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는 바이크.
주변 풍광이 화살처럼 좌우로 쏟아진다.
부아아아-!
방금, 가양 대교를 지나 강서구에 진입했다.
곁눈질해도 반짝이는 한강이 보이지 않게 된 시점에서, 창규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각자, 위치 보고 바랍니다.”
헬멧 안을 맴돈 그 조그마한 중얼거림은, 곧 헬멧에 부착된 소형 마이크를 타고 사방에 흩어진 팀원들에게 전달된다. 이내, 창규의 물음에 답하는 장로들의 목소리 역시 그의 귀에 꽂힌다.
- 방화대교를 건너는 중입니다.
- 목동에 정차한 상황입니다.
- 서부간선도로에 진입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창규.
- 좋습니다. 목표 구간 진입 직전, 말씀드린 사태를 마주한 경우 선조치 후보고 부탁합니다.
그의 지시에, 총 3개의 팀으로 나눠진 신도들을 이끄는 각각의 장로에게서 귀기 어린 대답이 들려온다.
- 의리.
- 의리.
- 의리.
대답을 들은 창규가 곧바로 헬멧 왼편을 두드려 마이크를 끈 뒤, 크게 소리친다.
“들었지? 다들 생각보다 빠르니까 속도 좀 올리자고!”
“······하.”
신호등 앞에서 잠시 정차한 서정우.
한숨을 내쉰 그가, 기어를 변속한 뒤 엑셀을 끝까지 당긴다.
부아아아아아-!
미사일처럼 쏘아지는 바이크 위에서, 점점 거칠게 펄럭이는 옷자락을 느낀 창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이대로 간다.’
도착 지점은 인천 서부.
그 원만한 진입을 위해, 창규는 참하늘주교의 모든 신도와 장로들을 총 3개의 팀으로 나눠 놓았다.
인천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팀, 인천 아래에서 위로 진입하는 팀, 그리고 서울에서 인천을 정직하게 가로질러 침투하는 팀까지.
‘물량으론 안 딸려.’
총 300명이 넘는 인원이 대략 150대가 넘어가는 오토바이에 올라탄 상태라는 걸 감안하면, 각 방향마다 50대가 넘는 부대들이 혈교 놈들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곳을 습격하게 된다.
부아아아-!
50억 원이면 충분했다.
신도들이 탄 150여대의 오토바이와, 팀 전체가 소통 가능한 마이크 부착된 헬멧, 거기에 선발조의 역할을 하기 위해 창규와 정우가 함께 탄 슈퍼 바이크까지. 이 모든 비용은, 이휘택에게서 딴 50억 원의 반절도 들지 않았다.
“너 근데! 그렇게 돈이 많았냐?”
“내가! 도박에 재능이 좀 있더라고!”
“그래도 이렇게 막 쓴다고? 안 아까워?!”
전혀 아깝지 않았다.
혈교라는 말을 듣자마자 주저하던 표정이 ‘성공하면 뉴스에 대문짝만 하게 나올 것’이라 말하자 확 바뀌었던 서정우와 달리, 창규에게는 명예나 돈 같은 세속적인 가치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혈교 제사장이면 웬만한 문주 급은 된다고 했다.’
목적은 혈교 제사장의 목숨.
녀석을 잡는다면, 이제 창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구급에서도 자신의 실력이 통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사냥감이 아닌 포식자로서 놈들 위에 군림하는 것, 고수가 된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는 것, 창규가 원하는 것은 그뿐이다.
부아아아-!
그가 꾸린 이 수많은 병력은 결국 일대일 상황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장치. 강서구의 한복판을 넘어갈 때쯤, 창규는 백검단 쪽에서 전달받은 정보를 다시금 떠올렸다.
‘인천 차이나타운, 중고차 매매단지들, 그리고 부둣가.’
그 삼각형을 그린 어딘가에 놈들이 있다.
현재의 인천은 서울보다 어수선한 도시.
미완성된 아파트단지, 바닷바람이 이는 조그마한 마을들에 더해, 시 곳곳에 중국인과 조선족이 뿌리내려 현지화한 동네도 곳곳에 분포한 지금. 혈교가 숨어든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한둘이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놈들이 찾는 건, 결국 나다.’
인천에 있는 혈강시들은 혈교 제사장과 시야를 공유한 상태. 게다가 그들이 공유된 시야를 통해 찾고 있는 건, 당연히 백창규 자신일 터.
‘슬슬.’
그걸 아는 이상 식은 죽 먹기다.
상대가 어떤 미끼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기만 한다면, 그리고 미끼가 절대 죽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남은 건 놈들의 본체를 낚아 올리는 것뿐이니까.
부아아아아아-!
바이크가 강서구를 넘어 인천시로 진입할 즈음, 창규가 헬멧 앞창을 들어 올릴 준비를 했다.
‘·········낚아 볼까.’
