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문득.
‘······어?’
창규는, 오래된 질문을 떠올렸다.
[인간은, 어떻게 복어를 정복했는가?]
살짝만 닿아도 죽음에 이르는 극독(劇毒)이 곳곳에 포진한 복어. 심지어 수온마다, 환경마다, 개체마다 독이 있는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는 이 괴물을, 인간은 대체 어떻게 식재료로 쓰게 되었는가.
동시에, 어설픈 답을 떠올렸다.
[먹고 죽은 부위를 하나씩 제거한다.]
목숨 건 소거법.
누군가가 먹고 죽은 부위를 체크하고, 그다음 사람이 먹은 부위를 체크하고, 그다음 사람이 먹은 부위마저 체크해서 일일이 제거해 나가면 된다. 오랜 시간을 두고, 수많은 이들이 생명을 내던져 가며 걸어온 복어 정복의 역사.
‘이거, 다를 게 없잖아···?’
창규는, 이어지는 참하늘주님성회 교인들의 예배를 보면서 문득 저 역사를 떠올렸다.
“의리!”
“의리!”
2번째 예배.
스걱-!
팔이 날아간다.
“의리!”
“의리!”
3번째 예배.
콰직-!
어깨 근육이 잘린다.
“의리!”
“의리!”
4번째 예배.
스팟-!
등이 쩍 벌어진다.
“오오, 잘하고 있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식(式) 거의 다 나왔다!”
“좋아! 경전 구결이랑 똑같았어, 방금!”
벌써 피비린내가 자욱한 가운데.
온갖 치명상을 입는 동료들을 보면서 격렬한 응원과 박수를 쳐대는 교인들. 또한, 스스로의 몸이 훼손되고 있음에도 황홀한 표정으로 서로를 향해 칼을 놀려대는 교인들.
‘············미친.’
떠오른다.
‘설마.’
천마의 희미한 흔적을 신 무림 초기에 발견한 이로부터 시작해, 여태까지 이어져 내려온 ‘저들만의 파천검법’의 역사가.
‘이딴 식으로 검법을 익혀 온 거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목숨 건 소거법을 통해, 그들이 얻은 최소한의 단서에서 천마의 흔적을 쫓고자 했던 ‘참하늘주님성회’의 스러진 목숨들이.
‘·········아!’
이제야 이해가 간다.
여태껏 그들이 괴상망측한 기행을 통해 각종 뉴스를 장식했던 진짜 이유가.
『춘천댐에서 줄 없는 번지점프 시도를 한 30대 여성이, ‘참하늘주님성회’ 교인으로 밝혀져-』
『둔전동 전기 도둑, ‘참하늘주님의성회’ 교인으로 밝혀져-』
『호랑이 젖을 먹으려다 시체로 발견된 20대 남성의 가방에서, ‘참하늘주님의성회’ 경전이 발견되어-』
그렇다.
복어 독을 발라내기 위해 죽어간 수많은 이들처럼, 이 미친 사람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희미한 천마의 족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목숨을 걸어 왔던 것이다.
- 이건 뭐, 할 말이 없네.
심법의 이치를 알기 위해 일부러 호랑이 동굴에 들어가고, 심득을 얻기 위해 일부러 줄 없는 번지점프를 하고, 경신의 이치를 알기 위해 일부러 감전을 당하고.
- 너, 내가 저번에 말했지?
본디 예배란, 신께 다가가는 여정.
이들은, 진심이다.
자신들이 신으로 믿는 ‘천마’의 자취를 쫓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모든 행위를 예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신체와 생명은, 저들에게는 천마의 자취를 담기 위한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
- 사람이 무공을 담아야지, 무공에 사람을 맞추면 안 된다고. 내 무공을 어설프게 따라 하면 이 꼴 나는 거야. 너도 이렇게 안 되게 조심하란 말이야.
비천심법처럼, 사람 그 자체를 거대한 우주로 보는 천마의 무공과는 이미 출발점부터 다르다.
“의리!”
“의리!”
“의리!”
“의리!”
계속되는 비무가 이제는 역겹기까지 하다.
사람을 무공의 도구로 보는 신무림 체계의 광기가 극한까지 표현된 듯한 모습.
“아.”
이를 보며 인상을 쓴 창규를 향해, 문득 옆에 있던 장로 김두광이 어깨를 붙여온다.
“확실히, 백검단의 수준에 비하면 아직 많이 떨어지지요?”
“그게 아니라.”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보일 것이라 믿습니다. 참하늘주님을 모시는 저희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말입니다. 저기, 우리 교인들의 표정 보이십니까?”
보인다.
손목이 잘리고, 등이 쩍 벌어지면서도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참하늘주님성회 교인들의 표정이. 마치 마약이라도 한 듯, 응급처치를 하면서도 전신을 부르르 떨며 기쁨 어린 탄성을 내뱉는 기괴한 모습이.
“기억하라! 이 비루한 육신에 새겨진 참하늘주님의 의리!”
