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무림 견문록-26화 (26/150)

26화.

상공 500M.

“···············진백현.”

타타타타-!

산줄기를 향해 날아가는 헬리콥터.

반씨 가문 월례회의에만 탑승 가능한 헬기까지 무단사용할 정도로, 반동식의 속은 뒤집힌 지 오래다.

“그 개, 씨발 새끼.”

“대표님.”

“무조건. 무조건, 씹어 죽인다.”

“표적 2㎞ 전입니다.”

“···다들 칼 빼.”

“존명.”

우득!

어금니 하나가 부서졌다.

㈜반연건설의 연공실에서 나와 장 실장에게 보고 받았을 때부터, 진백현이 만든 전쟁터가 멀리 보이는 지금까지.

‘오늘, 끝장을 본다.’

끓어오르는 열불이 허파를 뒤집을 것만 같다.

톡톡!

아까부터 가문 단체방에 떠오르는 메시지.

[쓰레기: 병신이냐? 걜 니가 어케잡음ㅋㅋㅋㅋㅋㅋ]

[반승연: 이 누님이 도와줘?]

[곰틀딱: 말씀드렸잖습니까. 그자는 아직 도련님한테는 무리라고요.]

[쓰레기: 나도 못잡았는뎈ㅋㅋㅋㅋ]

자존심, 제대로 긁히는 중이다.

[쓰레기: 난 말했다? 선빵 꽂지 말라고.]

[곰틀딱: 어차피 저자의 목적은 우리가 아닙니다.]

쏟아지는 잔소리들.

형과 누나도 모자라, 장로회 소속 임원까지 저 진백현이란 놈과 정면대결을 피하라고 한다.

[곰틀딱: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길만 터 주시고 협조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쓰레기: 걍 냅두면 업장 몇 개 찢고 찾는 새끼 찾으러 알아서 떠날 놈을 왜 건드림.]

진백현, 대체 누굴 찾는 건데?

대체 왜 이리 빡세게 구는데?

따위의 생각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쓰레기: 너 뭐, 아빠한테 눈도장 찍고 싶어서 이럼?]

[곰틀딱: 진백현의 화를 돋우지 마십시오.]

[쓰레기: 욕심ㄴㄴ 어차피 넌 걔 못 잡음]

[곰틀딱: 슬슬 회장님의 시선을 신경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더 많은 인원을 잃으면, 회장님도 노하실 겁니다.]

[쓰레기: 애초에 너 회장감도 아님.]

우직!

메시지를 보던 중 울컥해 손으로 폰을 터뜨린 반동식.

‘············지랄하지 마.’

문파, 정치정당, 마피아, 모두 핵심은 같다.

기본이 패밀리 비즈니스.

대가리는 가장이다.

‘나보고, 지금 물러나라고?’

타타타타-!

헬기 저 너머로, 보인다.

산불처럼 자욱하게 핀 피안개가.

산자락에 꽂힌 고슴도치처럼 무수한 칼들이.

그 사이사이로, 혈강시가 된 자신의 부하들이.

‘지금 빼면 병신 취급당한다.’

차기 회장이 되기 위해선, 끝까지 책임지는 가장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장 실장.”

“예.”

“콘크리트랑 독분(毒粉) 준비됐어?”

“예. 하명 하시는 대로 투입 가능합니다.”

“조합은.”

“1차로는 미혼산(迷魂散)에 천리미향(千里迷香). 독진 피운 후엔 화골산(化骨散), 학정홍(鶴頂紅), 백령독(白令毒) 순으로 준비했습니다.”

“좋아.”

스윽.

망원경을 눈에 댄 뒤 안력(眼力)을 집중하자, 피안개가 핀 지역을 향해 달리는 차량들이 보인다.

부아아아-!

팔방에서 모이는 덤프트럭과 SUV들.

총 10개의 진법팀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음에도, 아직 진백현 쪽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다.

“저 새끼, 지금 나 기다리는 것 같지?”

“네.”

“대충 사이즈 보여 줬으니까 대가리 나와서 머리 숙이는 꼴 보고 싶은 건가? 앞으로 영업장 찢고 부수면서 사람 뒤지고 다녀도 괜찮다고?”

“원주에선 그랬다고 합니다.”

“내가 씨발, 형 같은 병신으로 보이나 보지?”

피식 웃은 반동식이 뒤를 돌아본다.

타타타타-!

헬기 뒤에 위치한 4명의 친위대.

기량이 절정을 넘어선 지 한참 된 최고수들이, 반동식에게 고개를 숙인다.

“너흰 어떻게 생각하냐? 내가 이길 것 같냐, 질 것 같냐?”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내 생각이 뭔데.”

원래는 도심에 유인하려고 했다.

“상대가, 사술진(邪術陣)의 고수라 들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정면 승부를 하기로.

