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무림 견문록-50화 (50/150)

50화.

천마(天魔).

작금의 거짓된 세상을 끝장내고, 삿된 질서가 지배하는 지구 위에 참된 하늘을 펼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절대자. 현재, 세계 곳곳에는 이 천마를 신처럼 숭배하는 자들의 지부가 퍼져 있다.

『참하늘주님의성회』

『True Heavenly Master's Church』

『眞天敎』

언어권마다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서도, 그들이 이를 악물고 천마신교(天魔神敎)라는 교명을 대외적으로 쓰지 않는 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 약해 빠진 입으로 내 별호를 담지 마라』

구(舊) 무림이 끝나던 최후의 순간, 천마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유언 중 한 구절. 그 유지를 받들어, 그들은 아무 곳에서나 ‘천마’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갈! 어디 시정잡배가 하늘 주인님의 별호를 입에 올리느냐!’

‘우리, 참하늘주님께 기도합시다.’

‘어머, 선생님! 기백이 참 좋으세요, 혹시 참하늘의 세계에 대해 공부해 보실 생각 없으세요?’

길거리 전도를 하면서도 ‘천마’라는 별호를 꺼내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것이 바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들이 단순한 사이비 종교로만 비치는 이유였다. 아니, 애초에 오무답문이란 개념조차 음모론으로 치부되는 지금 ‘천마’라는 존재를 진지하게 믿는 이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신은 존재하고! 오직 그분만이 참하늘을 여신다!’

당연히, 이들은 그 소수에 속한다.

신 무림 초창기, 구 무림의 유적을 발굴하던 중 천마의 흔적을 발견한 선구자를 중심으로 모여든 자들. 천마의 말씀을 경전으로, 천마에 대한 소문을 신화로, 세상에 퍼진 천마의 온갖 흔적을 그러모아 무공의 체계를 갖춘 단체를 창시한 신도들.

그렇다.

‘참하늘주님의성회’의 교인들은, 모두 천마 오타쿠들이다.

본인들끼리는, 나름 치열하다.

교리 해석을 두고 파벌이 3개로 나뉘기도 하고, 서로를 이단으로 부르던 3명의 대장로가 생사결(生死決)을 벌이기도 하고, 추후 참하늘을 열 가능성이 보이는 이들의 명단이 나올 때마다 제각각 격렬한 축제를 벌이곤 하지만.

『다음 뉴스입니다.』

세상은 보통,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이 담은 큰 포부에 비해 그들이 하는 짓이 영 시시한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하늘주님의성회 기도원 경험자의 수기! 그놈들은, 미쳤다!』

『대전시 최근 불법 다단계 기승!』

『한밤의 민둥산 서리 사건』

『컨테이너에 감금되었던 20대 남성의 생생 증언, ‘삼시 세끼 프로틴만 먹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분명히 제정신이 아닌 놈들은 맞는데, 흑도(黑道)와는 약간 결이 다르다. 사기, 감금, 폭행에 절도 등 범죄에 속하는 영역에는 모조리 발을 걸치면서도, 살인이나 학살 등 세상을 쩌렁쩌렁 울릴 만한 거대한 사건을 일으킨 적은 보지 못했다.

굳이 분류한다면 ‘위험한 테러단체’가 아닌 ‘한심한 잡범 소굴’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놈들. 간혹 목숨을 잃는 등의 인명사고가 터지긴 했으나, 그건 대부분 이런 경우들이었다.

『춘천댐에서 줄 없는 번지점프 시도를 한 30대 여성이, ‘참하늘주님성회’ 교인으로 밝혀져-』

『둔전동 전기 도둑, ‘참하늘주님의성회’ 교인으로 밝혀져-』

『호랑이 젖을 먹으려다 시체로 발견된 20대 남성의 가방에서, ‘참하늘주님의성회’ 경전이 발견되어-』

셀프 인생 던지기.

가끔 뉴스에 나타나는 소식을 듣다 보면, 이게 대체 뭐 하는 새끼들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오무답문을 모르는 이들은, 궁금해한다.

이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인지.

음모론에 익숙한 호사가들은, 역시 궁금해한다.

