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251)

백씨 자매에게 초대장이 날아들다.

안휘성의 백부에 황궁에서 온 초대장이 도착했다.

백부는 염색 도가를 운영하는 거상이었으며 백부의 주인인 백가는 몇 해 전에 죽었고 지금은 부인인 백부인이 염색 도가와 백부를 꾸리고 있었다.

백부인은 시집간 두 딸을 백부에 모두 데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두 딸이 모두 데릴사위를 들였기 때문이다.

백부의 첫째 딸인 백려연과 둘째 딸 백차홍은 초대장을 보며 설레고 있었다.

“어머니. 황궁 연회의 초대장이 왔습니다. 이것은 우리 가문의 큰 영광입니다.”

“연아. 우리 염색 도가가 안휘성은 물론이고 황제께서 계시는 북경에서도 장사가 잘되니 우리 백부를 부르신 것이 아니겠니?”

“맞습니다. 어머니.”

그들은 황궁 연회에 아무나 초대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작은 초대장 하나로 뛸 듯이 기뻐했다.

“연이와 홍이는 어서 가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무슨 준비를 말씀이십니까?”

“황궁 연회에 가면 고관대작들을 만나기 쉽지 않겠느냐? 그들에게 줄을 대면 너희 낭군님들의 출셋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백려연과 백차홍은 백부인의 말을 듣고 눈이 커졌다.

“그렇군요. 그렇게만 된다면 낭군께서 관직을 쉽게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자매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그들의 남편이 한미한 9품 관직에 머무르고 있어 그것이 하나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때마침 황궁 연회의 초대장이 수중에 떨어지니 이것은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백려연과 백차홍은 어찌하면 그들의 낭군을 더 높은 인사들과 맺어줄까 고민하여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때 백부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백경정 그 아이도 지금 황궁에 있겠구나.”

백부인이 경정의 이름을 거론하자 백려연과 백차홍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머니. 그 천한 것의 이름을 어찌 꺼내시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어머니. 다시는 그 천한 것의 이름을 말씀하시지 마세요. 듣기만 해도 재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궁녀라 해도 죽을 때까지 궁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천한 것은 이미 나이가 찼으니 궁에서 나왔겠지요.”

“아니다. 출궁했다면 어찌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아직 황궁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천한 것이 황궁에서 구르며 눈치가 생긴 것이겠지요. 백부로 돌아오면 저와 언니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저희는 그 천한 것이 다시 백부 안에 발을 들이는 것을 절대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연이 언니의 말이 맞습니다. 안휘성에 온다면 당장 청루로 팔아버릴 것입니다.”

백부인은 악심을 드러내는 딸들을 보며 놀라기는커녕 크게 기뻐했다.

“역시 너희들은 내 딸들이다. 이 어미를 위해 천한 것을 어찌 처리할지 죄다 준비해 놓았구나.”

“그럼요. 아버지께서 그 천한 것을 데리고 왔을 때 어머니께서 한 달이나 앓아누우셨잖아요. 더 화가 나는 것은 천한 것이 기억을 잃은 척 연기를 하며 백부에 들러붙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백려연과 백차홍은 경정이 처음 백부에 들어온 일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백부인은 화를 내는 딸들을 달래며 말했다.

“천한 것을 떼어내니 백부의 앞에 좋은 일만 생기는구나. 앞으로 기뻐할 일만 남았으니 즐기자꾸나.”

“예. 어머니. 그러합니다.”

백부 안에 모녀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양심전에서 정무를 보고 있던 고정엽은 눈앞에 서 있는 엄세록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뭐라 하였는가? 엄 도통?”

“말씀드린 그대로이옵니다. 풍죽오우 분들께서 황궁 연회에 참석하시겠다고 연통이 왔습니다.”

“그동안은 초대장을 보내도 무시하더니.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고?”

“그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녹 씨 가문에서도 녹경 소저와 녹빙 공자께서 오실 거라 하셨습니다.”

“녹 씨 가문은 대학사를 배출한 명망있는 문인 가문이니 상관없다. 하지만 어찌 풍죽오우가 온단 말이냐?”

“풍죽오우 분들도 제갈세가, 사천당가, 남궁세가의 자제분들이십니다. 매해 초대장이 나갔는데 한 번도 응하지 않으시다가 이번에 처음 응하시는 것이죠.”

“그럼, 벽서온은? 맹주도 온다는 것이냐?”

“벽 맹주께서는 무림 맹주의 자격으로 오신다고 하더이다.”

