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1화 (161/251)

사천당가 남매의 첫만남

당철한은 아버지 당벽의 옥패와 자신과 똑 닮은 여인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것입니다.”

당철한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정황상 눈앞의 여인이 그의 배다른 동생이라는 사실이 명확했기에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철한은 이미 일 년이 넘게 사천당가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물었다.

“아버지께서 혹시 신의님의 가족과 함께 지내고 계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소소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으나 당철한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결국 당소소는 그녀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낳고 일 년도 채 못되어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외삼촌 댁에서 자랐고요.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당소소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내뱉고는 당철한의 눈치를 살폈다.

당철한은 처음 보는 여인이 그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계속해보십시오.”

당철한이 차갑게 답하자 당소소의 어깨가 축 처졌다.

“아버지께서는 나중에서야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자주 오지도 않으셨습니다. 매해 한두 번씩 오신 것이 다입니다.”

당소소는 마치 죄인이라도 것처럼 변명했다.

“실례하지만 나이가 어찌 되시는지요?”

“저는 올해로 스물이옵니다.”

“스물이라······.”

당철한은 당소소의 나이를 가늠하고 침음을 흘렸다.

과거에 아버지 당벽이 백 년에 한 번 핀다는 월란화를 캐러 갔다가 실종된 적이 있었다.

반년 만에 돌아온 당벽은 꽃을 꺾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구사일생으로 살았으나 잠시 기억을 잃어 산 아랫마을에서 지냈다고 했었다.

‘그때 기억을 잃은 아버지와 인연을 맺은 거였구나.’

당철한은 줄곧 냉정한 얼굴로 당소소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앞의 여인과 그녀의 어머니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아버지 당벽도 기억을 잃은 채 여인과 만나 연을 맺은 것이니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예로부터 사천당가는 가문의 비기를 후대에 물려 줘야 했기에 혈통을 중요시했다.

자식이 없으면 방계의 사람을 양자로 들여서라도 사천당가의 비기를 지켜왔다.

그러니 밖에서 낳아 온 자식을 함부로 들일 수 없었으리라.

‘아버지도 고충이 있으셨겠구나.’

당철한은 풀이 죽은 당소소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신의님.”

당소소는 당철한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저는 당소소입니다. 소소라고 불러주시어요.”

“소소라. 예쁜 이름입니다.”

“말씀도 낮춰주시고요.”

“아직은 익숙지 않아서요.”

“그럼, 저는 소가주님을 오라버니라 불러도 될까요?”

긴장하며 말하는 당소소를 보며 당철한은 그녀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철한이 당소소의 어깨를 다독여주자 그녀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나저나 아시는지 모르겠으나 아버지께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신지 오래 되었습니다. 일 년 중에 한 달은 약초 채집을 위해 밖에 다녀오셨는데 이번에는 연락도 없이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저희로서는 스무 해 전에 비슷한 일도 있고 해서 기다리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걱정됩니다.”

당철한의 말을 들은 당소소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소매 안에서 둘둘 말린 뭔가를 꺼내 당철한에게 건넸다.

“이것을 받아주세요. 오라버니. 아버지의 명으로 줄곧 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게 뭔가요?”

“천의보감(天醫寶鑑)입니다.”

“뭐라고요?”

당철한이 놀라 당소소의 손에서 종이를 낚아챘다.

천의보감은 사천당문의 가주에게만 내려오는 의서다.

그런데 그런 귀한 책이 당소소의 손에, 그것도 책이 아닌 낱장으로 보관되어 있었다니.

당철한은 두루마리를 풀어 탁자 위에 늘어놨다.

책을 일일이 뜯어내 기름을 먹이고 이어 붙인 것이었다.

“이게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아니, 그보다도 이것을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재작년 겨울, 어느 날엔가 아버지께서 이것을 들고 저를 찾으셨습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쫓기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절대 빼앗기면 안 되는 귀한 것이니 제게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으라 말씀하시고 떠나셨습니다.”

“그것이 정말입니까?”

“어찌 오라버니께 거짓을 고할까요? 그런데 아버지가 떠난후 후, 일주일 후에 아버지께서 묵으셨던 객잔에 불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작은 일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들고 사천당가에 찾아가 볼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습니다. 사천당가가 안전하다면 어찌 아버지께서 이것을 제게 맡기셨을까요?”

