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무림 견문록-30화 (30/150)

30화.

땅에 찍힌 진각.

쩌적-!

좌우로 흩날린 피 먼지.

멈춘 듯 느려진 전장에서.

10배를 가속한 창규.

비록 찰나였지만.

━━━━━━━━━━━━━!

콰콰콰콰-!

그 찰나가, 번쩍이는 직선으로 쏘아진다.

창규는, 피와 독과 시체가 가득한 이 슬로우 비디오에서 유일하게 가속하는 피사체.

역수로 잡은 귀령도가 사방에 빛을 뿌린다.

‘··················곧!’

콰콰콰콰-!

빠르게 가까워진다.

엉킨 채 서로 칼을 박는 고수 셋.

이 순간만큼의 창규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총알 정도의 속도는 되어 보인다.

- 야, 빨리 와 봐라. 이 새끼 가까이서 보니까 겁나 부담스럽게 생겼네.

‘진백현.’

앞으로 3m.

놈이 보인다.

이 모든 사건의 주범이지만, 지금 감정을 품을 여유는 없다. 지금, 창규의 몸은 하나의 거대한 목적 그 자체가 된 것만 같은 충실한 의지를 품고 있다.

‘지금, 잡는다!’

콰콰콰콰-!

초고속으로 튀기는 돌멩이, 먼지, 핏방울들.

채찍으로 전신을 얻어맞는 듯 욱신욱신한 느낌이 오래도록 머물지만, 상관없다.

짜릿짜릿한 근육.

과열된 심장 펌핑.

이미 그의 몸은 전신을 내던져 무(武)를 수행한다는 고양감에 중독된 지 오래다.

‘···2미터!’

샤워기처럼 튀기는 핏방울들.

방금, 진백현의 배에 칼을 찔러 넣었던 반연문 고수 하나의 목이 쩍 갈라졌다.

한 놈 아웃.

‘···1미터!’

3시 방향에 튀어나간 바윗돌.

진법의 기운에 의해 중력을 거스른 바위를, 고개 돌려 피한 진백현.

‘···마주친다!’

창규와 눈이 마주친다.

- 괜찮아, 너 아직 복면이니까.

문득 의아한 눈빛을 한 진백현의 뒤로. 남아 있던 나머지 반연문의 고수가 독수(毒手)를 찌르려 했을 때.

‘······지금!’

각이 나왔다.

앞뒤로 친절하게 목선을 드러낸 두 사람.

여태까지의 기세로.

━━━━━━━━━━━━━!

역수로 된 귀령도를 찌른다.

혈선이 그어진 목이, 쩌저적 벌어지는 순간!

당황하는 눈빛을 하는 반연문 고수와 달리, 사술을 이용해 천천히 점혈을 시도하려는 진백현.

‘예상했다.’

어차피 한방만 더 먹이면 끝난다.

가속한 상태 그대로, 떨어진 바위를 향해 손을 뻗는 창규. 원심력을 이용해 뒤를 도는 그의 앞에 뿜어지려는 피 안개들.

‘예상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남겨놓은 내공.

프스슷-!

운복환을 이용해 안개를 피운 창규의 위로, 점혈을 마친 진백현이 치솟으려 했지만.

‘예상했다.’

이제, 위에서 진법의 기운이 이끈 강풍이 쏟아질 것이다. 혈막 안에 들어오기 전, 이미 이 공간에 섞인 모든 진법들이 불러일으킬 기운의 흐름을 읽었다.

파파팟-!

마지막 슈팅을 준비하는 창규.

놈의 도약이 약해질 때.

아래에서 한 번 더 놈을 노릴 기회가 있다!

‘예상했다.’

아까 독뢰를 찢을 때 사용한 장법을 취하는 진백현의 모습.

‘예상했다.’

서서히 내려오는 거대한 공기의 흐름.

‘다, 예상했다.’

머리가 탈 것 같은 기분으로, 이 모든 것들을 예측하고 실행한 창규의 시야에.

문득.

헬리콥터가 잡혔다.

‘예상했···뭐?’

* * *

그래, 헬리콥터.

㈜반연건설이 소유한 이륙중량 7,800㎏짜리 민간용 헬기가, 창규의 계산범위 가운데로 끼어든 데는, 아주 시시한 이유가 있었다.

“헬기 돌려! 돌리라고!”

“실장님!”

“여기서는 못 뒤져, 씨발!”

“대표님 명입니다! 이러시면 저도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 있으면 다 죽어!”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연재! 연재가 살아 있다니까!”

흔해 빠진 이야기다.

여동생이 전당포째 갇힌 환영진 근처에서 가장 큰 위험요소라고 생각했던 진백현. 그 진백현이 죽는 걸 보기 전까지는 절대 현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한 장 실장.

