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철커덕!
창문이 모두 닫힌다.
두터운 방음 커튼이 이를 덮는다.
출입문이 이중삼중으로 걸어 잠긴다.
바를 은은하게 울리던 재즈 선율의 볼륨이 점점 커진다.
“마, 만독불침?”
“야! 저 싸스개 같은 새끼 수작 부리는 거 모르겠니! 저 간나, 술 어디로 다 흘린 게야!”
“인수야! 야, 인수 일어나보라!”
“저 얼빵한 새끼 뒤졌슴다. 니들 뭐하니! 저 개보대 새끼 팔다리 끊어오지 않고!”
쿵쿵쿵.
소파를 뒤집어 밑에 달린 연장을 잡는 무리들.
쇠파이프, 줄톱, 망치에 장검까지.
후드를 뒤집어쓴 인영(人影) 주위로 절그럭대는 살기(殺氣). 흑도 전원, ‘작업’ 개시를 앞두고 팽팽해진 긴장감이 터지기 직전!
“손님.”
바텐더가 손을 들어 잠시 그 폭발을 막았다.
“잠시만요. 혹시, 무림인이십니까?”
“그런데.”
“칼을 차고 계시지 않아서 오해했네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인증 좀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말을 하면서도 연신 후드의 위아래를 훑는다.
무림인 특유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대형 문파 소속인지, 아니면 공무집행시 배지를 달고 다니는 국가 감찰부 소속인지. 그러니까, 죽여도 되는 놈인지 아닌지.
“왜. 무림인 아니면 배 가르게?”
“하하,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희도 먹고는 살아야죠.”
이를 판단하는 바텐더의 눈에, 후드를 뒤집어 쓴 채 미세하게 떨고 있는 놈의 모습이 보인다. 거칠어진 호흡, 덜덜 떨리는 다리. 역시 이를 감지한 무뢰배들도 씩 누런 이를 보이는 가운데.
‘뭐야, X밥인가?’
피식 웃으면서도 혹시 몰라 입을 여는 바텐더.
“한데, 소속 사문은 어찌 되시는지···.”
“X.”
“예?”
그런 그의 귀를 향해, 안주 접시에 놓인 포크가 하얀 직선을 그은 순간!
“까.”
“끄, 끄아아아아아!”
바텐더의 귀가 찢김과 동시에,
바를 팽팽하게 감싸고 있던 긴장감이 일순 터져 버렸다.
“저, 저 새끼 죽여어어-!!”
* * *
이 감각, 너무 오랜만이다.
흥분에 전신이 떨릴 정도로.
“개보대 같은 새끼!”
“여가 어디라고 들어왔니! 죽여!”
“저 간나 새끼 팔다리부터 끊어오라!”
짜릿하다.
살의(殺意)를 두른 흑도(黑道)들이 사방에서 달라붙는 이 감각을, 사실 태백시를 떠난 이후 쭉 그리워하고 있었다. 자신을 죽이려는 인간쓰레기를 잡는 건, 이제 창규의 취미이자 특기가 된 지 오래였으니까.
- 이거 또 실실 웃네.
두근!
서울의 밤이 안전하다지만은 어디나 바퀴벌레는 있게 마련. 쇠와 콘크리트의 정글에 숨어든 이 벌레들을 박멸하는 건, 굳이 백검단의 미션이 아니었더라도 창규의 적성에 맞았을 일이다.
‘·········총 9마리.’
두근!
수를 가늠하는 창규.
귀를 부여잡고 질질 짜는 바텐더와 여자를 뺀 나머지 일곱 중 셋이 무림인이다. 하지만 창규에겐 저 쓰레기들이, 그저 흡성대법으로 빨아먹을 내공을 담은 경험치 덩어리로 보일 뿐이다.
“크아아!”
“뒤져!!”
문득 좌우에서 짓쳐들어오는 도끼와 줄톱.
소파와 테이블 위를 뛰어넘어 오는 놈들을 바라보며.
‘······독보(獨步).’
창규가 보법을 밟는다.
파팟!
천마군림보를 수련한 클럽에 비하면 여긴 허허벌판이나 마찬가지.
- 좋아, 4성은 완전히 익혔고.
앞으로 반보 밟고, 허리 틀어 오른발을 테이블 아래 깊숙이 찔러 넣으니 좌우에서 뛰어든 놈들이 표적으로 노리던 창규의 상체가 쑥 내려간다.
콰지직!
창규가 사라진 허공에서,
도끼와 줄톱으로 서로의 경동맥을 벤 흑도 둘.
“꺼허억!”
“끄아아!”
