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오한역은 항상 사람으로 북적댄다.
호구들을 낚으려는 도박장 호객꾼,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는 소매치기, 운반된 밀수품들을 받아가는 조폭 떨거지들까지. 온갖 시정잡배들이 뒤섞이는 이 동네는 한마디로 요약 가능하다.
‘···전(前) 강원랜드의 완벽한 상위호환.’
태백시 최대의 슬럼가.
강원랜드가 망한 뒤 넘치는 도박 수요를 맞추기 위해 흘러들어온 수많은 사설 도박장들 덕분에, 여긴 돈 냄새 맡고 들어오는 조폭 및 흑도(黑徒) 방파들의 천국이 된 지 오래다.
“자자!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혹시 바카라나 블랙잭 특별 과외가 받고 싶으시다, 하신 분 손!”
“개년아, 우리 손님 건드리지 마!”
“우리 손님? 우리 손님? 너넨 하던 일수놀이나 해, 개새끼들아!”
벌써 기차역 앞에서 언성이 높아진다.
서로서로 먹잇감을 가로채려고 이를 드러내는 사채업자, 깡패, 사기 도박꾼 등등이 즐비한 이 거리 한가운데서.
- 이제부터 얘들이 네 먹잇감이야. 오케이?
그 모든 이들의 내공 상태창이 보인다.
[8 / 10] [10 / 20] [25 / 30]
[15 / 25] [10 / 10] [4 / 8]
역사를 나와, 대로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가게점포들이 밀접한 상가 거리를 지나는 순간순간마다. 창규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내공 수치를 볼 수 있었다.
- On/Off 조절 가능하니까 너무 복잡하면 꺼도 돼.
마치 게임이라도 하는 느낌.
저벅, 저벅.
전당포와 안마방, 모텔과 도박장들을 지나치던 그는, 어느 순간 무의식중에 쌓여있던 ‘강함’에 대한 기준이 바뀌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 어때, 묘하지?
“그러네요.”
천마의 말대로다.
보통은 체격이나 근육, 걷는 자세나 눈빛, 그 외에 만두 귀나 정권의 굳은살 같은 외형적인 요소로만 상대의 강함을 가늠한다.
-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저기 소도 때려잡을 것 같은 근육 돼지는 굳이 나누자면 강자 쪽에 속하는 인간이겠지.
하지만, 그 외형조차도 어느 경지 이상을 넘어가면 그 강함을 온전히 담기가 힘들다. 평범한 레슬러의 귀와 올림픽 국가대표의 귀 사이에 엄청난 외형적 다름이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 근데 쟤, 강호인 사이에선 뭣도 안 돼. 내공 MAX 수치가 10 미만이라, 저건 단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거거든.
내공은 그보다 더 심하다.
- 저기 슈퍼 앞 평상에 파리채 든 영감 봐봐. 툭 치면 죽을 것 같이 생겼는데 내공이 쟤 5배가 넘어. 둘한테 칼 쥐어주고 싸움 붙이면 누가 이길 것 같냐?
골골대는 노인네가 기골 장대한 거인보다 더 많은 내공을 가질 수 있는 게, 현역 3급 무림인이 동네 슈퍼 주인으로 위장하고 있어도 드러나기 힘든 세상이 바로 이 강호(江湖)인 것이다.
- 강호에서 여자와 아이, 그리고 노인을 조심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지금 네 레벨에서 흡성대법 써먹으려면, 일단 제일 중요한 게 상대방 내공 수준 파악하는 거야.
맞는 말이다.
이런 뒷골목에서는 이기는 싸움만 하는 게 생존의 제1원칙. 게다가 언제 무림 연맹의 살수들이 쫓아올지 모르는 지금, 이 내공 상태창은 큰 무기가 될 것이다.
“저기, 젊은 친구. 괜찮다면 이 짐 좀 저기 봉고차까지···.”
“죄송합니다.”
[18 / 30]
“거기 오빠, 여행 온 것 같은데, 혹시 방은 잡았어요? 안 잡았으면 나랑···.”
“괜찮습니다.”
[24 / 35]
벌써 두 명 제꼈다.
일반인보다 내공이 많은 저들이 외지인을 데려가 뭔 짓을 할진 모르겠지만, 썩 유쾌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진 않다.