“당연히 대표님이 이깁니다.”

다만, 이건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다.

상대가 진법을 쓴다는 정보가 들어온 이상, 도저히 질 수가 없는 싸움이니까.

“이유는?”

“예?”

당연한 사실을 묻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친위대의 말에.

“그게··· 결국 진법 싸움 아닙니까?”

“그렇지.”

타타타타-!

헬기 너머로 시선을 던진 반동식이, 묘한 웃음을 짓는다.

“와아아아-!”

“조져 버려-!”

피안개가 보이는 곳을 향해 경공을 펼치는 반연문의 1군 무인들.

그 백여명이 넘는 1급 무림인들 앞으로.

부아아-!

덤프트럭, 지게차, 불도저, 펌프카, 롤러···.

진법용으로 속도 및 기능을 개조한 중장비들이 내달리는 모습이 보였으니까.

“내가 씨발, 다른 건 몰라도···.”

반연문 제3계파의 전신은 ㈜반연건설.

다시 말해면,

“···땅 고르고 뒤집는 데는 반연문 최강이라고.”

진법의 지기(地氣)를 다루는 건 신물이 났다는 얘기다.

* * *

“봐봐요.”

느껴진다.

지금, 이 전당포 근처로 새 진법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아까 쟤들이 펼쳤던 진법도 팔괘 순서 다 바뀌고 있다고요.”

일촉즉발의 상황.

창규는 지금, 천통경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전황(戰況)을 보고 있다.

콰콰콰콰-!

쇄도하는 1급 무림인들과 지원차량들.

반연문의 본대가 산을 넘는 지금.

곧, 진백현과 놈들이 부딪힌다!

“그러니까.”

우득, 우득.

긴장과 설렘이 담긴 표정으로 몸을 풀기 시작하는 창규.

“슬슬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두근! 두근! 두근!

과열된 엔진처럼 뛰는 심장과 알맞게 달아오른 전신의 근육은, 이미 출격 준비를 마친지 오래.

모든 게 준비된 상황에서.

- 야! 아직 나가지 말라니까!

천마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환영진, 계속 지속되는 거 아니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 그건 그런데.

“어차피 나가긴 해야 하잖아요.”

반연문의 독을 매개체로 한 전당포의 환영진.

당연히,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반연문의 본대가 가져오는 저 어마어마한 독들. 저 독들을 매개로 이 넓은 공간에 새로운 진법을 덧씌울 때쯤, 이 환영진은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애초에 사이즈 볼 때까지 여기 있기로 한 거고.”

사방에 흐드러지게 피는 독(毒)과 피(血).

써먹을 매개체가 널린 이 전장에서.

최적의 타이밍에 새 진법을 펼치기로 했었다.

근데.

“그럼 딱 지금인데요?”

벌써 보인다.

“봐요! 쟤들 벌써 원진(圓陣)하고 있네! 방금 건위랑 곤위 사이에 떨어진 바위만 옆으로 살짝 치워도, 당장 이거 2배 되는 환영진 만들 수 있겠구만!”

절벽 아래, 수풀 위, 언덕 샛길.

당장 조금만 둘러봐도, 이 전당포에 피운 환영진보다 훨씬 큰 진을 피울 수 있는 포인트가 눈에 꽂힌다.

“이건 뭐, 사방이 전부 기물 되는 정돈데.”

오행(五行)이 맞닿는 곳.

팔괘(八卦)의 중심을 걷는 곳.

직접 실습해 본 게 환영진밖에 없는 창규에게 있어, 풍부한 지기가 들끓는 저 전장은 그야말로 새로운 실습장이었다.

- 아, 안 된다니까!

“왜요?”

다만 문제는 천마였다.

- 너 임마, 지금 가면 털린다고! 이거 서명해야 된다고!

정확히 말하면, 천마의 ‘선물’.

- 빨리! 빨리 시원하게 서명해! 선물이라니까?

이건, 선물이 아니었다.

창규의 앞에서 두루마리처럼 펄럭이는 이 녹색 환영은, 아까 천마가 말한 것처럼 일종의 ‘계약서’ 같았다.

[-약관 동의서-]

총 10개의 항목이 적힌 계약서.

적힌 항목들은, 슬쩍 보면 전부 혹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 네 말대로 빨리 가야 하잖아! 시원하게 서명하고 가자! 내가 언제 너한테 손해 보게 한 적 있어? 다 너한테 이득 되는 내용이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수상했다.

일단 이 항목만 봐도 그렇다.

[5-2. 일신상의 손해가 있을 시, 본좌는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1번 항목과 더불어, 창규가 덜컥 수락하면 독소조항으로 작용할 수 있는 문장. 전체적으로 깊이 파고들면 창규에게 손해가 되는 내용들을 담은 계약서를, 천마는 강요하고 있었다.