* * *
모니터가 가득한 상황실.
얼마 전부터 인천 차이나타운을 감시하고 있던 요원 몇몇이 송출하던 화면이 끊어진 이때.
“부장님! 삼거리 쪽 신호가 끊어졌습니다!”
“부장님! 4번 골목도 사라졌습니다!”
보고를 받던 무림감찰부장 장일철이, 커피를 홀짝이며 입을 연다.
“호들갑 떨지 마.”
“그 쪽에게 들킨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지금, 차이나타운 밖으로 빠져나간 혈강시가 있나?”
“아, 아뇨, 아직 그런 건···.”
“그럼 장소를 옮겨 계속 대기한다.”
“···예?”
“못 들었나? 국익(國益)을 위한 일이다. 고작 위협이 생겼다고 대(大) 감찰부의 요원들이 겁을 먹을 리 없어.”
“아,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상황이 점점 ‘기준치’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했지만, 아직 멀었다. 이 정도의 위기 상황으로는 아직 국론을 한데 모을 수 없었으니까.
“지금, 차이나타운에 혈강시가 총 몇 구 있지?”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 대략 160구 이상의 혈강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였습니다.”
“160구라···.”
뭔가 이상하다.
인상을 찌푸린 감찰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요원들이 공격받기 시작했다는 건, 혈교 놈들이 슬슬 차이나타운 밖으로 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밀항하여 도착한 혈교도와 혈강시들이 머물기에는 차이나타운의 공간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는 것.
“···너무 적은데?”
그런데, 혈강시들이 너무 적다.
지금 그가 원하는 혈교의 움직임은, 차이나타운을 넘어선 인천 번화가로의 출몰. 아무리 혈교도들이 함께 움직인다고 해도, 혈강시 160구라면 그가 원하는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TV 생방송으로 놈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에, 살짝은 아쉬운 감이 있다는 얘기다.
“신고 내역 역추적한 곳, 차이나타운 맞지?”
“네. 여태까지 혈교를 목격한 것으로 짐작되는 신고들은 모두 차이나타운 인근에서 들어왔습니다.”
“밀항지로 짐작 가는 곳도 계속 추적 중이고.”
“예.”
“근데, 3일 동안 고작 10구밖에 추가되지 않았다고?”
그가 원하는 건 스펙타클.
분명, 얼마 전에 감찰부는 차이나타운에서 급격하게 늘기 시작한 혈강시들의 물량을 목격했다. 그때의 속도대로 계속 늘어난다면, 분명 전국민적인 이슈가 될 ‘통제 가능한 대형사건’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차이나타운 근방은 계속 감시 중이지?”
“예. 여태까지 차이나타운에서 벗어난 혈강시는 모두 요원들이 마무리했습니다. 서해 쪽에서 차이나타운으로 곧장 향하는 혈강시는 모두 들여보냈고요.”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으로의 접근도 엄금(嚴禁)했고.”
“예.”
“밖으로 빠져나오려던 놈들이 많았나?”
“아닙니다. 많아야 7구도 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차이나타운 밖으로 나오는 혈강시들도 많이 보이지 않고요.”
“이상한데···.”
하지만, 생각보다 세를 넓히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처음에 놈들이 보였던 임팩트를 떠올리면, 지금쯤이면 4~500은 훌쩍 넘는 혈강시들이 차이나타운 안에 우글우글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흠.”
물론, 혈교 놈들의 생각을 알 수는 없다.
애초에 왜 지금 녀석들이 한국에 왔는지, 그 동기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 아닌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느려지는 녀석들의 결집 속도에 장일철이 의문을 품었을 때.
“설마 이 새끼들······.”
문득, 소름 돋는 예감이 그의 살결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른 쪽에 모여들고 있는 거 아냐?”
* * *
“미, 미친···!”
인천, 청라 근방.
강을 끼고 형성된 평야 지대에서도 얕은 두렁 사이로 연결된 국도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해야 도착할 수 있는 동네. 중국식 간판들이 즐비한 거리 사이로 SUV를 운전하고 있던 중고차 딜러의 눈이 커졌다.
“이, 이게 무슨···.”
“쉿.”
“아, 아앗!”
조수석에 앉아 있던 통역사가 던진 말에, 대경실색한 채 바들바들 떨기 시작한 중고차 딜러.
“주인님께서는 소국(小國)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월!”
그대로 운전석 시트에 실금한 채 개처럼 짖기 시작한 그를 보며, 통역사가 만족했다는 듯 입을 가리고 웃음을 짓는다. 이마에 붉은 문신이 새겨진 채 바들바들 떨며 운전하는 그에게 계속해서 방향지시를 하는 통역사.
“저쪽으로 더 가야죠.”
“그르르, 월월!”
중국식 간판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 언덕을 올라, 조그마한 마을회관 앞에 다다랐을 때.
