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전운(戰雲)이 깃든 인천 거리.
빵빵대는 차들의 경적과 경보음,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시민들의 비명이 빚어 낸 혼돈의 도가니. 그 가운데 대치한 광신도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차 본네트에 올라선 김두광의 귀기 어린 고함에 팡 터진다.
“전원, 예배 시작합니다!”
두두두두두-!
도로 위로 칼의 파도가 쏟아진다.
“의리-!”
“의리-!”
“의리-!”
아득한 수의 칼날들에 반사된 햇빛이, 농밀한 광기(狂氣)와 함께 주변 시가지를 번쩍번쩍 채운다. 백창규가 사라진 곳에서부터 질주하기 시작한 참하늘주교의 신도들.
“(저것들 눈깔 왜 저래?)”
“(그래 봤자 빵즈 새끼들이야!)”
“(그냥 다 뚫어!)”
혈교도들이 질세라 엑셀을 밟는다.
오토바이가 박힌 채 연기만을 내뿜는 선두의 뒤에서, 놈들이 탄 온갖 종류의 차량들이 거침없이 달려드는 이때.
부아아아-!
두두두두-!
도로 한가운데 끼인 남매들.
자신들의 앞뒤로 달려오는 미친 광신도들 사이에서, 서로를 껴안은 채 울음을 터뜨리려는 순간, 그들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늘어선다.
“우, 우으···!”
“울지 말아라.”
두 광신도 무리가 충돌하기 직전.
번쩍-!
어린 남매를 들쳐멘 뒤 인근 건물 옥상까지 경공을 펼친 자는, 방금 그들을 덮치려던 차를 오토바이로 짓밟은 김두광.
“우는 아이는, 참하늘주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아.”
파파팟-!
옥상 난간을 넘어 남매를 내려놓은 그가, 가만히 몸을 돌린다.
“가, 감사···.”
“천천히 지켜보거라.”
감사 인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다시 옥상 난간으로 걸어가는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건, 저 밑에서 펼쳐지고 있을 그분의 영광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참하늘주님의 권세를 세상에 널리 퍼뜨리거라.”
난간 아래로 시선을 던지는 김두광.
시가지 위로, 보인다.
부아아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메시아가 사라진 곳으로 질주하려는 혈교도들의 차와, 개구리처럼 그 차창 주위로 달라붙어 칼을 쑤셔대는 참하늘신교의 신자들이.
쾅-! 쾅쾅!
동력을 잃고 곳곳에 처박힌 차량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혈교도와 혈강시들. 살벌한 기세로 칼을 빼낸 뒤 튀어나오는 그들을 상대하는 자랑스러운 성전(聖戰)의 전사들. 얽히고설킨 그들 사이에서 귀기 어린 비명이 울려 퍼진다.
으아아아-!
분수처럼 솟구치는 선혈들이 시가지를 새빨갛게 칠한다.
맞부딪힌 이백여 개의 칼날들이 시끄러운 귀곡성을 낸다.
동시에 이 난간까지 스멀스멀 올라온 피비린내를 맡으며, 김두광은 형제들의 복음을 체크한다.
‘······흑천일로.’
수십 개의 칼이 한데 빚어내는 복음은, 도로 위의 전선주를 우지끈 쓰러뜨릴 정도로 강력하다.
‘······흑천이로.’
적들의 차 위로 파직파직 튀어 오르는 전선의 불꽃들 너머로 과감하게 칼을 밀어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하다.
‘백창규 형제님께서 전달한 복음이, 전부 들어맞는다.’
짜릿한 소름이 돋는다.
두근!
두근!
메시아께서 들려주신 그분의 ‘진짜’ 복음이 성전(聖戰)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지금, 더는 참기 힘들다.
“흐, 흐하하하하하하!”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난간 끝에 올라선 김두광.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성검(聖劍)의 칼자루를 거머쥔다.
꽈악-!
그가 알 리 없었다.
백창규가 그에게 준 이 칼의 원래 이름은 귀혈검(鬼血劍). 본디 요기(妖氣)를 머금은 이 검은, 핏기를 흡수할 때마다 경도와 예기가 강해진다는 사실을.
“아아···.”
다만, 취할 뿐이다.
손에서부터 전달되는 뜨거운 요기에 들끓는 전신의 근육과, 피비린내에 반응해 점점 거칠게 뛰기 시작한 심장 박동에. 점점 멍해지는 정신 사이로 들어오는 묘한 고양감은, 그에게는 접신(接神)이라 해도 무방하게 여겨질 지금.
파앗-!
전신을 떨던 김두광이, 옥상 아래로 거룩하게 몸을 던졌다.
“아아아아아-!”
백창규의 뒤를 지키기 위해.
아니, 신의 뜻을 이행하기 위해.
