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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422화 (422/425)

422화

명왕부의 세계는 넓었다.

오래전, 세상 밖의 사람 중 누군가 이곳을 발견했을 것이다.

‘처음 이곳으로 내려와 명부라 부르며 지냈을까?’

이와 비슷한 장소인 구천명부 또한 마찬가지일 터.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르며 세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을 것이었다.

“무슨 생각을 해?”

고화유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냥…… 저곳에 명왕궁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명왕궁에 그가 있겠지?”

“가보면 알겠죠.”

“그를 만나면 어떻게 할 거야?”

“…….”

고진유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명왕이라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조부란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은 말을 못 하겠네요. 그를 만나보면 그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겠지.”

“그래? 그건 네가 알아서 잘할 거라 생각해.”

그녀는 그에 대해 어떻게 하든 모든 것을 동생인 고진유에게 맡기기로 했다.

“한데……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여기 있는 명족들을 모두 죽여야겠죠?”

“…….”

두 번의 결전에서 명왕부의 명족들은 죽음을 알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명족이라 해도 그들은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들이 알아서 물러나면 좋겠지만, 물러나지 않으니 방법이 없잖아. 이들은 오직 명왕의 명을 따르고 있어. 나도 안타깝지만 싸울 수밖에. 혹시나 해서 해독제도 가지고 왔는데.”

“그러네요.”

두 사람이 그만 돌아서고자 할 때였다.

‘누구지?’

고진유는 순간 기척을 느꼈다.

“누나, 잠시만.”

“…….”

휘이익!

그녀의 눈이 빠르게 사라지는 고진유의 신형을 좇았다.

고진유가 간 곳에는 육 척의 건장한 사내가 서 있었다.

길게 흘러내린 흑발과 짙은 눈썹이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고진유는 사내의 앞에 내려섰다.

“그대가 본인을 불렀소이까?”

“그렇소이다.”

“혼자 오셨소?”

“싸우려고 온 게 아니오.”

“그렇군요. 당신의 신분을 알고 싶군소이다.”

“명왕존이라 하오. 명왕님의 곁에서 그분을 모시고 있소.”

“본인 소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렇소.”

명왕존은 앞에 선 고진유를 살폈다.

평범해 보이는 젊은 사내의 모습.

그러기에 대단한 보였다.

‘자연의 앞에 서 있는 듯하군.’

“본인을 부른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그대가 명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소.”

“무슨 의미로 묻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뜬금없는 명왕존의 질문에 고진유가 그에게 되물었다.

“그대의 신분은 은룡투인이며 극일가의 가주가 아니오?”

“맞소이다.”

“명왕부와 적대적이지 않소이까?”

고진유는 그의 물음이 어떤 의미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적대적이지 않소. 그대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의 어머니도 명부의 인물이었소.”

“오천공녀를 말하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명왕존은 다시 고진유를 자세히 보았다.

오천공녀의 자식이라면 명부와도 인연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적대적이 아니라면 여기에 쳐들어온 이유가 무엇이오?”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요?”

“…….”

“명왕이 명왕부를 이끌고 세상에 나오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라는 것이오?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소. 명왕은 세상을 멸하고자 하지 않소이까?”

명왕존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다만 문제는 명왕은 세상에 홀로 존재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은룡투인을 찾아올 결심을 했던 것이었다.

명왕존은 말을 어렵게 꺼냈다.

“……만일 명부의 뜻과 명왕의 뜻이 다르다면 어떻게 하시겠소?”

“다르다라…… 명족들은 싸우고 싶지 않다는 것이오?”

“…….”

“그대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겠소. 그래서 그대들이 명왕을 죽이겠다는 것이오? 하지만 본인은 배신하는 짓을 싫어하외다. 안 들은 것으로 하겠소.”

고진유는 단번에 거절했다.

명왕존과 손을 잡아서 명왕을 칠 생각은 없었다.

“명왕을 배신하는 게 아니오. 명부를 살리고자 하는 것이외다. 그는 극일가는 물론 명왕부조차 모두 죽일 계획이오.”

“그가 명왕부의 명족을 죽일 거란 증거가 있소이까?”

“명왕은 본인이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외다. 그는 극일가를 이긴 뒤 명왕부 전체에 백향목 가루를 뿌릴 계획을 세웠소.”

“……!”

백향목 열매 가루가 필요한 경우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대들이 신무신단을 복용했다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흠.”

상대는 명왕부의 인물이지만, 그가 말한 대로라면 심각한 일이었다.

명왕이 백향목 열매 가루를 준비했다는 건, 그의 말대로 명왕부 명족들 전체를 죽이고자 함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왜……?’

고진유는 믿기지 않았다.

“그가 말했소이다. 자신은 홀로 세상을 다스리겠다고.”

“그게 정말이오?”

“굳이 그대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소. 사실이외다.”

고진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쳤군.’

명왕존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미친 게 확실했다.

어떻게 자신들의 수하들조차 죽일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들은 그를 배신하는 게 아니라 살고자 명왕을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고진유는 그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대비책을 마련해 놓았소?”

“…….”

명왕존은 그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백향목 열매 가루를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미 신무신단을 복용한 뒤였다.

게다가 늦게 알아냈기에 현재까지 뚜렷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참으로 답답한 사람들이군요.”

“…….”

“좋소이다. 그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을 해보시오.”

“명왕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겠소이다.”

“…….”

정확히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명왕궁으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은룡투인, 그대 혼자라면 명왕 몰래 들어갈 수 있소이다.”

“본인 혼자 들어가서 무엇을 하라는 거요?”

“명왕을 만나게 해주겠소이다.”

“그를? 이유가 있소?”