“연락이 왔어! 연재! 연재가 본부로 돌아갔다고!”

“방해하지 마십쇼!”

하지만 본부로 안전하게 옮겨진 장연재.

안도감과 동시에, 이제부턴 여동생이 이렇게 휘말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자신이 붙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장 실장. 그리고, 아래를 보니 모든 진법들이 폭발해 씹창이 나기 시작한 현장.

죽음을 실감한 장 실장.

여기서 죽을 순 없다.

그럼, 이제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누가 여동생을 지킬 것인가.

“비켜! 철수해야 돼!”

“반연문의 규칙 모르십니까? 전투에서 도망치는 자는, 반씨 가문 전체의 적이 됩니다!”

“어차피 여기 있으면 다 죽어! 내가 죽으면 씨발, 연재는 누가 챙기냐고!”

“비키십쇼!”

-해서 시작된 헬리콥터 안에서의 난투.

“경고합니다. 한 번 더 손 대면 칼을···.”

“닥쳐!”

흑도 오빠와, 전당포 사장 여동생.

있을 법한 이야기다.

알고 보니 강호의 민초들은 죄다 사연 절절한 기인이사들이었더라, 따위의 이야기는 아니다.

창규가 처음 간 도박장에서 마주친 장범재.

창규가 귀물을 얻은 전당포에서 마주친 장연재.

창규가 환영진을 피웠던 전당포.

창규가 어지러뜨렸던 반연문의 전장.

“끄아악!”

“컥, 커헉!”

이 모든 게, 인연(因緣)이라는 얘기다.

자신의 삶에서 엑스트라라고 생각한 자들 사이의 인연, 시야에 걸리지도 않는 잡졸이라고 생각한 자들 사이의 인연, 그러니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 사이의 인연.

콰콰콰콰콰-!

사람 사이의 일이다.

그들의 인생에 담긴 사연과 감정.

그것이 날실과 씨실이 되어 엮인 인연.

그 인연을, 어떻게 100% 계산할 수 있을 수 있으랴. 그 인연을, 어떻게 한 치도 틀리지 않고 분석할 수 있으랴. 엄청나게 낮은 확률임에도, 인연이 엮인 일은 항상 뒤틀릴 확률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콰콰콰콰콰-!

그 인연이, 헬리콥터를 추락시키고.

그 헬리콥터가 진법의 기운을 방해하여.

“···············어?!”

“야.”

노한 진백현이,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창규에게 공격을 성공시키는 것 따위의 일 말이다.

푹-!

가슴팍에 진백현의 혈수(血手)가 꽂힌 채.

거죽이 쭉쭉 마르고 온몸의 진기가 빠져나간 듯한 느낌과 함께.

“넌 뭐냐.”

화악!

창규의 복면이 벗겨졌다.

* * *

- 인정. 솔직히, 이 정도면 인정한다.

눈을 뜬 창규.

여긴 어딘가.

- 너, 걔 거의 잡을 뻔했어. 전력 차이를 생각하면, 혼자 여기까지 끌고 온 것도 대단한 거라고.

- ···?

- 야야, 촌스럽게 둘러보지 마.

잔잔한 파문이 이는 수면 위.

수평선도 안 보이는 이공간(異空間).

- ···저승?

- 너 아직 안 죽었다.

그 위로, 천마가 보인다.

하나 이상하다.

평소에 보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위압적인 기운을 풍기는 게, 꼭 실체가 있는 듯한 모습.

- 정확히 말하면, 죽기 직전이지만.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수면에 상(想)이 퍼진다.

- 어유, 이 천박한 놈 봐. 아예 심장까지 손을 쑤셔 박으려고 하네.

검붉은 기운이 휘감긴 진백현의 혈수(血手).

그 공격이, 벌써 창규의 가슴을 반쯤 쑤시고 들어온 모습.

- 너 이제 죽어.

- 아.

- 아? 반응이 그게 다야? 저 공격, 지금 다 멈춰진 게 아냐. 미세하지만 조금씩 네 심장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너, 진짜 염라대왕이랑 하이파이브하게 생겼다니까?

- 그렇군요.

- 그렇군요~오?

인상을 찡그린 천마.

후련하다는 듯한 표정을 한 창규를 보며, 그가 헛웃음을 짓는다.

- 얘 봐라.

- 뭐, 어쩌겠어요. 죽는다는데.

탈력감(脫力感).

이 백창규라는 녀석은 같잖게도, 깔끔하게 판정에 승복한 패배자의 표정을 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 아쉽지 않냐?

- 아쉽죠. 근데, 너무 깔끔하게 져서 그런지 오히려 상쾌하다는 느낌이 더 크네요. 이것도 나쁘지 않아.

