부터 칼자루를 잡은 창규는, 그러나 녀석의 이어지는 수상쩍은 행동에도 심흔검을 빼 들지 않았다.
- 이놈 봐라.
살기(殺氣)가 느껴지지 않았을뿐더러.
이어지는 천마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 저거 분명 인술(忍術)인데···.
궁금했으니까.
이 스다라는 놈이, 정말 옆에 있는 천마를 감지해서 이 방에 들어온 것인지. 동시에 녀석이 진짜 ‘복음’을 듣는 참하늘주님성회의 대장로인 것인지.
“(야. 너 혹시···.)”
“(나, 스다는.)”
공중에 뻗은 창규의 손이 멈칫한다
파파파팟-!
수인 맺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점점 스다의 입에서 섬찟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세계의 균형을 맞추는 조율자.)”
- 아씨 뭐야.
파파팟!
“(내가 부르노니.)”
- 이건 또 중2병이야?
파파팟!
“(더없이 깊은 심연이여.)”
- 아 좀 그만···.
유치한 대사와는 달리, 눈동자에는 광기가 맴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이 볼을 지나 턱 밑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을 때,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수인을 마무리한다.
“(모습을 드러내라.)”
하지만,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
살짝 당황한 스다가 몇 번이고 마지막 물음을 반복했지만, 역시 창규의 옆에 떠 있는 천마에게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습을 드러내라.)”
“(······.)”
“(모습을 드러내라.)”
“(······?)”
“(모, 모습을 드러내라!)”
“(야, 그만해.)”
고개를 갸웃하며 품속에 손을 넣는 스다.
손을 빼내자, 예의 그 끔찍한 천마 피규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천마쨩?)”
- 후배님, 이 새끼, 아무리 봐도 그냥 미친놈 같은데.
“(내게 답을 줘. 날 구원해 줘, 천마쨩!)”
- 아이, 미친놈이 진짜.
발작버튼이라도 눌린 듯 화를 내는 천마 바로 밑에서, 육중한 두 팔로 천마 피규어를 끌어안은 채 뜻 모를 단어들을 지껄이는 스다를 보는 건, 꽤 진귀한 광경이었다.
“(뭐라고, 천마쨩? 응응.)”
“(야.)”
“(내가 착각한 거라고? 아, 꼭 두 명일 필요는 없는 거라고? 잠깐만 기다려 봐, 천마쨩?)”
피규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스다의 광기 어린 눈빛에, 창규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저 피규어, 무슨, 마약으로 만들었나?’
김두광과는 다른 종류의 광기.
피규어와 중얼중얼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고개를 돌린 스다가, 건조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김치워리어쨩, 괴산파에서 왔다고 했나?)”
“(그런데···.)”
“(뭐지? 기도 자체는 병렬적인 느낌이 없는데. 응응, 맞아. 세긴 한데 그 정도는 아니지.)”
대답만 듣고 곧바로 고개 돌려 대화(?)를 이어나가는 스다.
“(뭐, 칼을 보라고?)”
힐끔 창규가 쥔 칼자루를 본 그가, 헤벌죽 웃으며 다시금 피규어를 끌어안는다.
“(아아! 맞아! 괴산파는 화산파 형제 문파라 칼에 심상心想을 담는다고 했지? 김치워리어쨩, 그 말이 맞나?)”
“(······그런데.)”
“(역시, 천마쨩이랑 얘기하다보면 모든 게 명쾌해진다니까!)”
쪽쪽, 피규어에게 뽀뽀하는 스다를 바라보던 천마가 질끈 눈을 감았을 때.
“(그래, 칼 때문이었구나.)”
“(뭔진 몰라도, 그런 것 같은데.)”
“(그럼···.)”
창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이 감정을 담는 심흔검의 기운을 읽을 수 있는 것 같았고.
“(······김치워리어쨩, 내 동료가 되어 주지 않겠어?)”
“(뭐?)”
“(아니면, 그 칼을 나한테 빌려주던가.)”
동시에, 창규의 검을 탐내는 듯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 이번에 무조건 회장이 되어야 하거든. 만약에 김치워리어 쨩이 날 도와준다면, 보답은 확실히 할게.)”
