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무림 견문록-10화 (10/150)

10화.

담배 연기 자욱한 도박장.

착착착.

패 섞는 소리 가득한 테이블 위로,

문득 TV 너머 중계진들의 고함이 섞여든다.

『-역시 반승연 선수!』

『공중에서 그대로 터지는 독공(毒功)! 그게 끝이 아닙니다! 허공에 퍼진 구름의 반작용을 이용해 상대의 뒤를 잡습니다! 』

『아아아-! 상대가 항복 의사를 표하네요!』

『비무 종료!』

『깔끔한 승부였습니다! 이번 32회 산천 비무대의 최종 우승자는, 역시 이변 없이 무흔독행(無痕毒行) 반승연 선수가-!』

도박장 내부에 걸린 TV 스크린.

㈜반양 그룹이 후원하는 비무 대회 결승전의 승패가 가려짐에 따라, 슬롯머신에 줄지어 앉아 있다 환호성을 지르는 도박꾼들.

“땄다! 나이스 반승연!”

“배당금 너무 짠데.”

“태백시 비무대는 반승연이 국룰이니까. 그냥 은행 이자 같은 거라고 생각 하면 마음 편해. 뭐, 소액이라도 따서 기분 좋잖아?”

“하긴.”

비무 승자를 맞춰서 딴 소액의 판돈.

그 돈을 연료로 재작동하는 슬롯머신들.

스크린 중계가 달군 도박장의 저 후끈한 복작거림들은,

“딜러 양반, 반양 그룹 쟤네 진짜 너무한 거 아냐? 재벌가 자제들이 무공까지 센 건 좀 반칙인데.”

“손님.”

“음?”

“사기 치시면 안 됩니다.”

“뜬금없이 무슨··· 끄아아악!”

푹!

테이블 위로 칼이 박히는 소리에 차게 식었다.

정확히는, 그 사이 손등이 꿰뚫린 한 사내의 비명 소리에.

“내, 내 소오오오온!”

“분명 저희가 입구에서 경고를 드렸을 텐데요. 패를 숨기면 추후 게임을 즐기시는 데 불편함이 생기실 수 있다고. 전부 천장 카메라에 녹화됐습니다.”

도박장 가드가 꽂아 넣은 칼을 들어 올리자, 손바닥 안에 숨겨진 화투패 한 짝이 보인다.

비무 중계로 잠시 떠들썩한 틈을 타 사기를 쳤다는 증거.

딜러와 주변 도박꾼들에게 이를 확인시킨 가드가 손등에서 칼을 뽑자, 얼굴에 분수처럼 핏물이 튄다.

“꺼허어억! 자, 잠깐! 나 이, 이번이 처음이야! 하, 한 번! 한 번만 봐··· 우웁! 우우웁!”

“장 실장님.”

얼굴에 피가 묻은 채 태연하게 남자의 입을 움켜쥔 가드.

저벅, 저벅.

누군가와 함께 걸어오는 보안실장을 바라보며, 그가 이 사기 도박자의 처분을 묻는다.

“이분 어떻게 조치할까요.”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예?”

“여기 다른 손님들 불편해하시는 거 안 보여요? 이 정도는 매뉴얼대로 단독 조치하면 되지, 왜 제 허락 기다리면서 공포 분위기 조성하냔 말입니다.”

“아, 그게···.”

“오늘 새벽 영업 끝날 때까지, 카메라에 찍힌 속임수 영상 스크린에 슬로우로 반복 재생하세요. 그리고 저분은 손목 밑으로 조치한 뒤, 치료실로 모셔가요. 폐장할 때까지 기력 회복하실 수 있게 챙겨 주시고요.”

“예, 실장님.”

얼어붙은 장 내의 분위기.

손목 자르고 도박장 마감할 때까지 감금해 놓으라는 얘기 아닌가. 눈물 콧물 흘리며 발광하는 사기 도박꾼과 그의 입을 단단히 틀어막고 끌고 가는 도박장 보안요원 때문에, 기껏 달궈졌던 분위기가 가라앉았지만.

“다들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보안실장은 능숙했다.