“이젠 관무불가침같은건 생각하지도 않는군. 이 자들이 진짜.”

고정엽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엄세록에게 말했다.

“모두 거절해. 오지 말라고 하게.”

“이미 초청장을 보냈고 오시겠다고 답하셨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태후께서도 사실을 듣고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모후께서도 벌써 알고 계시나?”

고정엽은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죽오우와 녹 씨 일가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라서 태후도 잘 알고 있었다.

태후와 고정엽이 황궁에 들어간 이후로 잘 볼 수 없어 마침 태후가 무척이나 그리워하던 참이다.

고정엽은 어쩔 수 없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소공공.”

“예. 폐하.”

“황궁 연회의 좌석 배치도를 가져와 보게.”

소공공이 급히 황궁 연회의 좌석 배치도를 가져와 황제의 앞에 대령했다.

풍죽오우가 거의 마지막으로 승낙 의사를 보내왔기 때문에 자리는 거의 다 정해져 있었다.

고정엽은 붓을 들더니 후궁들과 멀리 떨어진 한쪽 구석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폐하?”

“내무부에 일러 자리를 다시 정하라고 하게. 풍죽오우 놈들이 오면 죄다 이곳에 밀어 넣게. 알아들었나?”

소공공은 흘러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답했다.

“폐하. 분부 받잡겠습니다.”

소공공이 물러나자 엄세록이 다시 앞으로 섰다.

“또 뭔가? 누가 또 온다고 연통을 넣었나? 이번에는 대체 누군가?”

엄세록은 뻘쭘한 얼굴로 답했다.

“백소의 마마님의 사가 식구들도 연회에 온다고 합니다.”

“소의의 식구들이라고?”

“예. 마마님의 자매들이옵니다.”

고정엽은 놀라 벌떡 일어섰다.

엄세록은 그런 황제를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어찌 자매들만 오는 것인가? 아버님과 어머님도 오시면 좋을 것을.”

“소의 마마님의 아버님은 몇 해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안휘성에서 염색 도가를 운영하고 계시어 시간을 내기 곤란하다고 하십니다.”

“안휘라고?”

“예. 폐하.”

고정엽은 경정이 고향을 무안이라 했던 것을 떠올리며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고향이 무안이지 지금은 안휘에 살고 있겠거니 하며 웃어넘겼다.

“그랬구나. 내가 왜 미처 생각을 못 했을꼬. 소의에게도 사가의 가족이 있었을 터인데. 내 불찰이로구나.”

오늘따라 황제의 기분이 극과 극을 달렸다.

고정엽은 경정의 식구가 온다는 소식에 다시 소공공을 불렀다.

“소공공. 연회 배치도를 다시 가져와 보게.”

소공공이 자리 배치도를 가지고 달려와 황제의 앞에 펼쳐 보였다.

고정엽은 다시 붓을 들어 후궁들의 가족이 앉는 귀빈석 제일 앞자리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곳에 백소의의 가족을 앉게 하게. 소공공.”

소공공은 정성껏 그려진 동그라미를 보며 웃으며 답했다.

“예. 명을 따르겠습니다.”

소공공이 나가자 고정엽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폐하. 어디를 가려고 하십니까?”

“어디긴. 청초각으로 가세. 백소의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것이 아닌가?”

엄세록은 콧노래를 부르는 고정엽을 따라 청초각으로 향했다.

이번 황궁 연회는 평소와는 다른 색다른 연회가 펼쳐질 것 같았다.

***

경정은 갑자기 온다는 사가의 식구들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 큰일이네. 진짜 백경정 마마님의 일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경정은 후궁 백소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녀가 승은 상궁으로 황궁에 십 년간 처박혀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황제와 재회하여 그 이후로 고정엽의 총비가 되었다는 사실 밖에 몰랐다.

“십 년간 황궁에서 백치라 불리며 살았던 마마님이시다. 사가에 돈이라도 많았다면 분명 큰 힘이 됐을 터. 하지만 어찌 가족들이 돕지 않은 것이지? 안휘성에서 염색 도가를 하는 부잣집이라고 들었는데.”

경정은 뭔가 께름칙했다.

그녀가 후궁으로 깨어난 이후로 한 번도 사가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녀의 소지품 중에도 가족에게 온 서신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총애를 얻는 후궁이 되었다고 하니 콩고물을 얻어먹으러 오는 것 같은데 말이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경정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소이자. 밖에 있느냐?”

“예. 마마님.”