헛웃음을 짓는 창규.
‘·········잠깐만.’
갑작스럽긴 해도 나쁜 상황은 아니다.
애초에, 그는 만형진법 관련자를 찾기 위해 신세를 지워 놔야 하는 상황 아닌가.
‘그래도 확실히 해야 돼.’
신세를 지울 거면 물어 볼 것이 많다.
놈이 참하늘주님성회의 대장로인지, 그리고 내일 정오부터 중계가 될 계승식에 외부인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인지, 동시에 이 녀석은 어떻게 들키지 않고 이 구향선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는지 등등 여러 가지 질문들이 창규의 머릿속을 맴돌던 중.
덥석!
양손으로 칼자루 쥔 창규의 손을 잡은 스다.
“(일단 나가자, 김치워리어쨩.)”
“(잠깐만. 그전에 먼저···.)”
“(나가서 얘기해. 여기 조금 있으면 다 터질 거야.)”
“(·········뭐?)”
“(하루쨩은, 완전히 미친놈이거든.)”
못마땅하다는 듯 투덜거린 그가, 숙소의 창문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을 때.
“(정정당당하게 맞붙고 싶어도, 꼭 저런 편법을 쓴다니까?)”
창규는 볼 수 있었다.
‘·········뭐야.’
함박눈이 내리는 저 창문 밖으로.
퍼━━엉!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펑! 퍼퍼퍼펑!
귀향선 아래 있는 마천루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모습을.
* * *
삿포로의 유흥가 위로.
구향회 5대 마천루 상층부에서 터진 유리조각과 기타 사무 잡기 조각들이 소나기처럼 퍼부어지지만.
채채채챙-!
피해를 입은 민간인은 없다.
이미, 북소리가 들려오던 자정을 기해 홋카이도 경찰 본부 소속 무림인들이 마천루 주위로 귀철망을 펼쳐놨기 때문이다.
“(선배, C4 폭약입니까?)”
“(애매해. 일단 마천루 자체가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조절을 한 건 확실한데, 방금 저쪽 최고층 아래에서도 연쇄 폭발이 발견된 게 있어서···.)”
“(후우.)”
본부 소속 무인 하나가 한숨을 쉰다.
이미 대비는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일본 무림의 7대 기둥이라 불리는 구향회는, 적어도 이렇게 도시 전체에 영향을 줄 만한 굵직한 대규모 행사를 할 때만큼은 홋카이도 경찰 본부와 합의사항을 공유하니까.
슈걱-!
하지만, 방금 철그물을 휘둘러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쇳조각들을 거둬낸 후배 경찰은 아직도 불만이다.
“(저 자식들, 새벽부터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건 합의사항하고 다르잖아요. 둘 중 누군지는 몰라도 게임 끝났네요. 계승식 중계 전에 테러라니, 이걸 원로들이 문제 삼으면···.)”
“(문제없을 거야.)”
“(예?)”
“(아, 너 아직 모르는구나.)”
그런 불만을 짐작한 선배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연다.
“(자기들끼리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 허용되는 게 구향회의 계승식이야.)”
말 그대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보물찾기를 하러 갈 필요도 없지. 자기네들 유물 숨겨놓은 원로를 납치해서 고문해도 원칙적으로는 상관없거든.)”
어떤 방식이건 상관없다.
유물을 차지하는 이가 차기 회장이 된다.
그 대명제 아래서, 유물을 숨긴 자들을 고문하건 회유를 하건 상대 후보를 죽인 뒤 혼자 찾으러 가건, 그딴 건 아무 상관이 없는 게 구향회의 계승식.
“(자기네들이 위협당하는 상황조차 용인하는 것이 저 원로들이야. 폭력을 대하는 각오 자체가 다르다고.)”
“(그건 저도 압니다.)”
“(근데 뭐가 문제야?)”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계승식이 시작된 뒤의 얘기죠. 분명, 계승식은 날이 밝은 뒤부터···.)”
“(그게 무슨 소리야.)”
선배 경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계승식은 이미 시작됐어.)”
“(예?)”