어떻게 이런 병신들이 오무답문의 일석을 차지하고 있는지.

[어떤 신을 믿길래 저러고 사는지 궁금하다.]

한 종교학자가 내린 이 짧은 평가에, ‘참하늘주님의성회’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던 세상 사람들이 청량함을 느꼈다는 건 이미 유명한 얘기다.

“············어떻게 생각해요?”

-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입원 마지막 날.

주섬주섬.

백검단의 검은 정장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환자복을 개키던 창규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니, 선배님 믿느라 그 꼴이 났다는데.”

- 그만해, 임마······ 걔들만 생각하면 나도 막 가슴이 답답해.

손을 홰홰 저으며 인상을 쓰는 천마.

일주일 전, 박웅태가 ‘참하늘주님의성회’를 언급한 뒤부터 불편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본 창규가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정상적인 놈들은 아니야.’

지난 1주일 동안, 저 단체에 대해 나름대로 알아봤다.

‘참하늘주님의성회?’

‘어.’

‘너 똥물에 발 담그는 게 취미냐? 기껏 백검단까지 가입해놓고 왜 얻을 것도 없는 사이비 천지에 가려고 하는데? 걔들이랑 세 마디 이상 섞으면 주화입마 온대, 임마.’

‘그 정도야?’

‘됐고, 경호실이나 들어와. 얘기했나? 이건 거의 오피셜인데, 나 경호실 들어갈 것 같다. 그 대머리 새끼, 내 실력에 반했는지 제발 들어와 달라고 사정사정하는 꼴을 네가 봤어야 하는데.’

‘······.’

들뜬 모습으로 경호실의 혜택을 줄줄 읊던 서정우도.

‘참하늘주님의성회요?’

‘네.’

‘아니, 왜 백검단씩이나 들어가셔서 그런 업무를···.’

‘위험한가요?’

‘위험한 건 아니지만, 하는 짓이 더럽습니다. 대전에서는 거지들도 걔들이랑 겸상 안 해요. 구걸하다가 걔들 돈 받으면 바로 동냥 바가지 깨 버린답니다.’

이전에 명함을 받았던 서울역의 전자련 장님 지점장도.

“흐음.”

전부 평이 좋지 않았다.

그 악평들에는, 하나같이 ‘위험성’보다 거의 정신병자들을 보는 듯한 혐오감이 깔려 있었다.

“위험하지는 않다는 건데.”

그럼 할만하지 않나? 중얼거린 창규.

그가, 어제 상승한 자신의 최대 내공치를 떠올렸다.

[1700 / 1700]

조금만 더 있으면 2갑자다.

1갑자 중반부터, 증가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던 내공 최대치. 천마의 말에 의하면, 벽에 다다른 심법의 단계를 올리지 못하면 흡성대법에 의해 증가하는 내공의 속도가 예전처럼 빨라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

‘내공이 늘어날수록, 점점 추가 내공치를 올리는 게 힘들어진다는 얘긴데.’

그런 점에서, 박웅태가 전달한 용환단은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내성이 생기는 것을 고려해도, 5개를 다 먹으면 2갑자 정도야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 내공만 되어도 백검단에서는 상위권이다.’

맹주나 단장, 혹은 부단장 같은 괴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위 말하는 ‘고수’라 불리는 이들의 그것과 같은 양의 내공을 보유하게 된단 말이다.

‘분명, 자격만 맞으면 업무의 전환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어.’

일단 특임단원으로서 저 용환단을 다 받아먹은 뒤, 경호실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얘기.

‘그럼 해 볼 만하지 않나?’

분명 경호실에 있는 것이 혈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안전하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한번 모험을 해 봐도 될 것 같은데.

‘어차피, 얘기 듣기로 이번 임무에는 단 차원의 안전 조치가 충분히 취해진다고도 했고···.’

그렇게 고민을 하는 창규를 향해, 천마가 신경질을 낸다.

- 야, 무슨 고민을 해! 오무답문 갈 거면 남의 트라우마 건드리지 말고 북해빙궁 가자니까!