“참하늘주님이시여어어어어어-!”
* * *
“(다들 혈청 꽂아!)”
앞쪽 대열에서 벌어지는 아수라장에, 뒤편의 차에 앉아 있던 혈교도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아 넣는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기에 어쩔 수 없다.
“(대체 저 빵즈 새끼들, 뭐 하는 것들이야?)”
“(지금 그딴 게 중요해!? 닥치고 혈청이나 꽂아!)”
오토바이 헬멧을 쓴 정체불명의 세력.
놈들을 가볍게 생각하고 엑셀을 밟던 선두의 차량들은, 지금 전부 처참한 모습으로 망가져 있다. 사라진 빨간 바이크의 궤적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지금은, 저놈들을 진지하게 상대해야 한다.
푸슉-! 푸슉-! 푸슉-!
오향희가 준 혈청을 꽂은 혈교도들.
순간적으로 몸속에 번지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입을 쩍 벌리자, 자동차 안에 응집되어 있던 온갖 절망과 고통의 기운들이 흡수된다. 사고차 안에 축적되어 있던 끔찍한 기억들이, 몸에 꽂은 혈청과 반응한다.
“(커, 커허억!)”
“(흐으읍!)”
전신의 근육들이 비틀린 뒤 힘줄들이 툭툭 불거지고, 실핏줄이 터진 눈에서는 붉은 안광이 번뜩이며, 코와 귀에서 빨간 피를 흘리기 시작했던 그때.
“(······됐나?)”
“(······됐네.)”
모두의 의식이 연결된다.
마치 꿈속에 발을 디디기라도 한 것처럼, 후방의 차량에 탑승한 혈교도들은 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또다른 시야를 공유할 수 있었다.
“(강시 되는 거, 기분 개 같네.)”
마치 혈강시들처럼.
“(그래도 진짜 강시보다는 낫잖아?)”
그렇다.
지금 그들은 강시화(僵尸化)된 상태.
오향희가 차에 새겨놓은 진법과, 사술을 통해 제사장과 함께 만든 혈청 덕분이었다. 다만 이건 일시적인 상태일 뿐, 지금 조수석에 앉아 있는 ‘진짜’ 혈강시와는 달랐다.
“(적어도 우린 이 새끼들처럼 미치진 않았으니까.)”
“(······하긴.)”
조수석에 앉은 혈강시는, 이미 오향희의 고문에 가까운 진법에 의해 정신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할 정도의 고통이 지나간 이후 혈교의 꼭두각시가 된 노예들과,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들이 같을 리는 없었다.
덜컥-!
차 문을 열고 나서자, 강시화를 마친 혈교도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차도를 가득 메운 혈강시들과, 이들을 거느리는 혈교도들. 저 앞에서 몰려오는 피안개를 향해 칼날을 세운 그들이 웃음을 짓기 시작한다.
“(흐, 흐흐···.)”
“(후후후후···.)”
슬슬 핏기가 빠르게 돈다.
혈도를 역행시켜 공력을 증폭시킨 덕에, 기혈이 망가지고 이성이 사라진 자리마다 광기가 채워진다. 전신의 근육이 꿈틀거리고 심장이 세찬 펌프질을 시작한다.
파파파팟-!
지금, 그들에게 두려울 건 아무 것도 없다.
폭죽처럼 터지는 아드레날린을 견디지 못하고 박차오른 후방의 혈교도들.
“(다 죽여 버려!)”
뒤집힌 자동차, 쓰러진 전선주, 파직 거리는 전선이 잠긴 피웅덩이 등 엉망이 된 차도 위로 뛰어든 그들은.
“(개 같은 빵즈 새끼들, 차라리 죽여 달라고······.)”
“끼하하하하하!”
“(············!?)”
곧 마주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진짜 복음이다!”
“불경한 것들! 오늘이 너희 천마···지막 날이다!”
“경배! 경배! 또 경배하라아악!”
산처럼 쌓인 혈교도들의 시체 위에서.
신체 몇 군데가 뜯기거나 날아간 상태에서도 행복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진짜 광인(狂人)들을.
* * *
인천 곳곳에서 태풍이 휘몰아친다.
은행 사거리 쪽에서도, 중고차매장 단지 앞을 지나칠 때도, 간척지가 옆에 보이는 국도를 질주할 때에도.
부아아아아-!
언젠가부터, 바이크를 모는 서정우는 어디서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혈교도들의 차량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형체가 없는 바람처럼 조그마한 틈만 있어도 쑤시고 들어오는 압도적인 물량의 혈강시와 혈교도들.
“야! 이거 맞아? 이삼백 정도라며?”
“······.”
창규 역시 이상함을 느꼈다.