“·········의리!”
“경배하라! 우리를 이끌어 주신 참하늘주님에 대한 의리!”
“·········의리!”
미쳤다.
모두의 눈이 맛이 가 있다.
이건, 교인들을 이용해 금전적인 이익이나 성적 욕구나 채워 먹는 그런 차원의 사이비가 아니다.
“보이십니까? 참하늘주님의 품은 이렇게 크고도 넓습니다! 아아, 경배하고 기억하라! 의리!”
“······.”
애초에 장로부터가 맛이 가 있다.
아니.
이 공간에 있는 교인들 중 이 김두광이라는 장로의 눈빛만큼 기괴한 안광을 내뿜는 자가 없다.
“백창규씨, 어떠십니까? 저희의 예배가 마음에 드셨습니까? 참하늘주님의 품에 안기고 싶다면, 언제든지···.”
“아뇨, 괜찮습니다.”
“하하! 이거 아쉽군요. 백검단의 칼맛 한번 보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엮이기조차 싫은 놈들.
- 맹주가 괜히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네.
영혼이 다칠 것을 조심하라는 맹주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괴력난신(怪力亂神)이니, 돌돌괴사(咄咄怪事)니 같은 고사성어를 한 이유는 단 하나.
‘·········이 자식들이랑 깊이 엮이지 말라는 거야.’
지금, 창규는 다짐했다.
“자, 그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 빌어먹을 공간에서 그 빌어먹을 경전이라는 것을 찍고 나가야겠다고.
“이제 본격적으로 저희 경내를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 * *
저벅,
저벅.
“여기가 저희 식당입니다.”
사원의 대리석 바닥 곳곳을 돌아다니는 창규.
아직, 경전이 있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천마···파 두부 덮밥과 천마···라탕 솜씨가 일품이지요. 예배를 신실하게 마친 뒤 곧바로 여기서 식사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
침묵하는 창규의 귀에 문득 속삭이는 김두광.
“바로 참하늘주님 보러 갑니다, 뿅 간다는 얘기죠. 하하하.”
문득, 등 뒤로 목 아래에서 끝나는 화상 자국이 보인다.
“다치셨나 보네요.”
“아, 이거요? 저번에 불판 위에서 군림보 연습하다 꼴사납게 넘어졌지 뭡니까! 까딱하면 참하늘주님 보러 갈 뻔했다니까요? 아, 그러면 오히려 좋을 뻔했네요, 하핫!”
장로조차도 자신의 목숨 따윈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이곳. 더 이해하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지금은 최대한 임무를 완성하기 위한 걸음을 걸어나갈 뿐이다.
저벅.
저벅.
그런 창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말을 붙이는 김두광.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참하늘주님에 대한 말을 하다 말았네요. 기념관에, 작업장에, 휴게실에, 광장에, 숙소까지, 오늘 구경하셔야 할 곳이 많으니 괜찮다면 가는 동안 저희 참하늘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눠도 될까요?”
“굳이···.”
“아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포교하려는 게 아닙니다. 본교는, 단 한 번도 싫다는 이들에게 뭔가를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믿기지 않는데.
“다만, 저희끼리 알고 있기는 너무 아까운 전설들이 있길래 가볍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옛날 이야기 듣는다 치고 가볍게 들어 주세요.”
창규가 거부의사를 표하기도 전에 빠르게 입을 여는 김두광.
“참하늘주인님께서는, 10살이 될 무렵 손수 부모를 살해하셨습니다.”
“뭐, 뭐라고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나이대에, 자신을 강제하는 가장 큰 벽을 스스로 무너뜨리신 겁니다.”
그 말에 천마가, 노한 표정으로 이를 짓씹었다.
- 이 미친 새끼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하지만, 당연히 천마가 보일 리 없는 김두광은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약관의 나이에는, 혈혈단신으로 한 성(城)을 멸망시킨 뒤 수백의 백골 위에서 이레 동안 피가 섞인 술을 드셨다고 하지요. 이 역시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어린 나이에 일국의 10대 고수에나 들어갈 만한 무위를 지니신 겁니다.”
- 아니야.
“그분은, 자유로운 분이었습니다. 어떤 규율도 그분을 묶어두지 못했고, 어떤 사람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뿐입니까? 인간을 고작 인간으로 만드는 족쇄를 스스로 부숴 버린 것이 이립의 나이였습니다.”
-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뭐든지 했습니다. 거슬리는 게 있다면, 그것이 임산부건 갓난아이건 절대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 아니라고.
“아니, 그저 재밌을 것 같다는 이유로 지나가다 마주친 고을의 주민들을 한꺼번에 폭사(爆死)시킨 적도 있지요. 연민이나 동정심 같은 어쭙잖은 감정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잔인해 보이지만, 어쩌면 그게 그분을 새 하늘의 주인이 되게끔 만든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네요.”
- 사실이 아니다. 난, 살면서 평생 약자는 건드리지 않았다.