“어차피 그대는 명왕을 만나야 하지 않소이까.”

“알고 있었소?”

“그가 한때 극일가의 가주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소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명왕을 이긴 자는 명왕이 되는 것이 명왕부의 율법이오. 비록 그가 극일가의 인물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소이다.”

“음…… 만일 내가 그를 이길 경우에도 같소?

“그대가 새로운 명왕이 되는 것이외다.”

명왕은 사람들에게 추대를 받아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명왕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가졌다면 누구나 가능했다.

“그대가 명왕이 된다면…… 모든 싸움을 멈출 수 있소.”

“명왕부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란 말이군요.”

“그렇소이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 같은데?”

“이건 다른 것이외다. 그는 우리를 죽이고자 하는 게 아니오?”

“좋소. 하지만 문제가 있군. 그대를 믿고 들어가자는 말인데, 가능할지 모르겠소이다.”

“……믿지 못하겠소이까?”

“음. 사실 믿음이 잘 안 가는군요.”

“…….”

명왕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긴. 혼자서 가자고 하니 나라도 들어가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한참 숙고하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포기할 참이었다.

그를 살피던 고진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대를 믿고 따라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정말이오?”

“그에게 볼일이 있으니 그대가 말한 방법이 더 좋을 수도 있겠군요.”

고진유는 그를 따라 명왕궁에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명왕을 만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소?”

“그는 어머니의 원수라고 할 수 있소이다.”

“명왕이 오천공녀를 죽였다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

그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명왕과 오천공녀는 구부간의 관계였다.

“명왕이…… 왜?”

“은룡투인의 존재가 두려웠던 것이겠지요.”

“……그렇군.”

명왕이 전대의 은룡투인과 싸워 이겼음을 안다.

하지만 오천공녀와 결혼 사이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난다면 또 다른 은룡투인이 태어날 수 있었다.

‘그 잘난 명왕이…… 실패했다…….’

눈앞에 선 고진유를 보면서 성공하지 못했음을 알았다.

“그럼 지금 바로 가는 것이오?”

“명왕의 명이 떨어지기 전에 될 수 있는 한 빠르면 좋지 않겠소이까?”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그에게 가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게 있소이다.”

“알겠소.”

휘익!

고진유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일각 후.

휘익.

돌아온 고진유는 혼자가 아니었다.

두 명의 사내.

고진유와 함께 그의 앞에 선 인물은 인양이었다.

“많이 기다렸소?”

“괜찮소이다.”

고진유는 인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인양은 등에 멘 커다란 짐을 보여주었다.

“이것을 받으시오.”

“그게 무엇이요?”

“신무신단의 해독제이외다.”

“……!!”

명왕존은 눈을 크게 뜨며 아래에 내려놓은 짐을 보았다.

“이것들을 왜?”

“혹시나 해서.”

“…….”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백향목에 대해…….”

“당연히 알고 있었소.”

“그럼 왜…… 그것을 싸울 때 사용하지 않았소이까?”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길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만약 백향목 가루를 뿌렸다면 그대가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겠소이까? 본인은 명부에는 관심이 없소이다. 오직 명왕에게 볼일이 있소.”

“……그렇군.”

“내가 그를 만나기 전에 해독제를 모두 복용하는 게 좋을 듯싶소. 그가 당신이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는 일이 아니오.”

“아…… 그렇게 하겠소이다.”

그의 말이 맞았다.

명왕의 앞에 고진유가 나타난다면 자신이 배신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명왕부 전체에 백향목 가루가 퍼질 것이다.

명왕존은 바닥에 놓인 짐을 보았다.

“고맙소이다.”

“별말씀을. 지금이야 서로 적대적이지만 따지고 보면 서로 형제이지 않소이까.”

“……따라오십시오.”

고진유를 대하는 명왕존의 목소리가 변했다.

“가자, 인양아.”

“넵. 진유 형.”

인양은 짐을 다시 등에 메고 그를 따라 명왕궁으로 움직였다.

* * *

스르르르-

부서지지 않을 듯한 석문이 열렸다.

‘흠…….’

고진유의 신형이었다.

그가 홀로 명왕궁에 들어가는 동안 명왕존과 인양은 해독제를 빠르게 풀었다.

그의 수하들이 사방으로 퍼지고 퍼지면서 해독제는 삽시간에 명왕부 전체로 퍼져 나갔다.

고진유는 명왕존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명왕궁으로 들어오면서 다른 명왕부의 명족들은 단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건물 사이를 걸었다.

“저기 끝에 그가 있단 말이지?”

명왕이 있는 장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기운이 느껴졌다.

십여 장 남은 거리에 도착했을 때였다.

고진유의 앞으로 흑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멈추는 게 좋을 것이다.”

흑의인의 경고에도 고진유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휘익!

말이 끝나는 동시에 비수가 고진유의 목 옆에서 바로 튀어나왔다.

탓!

고진유의 오른손이 언제 움직였는지 비수를 목 옆에서 바로 잡았다.

“……!!”

흑의인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방금 한 수에 죽지 않을 것은 알았지만, 너무 쉽게 막아낸 것을 보니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재미있겠어. 오랜만에 싸울 맛이 나는군.”

“그건 본인도 마찬가지이외다.”

“은룡투인이 얼마나 강한지 한 번 볼까?”

흑의인의 안광이 폭발했다.

그들 주위가 완전히 바뀌며 마치 허공 속에 떠다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놀랍군요.”

“크크크…… 이건 나만의 무적공간이다. 여기에 들어온 이상 절대로 살아나갈 수 없다.”

핏핏핏.

고진유의 가슴을 스치며 살기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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