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421화 (421/425)

421화

명왕부로 가기 위해 제이관으로 들어서야 했다.

하지만 고진유는 급하지 않았다.

비록 제일관을 쉽게 넘었다고 하지만 전신의 힘을 쏟아낸 중원무군에게 휴식을 주었다.

중원무군의 무인들도 한숨을 쉬면서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중원무군 대부분은 이처럼 대규모의 혈전을 펼친 경우가 처음이었다.

승리했지만 긴장한 탓인지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휴식을 가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사이에서 웃음들이 나왔다.

흥분했던 마음이 진정되며 명족들과 싸웠던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다.

중원무군의 분위기는 무거움이 사라지고 편안하게 변했다.

“……대단해.”

무혼신녀는 중원무군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그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는 고진유를 보았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저리 가식 없이 진심으로요..”

혁자영은 그녀의 곁에서 함께 고진유를 보았다.

“그렇지. 저 녀석이니깐 할 수 있는 일이지. 여하튼 화산파는 복 받았어. 최소 한 갑자 동안은 최고의 문파로 이름을 날리겠군.”

“후후, 누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무혼신녀는 그를 보며 물었다.

“그들과 싸워 보니 할 만한가?”

“특별하게 힘든 것은 없었습니다. 신무신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명부에 들어서도 전혀 아무렇지 않습니다.”

“사실 여기 오면서 걱정이 되긴 했지. 명왕부라고 하니 조금 겁이 나고.”

“전 아닙니다.”

“그래?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지?”

“그게 아니라, 사제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제의 무서움은 무공이 강한 게 아닙니다. 정말로 약았습니다. 좋거나 나쁜 게 아니라 천성적으로 말입니다.”

“하하, 맞다. 저 녀석의 성격이 원래 그렇지.”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감각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이길 수 있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해가 된다면 움직이는 유형이 아닙니다. 완벽하게 이길 수 있다고 판단되었을 때 움직이지요.”

“이번에도 그렇다는 말이군.”

“네. 맞습니다. 여기에 왔다는 건 명왕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녀석을 완전히 믿는군.”

“호정 사제이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면 너희 사형제들도 대단하다.”

“칭찬이라면 고맙습니다.”

무혼신녀와 혁자영의 시선은 여전히 고진유의 뒤를 좇고 있었다.

* * *

“명왕기가 죽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은룡투인에게 당했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죽었습니다.”

“냉정한 놈이군. 한 명도 살려주지 않고 죽었다?”

“그렇습니다. 항복하지 않은 이상 저들도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크크크…… 그들이 죽은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만큼 명왕부에 충성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내가 아니라?”

“…….”

명왕은 눈을 치켜뜨며 명왕존을 보았다.

“그놈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왜? 무슨 일이 있는가?”

“그건 소신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훗. 지금 본왕 앞에서 여유를 부리겠는 것이군.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으니 다급함이 없다는 뜻이겠지.”

명왕은 그들이 바로 움직이지 않은 이유를 알 듯했다.

“약았어. 상당히 약은 놈이군.”

어느 정도 고진유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관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설치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제대로 움직이겠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곳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

이관의 입구가 무너진다면 당장 외부로 나갈 수 없지만, 최소한 적의 절반을 매몰시킬 수 있었다.

“잘하고 있군. 우리가 이번 기회만 잘 넘을 수 있다면 세상은 곧 내 것이 되겠지…….”

“…….”

명왕존은 대소를 터뜨리는 그를 보았다.

‘이번에도…….’

명왕부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이라 말했다.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명왕존은 그의 앞에서 물러나면서 돌아섰다.

‘정녕 명부까지 버리겠다는 것인가?’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명왕은 밖으로 사라진 그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훗, 네놈들이 알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놈들과 싸울 수밖에 없을 테니.”

딱.

명왕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명왕존이 사라졌던 자리에서 검은 연기가 솟구치며 그 안에서 흑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사옵니까?”

“준비는 되어 있겠지?”

“명령만 내리신다면 명왕부 전체에 백향목 분말이 퍼져 나갈 것입니다.”

“수고했다.”

극일가와 은룡투인을 죽인다면 모든 것이 끝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은 명왕부밖에 없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유일한 존재는 자신이어야 했다.

그들만 없어지면 중원 무림에 남아 있는 무림인들은 언제든지 천천히 죽일 수 있다.

“이젠 얼마 남지 않았군.”

명왕이 된 후 세웠던 계획이 드디어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었다.

* * *

중원무군이 다시 움직였다.

선두는 인양과 녹림야검.

그들의 앞에 아래로 내려가는 어둠의 통로가 나타났다.

처음이었다면 앞에서 멈칫거렸겠지만 한번 지나간 길이기에 두 사람은 거침없이 앞장섰다.