“아, 선배님. 지금 거길 어떻게 갑니까. 한국에 있기는커녕, 아직 어디에 있는 건지 위치조차 제대로 모른다는데.”

- 내가 그거 보고 며칠 전부터 열불이 뻗쳐서 아주···.

그는, 박웅태가 보여 준 파일에 적힌 ‘북해빙궁’을 본 이후 1주일째 똥 씹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 그 개 같은 새끼들, 어떻게든 찾아내서 씹어 죽여야 속이 편하겠는데.

북해빙궁(北海氷宮).

천마의 말에 따르면, 자신을 북극의 빙하에 봉인하는데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천하의 악질들. 쇄빙선에 의해 빙하가 깨지며 신무림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빙공(氷功)을 쓴다고 적혀 있던 박웅태의 파일과도 어느 정도 아귀가 맞는 듯하다.

- 어라, 잠깐만.

문득 천마가 눈을 크게 뜨며 창규를 바라본다.

- 이 새끼, 그러고 보니까 나랑 약속까지 한 주제에 요 얼마 동안 싹 모른 척하고 있었네?

몇 달 전.

계약서를 수정하고 진백현을 죽인 뒤, 분명 창규는 천마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분명, 대화 대부분은 급한 불을 끈 뒤 창규의 주위를 맴도는 자신의 신세를 개선할 방안과, 자신의 목적 중 하나인 복수 계획을 짜는 것이었는데···.

- 마! 너 급한 불만 끄고 내가 말한 거 찾아 주기로 했잖아!

“선배님.”

- 와, 이거 완전 사기꾼이네? 내가 까먹고 있으면 네가 먼저 말해 줬어야지!

“아직 급한 불 못 다 끄지 않았습니까요.”

머쓱한 웃음을 짓는 창규.

- 뭘 못 꺼! 너 지금 맹주 직할대 됐잖아! 이 정도면 당분간 두 발 다 뻗고 잘 수 있겠구만!

“에헤이.”

그가, 자신에게 침을 튀기며 삿대질을 해대는 천마를 보며 뒤통수를 긁었다.

“이왕 하는 김에 조금만 더 확실하게 뻗읍시다, 선배님.”

- 에라이, 사기꾼 같은 놈이.

“누가 목숨 노리고 있으면 뒤통수 찝찝하잖아요.”

- 나 한창 땐 하루라도 자기 전에 살수 처죽이지 않은 적이 없어. 이 정도면 편한 거지.

“딱, 이번 혈교 제사장까지만 잡고 선배님이랑 약속한 대로 관련 정보 수집하러 다닐게요. 그래도, 저 혼자 마음 놓고 다닐 정도로는 강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천마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는 창규.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 이 새끼가,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언제까지 급할 때마다 선배님 찾을 순 없지 않습니까. 저도 선배님처럼 강해지고 싶습니다.”

- 나처럼? 마! 그 초식 수준으로 넌 아직 어림도 없어!

그런 창규에게 천마가 초식 얘기를 꺼낸다.

지난 며칠 동안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다.

- 말했지? 0.0001초의 잡념도 들어가지 않은 동작이 나올 때까지 초식을 몸에 익힌 다음에서야 제대로 된 출발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죠.”

- 아는 거랑, ‘몸’에 익히는 거랑은 달라. 흐름을 타는 경지까지 오려면, 지금 네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는···.

“그래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겁니다.”

- 뭘.

“선배님 수준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먼데, 괜히 지금 조바심 내다가 선배님 돕지도 못하고 눈먼 칼에 맞아 죽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초식과, 무공과, 효율성에 대한 이야기들.

동시에, 그날 마지막으로 맹주의 옷깃을 벨 때의 감각을 완전히 떠올린 창규.

‘슈팅이니 뭐니 하는 것보다, 초식을 완벽하게 다룰 줄 아는 게 먼저다.’

그는 이제 이해했다.

어떤 길이 더 빠른 길이고, 또 어떤 길이 더 확실한 길인지.

“딱 이번까지만. 저 노리는 혈교 제사장 혼자 잡을 수 있게 될 정도로 강해질 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쇼.”

- 흐음.

