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벌써 4년하고도 6개월.
짧지 않은 근속연수였지만, 창규는 아직도 이 청소업체에 정을 붙이기 힘들다.
“우욱.”
“누가 현장에 신입 데려왔어?”
“우웨엑!”
“에이, 진짜.”
저런 토사물을 보는 건 약과.
폐공장 곳곳에 널려 있는 살점과 뼛조각들을 치우고 흥건한 핏자국을 지우는 이런 일에 어떻게 정을 붙이겠는가.
여긴, 평범한 특수 청소업체와는 강도 자체가 다른 업체다.
“…이게 뭔 청소업체야.”
시체 청소라니.
아무리 무림 연맹이 주관한 합법적인 비무(比武)라 해도, 죽은 이들의 찌꺼기를 청소하는 건 웬만한 멘탈로는 못 할 짓이다. 당장 저 뒤에서 토악질을 하는 신입도 무슨 보디빌더 출신이라던데.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엑!”
“대표님! 쟤를 벌써 A급 현장에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요!”
“무림 연맹에서 이번 뒤처리에 팀원 전체를 요구했어. 신입이라고 빠질 순 없잖아.”
“그래도….”
“야, 백 팀장아. 넌 이 바닥 뻔히 아는 애가 맨날 왜 이러냐.”
그렇다고 안정적인 직장이냐면, 글쎄.
㈜오성 클린.
여긴, 무림 연맹 산하의 수많은 하청업체 중에서도 유독 연맹 의존도가 높은 곳이다. 연봉, 위험수당에 계약서의 기밀조항까지 사사건건 간섭을 받는 이 업체는, 조금만 연맹에 밉보여도 근속이 불안정하다는 얘기.
“우리 일 주는 양반들이 직접 방문한다는데, 여기서 꼭 말 안 듣는 티를 내야겠어? 나 말만 대표지 바지사장이나 진배없는 거 백 팀장도 잘 알잖아.”
“…….”
“그리고 원래 신입은 다 토하면서 크는 거야. 나나 백 팀장이나, 처음엔 저것보다 더 심했잖아?”
“후우.”
그럼에도 왜 이런 힘들고, 대우도 불안정하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못하는 업체에서 일하는지 묻는다면.
“됐고, 백 팀장 보기엔 어때?”
창규의 답은 분명하다.
“죽기 전에 쓴 거 삼재검법 맞지?”
“…아뇨.”
“벽에 절단면 못 봤어? 횡베기 하나도 제대로 못해서 선이 울퉁불퉁하잖아.”
“그럼 벽이 두부 썰리듯 안 잘렸겠죠. 그보다는 일정한 진폭을 보세요. 이 양반처럼 힘 조절에 능숙한 무림인이, 목숨 건 비무에 동네 체육관 입문교재로 쓰이는 삼재검법을 썼다고요?”
검흔(劍痕)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직장이니까.
TV에서 중계해 주는 공식 비무 대전 외에도, 무림인들 간의 사적인 비무가 남긴 흔적을 통해 무림의 세계에 발을 걸칠 수 있는 곳이니까.
“글쎄. 고수로 갈수록 검술이 더 단순하다는 얘기가 있긴 한데.”
“이 사람 그 정도 고수예요?”
“기록상으로는 모산파 소속 1급 무인이라더라.”
“오, 1급이면….”
“그나저나 모산파가 어디야?”
“모르죠. 연맹에 등록된 문파가 어디 한두 갠가.”
시체를 본 것만 3년째.
칼부림 흔적만 봐도 대충 어떤 식의 비무였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살검(殺劍)을 지양한 싸움이었는지, 원한이 깃든 칼부림인지, 아니면 서로의 실력을 견주어 보려는 순수한 호승심인지.
“근데 이상하네요.”
“뭐가?”
그런 점에서 이번 현장은 묘하다.
“선수 둘이 동시에 죽는 건 드문 일이 아니긴 한데….”
칼을 맞댄 무림인 둘이 죽는 것.
이건 의외로 흔히 벌어지는 일이지만.
“…너무 처참하지 않아요?”
뭔가 위화감이 든다.
반 토막이 난 프레스 기계들, 콘크리트 외벽 위로 길게 뱀처럼 구불대는 검상에, 갈기갈기 찢긴 드럼통들까지. 가로세로 50M인 이 폐공장이 엉망이 될 정도라면, 난투를 넘어 그야말로 생사결(生死決)의 비무를 펼쳤다는 얘긴데.