- 전부 피할 건 없어. 쟤들 정도면 시쳇말로 3류 수준도 안 돼. 칼도 없는 애들인데 뭘 그렇게 쫄아?
두리번거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백창규.
그런 그를 향해, 천마가 채근하듯 말을 뱉는다.
- 흡성대법, 아까 알려줬잖아? 왜, 자신 없어서 그래? 이해가 안 돼?
“이해할 게 뭐 있어요. 뇌에 바로 때려 넣어줬으면서.”
흡성대법의 모든 것, 완전히 전달받았다.
천마가 창규의 뇌로 전달한 정보에 의하면, ‘내공의 심상(心象)화’와 ‘맞닿은 피부 간의 호흡’, 그리고 그 찰나에 일어나는 ‘무의식 수준에서의 상호보완’이 키워드.
“이렇게 심법 운용하면서 5초 이상만 잡고 있으면 된다는 거잖아요.”
5초.
다만 아직 무공을 쓰는데 적합한 몸으로 다듬어지진 않은 창규는, 적어도 5초는 상대를 잡고 흡성대법을 펼쳐야 상대 내공의 일부를 취할 수 있었다.
- 야! 그게 뭐 어렵냐? 아까 너한테 말 건 애들, 이렇게 딱 잡으면 걔들 ‘어, 어?’ 할 때쯤 내공 다 빼먹은 다음···.
“참나, 목 마르다고 독약 마실 거예요?”
- 걔들이 왜 독약이야. 너 살려 줄 생명수지. 그냥 땅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이라고 생각해. 돌아다니다가 보이면, 일단 닥치는 대로 인벤토리에 쳐넣는 거야.
“강호의 은원(恩怨)은 함부로 엮이면 독이 된다는 말도 몰라요?”
- 하! 모기만한 새끼들이 은원은 무슨···
“저한테는 충분히 위험하거든요? 괜히 눈 벌겋게 뜨고 다니는 애들 앞에서 튀는 짓 하면 겁나 피곤해져요. 흡성대법 뽕 뽑기도 전에 이 바닥에 소문날 수 있다니까?”
한적한 곳으로 접어든다.
가래침과 담배꽁초, 무너진 콘크리트 담장에 묻은 핏자국들을 지켜보는 창규를 향해 천마가 채근하듯 말을 재잘댄다.
- 그럼 어떤 놈이 순순히 내 내공 가져가 줍쇼, 하고 팔 내놓냐? 뭔가를 속성으로 뽑아먹으려면 파이팅할 생각부터 해야···
“아니죠.”
따닥따닥 붙은 고층건물들.
한 중국식 요릿집 뒤로 앙상한 철골이 드러난 비상계단을 바라보던 창규가, 그 위로 천천히 발을 옮겼고.
- 야, 너 거기가 어딘 줄 알고 올라가냐?
“최단경로라고 했잖아요. 쉽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왜 돌아가요.”
- 그러니까 그게···.
“기절한 놈들.”
- 뭐?
“흡성대법은 결국 죽은 놈만 빼놓고는 다 쓸 수 있는 거잖아요. 이 동네, 태백시에서 제일 빡센 동네인 거 잊었어요? 구역 다툼하다 눈 까뒤집고 기절한 깡패새끼들이 지천에 널렸는데, 왜 굳이 컨디션 좋은 놈들을 노려요?”
- 야. 걔들이 매일 어디서 쌈박질하는지 너한테 보고라도 들어와? 언제 싸울 줄 알고 그걸 맨날 찾아다녀?
“내 직업이 뭔지 잊으셨나 보네.”
탱, 탱, 탱.
앙상한 철골을 밟고 위로 올라가는 창규.
철계단에 묻은 핏자국과 건물 아래로 보이는 타이어 자국, 그리고 주변 소음들까지 조심스럽게 확인한 그가 옥상을 향해 올라간 순간.
“내 직업병이 원래···.”
- 와, 시발.
천마 역시 볼 수 있었다.
“···저런 싸움판 찾아다니는 거요.”
허름한 건물의 옥상 위.
다 떨어져 가는 낡은 광고판 아래로, 패싸움에서 패배한 수많은 깡패들이 피를 철철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모습이.
- 이거 완전 경험치 밭이네.
정확히는,
목숨만 건진 내공 셔틀들이 창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자, 이제 누구 방법이 최단경로죠?”