창규가 3개의 팀으로 나눠놓은 참하늘신교의 병력들. 이미 굵직굵직한 수의 적들이 모이는 포인트마다 그들을 배치해서 혈교의 병력들을 분산시켜 놓았다.
‘왜··· 아직도 이렇게 많지?’
덕분에 여기까지 질주할 수 있을 정도로 놈들의 수를 줄여 놓았지만, 아직도 그를 향해 모여드는 놈들의 숫자가 많다.
밑에 거느리는 혈교도들의 숫자야 각 제사장의 취향과 성향마다 다르다고는 해도, 이 정도 물량의 혈강시는 태백시의 그 치열한 전투에서도 본 적이 없다.
‘숫자뿐만이 아니야.’
제사장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제사장의 혈강시들에 대한 통제권은 그 거리 및 수량과 반비례한다고 했다. 애초에, 그 진백현조차 태백시를 습격했을 때 혈강시들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전투 직전 자신을 노리던 반연문도들로 만든 혈강시들만을 사용하지 않았나.
‘통제력이, 강해도 너무 강해.’
각 구획마다 배치된 혈강시들 사이의 거리나 전반적인 물량이나,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제력을 잃지 않는다.
‘대체 혈강시를 어떻게 만들었길래···.’
아니, 통제력을 잃지 않는 수준이 아니다.
“야! 육교 위에 막혔어!”
“미친.”
“이 새끼들 뭐야! 뭐, 자기들끼리 전음이라도 날리나?”
“······하.”
놈들은, 마치 군체처럼 움직이고 있다.
인천 곳곳에 퍼진 혈강시들과 혈교도들이 한 몸뚱이라도 되는 양, 서정우가 앞으로 질주할 길목과 국도를 미리 체크해서 모여들고 있는 녀석들.
“달린다, 꽉 잡아!”
부아아아아아-!
엑셀을 당겨 육교 위에서 와르르 떨어지는 혈강시들을 간신히 피해낸 서정우가 크게 소리질렀다.
“1팀은 어딨어! 저쪽 국도 다시 막으라고 해!”
“다들 전투 중이야!”
“미친! 이거 우리가 감당할 사이즈 맞아!?”
상황이 점점 심각해진다.
아무리 창규만을 쫓기 위해 달려드는 놈들이라고 해도, 저 정도 수의 차량과 괴물들이 도시 곳곳에서 신호도 무시한 채 차도와 인도를 휩쓰는 건 테러나 마찬가지의 사태.
“꺄아악!”
“빨리 신고해!”
“뭐, 뭐야!”
심지어 지금은 대낮이 아닌가.
아무리 바다 냄새가 닿는 인천 변두리 도회지라고 해도, 서울이었다면 벌써 무림감찰부 및 백검단이 줄줄이 출동했을 일이다.
“야! 저기 봐봐! 경찰 떴어!”
“일단 쭉 가!”
슬슬 사이렌 소리와 함께 순찰차들이 도로 곳곳에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저들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정도면, 최하 경찰 특공대은 투입되어야 하고 파워게임 생각할 것 없이 정부나 무림 세력들이 개입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니, 무조건 개입해야 한다.
혈교가 대낮에 이 정도로 숨겨 놓은 마각(馬脚)을 드러낸 이상, 제대로 된 정부라면 뭔가 조치를 해야 하는 지금.
‘잠깐만.’
국도를 빠져 나와 멀리 동산이 보일 때쯤.
부아아아아-!
개천을 옆에 끼고 질주하던 바이크의 뒷좌석에서, 창규는 생각했다.
‘놈들이라고 그걸 모를 리 없어.’
여태껏 잘 숨어 있다가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깽판을 친다는 건, 분명 그 어떤 정부 병력이 투입되어도 창규만 잡으면 모든 게 끝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터.
그건, 반대로 말하면 지금 그 어떤 외부병력이 투입되어도 그보다 더 빨리 창규를 잡을 수 있는 곳에서 뭔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는 얘기.
‘분명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얘긴데···.’
부아아아아아-!
‘······어?’
문득, 창규는 발견했다.
저 옆에서 흘러가는 개천.
햇빛이 비친 그 물결의 방향이 뭔가 이상했다.
- 물이 바다 쪽에서부터 거슬러 오른다고?
개천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
본디 바다로 흘러야 마땅한 개천이 상류 쪽으로 흘러가는 그 괴이한 모습을 보자마자 천마가 뱉은 한 마디.
- 진법이네. 근데, 혈교식 진법은 아냐.
창규 역시 깨달았다.
놈들이, 저 개천 너머에 있다는 것을.
- 그 제사장 새끼, 혼자가 아니구만.
동시에 직감했다.
저 너머에는, 지금 자신이 몰고 다니는 혈교 녀석들보다 훨씬 더 위험한 기운이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을.
‘·········찾았다.’
혈교의 본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