분수 같은 피를 뿜어대며 떨어지는 놈들을 뒤로 한 채, 창규가 앞으로 질주한다. Zone 모드에 돌입하지도, 슈팅을 사용하지도, 그리고 내공을 터뜨리지도 않은 채.
- 그래, 당분간 이런 놈들 상대할 때는 피지컬 빼고 검법 자체의 초식(招式)과 투로(套路)에만 집중하라고.
창규도 동의한다.
‘효율적인 움직임’에 천착해 파천검법의 수많은 초식 중에서도 소수의 식만을 써왔지만, 저번의 헬기 사건 이후 느꼈다. ‘아직’은, 세상 모든 상황을 최소단위까지 완벽히 분석할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 원래 탈초식이니 투로를 잊니 하는 건, 네 솜씨가 극성에 가까워졌을 때의 일이야.
천마의 무공도 마찬가지.
- 무학을 논하려면, 어떤 무공이건 적어도 5성까진 달성하고 얘기를 해야지.
[ 천마신공 ]
* 비천심법 Lv.4
* 파천검법 Lv.4
* 천마군림보 Lv.4
* 무량불침 Lv.3
이건 분명 극성까지 갔을 때 하늘마저 찢을 수 있는 불가해(不可解)의 무공. 그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지금 당장의 최우선 과제는, 파천검법의 초식과 투로를 몸에 착실히 새기며 이를 사용할 때 목격되는 효율성의 결과를 손수 몸에 데이터로 쌓아놓는 것이다..
- 하여간. 남들은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데 꼭 된장인지 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알더라, 너는.
의심이 사라진 몸에 깃든 확신.
- 뭐, 그게 네 장점이지만.
파파팟-!
그 확신이, 어느덧 눈앞에 다가온 흑도들 앞에서 불을 뿜는다.
“이, 이 새끼 뭐이니!!”
“죽여!!”
“찍어 버려!!”
“죽이라! 개 같이 죽이라 말이다!!”
정면에서 달려드는 두 놈이 창규를 향해 빠르게 휘두르는 쇠파이프와 거칠게 찍어 내리는 손도끼. 달려가며 손목의 귀영도를 펼친 창규가, 곧바로 파천검법의 초식을 펼친다.
‘제1초식.’
카가각-!
파이프를 비스듬히 타고 간 귀영도.
찰나의 대치 순간, 귀영도에 힘을 준 상태 그대로 보법을 밟자 복잡미묘한 변화가 펼쳐진다. 짓쳐들어가 몸을 반대로 회전하며 귀영도를 아래로 뿌리자, 쇠파이프를 쥔 놈의 가슴이 쩍 벌어지고.
“커, 커헉!”
“이런 썅···허억!”
박차 오르며 위로 긋자, 손도끼를 쥔 놈의 목에도 붉은 선이 그어진다.
‘·········창천일로(蒼天一路).’
막고, 피하고, 긋는 기본동작을 독보(獨步)를 통해 변화무쌍한 묘리로 연결한 파천검법의 기본초식. 하늘에 뜬 별들을 하나하나 떨어뜨려 단 하나의 길만 남긴다는 포부답게, 이건 곧 세 방향에서 달려드는 흑도들을 상대할 때도 기세가 죽지 않았다.
“미친!”
“에라, 썅!”
“뒤져라!”
챙챙챙!
세 놈이 모두 무림인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창천일로는 단일기로도 좋지만, 시전자가 몸을 회전할 때마다 연달아 위력이 강해지는 연속기였으니까.
- 수준 차이 나는 애들 상대할 때는, 너처럼 괜히 앞뒤 오가며 계산할 거 없어. 이거 하나만 펼치면 만사형통이라고.
회전한 그대로 가장 가까운 놈에게 몸을 욱여넣은 뒤 초식을 펼치는 창규의 귀영도는, 아까보다 더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뭔 개 같은···끄아아악!”
한 바퀴, 벤다.
푸슛!
한칼 먹고 쩍 벌어진 목을 보며.
엇박으로 보법을 밟은 다음.
카각! 들어오는 검을 막고.
그대로 회전.
“이런 미치이이이인!”
두 바퀴, 가른다.
피핏!
역시 목에 붉은 실선을 그은 뒤.
대각선 앞으로 몸을 욱여넣은 후.
밑에서 베어 올리는 검을 막고.
다시 회전.
“어, 어어···잠까아아아아아!”
세 바퀴, 박는다.
푸슛!
마지막 무림인의 가슴에 박아넣은 귀영도 근처에서 붉은 선혈이 꿀렁인다.
“확실히.”
“허, 허어억!”
“·········이것도 빠르긴 하네.”