- ···빨리 줍기나 해라.
* * *
“···소문 들었어?”
1주일 전부터,
동네 건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미친놈이 있다.
“이번에는 막내가 직접 봤다더라.”
“그 미친 새끼 뭐 하는 새끼지?”
구역 항쟁 때마다 나타나는 놈.
정확히 말하면, 패싸움에서 졌을 때만 볼 수 있는 녀석.
“형님 말대로, 진짜 귀신 아냐? 우리 식구 중에서 그 새끼 얼굴 제대로 본 애가 한 명도 없다며.”
“난 그것보다.”
당연히 얼굴은 확인도 못했다.
처음엔 정신이 하도 없어 얼굴을 확인하지도 못했고, 요 며칠 간은 후드에 마스크까지 착용해 제정신이었다고 해도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을 테니까.
“왜 다 뒤져가는 애들 몸만 슥 만지고 가는 건지 이해가 안 가. 이게 그 이상한 취향이라는 건가?”
무엇보다 묘한 건 녀석의 행동.
정신을 차리면 문득 나타나 있는 녀석에게 팔이며 손목이며 만져진 경험을 겪은 조직들이 한둘이 아니다.
“차라리 돈을 훔쳐가면 이상하지나 않···.”
“돈, 훔쳐갔다는데.”
“뭐?”
“그저께 오거리 쪽 형석이네 애들도 그렇고, 이번에 우리 막내도 그렇고. 들고 있는 지갑 통째로 가져갔단다.”
“씨발, 그냥 도둑이었어?”
경쟁 조직일 리는 없다.
성인오락실이며 안마방 같은 업장이 주는 이익이 얼만데, 항쟁에서 이겼으면서 그깟 지갑의 잔돈이나 털어가는 건 이 바닥에서 고개 들기도 쪽팔린 일이니까.
“진짜 겁대가리 상실한 새끼네. 미친 새끼, 간땡이가 부어서 감당이 안 되는 모양인데···.”
“간땡이도 간땡인데 머리도 잘 돌아가는 새끼지.”
애매하다.
조직이 전면으로 나서서 잡자니 너무 사소한 일이고, 누군지 수배를 때리기엔 얼굴도 제대로 모른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자니 자꾸 모기처럼 앵앵거리는 게 귀찮고 짜증나고.
“걔 하나 때문에 싸울 때 인력을 따로 빼놓을 수도 없잖아?”
“하긴.”
“그렇다고 다른 조직 짓이라기엔, 이 동네에서 그 새끼한테 피해 안 본 조직이 없고.”
“그래도, 이대로 있으면 안 돼.”
하지만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
원래 조폭이라는 게 가오로 먹고 사는 직업 아닌가.
뭔가 본보기를 보여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깡패들이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을 때.
“이런 애들, 본보기로 한번 조져 놔야 다음에 또 조직 우습게 아는 새끼들이 안 나온다고.”
“그건 맞는 말이지.”
허름한 모텔.
툭 치면 부서질 듯한 벽 너머에서 튀어나온 천마를 보며.
- ·········라는데.
건달 합숙소 옆방에 있던 백창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충 예상했어요.”
- 진짜?
“여기 있는 조직들 한 번씩 다 건드렸는데, 꼬리가 안 밟힐 수 없죠.”
- 괜히 돈까지 빼서 코 꿰인 거 아냐?
“어차피 쟤들이 이상한 거 느낀 순간 들키는 건 시간문제예요. 이럴 때 돈이라도 안 빼 왔으면 이렇게 뜨뜻한 물에 샤워도 못 했을 텐데요, 뭘.”
어차피 성과는 충분했다.
지난 1주일 동안.
이레즈미 가득한 깡패들의 피떡된 몸에 일일이 손을 대가며 개고생을 한 보람이 있었단 말이다.
- 솔직히.
모텔방을 둘러보며 피식 웃음 지은 창규.
- 나도 이렇게까지 빨리 모을 줄은 몰랐어. 어떻게 1주일 만에 지 내공의···.
“일단 조용해 봐요.”
파-앗!
[67 / 10]
그의 눈앞에.
온갖 깡패들로부터 흡성대법으로 모았던 내공의 수치가 떠올랐다.
“···이제 내공 최대치 늘릴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