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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425화 (완결) (425/425)

425화

혹독한 추위의 대지.

입김조차 밖으로 나오는 즉시 얼 정도의 차가운 날씨였다.

두꺼운 털옷을 입은 일행이 북해빙궁에 도착했다.

이미 연락이 전해졌는지 빙궁 앞에 설무청과 설강의 모습이 보였다.

중원 무림 최고의 인물이 오고 있었다.

중원인들은 그들을 가리켜 고금제일인이자 화산대도라 불렀다.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빙궁주 설무청은 일행 사이에서 앞서 온 고진유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하하하. 사위, 어서 오시게나.”

“장인어른께서 직접 나와주시고 감사합니다.”

“허허, 고금제일인이 오는데 어찌 앉아서 기다리겠는가? 잘 왔네.”

“그동안 무탈하셨습니까?”

“나야 늘 잘 지내고 있다네.”

그는 고진유와 인사를 한 다음 설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왔느냐?”

“네, 아버지.”

“먼 길을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아니에요. 빙궁에 온다고 하니 전혀 힘든 게 없었어요.”

“후후후, 그러더냐.”

“아버지, 그리고 여기…….”

설미는 인양에게서 백색의 털에 싸여 있는 애기 바구니를 받은 뒤 그에게 내밀었다.

“하하하!”

설무청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나타났다.

그는 애기 바구니 안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애기가 빤히 눈을 뜬 채 그를 말똥거리며 마주 보고 있었다.

“이 녀석이냐?”

“네. 아버지 외손자인 무하라고 해요.”

“하하하하! 잘생겼구나.”

스윽.

그의 옆으로 설강이 고개를 내밀었다.

설강도 아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무하가 누이를 닮은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아기에게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 계속 여기에 계실 건가요?”

“아, 맞다. 들어가자꾸나.”

잠시 후.

성문에 모여 있던 일행은 빙궁으로 들어갔다.

* * *

“자유다.”

중원으로 내려온 네 사람.

고진유와 묵경, 그리고 인양과 녹림야검이었다.

그들 네 명은 여전히 함께 다녔다.

설미를 마지막으로 그녀들을 모두 처가에 데려다주는 임무를 마쳤다.

“진유 형, 좋습니까?”

“인양아.”

“네…….”

“나중에 알게 될 게다. 묵경 형을 봐라. 이번 여행을 얼마나 좋아하더냐?”

묵경은 며칠 전부터 얼굴에 화색이 돌 정도였다.

“진유 형, 이젠 뭘 할 거야?”

“섬에 가보려고.”

“어디?”

“만일 그대로 있다면 사부님과 지냈던 섬에 가보려고. 얼마 후면 그분의 기일이거든. 이제 모든 것이 정리되었으니 사부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해.”

“화산섬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세 사람 또한 고진유에게 많이 들었던 파해도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저도 보고 싶습니다.”

녹림야검까지 손을 들며 파해도에 가는 것을 찬성했다.

“좋아요. 모두 그곳으로 가죠.”

철썩!

파도가 뱃머리를 때렸다.

기분 좋은 바람이 적당하게 불어왔다.

하루 전.

항구에 도착한 고진유와 일행은 파해도에 대해 수소문을 했다.

그리고 이각이 되기 전, 파해도의 위치를 잘 아는 인물을 찾아냈다.

먼 바다에 나가서 일생 동안 고기잡이를 한 어부 노인이었다.

최근에는 힘이 들어 집에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노인장께서 파해도를 잘 아신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네.”

“몇 년 전에 화산이 터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 그때 큰 화산이 터졌을 게야.”

“지금은 어떻습니까?”

“어떻기는. 섬 전체에 화산이 터져서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섬이 되었지. 음…… 지금은 시간이 흘렀으니 조금은 나아졌을지도 모르네.”

“그렇군요. 혹시…… 그곳에 찾아갈 수 있습니까?”

“음? 그런 곳에 뭣 하러 가는가?”

“그냥, 궁금해서 그럽니다. 화산섬이라고도 하니…… 아, 섬으로 들어가는 곳에 파류가 심하다고 하던데 지금도 똑같습니까?”

“그건 아니네. 그날 이후로 더는 파류가 생기지 않았거든.”

“아하……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파해도가 화산섬으로 되었다고 해서 마음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바다 위에 있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노인장께서 저희를 그 섬에 안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에 대한 수고비는 확실하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허허허, 됐네. 오늘 술이나 한잔 사주면 고맙겠군.”