- 간단하게 동의만 하면 되는 거야. 왜 이래? 너 대한민국 사람 아냐? 이런 거 익숙하잖아?

당연히 다른 꿍꿍이가 있다.

분명 저 진백현이라는 건방진 따까리를 손봐 줘야 한다며 오자고 해놓고서, 막상 여기 오니까 위기감을 조성하며 이상한 계약서를 내민다?

‘절대 못 믿지.’

그럼, 애초에 목적은 저 계약서다.

저번에 3급 무림인에게 눈먼 칼 맞을 뻔한 사건 이후로, 창규는 천마는 100% 신뢰하지 않는다.

- 너, 이대로 가면 절대 못 이긴다니까? 봤잖아? 아까 그 새끼 사이즈는 물론이고, 지금 반연문에서 새로 오고 있는 애들도 이전이랑은 차이가 달라!

“·········.”

천마가 계속 겁을 주는 바람에 살짝 흔들릴 뻔도 했지만.

‘가능하다.’

창규는 확신이 있다.

저 전장, 자신이 휘저을 수 있다.

맨 처음 무림맹의 살수 둘한테 벗어난 것이나, 뛰어드는 기차에 올라탄 것이나, 독을 먹었던 것이나, 그 모든 것들이 창규의 판단 아래 이뤄진 일.

‘그때도 확신이 있었으니까.’

이번도 마찬가지다.

판이 조금 커졌을 뿐, 겁먹을 건 없다.

두근! 두근!

오히려 이건 기회다.

남들이 준비해 놓은 수많은 진법의 매개체를 공짜로 이용할 기회, 천마에게 배웠던 이치가 다른 진법의 작동도 가능케 하는지 체크해 볼 기회, 그리고 일대일이면 절대 이기지 못할 괴물들 사이를 활보할 기회.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진 몰라.’

창규는 곧, 저 전장에 뛰어들고자 한다.

이유는 셋.

1. 이 환영진은 시간이 다하면 걷힌다.

아직 시간이 꽤 남았지만, 어차피 결국은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는 시점에 끼어들어야 한다.

2. 이제, 수많은 진법들이 펼쳐질 것이다.

그 타이밍을, 지금 설치되고 있는 수많은 독진들에서 벌써 발견했다.

3. 그 모든 걸, 창규가 통제해야 한다.

판단해야 한다.

이 타이밍이, 다 죽어가는 진백현의 내공을 가져올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타이밍인지. 진백현과 반연문이 공멸하는 상황이나, 둘 중 하나가 여기서 도망치거나, 혹은 누군가가 동귀어진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타이밍인지.

‘가능하다.’

창규는 판단했다.

지금, 저 진들에 개입하면 그 타이밍을 만들 수 있다고.

‘상황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

큰판에 끼고 싶은 건 칼밥 먹는 이의 본능.

평소라면 절대, 절대, 절대 잡지 못하는 이들이 자신을 위해 판을 열어 줬다.

‘이딴 수상한 계약서에 현혹될 것 없어. 어쩌면, 이것도 시험일지도 모르고.’

여태껏 익힌 것만으로 충분하다.

‘반연문 놈들에게 들키지 않고 기물을 움직이는 것.’

할 수 있다.

‘혈강시들을 막기 위해 지기를 피우는 것.’

할 수 있다.

‘피와 독을 이용해 진을 변화시키는 것’

할 수 있다.

‘시체들을 기물로 사용하는 새로운 진을, 싸움터 내에서 연습한 뒤 써먹어 보는 것.’

할 수 있다.

‘진백현과 반연문 최고수들 사이의 생사결을 유도하는 것.’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더 이상 천마에게 의존하지 않고 해내는 것.’

역시, 할 수 있다.

경험이 있으니까.

극복할 수 없어 보였던 위기를, 침착한 분석으로 넘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후···.’

참전을 준비하며 심호흡하는 창규.

옆에서 천마가 이러쿵저러쿵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좋아.’

여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여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나도, 할 수 있어.’

저 멀리서 헬기를 타고 오는 놈들처럼 타고 나진 않았지만, 저 앞에서 호신강기를 두른 채 경공을 펼치는 고수들처럼 재능이 있진 않았지만, 그 역시 자격이 있다는 것을.

‘나도···.’

자격증은 없지만.

양지에서 인정받은 적도 없지만.

‘···무림인(武林人)이다.’

창규는 자격이 있다.

- 야, 야야! 내 말 안 들려? 일단 서명부터 하라니까?

“선배님,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지만.”

- 어어! 너 진짜 가려고!?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죠?”

강호(江湖)를 헤쳐나갈 자격이.

“대차게 사는 거 보여 드리겠다고.”

프스스스-!

백창규.

3파전,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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