“뭘 또 그렇게 오바야? 저깟 쇳덩이들이 우리한테나 단단하지, 제대로 집중만 하면 2급 무림인도 자를 수 있는 거잖아.”
“근데 잘린 게 한두 개가 아니잖아요.”
“존나게 오래 싸웠나 보지. 실력 비슷하고 자존심 센 애들끼리 만나면 장소 바꿔가며 1박 2일도 싸운다면서.”
틀렸다.
둘의 실력은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창규는 이미 폐공장에 널린 검흔들을 통해 죽은 이들 간의 실력 고하를 체크해 놓았다.
‘…모산파 쪽 무인이 확연히 밀리는 상태였다.’
모산파 무인이 쓴 건 곡도(曲刀).
칼을 맞댄 찰나에 손목 스냅만으로 진폭을 만들어 낸 게 상당한 고수로 보였지만, 그 상대방과는 기본기부터 차이가 났다.
‘…칼날끼리 강대강으로 부딪힌 상황. 한데 수평 치기에 유리한 곡도가 먼저 부러져 튕겨 나갔다.’
상대방이 쓴 건 직도(直刀).
베기보다 찌르기에 익숙한 이 칼로 모산파의 칼을 박살냈다. 심지어 칼의 재질은 둘 다 같은 상황.
이게 의미하는 건 하나다.
‘상대방 쪽의 내공이 더 위야.’
전혀 동등한 레벨이 아니다.
모산파 쪽이 딸린다는 건 콘크리트 바닥과 벽에 새겨진 신발 자국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진각을 밟았을 때 패인 자국과 바닥솔의 마모된 형태를 봤을 때 균형감도 미묘하게 떨어진다.
‘고수들 사이에서 이 정도 차이면 3분 내에 결착이 나지.’
근데 아직도 먼지가 풀풀 날리는 이 현장은 30분은 족히 걸려야 만들 수 있는 난장판.
아귀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근데 상대는 왜 죽었지?’
상대편 무림인은 왜 죽은 것인가.
목에 생긴 흔적이 모산파 무인이 가져온 곡도의 그것과 일치하긴 하지만, 창규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곡도는 첫 충돌 때 이미 저 끝으로 튕겨 나갔을 텐데.
고개를 갸우뚱하는 창규에게, 또다시 신입의 토악질 소리가 들린다.
“꾸웩.”
“야야! 쟤 또 토한다!”
“우오웨에에에엑!”
“토할 거면 살점 없는 데다가 해! 사체 전부 본부에 수거해야 한다니까! 지랄 났네, 진짜!”
찰박, 찰박!
피 웅덩이를 밟으며 달려가는 대표.
그가 향하는 폐공장 구석을 바라보던 창규가, 이번에는 시야를 넓혔다.
무너진 벽에 새겨진 검흔.
나뒹구는 프레스 기계들.
그 뒤로 터진 드럼통들.
‘잠깐만.’
멀리서 보니 얼핏 선(線)이 보인다.
눈을 반쯤 감고.
퇴근 후 여가 시간까지 할애해서 분석하고 공부한 수많은 비무의 흔적들을 떠올리며.
‘……….’
격돌 직전 곳곳에 찍힌 진각(震脚) 자국.
지운다.
모산파의 곡도가 튕기며 생긴 진폭 자국.
지운다.
상대의 직도에 의해 쿵쿵 찍은 자국들.
지운다.
그렇게 하나씩, 비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겼을 흔적들을 가상으로 치우다 보니.
‘…뭔가 이상한 게 껴 있는데?’
보인다.
여러 개의 닭 발자국 위로 덮인 호랑이의 발자취가.
연결된다.
부러진 공장 기계와, 사방의 찢긴 벽과, 조각난 시체 조각이 널브러진 바닥 곳곳에 덧씌워진 선 굵은 검흔이.
‘진짜배기 고수다.’
그것도 비무자 둘보다 훨씬 더 강한 고수.
다시 찬찬히 보니, 아까 대표가 삼재검법의 흔적이 아니냐 했던 저 절단면에 남은 일정한 진폭도 모산파 무인의 것보다 훨씬 더 수준 높은 기예에 의한 것이다.