짝 소리 나게 손뼉을 친 그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에, 살짝 쳐졌던 도박장의 분위기가 다시 꿈틀거렸으니까.

“사죄의 의미로, 오늘 빌려 드리는 꽁짓돈에 한해서는 이자율을 15%까지 낮춰 드리겠습니다.”

“오오!”

“거기에 더해, 여기 계신 모두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오늘 새벽 폐장시간은 오전 7시까지 연장하는 걸로.”

“오오오오!”

“그럼 모쪼록 좋은 시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시 들끓는 분위기.

방금 피 본 걸 까먹기라도 한 듯 싱글벙글하는 도박꾼이나, 혜택 같지도 않은 혜택을 특별 서비스처럼 제공하는 도박장이나, 광기에 물든 건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기다리던 창규를 향해 고개 돌린 보안실장.

“요새 섯다가 워낙 인기라 남은 테이블이 지금 여기밖에 없네요. 핏자국은 금방 치워 드릴 건데, 혹시 불편하실까요.”

“아까부터 피 냄새가 좀 나긴 하는데.”

“죄송합니다. 요새 속임수를 쓰는 손님이 많아 칼 소독을 미루다 보니 칼집까지 냄새가 배서요.”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들은 창규는, 결국 아까부터 불평을 내뱉던 천마의 말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 거봐. 이 새끼들, 대가리에 하자 있다니까.

여기,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자리 정리 끝났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 *

창규가 섯다판을 찾은 건 우연이 아니다.

섯다.

화투패 20장으로 할 수 있는 도박 중 가장 사기를 치기 쉽고, 그만큼 많은 ‘타짜’가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종목이다.

- 미친.

뽑은 패 2장의 조합이 높으면 승리,

라는 단순한 룰에 의거 단군 이래 가장 많은 사기 기술들이 개발된 타짜들의 전쟁터. 다룰 패도 20개로 정해져 있고, 화투패 자체도 숨기기 안성맞춤이라 사기꾼 100명 중 99명은 이 섯다판에서 큰다고 생각하면 된다.

- 여기 테이블 30개 중에 절반이 섯다 하는 새끼들인데, 지금 내가 본 타짜만 8명이 넘어.

창규가 노린 게 이 점이다.

타짜들이 많은 만큼 역으로 잡아먹혀도 대놓고 따질 수가 없고, 원래 진행이 빠르고 심리전의 비중이 큰 도박이기에 단시간에 목돈을 만들 수 있는 종목.

- 그래도 알지? 여기 거덜 낼 정도로 많이 따면 안 돼. 네가 타짜처럼 보이면 피곤해진다고.

딱 하나 염려하는 건, 이 도박장의 보안 요원들이다.

- 총 3명인데.

모두 정장에 칼을 차고 있다.

일상에서 도검 패용이 가능한 정식 무인증의 소유자라는 증거. 그러니까, 다들 무림인들이라는 소리다.

- 저기 보이지? 쟤 둘은, 일대일이라면 내 버프로 너도 어떻게 잡을 수 있어. 내공 보아하니 대충 3급 무인증 가지고 있겠고.

[80 / 100] [95 / 100]

솔직히 저 일반 요원 둘은 큰 걱정이 안 된다. Zone 모드 2번에, 천마의 코칭, 그리고 아까 익힌 효율적인 내공 운용만 잘하면 어떻게든 비빌 수 있어 보이니까.

- 근데 쟤는 아직 너한테 힘들겠다.

다만 저 보안실장이란 놈이 문제다.

뿔테안경에 2대8로 똑 떨어지는 가르마. 거기에 감정 변화 없는 일처리까지 전형적인 공무원처럼 보이는 저자는, 오한역에 도착한 이후 본 사람 중 가장 센 놈이다.

[201 / 250]

3급 무인의 평균 소유 내공이 100이고, 2급 무인의 평균 소유 내공이 300이라는 천마의 말을 참고했을 때, 현재의 창규는 최대한 피해야 하는 인물이다.

- 2급일 수도 있고. 저 정도면, 내공이 살짝 모자라도 스킬만 좋으면 커버가능하거든.

단순히 실력뿐만이 아니다.