“그다음에는, 북해빙궁이건 어디건 약속드린 대로 선배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그려진다.

예전에는 엄청나게 아득하게 강해 보였던 진백현을 잡을 수 있는 수준까지 걸어가야 할 길이.

- 뭐, 좋아. 어차피 나야 시간은 많으니까.

그리고, 당장 지금 그 첫걸음을 떼야 한다.

- 대신 확실히 해라.

경호 단원이 될지, 아니면 특임 단원이 될지.

백검단에서 맡을 첫 번째 임무가 정해지는 날.

- 뻔히 보이는 길 내버려 두고 제발 답답하게 돌아가지 좀 말란 말이야.

“그야 물론.”

그게 바로 오늘이었으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 * *

안국동의 맹주 사택을 향하는 길.

저벅.

저벅.

걸어가는 곳곳의 경비가 삼엄하다.

높다란 담장, 우거진 덤불, 인근 빌라의 주차장에 주차된 고급차량들까지. 눈으로 보지 않아도, 기상천외한 위치에서 일반인의 출입을 불허하는 기도가 피어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지금.

‘뭐야.’

그 사이를 걸어가는 창규는, 지금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다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네.’

노골적인 적의(敵意).

일주일 전 똥물 사건 때문인지, 이 근방에 있는 모든 경호단원들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기운을 풍기고 있다.

- 쯧쯧. 살다 보면 똥물도 맞고 핏물도 맞을 수 있는 거지. 뭘 그런 거 가지고 아직까지 꽁해 있나들?

달빛이 내려앉은 스산한 가을밤.

날씨가 무색하게, 창규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신을 지지는 뜨거운 눈빛들을 느끼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렇게 맹주가 기거하는 한옥 주택의 커다란 대문에 다다랐을 때부터.

“야.”

정원을 가로질러 툇마루에 신발을 벗은 뒤 긴 복도를 지나 맹주가 있는 다과실로 향할 때까지, 창규는 이곳을 지키고 있는 무수한 경호 단원들의 갈굼을 맞이해야 했다.

“누가 선배한테 그딴 식으로 인사하래.”

“똑바로 걸어라.”

“발 보폭 줄여라. 누가 보면 너 뭐 되는 줄 알겠다.”

“맹주님께 말을 붙일 때는 짝다리 짚지 마라.”

“너는, 내 밑으로 오기만 해라.”

“꼴통 기수가 오셨네.”

그러고 보니, 기억난다.

일주일 전 박웅태가 했던 말이.

‘확실히 그랬어. 경호실의 규율은 엄하다고 했지.’

하긴, 그런 엄한 규율을 가진 경호 단원들에게 똥물을 뿌려댔으니 이렇게 자신을 보는 것도 이해는 간다.

‘흠.’

근데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자신이 싫어도, 맹주의 사택에서, 그것도 백검단의 간부들이 다 같이 모여 정식 단원을 받는 지금, 저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낸다고?

저벅.

저벅.

‘······음?’

뭔가가 들린다.

다과실에 가까이 갈수록, 불규칙한 형태의 소음이 점점 커져간다. 여태껏 들어 본 적 없는, 기묘한 운율을 가진 소음.

‘뭐지? 불경? 아니면 음공···같은 테스트가 또 있나?’

저벅.

저벅.

다과실의 앞쪽.

문 앞에 부동자세로 서 있던 경호단원이, 역시 죽일 듯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본 뒤 문을 두드렸을 때.

“들여보내.”

드르륵.

“·········왔구나.”

창규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여태까지 여기 있는 경호단원들이 자신에게 악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꼴통 기수 어쩌구를 운운한 이유를.

“일단.”

동시에, 감상할 수 있었다.

원래는 환영식을 계획했던 것일까.

간단한 술상을 가운데 둔 채 굳은 얼굴을 한 무림맹주 곽용범, 백검단장 박웅태, 부단장 한주빈 사이에서.

“·········얘 좀 말려 보거라.”

만취한 채 웃통 까뒤집고 속사포 랩을 퍼붓는 서정우의 모습을.

- 뭐······ 많이 신났나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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