“야야! 백 팀장 넌 또 뭐 해!”
“웨에에에엑!”
“아주 시팔, 무슨 포세이돈 같은 새끼가 신입으로 들어왔네.”
결론은 하나.
비무에 제 3자가 난입했다.
“우웨에에에에엑!”
“야, 다들 뭐 해! 이 새끼 붙잡는 동안 여기 조각들 좀 치워봐!”
신입의 토악질로 뒤덮인 시체 조각들.
탁탁탁!
가장 먼저 달려가 토사물에 뒤덮인 조각들을 건져낸 창규는, 자신의 추측을 확신했다.
‘…그래, 아까도 이게 이상했어.’
모산파 시체 조각들의 절단면.
안으로 말린 흔적들이 없다.
살아 있을 때가 아니라, 피부재생이 끝난 사후(死後)에 잘렸다는 증거.
‘비무에 개입해 둘을 죽인 뒤, 이미 죽은 자들을 토막 냈다.’
어떻게?
이런 생사결로 번질 수 있는 비무 장소는, 보통 참관한 무림 연맹 소속의 입회인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된다. 게다가, 맹이 주관한 비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디오로 촬영되어 국가 기록센터에 보관되는….
‘…어?’
잠깐만.
‘…설마 무림 연맹이?’
솔직히 작정만 하면 가능하다.
맹이 금칠해 준 국회의원들이 여의도에 한 다스가 넘는 요새, 국가 기록센터로 넘겨질 비무 영상 하나 정도야 쉽게 조작하거나 바꿔치기 할 수 있을 터.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했어.’
처음부터 이쪽을 의심했어야 했다.
당장 저기서 거만하게 입을 여는 놈만 해도 그렇다.
“우욱!”
“김 대표.”
“우웨에에!”
“저거 이리 끌고 와.”
입구에서 손을 까딱하는 무림맹 간부.
이 지역 입회인들을 총괄하는 파견본부 서울지부장이, 하필 이런 날 현장에 방문한 것부터가 예외적인 상황이었으니까.
“그 새끼 뭐야. 시체가 너무 깔끔해서 건더기 묻혀서 주는 거야? 우리 기분 잡치라고?”
“죄송합니다, 지부장님.”
“김 대표, 그 자리 마음에 안 들어?”
“그게….”
“직접 점검 안 왔으면 모를 뻔했네. 김 대표가 기본도 안 된 신입 받는 것도 모르고 계속 일 줬을 거 아냐.”
“…죄송합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당연히 실태 점검.
토악질을 간신히 참는 신입 옆에서 굽신거리는 대표야 뒷돈이 부족했나 싶겠지만, 창규는 저자의 등장이 비무 몰살 현장과 관련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우욱.”
“너 이리 와. 김 대표, 이 새끼 잡아.”
짜악!
한방에 이빨이 비산하고.
“꺼헉!”
“여기 토하러 왔어? 똑바로 안 서?”
“자, 잠까….”
“그래, 칼 쥘 줄 모르는 애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더라.”
“어우어!”
“몸땡이나 계속 키우지! 내공 하나 없는 새끼가! 똥받이짓 하려고 왔으면! 깔끔하게라도 해야지!”
짜악! 짜악! 짜악!
전신에 경련이 일다가 기절시킬 정도로 강렬한 따귀를 때린 무림 연맹 간부. 출석한 ㈜오성클린의 직원들이 따귀를 갈린 오른손에 충격을 받았을 때, 창규는 저자의 왼손에 주목했다.
‘저 개새끼가….’
왼손에 들고 있는 검은 바인더.
‘…왜 하필 오늘 저걸 들고 왔을까.’
저기 꽂힌 종이는, 바로 저자가 이번 뒤처리에 업체 인원 전체 출석을 요구한 이유일 터다.
「비무 후처리 확인 점검서」
청소 시 이상이 없었는지를 점검하는 문서.
시체에 빠진 부분이 있는지, 이상 현상을 발견했는지, 주변 오염도를 측정했는지, 유실물이 있었는지 등 ‘무림맹 주관 비무의 완전한 마무리’를 체크하는 저건, 보통 요식행위로 취급됐었다.
“후우. 김 대표는 가서 일 봐.”
“이건….”
“보니까 뼛조각이랑 살점들은 거진 다 모은 거 같은데, 일단 여기에 직원들 서명 한 명도 빠짐없이 받아와.”