『장범재 실장』

가슴팍 명찰에 적힌 이름을 봤을 때, 창규는 모텔에서 마지막으로 기절시켰던 건달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도, 도, 도박장이요?’

‘예? 거, 거기 쩐주가 누구냐고요?’

‘여, 여기서 반연 그룹 안 엮이는 사업 없는 거 아시면서···.’

어차피 태백시에 일어나는 흑도들의 사업은, 위로 올라가면 결국 ‘반연 그룹’이라는 강원도 토착 가문과 연결된다.

‘거, 거기 관리하는 장범재가 반연 건설에서 실장 달았어요.’

저 장범재 실장이 바로 그 반연 그룹의 자회사인 ㈜반연건설 소속이다. 무림맹도 적대하려 하지 않는 지방 토착 가문에서 월급을 받는 무림인. 조심해야 한다.

- 야, 됐고! 우린 계획대로 적당히 돈만 따 가면 끝이야. 어차피 쟤들, 사기만 안 치면 따는 족족 꼬장 안 부리고 순순히 내준다며?

맞는 말이다.

원래 이런 지역 사업은 장기적으로 운영하려면 평판이 중요하니까. 사기 치다 걸린 놈 손목 라이브로 날렸으면, 적어도 깨끗하게 돈 딴 놈 고이 보내는 모습은 보여 줘야 대칭이 맞지.

“오랜만에 뵙네요, 교수님. 요새 개강해서 많이 바쁘시죠?”

“목사님, 잘 지내셨어요?”

“원장님은 볼 때마다 피부가 더 좋아지시네요.”

교양 있는 말투, 몸에 밴 매너, 편안한 인상.

테이블과 슬롯머신, 휴게실 및 사무실 곳곳을 유유히 돌아다니며 회원들을 관리하는 저 장 실장은, 기껏 돈 몇백 따갔다고 창규에게 위협이 될 자는 아니다.

- 딱 1,000만 원만 따자. 이 동네에서 집 사고 차 살 것도 아닌데, 수련할 때 그 정도만 있으면 충분해.

좋다.

그 정도는 일도 아니지.

그렇게 마음먹은 창규를 향해.

“어이, 어이!”

착착착!

선(先)을 잡은 딜러가 화투짝을 섞던 중 문득 입을 연다.

“섯다 처음이요?”

“아뇨.”

“아니긴, 칩 교환한 거 보니까 딱 사이즈 나오는구만.”

“귀엽네. 하긴,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옆에서 한입씩 보태는 도박꾼들.

그도 그럴 게, 테이블에 산더미처럼 칩을 많이 쌓은 그들과 달리 창규의 앞에 있는 칩은 너무나 적었으니까.

“이게 무슨 명절 고스톱인 줄 알아? 60만 원으로 무슨 섯다를 하겠다고.”

“일단은 이 정도로.”

“일단 같은 소리. 두세 바퀴만 돌아도 사라질 푼돈으로 뭘 하겠다고.”

“내 돈 내고 놀러와서 잔소리 들어야 하나?”

“자자, 그만들 합시다.”

10만 원짜리 칩 6개, 1만 원짜리 칩 5개.

65만 원.

현재 창규가 가진 전 재산은, 테이블에 있는 다른 도박꾼들에게는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적은 돈이다.

“이 친구 놀러 왔다는데 자꾸 옆에서 윽박지르면 되겠어요? 다들 친절하게 가르쳐 줘야지.”

원래 도박판에서는 끗발 높고 돈 많은 자가 왕이고 하나님. 지금 저들은 창규를 걸음마도 못 하는 아기처럼 대하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섯다판이라는 게, 고수에게나 놀이터지 하수에겐 요단강이라는 거.”

“······.”

그에겐,

아까부터 주변의 도박꾼들이 전부 배부른 돼지 저금통처럼 보이고 있었으니까.

“자, 그럼 시작합시다.”

* * *

타짜.

호구 벗겨 먹는 전문 승부 조작사.

엄연한 사기고 범죄지만, 여기도 나름의 레벨이 있고 수준이 있는 업계다.

- 얘들 연습 열심히 했네.