소이자가 경정의 앞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분부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마마님?”

“너는 지금 당장 궁 밖에 사람을 보내 알아 올 것이 있다.”

“궁 밖에 사람을 보내요?”

“그래.”

소이자는 말단 환관으로 궁 안에서 허드렛일만 했기에 어찌하면 궁 밖의 사람을 부릴 수 있는지 몰랐다.

“내가 알려주마. 은자를 내어 줄 테니. 이것을 가지고 출궁하여 저잣거리로 가라.”

소이자는 혹시라도 까먹을까 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었다.

“저잣거리의 북쪽에 보면 도박장과 기루가 즐비한 홍등가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해운전당포를 찾아가서 일을 의뢰해라.”

“전당포에 일을 의뢰하라 굽소?”

소이자는 다른 곳도 아니고 왜 전당포에 일을 맡기는지 알 수 없어 눈을 크게 떴다.

이곳은 하오문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전당포지만 실상은 뭐든지 돈만 주면 다해주는 곳이었다.

경정이 환관이었을 때 윗전들이 이곳에 일을 맡기는 것을 자주 봐왔기에 알고 있었다.

“좀 있으면 해가 떨어져 출궁할 수 없다. 그러니 어서 서둘러라.”

“예. 마마님.”

경정은 안휘성에 있는 후궁 백경정의 사가 소식을 알아다 줄 것을 부탁했다.

하오문이라면 분명 며칠 안에 답을 가져올 것이었다.

소이자가 떠나자 경정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제발 마마님의 가족만은 멀쩡했으면 좋겠다. 힘들게 살다 가셨는데 가족까지 개차반이라면 너무 슬프잖아.”

경정은 가여운 후궁 백경정을 떠올리며 바라고 또 바랬다.

***

도성에 도착한 백씨 자매는 화려한 도시를 보며 깜짝 놀랐다.

그들이 사는 안휘성도 큰 도시임이 분명하지만, 황제가 사는 북경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그들은 내일 황궁 연회에 앞서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사고 객잔에 들어왔다.

방안에 오늘 산 장신구와 옷을 늘어놓고 구경 중인 백려연과 백차홍은 입이 귀에 걸렸다.

그들의 낭군님들은 옷과 장신구 값으로만 오늘 하루 은자를 백 냥이나 쓴 부인을 보며 탐탁지 않은 얼굴을 했다.

그녀들의 과소비가 도를 넘은 것이다.

낭군님들의 불편한 시선을 느낀 백려연과 백차홍은 눈을 흘겼다.

“그러지 말고 옆방으로 가시지요. 우리 자매끼리 한방을 쓰겠습니다.”

“알겠소. 부인.”

데릴사위로 들어와 힘이 없는 사내들은 백씨 자매의 말에 대꾸도 하지 못하고 알았다 답했다.

백려연이 문을 열고 나가라 하자 사내들이 쭈뼛거리고 밖으로 나갔다.

방에 단둘만 남자 자매들은 그녀들의 남편을 험담했다.

“어차피 우리 백부의 돈으로 사는 것인데 왜 저렇게 싫어하는 거야? 좋은 옷을 사서 한창 기분이 좋았는데. 다 망쳐 버렸네.”

“연이 언니. 참아. 못사는 집안에서 자라 돈 쓰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 일 테지.”

“황궁에 가면 선녀 같은 후궁들이 계실 텐데 이 정도는 차려입고 가 줘야지. 안 그래? 홍아?”

“언니 말이 맞아.”

백씨 자매는 그들의 미모가 출중하다고 여겼기에 옷과 장신구만 제대로 갖춘다면 황제의 후궁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녀들이 새옷을 입어보며 한껏 들떠 있는데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연이 언니. 밖이 시끄러운데? 우리 나가보자.”

“됐어. 뭐하러 그래. 그냥 여기 있어.”

“난 나가볼래. 힘들게 북경에 왔으니 재미난 구경을 놓칠 수는 없지.”

백차홍이 먼저 밖으로 나가자 백려연이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 나왔다.

백려연과 백차홍은 이 층에서 소리가 나는 아래층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네 명의 사내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백려연과 백차홍은 조각같이 생긴 사내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어머나. 어찌 저렇게 사내답게 잘생긴 분들이 다 계실까?”

“연이 언니. 너무 멋지지 않아? 난 태어나서 저리 잘생긴 분들은 처음 봤어.”

백려연과 백차홍은 일 층의 사내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들은 황궁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성에 온 풍죽오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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