순식간에 7마리의 벌레들을 모두 처리한 창규.
- 말했잖아. 끝까지 몸에 새긴 무공의 식(式)이라는 게, 특정 상황에서는 일일이 최단루트를 계산하는 것보다 빠를 때가 있다니까.
으스대는 천마의 말에 곰곰이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을 짓던 그가, 문득 죽어가는 세 무림인 앞에 쪼그려 않는다. 아직은 절명하진 않은 그들이, 흉신악살 같은 눈빛으로 창규를 노려보았지만.
“눈깔에 힘 빼.”
“끄아아!”
“허으어!”
“커허억!”
콰콰콰콰-!
그 눈빛은, 창규가 펼친 흡성대법에 의해 곧 미라처럼 바싹 말라버렸다. 놈들의 내공뿐 아니라 선천진기까지 흡수한 창규. 오늘은 내공을 하나도 쓰지 않았기에, 흡수한 내공 전부를 최대치로 늘리는데 써먹을 수 있다.
‘오호.’
이거 괜찮네.
내공 및 ‘슈팅’을 쓰지 않고 이렇게 초식으로만 흑도들을 퇴치하며 내공을 모으면, 한 달 후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내공 최대치를 달성할 수 있다.
‘그때쯤이면···.’
쨍강! 쨍강! 쨍강!
문득 창규의 주변으로 떨어져 깨지는 술병들.
“이런 미친 새끼가!”
“뒤, 뒤져!”
쨍강! 쨍강! 쨍강!
바닥에 튀기는 유리 파편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니, 바에 있던 바텐더와 여자가 어느새 방독복과 방독면을 착용한 채 진열장 아래에 있는 술병을 던져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들이 던지고 있는 건 단순한 술병이 아니었다.
“아 참, 너희한테 물어 볼 게 있었는데.”
“이 미친 새끼가.”
“너희 인천에서 왔다고 했지? 본파 이름이 뭐냐?”
“하! 어디서 칼 밥 좀 먹었나 본데···.”
쨍강! 쨍강! 쨍강!
“···씨발, 그럼 독 맛은 충분히 봤는지 모르겠네?”
프스스스-!
독(毒)을 섞은 술병.
깨진 술병 조각 사이 새어 나오는 보랏빛 연기. 바닥에 부글대는 거품이 일고, 의자와 테이블 끄트머리가 그을린 듯 살짝 부식되는 그건, 분명히 독이었다.
“다시 묻는다. 너희, 인천 어느 문파 출신?”
“뒤져어어-!”
“빨리 말해. 여기 말고도 갈 데 많으니까.”
쨍강! 쨍강!
미혼산뿐 아니라, 내공을 흐트러뜨리는 군자산에 더해 그 유명한 반연문에서 비싼 돈을 치르고 사온 극독. 내공빨로 극소량의 미혼산이야 겨우 견뎌낼 수 있다지만, 이건 정도가 다르다.
쨍강! 쨍강! 쨍강!
술병이 터질수록 자욱해지는 보랏빛 연기.
바텐더와 꽃뱀은, 그 너머로 보았다.
당당한 척 지껄이면서도 연기 아래서 뭔가를 들쳐메고 쪽문으로 도망가려는 창규의 실루엣을.
“오빠아! 거기로 가도 도망갈 곳 없는데!”
“크하하, 손님! 거긴 수술실입니다아-!”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독이 든 술병들을 챙겨 창규의 뒤를 쫓는 바텐더와 꽃뱀.
“어디 갔어, 오빠? 벌써 뒤진 거야?”
“흐, 저 미친 새끼. 설마 편하게 죽을 생각은 아니지? 기다려봐. 우리 업장 망가뜨린 거, 죽기 직전까지 후회하게 해 줄게.”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문득.
광소(狂笑)를 지으며 다가오는 백창규.
“뭐, 알려 줄 마음 없다니 좋아.”
“·········!”
“·········!”
기절한 손님을 쪽방에 내려놓고서 돌아온 저자가, 무량불침 중 만독불침 단계를 완성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사실, 나도 너희 같은 애들이 고통 없이 뱉는 말은 잘 못 믿거든.”
“자, 잠깐만! 말할게!”
“오, 오빠! 우리 인천 혈해문에서 왔···.”
“답은 10분 뒤에 들을게.”
그리고, 자신 같은 흑도들을 상대하는 법 따위는 신물 나게 겪어 본 미친놈이라는 사실을.
“바로 죽이진 않을 거야.”
“자, 잘못했어!”
“너희 내공도, 버리긴 좀 아깝잖아.”
으직!
“끄아아아아아악!”
콰콰콰콰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