“그래서 신의께서 줄곧 가지고 계신 것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이것을 가지고 황궁에 숨었습니다.”

“황궁이라고요?”

당철한은 갑자기 황궁 이야기를 하는 당소소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시에 사촌 누이가 수녀 선발을 나가게 되었는데 누이에게는 이미 미래를 약속한 정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수녀 선발에 나갔고 황궁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수녀를 선발하는 관리에게 뇌물을 줬습니다. 황궁이라면 아버지의 말씀대로 안전하게 천의보감을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수녀는 황제의 여인이 될 후보가 아닌가?

수녀로 뽑힌다 해도 황제의 눈에 들지 못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죽을 때까지 황궁에서 독수공방해야 하는 불쌍한 처지가 그들이었다.

당철한은 눈앞의 배다른 동생이 안쓰러움을 넘어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들키지 않으려고 책을 다 잘라서 이렇게 이어붙여서 황궁에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이것도 잊어버릴까 걱정되어 책을 읽고 내용을 다 익혔습니다. 부디 저를 용서해주세요. 이것은 사천당가의 가주에게만 내려오는 비기인데 밖에서 낳은 자식인 제가 어쩔 수 없이 익히고 말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당철한이 말을 흐리자 당소소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철한은 길게 숨을 몰아 내쉬고는 당소소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소소야. 어찌 그런 힘든 일을 자청하였느냐?”

당철한이 그녀를 편하게 소소라 부르자 당소소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오라버니······?”

“사실은 너의 존재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예? 정말이요?”

“아버지께서 주기적으로 지난날 기억을 잃었던 월란화가 피었던 산으로 가시기에 그것을 수상히 여겨 한번 따라간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다.”

당소소는 당황하여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사라지지만 않으셨다면 너를 사천당가로 불러들여 함께 살자고 말씀드릴 생각이었다. 혹시 아버지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듣지 못하였느냐?”

당소소는 기쁜 마음을 꾹 누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천의보감을 제게 맡겨 주신 것을 보면 누군가 이것을 노리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그것은 내가 알아보겠다. 이제는 너의 이야기를 해보렴. 수녀가 되어 황궁에 갔다면서 어찌 이곳에서 신의 노릇을 하는 것이냐?”

“그것은 말하자면 깁니다.”

고민하던 당소소는 황궁에 들어가자마자 화귀인에게 실수하여 신형사에 들어갔던 일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승은 상궁 백씨를 만난 것부터 말하면 될 일이었다.

“오라버니. 제 은인인 분의 이야기를 먼저 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

경정은 당소소와 당철한이 들어간 곳의 옆방 옷장 안에 들어가 벽에 귀를 붙이고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듣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을 다 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사천당가의 보물인 천의보감을 지키기 위해 황궁에 자진해서 들어오신 것이었어. 이제야 재인 마마님의 의술이 뛰어난 이유를 알 것 같다. 혹시라도 천의보감을 빼앗길까 봐 달달 외우셨으니 그럴 수밖에.’

경정은 당소소의 이야기를 들으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생각해보니 재인 마마님을 만난 것이 신형사(慎刑司)였지. 그때 내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재인 마마님은 지금쯤 암투의 희생양이 되어 벌써 죽은 목숨이셨을 것이다.’

경정은 생각하면 할수록 회귀하자마자 당소소를 만난 것이 천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소이자가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마마님. 재인 마마님과 당 대협의 말씀을 엿듣고 계시는 건가요?”

“어험. 무슨 소리냐.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경정은 옷장에서 나와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경정의 비밀을 알게 된 소이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강호의 고수들은 멀리서 나누는 대화도 다 들을 수 있다죠? 재인 마마님이 당 대협과 무슨 말씀을 나누고 계셨습니까?”

“예끼. 말조심해라. 여기에 강호인이 어디 있고 고수가 어디에 있다고 그러느냐?”

경정이 시치미를 떼자 소이자가 능글맞게 웃었다.