번거롭다고 대충 경리나 사무직원들에게 대필을 시키던 저 문서에 일일이 서명을 받으려고 업체 전원을 나오라 한다?
‘얘네 지금 포장질 중이네.’
이번 비무가 A부터 Z까지 FM대로 진행되었음을 만천하에 떠들고 싶은 거다. 직접 현장을 보고 서명한 업체 직원들의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마무리’가 깔끔해지고, 뒷말도 나오지 않는 법이니까.
‘그럼 아귀가 맞다.’
1급 무인 둘을 모두 죽이고, 그 죽음을 서로의 싸움에 인한 것으로 위장한 뒤, 시체들을 훼손시키고, 이 모든 걸 깔끔한 비무의 테두리에 집어넣는 것도.
무림 연맹의 힘이라면 가능하다.
‘근데 왜?’
왜 죽였을까.
‘죽일 때는 거의 단칼에 죽였는데, 죽고 나서 토막을 냈다.’
원한 관계는 아니다.
그럼 살아 있을 때 최대한 고통을 줬겠지.
시체를 빼돌린 것도 아니다.
그럼 남은 가능성은 하나.
“거기 남은 찌꺼기 제대로 치우라 그래. 이따 본부로 수거해 간 살점에 이 새끼 토악질 묻어 있는 만큼 김 대표 수입 떨어지는 소리 들리게 해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시큼한 냄새 개같네, 진짜.”
코를 막으면서도 현장에서 눈을 떼지 않는 파견본부 서울지부장을 본 창규가 눈을 빛냈다.
‘저 새끼들, 뭔가를 찾고 있었다.’
결론을 내린 그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들 저쪽 벽에 튄 피부터 닦아 줄래요?”
“팀장님.”
“살점 닦는 거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그 헝겊은 표면이 맨들한 금속 닦을 때 쓰는 거고, 이 용액은 산성도가 너무 높아서 자칫하면 피부 다 녹아요.”
“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근데 지금 분위기 좀 험악하니까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이건 제가 담당할게요. 다들 대표님한테 가서 구역 배정 다시 받으세요.”
“괜찮으시겠어요?”
“하하, 네. 다들 보아하니 비위 많이 상하신 것 같은데 저한테 맡기세요.”
기다렸다는 듯 밝게 웃으며 흩어지는 팀원들.
하지만 시체 조각들이 즐비한 이 현장을 역겨워하는 그들과 달리, 창규는 기대 어린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또옥!
또옥!
땀을 뻘뻘 흘리며 잘려나간 발목, 뼈마디, 팔뚝, 내장, 손가락을 포함한 부위들을 솔로 샅샅이 닦아나가는 백창규.
“김 대표, 쟤가 누구였더라?”
“백창규 팀장이라고, 저희 쪽 에이습니다. 저희 신입이 일을 다소 어렵게 만든 건 있지만, 그래도 백 팀장만 있으면….”
“저 새끼가 너희 신입 살렸다.”
“가, 감사합니다.”
그는, 저 둘의 대화와 달리 토악질을 해댄 신입에게 단 한 치의 원망도 느끼지 않았다.
또옥!
피부 주름 하나하나에, 베인 상처 하나하나에 끼인 토사물 찌꺼기들이 없었더라면, 창규가 이렇게 면봉까지 들고 시간을 들여 찬찬히 살점들을 조사하기 힘들었을 테고.
또옥!
그랬더라면 발견할 수 없었을 테니까.
‘…………!’
모산파 무인의 잘린 엄지손가락.
그 두꺼운 손톱 깊은 곳에, 은단보다 작은 크기로 박혀 있던 묘한 캡슐 하나를.
‘…이거다.’
무림 연맹이 찾던 물건.
* * *
퇴근 후.
“…뭐지?”
쏴아아아-!
샤워기에서 찬물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창규는 여전히 현장에서 숨겨온 캡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숨겨 온 것도 아니다.
무인의 엄지손톱에 박힌 캡슐을 꺼냈을 때, 그건 마치 드라이아이스처럼 기화(氣化)하여 그에게 ‘스며’들었으니까.
“…피곤해서 분석할 힘도 없는데.”
벌써 새벽 1시.
찬물로 샤워를 해도 눈이 껌뻑거릴 정도로 피곤한 지금, 창규는 저 캡슐의 정체가 뭐였는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합성영약? 신병이기? 귀물?