- 진 게 아냐. 애초에 네가 낄 판이 아니었어.

- 그걸 해 볼 만하다고 판단했을 때부터 머리로 진 거죠.

- 운이 나빴던 거야. 내부적인 요인으로 헬기가 추락할 것이라고 누가 예측했겠어?

- 운도 실력이죠. 솔직히, 오만했어요.

- 아, 이거 왜 갑자기 캐릭터 바꿨지? 사람 한 번에 바뀌면 죽어, 임마.

- 저 이제 죽는데요.

- 야!

답답하다는 듯 성질을 내는 천마.

그는, 이 창규라는 놈이 꽤 마음에 든 참이다.

- 내가 살려 줄게.

- 예?

- 살려 준다고, 임마.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놈은 몰라도, 저 혈교 자식의 몸에 들어가는 건 죽어도 싫다. 놈들은, 아주 엿같은 무관(武觀)을 가진 데다 쓸데없이 생존력까지 좋아 이번에 들어가면 꽤 오랜 시간을 놈과 함께 있어야 할 테니까.

- 하. 원래대로 했으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건데···.

몇 대 쥐어박고 올 놈이었는데, 일이 개같이 꼬였다.

어쩔 수 없긴 하다.

애초에, 그는 이 백창규라는 녀석이 이렇게까지 까다로울 줄은 몰랐으니까.

- 서명해.

- 살려준다는 게, 그 뜻이었어요?

- 시간 없어! 빨리 서명하라고!

파팟-!

허공에 생긴 계약서.

창규의 최대 내공치가 1갑자를 넘은 순간부터 천마가 ‘선물’이랍시고 들이밀던 문서다.

[-약관 동의서-]

갖가지 조항 맨 위쪽에 적힌 이 문서의 정체는 바로.

[천마 임대차 계약서]

천마가 창규의 몸을 점거할 수 있는 계약서.

- 살려 줄 테니까 서명햄마!

- 됐어요.

- 아직도 독소조항이니 그딴 소리 하는 거야?

- 제 몸을 아예 강탈당하는 건데, 그게 죽는 거랑 뭐가 달라요.

- 야.

물론, 몇몇 조항에 살짝 귀여운 장난을 쳐 놓긴 했다.

[1. 본좌는, 원하는 기간 동안 계약자의 신체를 임대할 권리를 갖는다. ]

[2. 본좌의 요청이 있을 시, 소유자는 임대가 가능한 경우는 언제든 신체를 임대해야 한다.]

-부터.

[5-1. 동의할 시, 이에 대한 비용으로는 1갑자의 최대 내공치를 청구하며-]

[5-2. 일신상의 손해가 있을 시, 본좌는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까지.

- ‘천마 임대차 계약’이 아니라 ‘신체 임대차 계약’이잖아요, 이건. 심지어 언제 반납하겠다는 내용도 없고.

- 됐어, 하지 마. 죽어, 그냥.

- 네, 수고요.

- ··················야!

보통은 바로 서명했는데.

- 이 새끼가···.

- 죽어도 돼요. 이제 후련하니까.

- 뭐?

- 애초에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직장동료도 다 죽어서 볼 사람도 없고. 어차피 망한 셈 친 인생이라서요 이참에 다음 생 노려 보죠, 뭐.

- 아니.

담담한 창규의 말투에 당황한 천마.

- 무(武)의 끝을 알고 싶지 않아? 방금 그거···.

-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 뭘.

- 그, 무(武)라는 거요. 분명 모든 걸 불태운 느낌이었는데 뭔가 확 오는 건 없었어요. 차라리 그전에 기대했을 때가 나았지.

- 야.

- 뭐, 미련을 버렸다면 버린 거고요. 어쨌든 지금 떠나는 게, 제 한계를 끝까지 툭 털고 가는 느낌이라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네요.

- 후.

- 괜히 안 죽으려고 발버둥 쳤다가, 저 조항에 잡히면 평생 죽지도 살지도 못할지도 모르고···.

- 계약서 어디가 문젠데.

- 예?

- 그러니까! 무슨 조항 때문에 서명 못 하냐고!

천마가 주먹을 꽉 쥐자, 계약서 위로 푸른 불길이 치솟는다.

- 에이, 됐어요.

- 이게 진짜.

- 그게···.

- 빨리!

살짝 흥분한 천마.

잠시 주저하던 창규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 제일 찝찝한 건 이거죠. 정확한 기간 명시가 안 되어 있잖아요. 여기 계약 실행 주체랑 비용 조항도 문제 있고.

- 비용은 안 돼. 그건 아직 내가 못 건드려.