“여기 세워요.”
“월월!”
“아이 착하다.”
끼익-!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통역사.
동시에, 마을회관 문이 열리며 그녀를 맞는 수많은 혈교도들을 보며 그녀가 웃음을 지었다.
‘좋아.’
차이나타운은, 미끼였을 뿐이다.
본토에서의 수많은 인체실험을 통해 규격 외로 강해진 그녀의 주인이, 혈강시들을 그렇게 쉽게 발견되게 할 정도로 난동 피우게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애초에 차이나타운이라는 게 의미를 잃을 정도로, 인천 변두리는 이런 크고 작은 동네 곳곳의 토지를 중국인들이 매입해 놓은 상황이다. 서울의 대림동 같은 동네가 구마다 한둘은 있는 게 바로 지금의 인천.
아지트로 쓸 곳은, 널리고 널렸다.
당장 혈교도와 혈강시가 주둔하는 이런 마을도 벌써 다섯 개가 넘어간다.
끼익-!
끼익-!
끼익-!
고개 돌린 그녀의 눈에, 연달아 마을회관 앞에 도착하는 십수대의 차량들이 보인다. 그 모두가 이번에 중고자 매장에서 가져온, ‘조건’에 부합하는 차들. 차 문이 열린 뒤, 이미 생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린 무림인들이 땅 위로 와르르 쓰러진다.
“이제···제···발···죽여 줘···.”
“부···탁 입니다···.”
“죽여···주십시오···.”
엉망진창인 모습이다.
침을 질질 흘리는 동시에, 눈은 이미 맛이 가 있는데다가, 잘렸던 두 팔은 마치 누군가가 새빨간 줄과 바늘로 꿰매놓기라도 한 듯 마구잡이로 붙어 있는 상태.
“주인님께서 말씀하시길.”
하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그들이 간신히 목숨을 붙이고 있는 건, 비단 지금 차 안에서 웃음을 짓는 혈교 제사장의 음공(音功)과 혈법진 때문이 아닌, 그들 앞에서 비릿한 웃음을 풍기는 통역사의 사술 때문이었다.
“내거 된 것, 축하한다고 하십니다.”
“아, 안 돼애애애-!”
“호호,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 그녀는 단순한 통역사가 아니다.
“(쯧쯧, 불쌍한 벌레들.)”
“(하지만 주인님.)”
열린 창문 너머에서 말을 건 혈교 제사장과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그녀의 이름은 오향희. 연변에서부터 혈교 제사장과 인연을 맺은 그녀는,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동시에.
“(본토의 중원 무학武學을 접하게 되는 건, 소국의 백성으로서 무한한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듣고 보니 네 말이 맞구나.)”
“(그럼, 마저 작업을 하고 출발할 준비를 마쳐도···.)”
“(물론.)”
진법술과 부적술에 특화된 중국 모산파의 문도. 파문당했다고는 해도, 그녀의 술법 실력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
“오, 오지 마! 너무 길다고! 차라리 죽여! 죽여 주세요!”
“아직 자아가 남아 있는 모양이네요.”
“월! 월월! 월월월!”
“호호, 연기하실 필요 없답니다.”
“끄, 끄아아아아악-!”
치이익-!
지금처럼 쓰러져 오열하는 이들의 어깨에 새겨진 혈교 제사장의 혈식(血式)은, 그녀가 슥슥 손가락을 놀려 피를 번지게 하는 것만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주문(呪文)이 되어 버리니까.
“흐···어···아···우웨···!”
“안심해요. 시키는 대로 잘하면, 그땐 편하게 죽여 드릴 테니까.”
혈강시(血僵尸).
본디 자아를 잃은 채 움직이는 이 괴물은, 그녀의 술법이 더해져 보다 복잡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노예가 되어 버린다.
치지지직!
지금처럼, 저 멀리서부터 그녀의 무전기로 신호를 보내는 저 노예들처럼 말이다.
- 아···으···.
“어머, 잠깐만요.”
호들갑을 떨며 무전기를 꺼낸 오향희.
그녀의 눈은, 이어지는 혈강시의 목소리에 커질 수밖에 없었다.
- 차···ㅈ았···읍···.
“똑바로 얘기해야죠?”
- 천···마···찾았습···.
“·········!”
나타났다.
모산파에서 파문당한 그녀가, 혈교 제사장의 밑으로까지 들어가 이 인천까지 온 이유가.
“(주인님.)”
“(잠깐!)”
무전기 너머의 말을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 혈교 제사장에게 고개 돌린 오향희. 그녀는 곧, 눈을 감고 혈강시들의 시선을 공유하기 시작한 제사장처럼 뜨악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무전기 너머로부터.
싹둑-!
묘한 절삭음이 그녀의 귀에 꽂힌 뒤.
- ············의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광기(狂氣) 어린 고함이 들려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