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424화 (424/425)

424화

우르르르-

명왕부가 무너져 내린 건 중원무군과 명왕부의 명족들이 나온 직후 반각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전방에 황사처럼 모래 폭풍이 솟구쳤다.

“하아…… 큰일 날 뻔했다.”

묵경은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먼지에 가려진 명왕부를 보았다.

“앗…….”

그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유는?”

중원무군의 무인들이 고진유를 찾아 헤맸지만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서, 설마 저곳에…… 아직…….”

“형은 제게 나온다고 했어요.”

“……!”

인양은 손이 떨면서 여전히 먼지구름에 가려 시야가 보이지 않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호정 사제가…….”

“호경, 걱정하지 마라. 분명 웃으면서 우리 앞에 나타날 거다.”

혁자영의 표정 또한 걱정에 싸여 있었지만, 고진유이기에 믿었다.

아직 나오지 못한 한 사람의 존재 때문인지 수많은 인물이 모여 있었지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휘이이잉…….

조금씩 바람이 불어왔다.

먼지에 가려진 전방으로 바람이 불어오며 앞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

먼지 속에서 희미한 기척이 움직였다.

“아…… 씨…… 죽을 뻔했네.”

아직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아앗!

묵경이 단번에 달려 나갔다.

어디서 듣더라도 고진유의 목소리를 알 수 있었다.

“혀어어어엉!!”

그와 동시에 인양과 녹림야검이 뒤를 이었다.

고진유는 빠르게 달려오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웃었다.

“뭐야? 그 얼굴들은. 내가 죽다가 살아난 것처럼 보이는걸.”

덥석!

세 사람이 동시에 고진유를 안았다.

“진짜로 죽은 줄 알았잖아!”

“아직 팔팔한 나이에 왜 죽습니까? 이제부터 신나게 놀러 다닐 텐데.”

“하하핫! 맞다. 우리 지금부터 열심히 놀아보자.”

고진유는 환한 미소로 그들과 함께 중원무군의 앞으로 다가섰다.

많은 얼굴들이 그를 반겨주었다.

고진유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명왕은 죽었소! 모두 끝났소이다!”

“와아아아-!!”

“고금제일인 만세!!”

중원무군의 무인들은 거대한 함성을 내질렀다.

* * *

고진유는 중원무군과 떨어진 장소로 걸어갔다.

명족들은 허무한 듯 삶을 잃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명왕존이 고개를 숙이며 고진유를 맞이했다.

“다들 무사한가요?”

“그렇습니다.”

“다행이군요.”

고진유는 명족들을 둘러보았다.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명왕의 생사가 궁금한가 보군요.”

“네, 맞습니다. 그가…… 정말로 죽었습니까?”

“그렇소이다. 본인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소이다.”

척.

명왕존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소신, 명왕님을 뵙습니다.”

“이제 본인이 명왕이 되는 것이오?”

“그렇사옵니다.”

명왕존은 부복을 한 채 명족들을 향해 소리쳤다.

“뭣들 하는가? 명왕님께 인사를 드려라!”

기운이 빠졌던 명족들은 명왕이 된 고진유를 향해 부복을 하며 소리쳤다.

“명왕님을 뵙습니다!”

거대한 함성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멀리서 그 장면을 많은 시선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대단하군. 극일가의 가주에, 이번에는 명부의 명왕이라니…….”

“그러게. 마음만 먹으면 세상도 가질 수 있겠어.”

“그의 세상이 되겠군.”

묵경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후후후, 아직도 진유 아우에 대해서 잘 모르는군. 자네들이 생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 * *

세상의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명왕부와의 혈전이 일어난 지 벌써 두 달.

중원무군은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천검궁은 산서성 태원으로, 천마는 마교도를 이끌고 신강으로 돌아갔다.

무림맹주 남궁무명과 군사 제갈양은 무림맹으로 돌아갔고, 고촌의 극일가는 세상 밖으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구천명부와 명왕부의 명족들은 암흑금상의 도움에 의해 각자 세상으로 올라온 뒤, 마을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면서 조용하게 지냈다.

세상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지나간 일을 잊었다.

고촌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사당.