- 그럼.

- 대신 다른 건 맞춰 줄게. 실행 주체는 한 번씩 번갈아 가는 걸로 하고.

- 참, 그리고 뒷부분 책임 조항은···.

어느새 창규와 머리를 맞대고 계약서를 수정하는 그는, 아직 몰랐다.

-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요.

- ···서명이나 해.

계약서에 서명하는 창규의 간이, 거의 쌀알만큼이나 쪼그라들었다는 걸. 이걸 고치기 위해, 여태 삶에 미련 없는 척 행동했다는 사실을.

서걱-!

창규 역시, 사람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을 리가 없다.

무(武)에 미련이 없을 리가 없다.

- 글씨 한번 더럽게 못쓰네.

절체절명의 순간, 마지막 용기를 쥐어짜 계약서를 수정한 창규.

- 스마트폰 세대라···.

- 야.

근데, 천마가 그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어쩌면, 그는 모른 척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 됐고.

어쩌면,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는 창규가 했던 수많은 말 중 한 가지 단어에 아직도 꽂힌 상태였으니까.

- 무(武)를 모르겠다고 했지?

무의 정점에 오른 천마.

사실, 아까부터 마뜩찮았다.

자신의 무(武)를, 분석이니 효율성이니 하는 시시한 틀에 가둬 생각하는 창규의 태도가.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꺾고 싶었다.

- 이제부터, 보여 주겠다.

그래서, 보여 줄 셈이다.

- 그러니.

천마신공의 ‘진짜’ 모습을.

- 느껴라.

* * *

등 뒤로 꿀렁이는 피를 느끼던 진백현.

푹-!

문신의 힘으로 죽은 반동식의 피를 흡수하던 그가, 문득 자신이 손을 꽂아넣은 자의 얼굴을 확인한다.

“뭐야.”

마약중독자처럼 까뒤집은 눈이 다시 생기(生氣)를 찾는다. 방금 찢은 복면 사이로 드러난 얼굴. 가슴팍의 피를 흡수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는 어렵지 않게 이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백창규?”

이 새끼가 여기서 왜 나와.

“너, 반연문에 들어갔었냐?”

진백현의 양 입가가, 귀신처럼 찢어진다.

한번 슥 긁어 본 스피드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그것처럼,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던 그가, 문득 창규의 곳곳을 훑어본다.

“이 새끼 뭐야.”

군데군데 구멍 나고 터진 후드티.

땀내와 쩐내가 진동하는 청바지.

얼마나 신었는지 낡아빠진 워커.

“하! 너 씨발, 여태 어떻게 산 거냐?”

입신양명은커녕, 절절대고 도망치느라 바쁘기만 했을 벌레의 삶을 상상한 진백현. 하찮다는 표정을 지은 그가, 창규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늘였다.

“하여간. 이 벌레 새끼들은, 보물을 봐도 써먹지를 못하니···.”

“쿨럭!”

“뭐야.”

일순 나온 헛기침에 튀긴 핏방울들.

진백현이, 혀를 날름 내밀어 얼굴에 튄 핏방울들을 핥는다.

“아직 살아 있어?”

“············허억.”

“흐흐흐흐, 잠깐만 있어 봐.”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뛴다.

아까부터 반연문의 고수들에게서 빼앗은 피가 빠르게 돌며 아드레날린이 폭발할 듯 터져왔기 때문이다. 무릇 전리품은 축제와 함께 취해야 의미가 있는 법.

“그래, 그래. 조금만 있어봐. 내가 여태까지 너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지?”

“···.”

“편하게 죽일 순 없지. 고생하게 만든 괘씸죄로, 팔다리부터 자르고 제발 죽여 달라고 할 때까지 애원하게 해 줄게.”

“음.”

“제일 시끄럽게 지저귈 때 싹··· 엇.”

번쩍!

문득 떠진 백창규의 두 눈.

무심코 마주한 진백현은, 무한한 심연을 느꼈다. 아까 혈막 안으로 들어온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눈빛.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체 뭘 생각하는 거지?”

“뭐야.”

“적의 목숨을 금세 취하지 않는 것, 나쁜 습관이다.”

자신을 향하지만,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

심연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저 눈빛이, ‘백창규’의 것이 아님을 진백현이 깨달은 순간.

“후배님은 이런 실수를 하지 말도록.”

“뭐, 뭔···.”

“이제, 느껴라.”

슥.

“끄아아아아악!”

허공에 날아간 진백현의 팔.

진백현의 비명이 울려 퍼진 사이로.

분수 같은 피가 허공에서 흩뿌려지는 사이로.

“본좌가.”

천마가.

“···············무(武)의 끝을 보여 주겠다.”

강림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