기예만 뚝 떼서 보면 무림(武林)만큼 치열한 곳.

- 보여? 얘는 지문이 아예 없어. 우리 후배님도 앞으로 이렇게 연습해야 하는데.

밑장빼기, 탄 섞기, 손목 감추기, 낱장치기 등등. 기술 연마를 위해 자해에 가까운 노력을 하기도 하고, 업계 고수의 직전 제자가 되기도 하는 게 바로 이 타짜들이다.

- 이 새끼는 굳은살이 시팔, 손가락인 줄 알았네.

일반인은 절대 타짜를 못 이긴다.

오죽하면 호구를 테이블에 앉히는 게 제일 어려운 작업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 참, 그 친구는 아까 문쪽 테이블에서 11연승 한 애야. 도박장이 고용한 애라 표시목도 빠꼼한 거 같더라.

타짜가 있는 테이블에 앉는 건, 헤엄칠 줄 모르는 사람이 상어가 득시글대는 바다에 빠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타짜불패.

수많은 반칙 기술을 숨쉬듯 사용하는 그들은, 절대 호구에게 질 일이 없···.

‘··················는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는.

“일곱 끗.”

“···아홉 끗.”

“썅, 7땡!”

“···8땡.”

“이번엔 9땡이다, 이 새끼야!”

“···땡잡이.”

말은 안 했지만, 이 바닥에서 패 좀 잡아 본 이들은 모두 느끼고 있었다.

“············.”

“············.”

“············.”

위화감(違和感).

벌써 오링난 일반 도박꾼들은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테이블을 옮겨다니던 소수의 타짜들은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패가 모조리 관찰당하는 듯한 기묘한 위화감을.

‘이 새끼, 초짜 절대 아니야.’

그렇게, 도박장 안에 묘한 경계심이 고개를 들 무렵.

“저기.”

“?”

벌떡!

놈이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좀.”

“아니, 지금 중요한 순간에···.”

“싸, 쌀 것 같은데.”

“···빨리 다녀오쇼.”

어차피 아침 7시까지는 밖으로 못 나간다.

여기도 다른 사설도박장처럼, 보안이며 정보유출이며 업장관리 등의 문제 때문에 자정 이후 폐장시간까지는 안에서 뭐든 것을 해결해야 했으니까. 몇몇 타짜들의 흉흉한 눈빛이 화장실 앞까지 놈을 좇을 즈음.

탁탁탁탁!

화장실 문을 닫은 창규.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도망을 온 그의 입에서, 참았던 숨이 절로 빠져나온다.

“후우우우.”

위험하다.

- 봤냐? 쟤들 눈빛 변한 거?

“미치겠네, 진짜.”

- 대부분 눈치 못 챈 거 같긴 한데, 타짜 몇명 반응이 좀 이상해. 일 더 커지기 전에, 슬슬 마무리하고 아침해 뜰 때까지 존버해야 되지 않겠냐?

“나도 그러고 싶습니다, 선배님.”

섯다를 제대로 해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그런 창규는, 온몸의 진이 빠질 정도로 게임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근데 어떻게 합니까.”

- 뭘 어떻게 해. 그냥 눈 딱 감고 몰빵해서 확 져주라니까?

“이제 와서 일부러 다 잃으면 더 티난다고요! 아까 카메라 검사하는 거 봤죠? 이제 와서 오버하면 완전 이상해요. 쟤들한테 찍힐지도 모른다고.”

- 그러니까 따도 적당히 땄어야지!

섯다는 기본이 심리전.

자연스럽게 져 주기 위해서는, 천마가 보여 주는 패를 토대로 자신이 생각한 상대의 가장 합리적인 행동을 가정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아니, 나도 그러려고 했다니까?”

- 됐고, 지금 얼마 있냐?

“지금 칩이···.”

쟤들.

“5,222만 원이요.”

- 환장하겠네.

···못해도 너무 못한다.

“어쩔 수 없어요.”

현재 시각, 새벽 4시 20분.

현재 수익률, 약 8034%.

“줘도 못 먹는 걸 어떻게 하라고.”

잃고 싶은데, 쟤들이 자꾸 못 받아먹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