“예. 잘 알겠습니다. 마마님의 말씀대로 이 방에는 폐하의 총애를 받는 후궁 마마님과 그 마마님의 총애를 받는 환관이 있을 뿐이죠.”

경정은 그녀를 놀리는 소이자에게 꿀밤을 ‘콩’하고 때렸다.

***

무림맹 특작조의 조장 염진과 책사 원승균과 함께 이번 일의 진술서를 확인하고 있었다.

“각주님.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어찌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의 진술이 이렇게 하나같이 똑같을 수가 있죠?”

“같은 일을 당했으니 그럴 수 있지 않겠는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그들의 진술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습니다.”

원승균도 여인들의 일관된 진술이 심히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색마는 빙공에 의해 죽은 것이 확실하고 더는 캐낼 일이 없었다.

“이대로 정리하고 무한으로 가세. 지금은 마교의 부활이 더 중요하네.”

“예. 각주님.”

밖으로 나가려던 원승균이 갑자기 뒤 돌아 물었다.

“참! 색마에게 납치된 여인들은 어찌할 것인가? 이곳 지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이니 본맹에서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그것은 안심하시지요. 색마에게 은자 오만 냥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것을 빙각과 북해빙궁에 전달했는데 그들이 그것을 받지 않고 녹가에 건넸다고 합니다.”

“녹가?”

“예. 천진의 명문세가인 녹가에서 친히 여인들을 돕겠다고 나섰고 빙각과 북해빙궁이 뜻을 모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녹가 출신의 후궁이 납치자 명단에 있었어. 참으로 고귀한 여인이로구나.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일 텐데 사람들을 돕고자 나섰다니.”

“각주님. 쉿! 그것은 비밀이옵니다.”

염진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키자 원승균은 실소했다.

“후궁을 거론하지 말라고?”

“이번 일에 백빈 마마님을 연루시키지 말라는 황궁의 엄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강호의 일인데 어찌 황궁이 끼어드는가?”

“맹주께서도 윤허하신 일이니, 말씀을 아끼시지요. 그리고 조만간 황제 폐하께서 이곳에 오실 것이라 하십니다. 저희는 그 전에 천진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후궁이 폐하의 총비라더니 기어이 여기까지 달려오는군. 어차피 모두 무사하니 그것으로 되었다. 가자. 마교의 일이 더 중하다.”

“예. 각주님.”

***

고정엽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경정은 소이자와 함께 저자로 나갔다.

당소소를 강호로 보내달라고 부탁하려면 고정엽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

“마마님. 은자 오만 냥을 황금전장에 맡겨 놓았습니다.”

“오만 냥 중에 이만 냥은 챙겨둬라. 긴히 쓸 곳이 있다.”

“이만 냥이나 되는 돈을 어디에 쓰시려고요?”

“하오문을 통해 사람을 사서 천산에 보내야 할 것 같다.”

“아. 소태감 어르신을 살피려고 그러시는군요.”

경정은 당장 천산에 달려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슬펐다.

‘황궁에 돌아가 재인 마마님의 일을 처리하고 청초각의 남은 보물을 챙기자마자 강호로 튄다. 바로 천산에 달려가는 거야.’

경정이 소이자와 함께 저자를 걷고 있는데 천진에서 제일 큰 객잔에서 강호인으로 보이는 젊은 무인들이 잔뜩 몰려나왔다.

“저들이 대체 누구냐?”

“무림맹에서 오신 분들이실 겁니다. 색마를 잡으러 왔다고 하네요.”

“흠. 색마는 나와 풍죽오우 그리고 엄세록 도통께서 잡으셨는데?”

“뒤늦게 도착하여 조금 손을 보탠 것뿐이라니 무시하시지요.”

“그래?”

그 순간 해맑게 웃던 소이자의 얼굴이 굳었다.

“왜 그러느냐? 돌이라도 밟았느냐?”

소이자가 놀란 눈으로 경정을 밀치고 방금 지나간 무림맹 특작조를 향해 달려갔다.

경정이 놀라 뒤따라가 보니 소이자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러느냐?”

“마마님. 제 친구를 봤습니다.”

“친구?”

“예. 마마님께는 송구하지만, 마마님과 이름이 같은 제 친구가 있는데 방금 그 친구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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