“알겠습니다. 바로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인양은 얼른 점소이를 불러 술을 가지고 오도록 했다.

“음…… 근데 자네들, 배는 있는가?”

“네. 그곳에 가기 위해 배를 빌려놓았습니다.”

“그곳에 가려면 작은 배로는 갈 수 없어.”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기에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가?”

노인은 창문 너머로 항구를 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건 작은 고기잡이배들.

그 외에는 거대한 함선뿐이었다.

“어디…… 에 있다는 것인가?”

“저기 큰 배가 빌린 배입니다.”

“설마…… 나랏배…… 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노인은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함선을 빌렸다는 청년.

이제야 그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 * *

함선을 타고 바다로 나온 지 반나절이 지났다.

“섬이다!!”

함선의 돛대 위에서 수평선을 보던 수병이 소리쳤다.

고진유는 선실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섬을 나온 지 거의 칠 년의 시간이 흘렀다.

칠 년의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지나갔다.

사부를 만난 건 우연이 아니었지만, 자신이 완전히 다른 자아를 가지도록 이끌어주신 분이었다.

갑판에 나와 점점 가까워지는 섬을 보았다.

섬은 화산재들로 가득했다.

고진유의 시선은 섬의 한 곳을 보고 있었다.

“사부님은 이 자리가 마음이 드시나요?”

“허허, 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지 않더냐.”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서 자신을 보던 사부였다.

섬으로 가기 위해 함선에서 작은 배를 아래로 띄웠다.

도착한 섬은 예전과 달리 많이 변해 있었지만. 고진유는 하나하나 기억이 떠올랐다.

섬 중앙은 모두 불에 타서 사라졌지만 칠 년의 시간이 지난 만큼 새로운 생명들이 자라고 있었다.

고진유는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사부 오청석이 웃는 모습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했다.

“사부님, 잘 계셨습니까. 제자가 늦었습니다.”

고진유는 그 자리에서 절을 했다.

“사부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세 사람과 함께 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묵경 형과 가장 멋진 동생 인양, 그리고 가장 충성스러운 현자 씨입니다.”

세 사람은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뒤 같은 자리를 향해 절을 했다.

“보시다시피 제가 잘생긴 묵경이라 합니다. 앞으로도 형으로서 항상 잘 보살피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지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전 인양입니다. 저도 묵경 형님의 말씀처럼 항상 진유 형을 따르면서 함께 있습니다.”

두 사람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녹림야검이 말을 했다.

“어르신, 저도 늘 공자님의 곁을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 사람은 한마디씩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진유는 마치 사부가 바다를 보는 듯한 모습으로 바다를 보았다.

* * *

똑똑.

양군경은 문밖에 누가 찾아왔음을 알았다.

일선에서 벗어난 그는 장로전으로 자리를 옮긴 참이었다.

“누구더냐?”

“사조님, 진유입니다.”

양군경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나타났다.

“들어오너라.”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고진유를 보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너라.”

“사조님, 무탈하셨사옵니까?”

“나야 늘 같지 않으냐.”

양군경은 다가온 고진유의 손을 잡으며 안으로 당겼다.

“이리로 오너라.”

“감사합니다.”

나란히 앉으면서도 고진유의 손을 놓지 않았다.

“언제 돌아왔느냐?”

“방금 전에 올라왔습니다. 장문인께 잠시 인사를 드리고 난 뒤 바로 오는 길입니다.”

“잘했구나.”

그의 시선은 고진유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화산파의 이름을 중원에 알린 사손이 얼마나 대견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인양까지 포함한 화산천무인은 중원 무림의 부러움을 한눈에 받았다.

게다가 고금제일인 고진유의 존재만으로도 화산파의 위세는 하늘을 치솟을 정도였다.

하지만 화산파는 중원의 모든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너무 잘났기에 시샘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장문인은 봉문에 가까울 만큼 조용하게 지내도록 했다.

“사조님, 사부님께 인사를 드리러 파해도에 다녀왔습니다.”

“허헛, 그 녀석은 잘 지내더냐?”

“항상 웃는 얼굴로 계시더군요.”

“당연하지 않겠느냐? 제자가 중원 최고의 인물이 되었는데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어.”

“그런 것 같습니다.”