“(아까 북 치는 소리, 너도 들었잖아? 내일 낮부터 시작하는 건, 계승식의 중계라고.)”
“(하, 하지만, 중계 전까지 부딪히지 말고 찢어지라는 지시를 분명 그쪽 원로들이···.)”
“(후.)”
깊은 한숨을 내쉬는 선배.
그가, 반짝이는 가루들이 떨어지는 마천루를 향해 손가락을 수직으로 세운다.
“(자기네들이 납치당하는 상황도 가정하는 원로들이, 그깟 잔소리 안 들었다고 뭐라 하겠어?)”
“(···음.)”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짓는 후배 경찰.
아직도 이 구향회의 생리를 깨닫지 못한 듯한 자신의 후배를 향해, 선배 경찰이 말을 이어나갔다.
“(너, 폭력暴力을 뭐라고 생각하냐?)”
“(그게 무슨···.)”
“(거슬리는 게 있으면,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게 폭력이야. 말이 됐건 행동이 됐건 거대한 폭력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거, 칼밥 먹어 봤으니까 너도 알 거 아냐?)”
“(······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는 후배를 보며, 그제야 웃음지은 선배 경찰이 고개를 든 그때.
“(그러니까 고작 이런 걸로 신경 쓰지 말라고.)”
달빛을 받아 반사하는 눈과 유리 조각들 위로.
“(원래, 구향회 계승식은 홋카이도에서 가장 폭력적인 놈을 뽑는 행사니까.)”
밤하늘에, 폭력적인 궤적을 그으며 지나가는 두 개의 인영(人影)이 보였다.
* * *
왜애애애앵-!
시끄러운 경보음이 들려오는 구향회 본사.
“(미친! 이게 다 뭐야!)”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발음과 비산하는 유리조각들을 뒤로 한 채, 밤하늘 아래로 경공을 펼치며 내려가던 창규.
“(김치워리어쨩! 빨리 움직여!)”
자신에게 손짓하며 멀어지는 스다의 반대편에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마천루 최상층 곳곳에서 칼을 뽑고 달려드는 원로들의 모습이 보인다. 갑작스레 터진 이 상황에서, 창규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빨리! 다 쫓아오잖아!)”
아니다.
“(나랑 같이 해! 내가 말한 대로 하자구!)”
어차피 마천루 쪽에서 나온 원로들이 쫓는 것은 스다 뿐. 아니, 지금 보이는 건 3명뿐이 없으니 나머지 원로들은 이 폭발을 일으켰다는 하루를 쫓고 있을 수도 있다.
‘·········어차피 여기 있으면 내가 위험할 일은 없어.’
창규는 손님 신분.
오히려, 스다를 도와 계승식에 개입하게 되면 원로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뭐가 나으려나.’
만형진법 관련자를 찾기 위해 신세를 지우는 선택의 득과 실을 따지고 있는 창규의 귀에, 아까부터 묘한 표정을 짓던 천마가 소리를 질러댄다.
- 가! 빨리 가라고!
“어딜 가요.”
- 반지! 반지 찾으러 빨리 가자니까! 그거 내 거라고!
창규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는 사실을 파악한 천마. 폭죽이 터졌을 때부터 속 시원하게 답하지 않던 그 유물 이야기를 꺼낸다.
- 그게 아무리 ‘그런 거’라고 해도, 다 기억하고 있다니까? 내가 쟤들보다 훨씬 더 빨리 찾을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런 게’ 뭔데요?”
- 그게, 그러니까··· 옛날에···.
아까는 민망한 듯 바로 얘기해 주지 않던 그놈의 반지. 그저 그런 귀물이겠거니 생각한 창규가, 멀어지는 스다의 뒷모습을 바라본 그 순간.
- ···북해빙궁주랑 나눠 가졌던 거야.
“············예?”
예상치 못한 답변에 눈이 번쩍 떠진 그는.
“지금 제가 제대로 들은 거 맞죠? ‘그’ 북해빙궁?”
- 까마득한 옛날 일이야. 내가 아직 애송이 시절일 때 얘기라고.
“자, 잠깐만요. 설마···.”
-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곧, 이어지는 천마의 말에.
- ······약혼반지.
그대로 추락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