역대 극일가의 가주의 신패를 모신 평범한 작은 건물이었다.

그리고 사당이 놓인 지하 아래 공간은 극일가의 가주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곳이었다.

스윽.

석상에 누워 있던 신형이 상체를 일으켰다.

삼십 대 사내의 건장한 모습.

그는 감았던 눈을 떴다.

검은 눈동자에서 빛이 나왔다.

“후후후.”

사내의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가부좌를 하며 몸속에 내력을 불어 일으키자, 내력이 혈맥을 따라 움직이며 무거워 보였던 그의 신형이 편안한 상태로 변했다.

“미리 준비해 두어 다행이군.”

사내는 가부좌를 풀며 석상에서 내려왔다.

“지금쯤이면 조용하겠지. 올라가 볼까?”

사당 위에는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드르르륵.

신패를 모신 신단이 옆으로 움직였다. 사내는 지하로 연결된 통로를 지나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그 순간,

흠칫.

사내의 움직임이 멈췄다.

사당 입구에 앉아 있는 인물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 놈이…… 여긴 어떻게?’

사내는 믿기지 않는 듯 눈이 흔들거렸다.

이곳을 지키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제 올라오는군요. 한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진유는 지하 통로에서 그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어…… 이거 참. 당황스럽군.”

걸음을 멈췄던 사내가 마저 올라왔다.

그는 명왕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명왕이었다.

“당황은 당신이 아닌 본인이 해야 하는 게 아니오?”

“……어떻게 알았지?”

“예전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사당 아래에 건장한 사내의 신체가 있는 것을 봤다고.”

“…….”

“만일 당신이 중원에 나올 때 다른 몸을 이용한 사실을 몰랐다면 넘어갔을 겁니다.”

“그렇군. 모두 내가 잘못한 것이군.”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때 하지 못한 마무리를 짓는 게 어떻겠습니까?”

“난 조용히 살아갈 생각이다.”

“…….”

고진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조용히 살아가겠다는 그의 말이 왜 웃기는지 몰랐다.

“그 말을 믿으라는 거요?”

“지켜보면 되지 않겠나?”

“아니…… 지켜보고 싶지 않습니다. 괜히 신경 쓰일 일을 일부러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당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는 고진유의 진심을 읽었다. 정말로 자신과 싸워 죽이고자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기다린 이유는 정말로 당신이 깨어난다면 끝을 내고자 함이외다.”

“정녕 나와 싸우고자 하는 것이더냐?”

“이미 오래 사신 분이 왜 이리 미련이 많으신지 모르겠군요.”

“……세상은 내 것이니까. 남에게 주고 싶지 않다.”

“여전히 욕심이 많소이다. 당신의 것은 이제 없습니다.”

“하, 욕심이라 했나? 사람이 욕심이 없으면 왜 살아가는 것이지?”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은 사람이군요. 밖으로 나갈까요?”

“좋다.”

그는 고진유를 따라 사당 밖으로 나섰다.

순순히 나온 뒤 기회를 봐서 사라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아…… 진짜네? 진유 아우가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맞는 말만 할 줄은.”

밖에 나왔을 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당 주위로 포위한 채 노려보는 시선들.

고촌으로 돌아와 모든 사람들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 고진유는 극일가에서 해결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 이유를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지만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형, 여기 있어요.”

인양은 손에 들고 있는 사의검을 건네주었다.

“고마워.”

스르르르릉-

고진유는 사의검을 받은 뒤 천천히 발검했다.

우우우웅.

자줏빛의 검신이 검명과 함께 빛을 뿌렸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여기에서 도망갈 수 없을 것입니다.”

“…….”

속마음을 들켰는지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로 끝이 났군…… 하나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찌이이이잉-

그의 몸 전체로 은빛의 용린이 퍼져 나갔다.

은룡투인으로 변한 그의 모습을 보자 정말로 극일가의 인물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극일가를 버린 사람이 은룡투인으로 변한 게 부끄럽지 않습니까?”

“크크크. 전혀……!”

우우웅-

은룡투인의 손에 용린기가 흘러나오면서 용투검으로 변했다.

용투검으로 변한 검을 고진유를 향해 겨누었다.