“아 참, 우리 강아지들은?”

“잠시 처가에서 지내도록 했습니다.”

“그렇군. 요즘에는 그놈들이 자꾸 보고 싶구나.”

고진유는 아쉬워하는 양군경의 얼굴을 보았다.

“제가 본 산을 내려갈 때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오랜만에 유람차 다니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허허허, 그러할까? 아직 걸을 수 있을 때 나가는 것도 괜찮지.”

양군경도 장로전에 있다 보니 심심하던 참이었다.

“후후, 그럼 이틀 뒤에 나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알겠다. 그럼 얼른 네 사형들을 만나보거라. 이틀 뒤에 내려간다면 바쁘지 않겠느냐?”

“알겠습니다. 먼저 일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진유는 장로전을 나섰다.

스윽.

매청정으로 들어섰다.

화산파에서 새롭게 지은 전각으로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 곳.

“앗……!”

그곳에서 두 명의 여인이 고진유를 보며 반갑게 맞이했다.

무혼신녀와 고화유.

그녀들은 우종성과 혁자영을 따라 화산파에서 지내기로 했다.

“누님들, 잘 지냈습니까?”

“언제 왔어?”

“방금요.”

“빙궁에 갔다가 남해로 내려갔다는 소식은 들었다. 거긴 왜 갔어?”

“파해도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아하…… 어땠어?”

“변한 게 없던데요.”

고화유가 손짓을 했다.

“서 있지 말고 앉아.”

“네.”

고진유는 그녀들 곁으로 다가서며 앉았다.

“여긴 지내기 괜찮아요?”

“좋아.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사람들도 순하잖아.”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힐끔.

고진유는 말을 하면서 고화유와 무혼신녀의 배를 보았다.

“뭘 봐?”

“조카들이 잘 자라는가 싶어서요.”

“잘 놀고 있어.”

고화유와 무혼신녀는 배를 쓰다듬었다.

“먹고 싶은 음식은 없어요?”

“그렇지 않아도 아래에 내려갔어.”

“정말로? 왜 못 봤지?”

“길이 엇갈렸겠지.”

“그런가 보네요.”

고진유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아래로 돌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더니. 지금 올라오고 있네요.”

고진유의 말처럼 반각이 되기 전에 매청정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인영이 보였다.

그는 두 명의 여인과 함께 있는 고진유를 보며 반갑게 소리쳤다.

“호정 사제.”

혁자영은 손에 가득 음식을 들고 있었다.

“언제 왔어?”

“방금 올라왔어요. 많이 바쁘네요.”

“하하, 그렇지. 근데 혼자 왔나?”

“인양과 올라왔는데 장문인께 잡혀 아직까지 이야기 중입니다.”

“하아…… 이번에는 그 녀석이 걸렸구나.”

“안 그래도 말이 길어질까 싶어서 전 사조님을 뵈러 간다고 하고 빠져나왔습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장문인이 되시고 난 뒤부터 말씀이 많아지셨어.”

작년에 새롭게 허자배의 허경 도인이 장문인으로 선출되었다.

인양의 사부가 바로 허경 도인이었다.

“후후, 당분간 우린 그분의 눈 밖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구나. 오랜만에 왔으니 한잔하겠느냐?”

“좋아요. 나중에 오겠습니다. 다른 사형들을 만나보고요.”

“그렇게 해라. 나중에 보자.”

화산파에서 보낸 이틀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제 다시 본 산을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

경내 입구는 아침부터 웅성거렸다.

장문인 허경 도인부터 많은 도인들이 산을 내려가는 두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모였다.

“장문인님, 다음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허허허. 사숙님과 여행 잘하고 오게나.”

“네,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시선을 돌려 그의 옆에 선 인양을 보았다.

“사부님이 하신 말씀 잘 듣고 있어.”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나중에 보자.”

배웅을 나온 그들과 짧게 인사를 마친 고진유는 양군경과 함께 단둘이서 아래로 움직였다.

경내를 내려오자 붉은 기둥이 받치는 제일도문이 보였다.

고진유는 제일도문을 지나며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천하제일도당(天下第一道黨)의 현판 아래 양쪽으로 세워진 붉은 기둥.

그곳에 새겨진 글자를 보았다.

화산고금천하제일문(華山古今天下第一門).

자신이 새겼던 아홉 글자.

고진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화산대도』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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