“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저희는 절대 이유 없이 일반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참하늘주인님의 그 규칙을 깨고 한계를 넘으려는 정신을 이어받고 싶은 것입니다.”
- 대체, 나에 대해 무슨 소리를 들은 거야.
“아십니까? 하늘이라는 것은, 그리고 자연이라는 것은, 본디 인간을 온갖 규칙과 규율로 한계 지으려는 족쇄. 그리고, 그 족쇄는 항상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흥분한 듯 점점 김두광의 말이 빨라진다.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고,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고,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것, 그 역시 이 하늘의 족쇄에 의한 안타까운 현상이지요.”
타닥, 타닥.
동시에 점점 넓어지는 보폭.
“이 족쇄를 부수고 새로운 하늘을 세우기 위해서는, 참하늘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사람의 두개골을 씹어 쪼개고, 산봉우리까지 피바다를 차오르게 했던 그 거침없음 말입니다.”
- 대체 그 염병할 경전에 내가 어떻게 기록된 거냐고.
순간, 창규는 보았다.
일순 발목 위로 올라간 김두광의 바지 밑단 아래 보인 상처. 대체 뭘 연습한 것인지, 방금 등 뒤로 보였던 화상 자국보다 훨씬 더 심한 상처가 새겨 있었다.
“그리고···.”
“그건 무슨 상처입니까?”
“예?”
창규가 그 상처에 대해 물은 것은, 다만 그전의 상처에 대해 장로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혹시나 무례로 보일 수 있더라도, 꼭 대답을 듣고 싶다는 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이거요···.”
“앗, 죄송합니다. 대답하기 곤란하시다면 안하셔도 됩니다. 제가 실례를 했네요.”
“아닙니다. 별거 아닌데요, 뭐.”
씩 웃으며 입을 여는 김두광.
“아까랑 똑같아요. 저희 참하늘주인님의 군림보(君臨步)를 연습하다 그런 거죠, 뭐.”
그때, 창규는 느낄 수 있었다.
- 그 경전 한번 꼭 보고 싶네. 대체 내 군림보를 어떻게 써 놓은 거야.
저 답에서 느껴지는 묘한 위화감(違和感)을.
씻기지 않는 오물 냄새처럼 창규를 휘감은 진득한 위화감.
“아, 마침 다 왔네요. 여기가 저희 휴게실입니다. 이제 여기서···.”
그 위화감은, 살거죽처럼 창규에게 달라붙었다.
밤이 오고.
달이 뜬 뒤.
모든 견학을 마치고, 숙소로 갈 때까지.
* * *
- 흐으음.
성회에서 잡아 준 숙소는 나쁘지 않았다.
산기슭 옆으로 튀어나온 창고를 층층이 타고 올라 세워진 이 숙소의 창문으로는, 경치 좋은 산등성이에서나 볼만한 대전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 수상해, 수상해, 수상해.
장로와 헤어진 뒤 연신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천마까지 창틀에 앉아 하얀 달을 감상하고 있을 정도로.
- 근데 숙소는 좋네. 나 옛날에 한창 다니던 객잔 같아.
고급 목자재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숙소.
-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이 새끼들, 제정신이 아니야. 핀트 나간 건 혈교보다 심할지도 모른다고.
최고급 침대에,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게 청소한 나무 바닥에, 깔끔한 가구 집기들에, 꽉꽉 채워진 냉장고에, 심지어 룸 서비스로 이어지는 호출기까지 제공된 가운데.
- 근데, 내가 지금 가장 어이없는 게 뭔지 알아? 쟤들, 진짜 파천검법은 아니지만, 몸에 배인 초식의 숙련도가 너보다 높아. 대체 무슨 경전으로 연습을 한 거야?
지금. 창규는 자신에게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천마의 말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 야야.
덜컥.
문 옆에 있던 비상용 손전등을 집어든 창규.
“선배님.”
- 너 갑자기 그건 왜···.
“방금, 숙소 들어와서 아래쪽은 한 번도 안 들여다보셨죠?”
- 마! 난 너 만난 이후 한 번도 네 발 아래로 내려간 적 없어.
“아까, 아래쪽에 창고 있다고 했죠.”
후우.
무표정하게 바닥의 한가운데로 다가간 그가, 발에 내기를 그러모은다. 그리고 그대로 발을 내리찍어 바닥을 박살 내는 창규.
콰직! 콰직! 콰직!
내공을 아끼지 않고 터뜨린 창규의 타격에, 서서히 구멍이 나는 바닥.
‘방금.’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먼지가 걷힌 뒤.
후두둑.
조각나서 떨어지는 나무바닥의 구멍 사이로.
‘분명히, 바닥 아래 내공수치가 보였다.’
손전등을 탁 켜는 순간.
‘············!!’
창규는, 나무 바닥 밑에서 깜빡이는 수십 개의 눈빛을 마주했다.
전신이 꽁꽁 묶인 채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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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7]···························.
일반인들이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