“넌 은룡투인으로 변하지 않은 모양이지?”

“당신을 상대하는 데 화산파의 무공이면 충분하외다.”

“겨우 화산파의 무공으로? 웃기는군. 네놈이 나를 화산파 무공만으로 상대할 수 있겠느냐?”

“한번 해볼까요?”

자신만만한 고진유의 태도를 보면서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나왔다.

그는 투기를 끌어내며 용투검을 강하게 내리쳤다.

투기검강이 고진유의 신형을 향해 날아갔다.

휘리릭!

고진유는 매화신보를 펼치는 동시에 화산의 매화검법을 펼쳤다.

투기검강의 앞을 막아선 홍매화.

“겨우 홍매화로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채애애앵!

홍매화를 베려던 용투검이 도중에 막혔다.

그의 표정이 순간 당황으로 물들었다.

타앗!

곧바로 고진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는 용투검에 내력을 쏟아냈다.

번쩍!

검을 아래로 내리치자 섬광이 터졌다.

‘이번에는 확실하다.’

자신 있게 펼친 용투검이 고진유와 가까워졌다.

샤르르-

그는 이미 매화 향기가 흐르고 있음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섬광이 터지면서 은빛을 떨어 울린 검강이 또다시 홍매화에 의해 막혔다.

‘언제……!’

그가 인상을 쓰며 재차 용투검을 거두고자 할 때였다.

사락.

그의 앞으로 붉은 매화가 천천히 떨어졌다.

“……!!”

스걱.

허리에 매화가 닿는 순간 날카로운 검기가 살을 베고 지나갔다.

“악……!”

그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물러났다.

‘젠장…….’

매화검기가 허리를 베고 지나간 상처는 가볍게 스쳤다고 생각했지만 절대로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

파아아앗!!

그는 전력을 다해 내력을 끌어 올렸다.

“이노오오오옴!!”

은빛이었던 그의 신체가 점점 검은빛으로 물들어갔다.

고진유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은룡투인은 역시 당신에게는 어울리지 않소이다.”

“크하하하하!!! 네놈이 무엇을 안다는 것이더냐? 내가 은룡투인이든 아니든 이기면 되는 것이다!!”

슈우우우우-

그의 뒤로 흑룡이 솟구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네놈의 몸을 얻고자 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당장 먼지로 만들어주마!!”

“내 몸을 노렸다니 대단하시군요. 근데 과연 능력이 되는지 모르겠소이다!”

“건방진 놈…… 죽어라아앗!!!”

그의 머리 위에서 원을 그리며 돌던 흑룡이 고진유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쿠아아아아앙-

세상을 삼키려는 듯한 흑룡의 기세에도 고진유는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올려다보았다.

‘마지막 한 수. 모든 것은 이번에 끝을 낸다.’

고진유는 사의검을 높이 들었다.

수많은 인연을 가져다준 자신의 애검.

측은지심.

욕망에 휘둘려 가여운 그의 생에 안식을 주리라.

우우웅-

고진유의 마음을 읽은 사의검이 울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흑룡의 커다란 입이 고진유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그를 삼켰다.

콰가가가가가가가-

기의 폭풍이 불어 닥치며 두 사람을 잠시 가렸다.

서로 부딪힌 채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곧바로 드러났다.

“커어억…….”

그는 숨이 막힌 듯 거친 신음을 토해냈다.

‘내가…….’

사의검이 심장을 뚫고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들어 고진유를 보았다.

말을 하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끝입니다. 그만 편히 떠나세요.”

스걱.

고진유는 사의검을 뽑은 뒤 휘청거리는 그의 목을 잘랐다.

눈을 크게 뜬 채 잘려 나간 그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직…….’

고진유는 시체를 노려보았다.

스르르르-

시신에서 검은색의 영기(靈氣)가 빠져나오려고 했다.

번쩍!

고진유는 사의검에서 은광이 뻗어 나오며 영기를 베었다.

파아앗…….

은빛 검기에 의해 영기가 소멸했다.

“끝났다.”

고진유는 이제야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알았다.

오랜 시간을 이어져 왔던 명부와 극일가의 싸움.

이제 세상에서 두 곳의 존재 또한 사라지게 될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