일단 퇴근하는 동안 간단히 스마트폰을 찾아보았지만,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후우.”
뚝.
샤워를 끝내고 대충 몸을 닦고 나온 그가, 쓰러지듯 소파에 몸을 던졌다. 오늘 겪은 모든 것들이 뭔가 특별한 사건들이라는 건 알겠는데, 현장에서 진을 다 빼서 그런지 지금은 도저히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머리 터질 것 같네, 진짜.”
어차피 내일은 휴일 아닌가.
좀만 쉬고 생각해 보자.
녹초가 된 창규는, 소파 앞 TV에서 흘러나오는 심야 뉴스에 그대로 정신을 내맡겼다.
「경북도청은, 현재 해안가에 발생한 소규모 강시 사태에 대응하여-」
「오늘 낮 12시, 인양선 광명호가 신안 앞바다에서 구(舊) 무림 대의 보물 인양에 성공-」
“허.”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강시에, 구 무림이라니.
오늘 자신이 겪은 것도 빅 뉴슨데, 500년도 지난 과거의 얘기를 들어봐야 머리만 더 복잡해진다.
“새벽 예능은 뭘 하려나.”
머리를 좀 비우기 위해 리모콘을 돌리자, 오늘따라 창규가 피하고 싶었던 주제들의 뉴스만 튀어나온다.
「저희 방송국은, 올해 있을 연말 비무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특별히-」
연말 비무제라.
20살 때 TV에서 중계해 준 연말 비무제에 나왔던 슈퍼스타의 일검(一劍). 그 아름다움에 빠져 이 바닥에 들어왔었지.
“매화검이었나? 진짜 개쩔었는데.”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하고, 보는 것만으로 취할 것만 같은 황홀함이 창규를 사로잡은 그날.
창규는, 직감했었다.
그 순간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고.
동시에, 깨달았었다.
자신은 평생 저 주변을 맴돌게 될 거라고.
물론, 진짜 주변인이 될 줄은 몰랐지만.
“…….”
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매화검이 경지에 달하면 주변에 향긋한 기운이 피어오른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창규의 몸에서 나는 건, 샤워 한번으로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피 찌꺼기와 토악질 냄새.
“…씨발.”
결국은 시체 청소부다.
무림 연맹 하청업체니 검흔의 분석이니 어쩌니 헀지만, 결국은 남들 찌꺼기나 만지고 사는 인생이라 이 말이다. 문득 기분이 더러워진 창규가 TV를 끄고 주방으로 간다.
“술 땡기네.”
하지만 냉장고 앞으로 가자, 이번엔 검흔과 검상에 대한 분석들이 즐비하게 적힌 채 붙여져 있는 포스트잇이 창규를 반긴다.
“참나. 내공도 모자란 새끼가 이걸 해서 뭐 한다고….”
존나게 분석해 봤자 어차피 시체청소부.
아까 무림 연맹 간부가 신입을 때리며 했던 폭언처럼, 내공도 없고 돈도 스승도 없는 자신이 이 바닥에서 할 수 있는 건 결국 따까리짓 아닌가.
“백날 분석해 봐야 뭐하냐. 대가리만 존나게 깨지지.”
하지만 창규는 포스트잇을 떼지 못했다.
이런 거라도 분석하지 않으면 견디질 못했던 업계 신입이었을 때처럼, 아직도 무림(武林)을 동경하는 마음은 그대로였으니까. 무인증을 딸 수 있다면 어떤 미련한 짓이건 할 수 있는 욕망이 아직 있었으니까.
“오케이.”
고개를 돌린 창규.
머리로 납득하지 못하면 실재(實在)로 인정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도 아니고, 그럴 기운도 없었던 그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까부터 헛것으로 치부했던 존재.
“…아저씨 뭔데요?”
아까부터 창규의 주변을 날아다니던 홀로그램.
아까부터 시끄럽게 떠들던 참새 크기의 무인(武人).
- 안 보이는 척하기 놀이 이제 끝났냐? 고맙다야, 덕분에 귀신 된 기분도 느껴 보고….
"그러니까 누구시냐고."
- …내가 누구냐고?
그러니까.
처음 캡슐을 받아들였을 때부터 튀어나온….
- 너 진짜, 천마 모르냐?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