그 뒤를 이어 중원무군도 들어섰다.

고진유는 두 사람을 따르면서 주위를 살폈다.

‘이곳이 정말 무너져 내렸다면 위험했겠어.’

먼저 정찰을 보낸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중원무군은 안으로 점점 내려섰다.

* * *

“모두 들어갔다. 지금 바로 연락해라.”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눈동자가 명을 내렸다.

“넵. 알겠습니다.”

휘익.

흑의인이 명부심령지의 입구를 향해 움직이고, 곧바로 명왕수의 앞으로 수하가 내려섰다.

“보고드립니다. 중원 놈들이 명부옥동에 완전히 들어섰다고 합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들어온 모양이군.”

그의 한쪽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지금 바로 터뜨려라.”

“넵. 알겠습니다.”

수하는 빠르게 일어선 뒤 명부옥동으로 달려갔다.

“옥동을 폭발한다!”

명부옥동을 폭파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곧이어 여기저기서 불이 번쩍였다.

파팟!

수십 개의 불꽃이 튀면서 명부옥동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뒤로 물러난다!”

반각의 시간이 지났다.

“……?”

폭발이 일어나야 할 시간이 지나고도 남았다.

명왕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폭발음이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휘익.

명부옥동으로 달려갔던 수하가 돌아왔다.

“명왕수님, 큰일 났……!”

파앗!!

명왕수의 손이 수하의 심장에 박혔다.

“커어어억…….”

수하는 입에 거품을 물며 그대로 목숨이 끊어졌다.

“젠장…… 실패라니…….”

명왕수는 욕설을 내뱉으며 마무리를 하기 위해 소집했던 명부심령군 앞으로 내려섰다.

오만의 대군.

중원무군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인원이 그곳에 도열해 있었다.

“쯧, 어차피 무너져서 깔려 죽으나 명부심령군에 죽으나 마찬가지지.”

그는 흑의군장의 명부심령군 앞으로 한 발 더 다가섰다.

“명왕부에 도전한 저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철컥.

명부심령군장은 고개를 숙인 뒤 명부옥동을 향해 돌아섰다.

“명부심령군은 저놈들을 죽여라!”

“우우우우우우우-”

오만의 명부심령군이 내는 거대한 소리가 퍼져 나갔다.

* * *

중원무군은 명부옥동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그들 앞에 펼쳐진 명왕부는 인양과 녹림야검의 말처럼 또 다른 세상이었다.

“엄청나군……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다들 처음 보는 광경에 잠시 소란스러웠지만 감탄도 잠시,

두두두두-

명부옥동 아래로 수만 개의 검은 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많군.”

고진유는 살기를 띠며 달려오는 흑의무장들을 알아보았다.

“대단한 기세인데. 여기서 밀리면 우리가 다친다. 놈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먼저 밀어붙이며 내려가야 해.”

남궁무명의 말이 맞았다.

고진유가 선두에 섰다.

“그럼 가볼까요?”

“좋아. 가지.”

고진유는 망설이지 않았다.

은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그가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쯧.’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동굴을 얼마 동안 걸었는지 몰랐다.

선두에 선 인물은 한쪽 팔이 없었지만, 전혀 불편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천마는 마교 이만 명을 끌어모은 뒤 곡성으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곡성의 인근에 도착할 때쯤 그의 앞에 전령이 나타났다.

고진유가 보낸 전서.

전서는 한 장의 지도였다.

[여기로 들어오시오.]

다른 말은 적혀 있지 않았다.

천마는 지도에 그려진 장소를 찾았다. 그곳은 수많은 세월 동안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망할 동굴이 끝이 없…… 음? 이 소리는…….’

어느 순간, 앞으로 걸을 때마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커져갔다.

‘이건…… 싸우는 소리다.’

천마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보일 것 같았다.

빛이 앞에 보였다.

“허…….”

동굴 밖으로 나온 천마의 눈앞에 명왕부가 펼쳐졌다.

“천마님. 저기!”

감탄할 시간이 없었다.

뒤따라 나오던 뇌군이 건너편을 가리켰다.

중원무군과 명부심령군의 격렬한 혈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살소가 번졌다.

“크흐흐…… 잘됐군. 형제들의 원수를 갚을 준비는 되었겠지?”

“와아아아아-”

마교도들이 전신에 전력을 끌어내며 소리쳤다.

“좋다. 지금 형제들의 원수를 갚아라.”

“원수를 갚자!!”

“저놈들의 뼈와 살을 씹어 먹어 주겠다!!”

두두두두두-

이만의 마교도들이 명부심령군의 후방을 향해 달렸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소리가 솟구쳤다.

“지금 도착한 모양이군.”

고진유는 적의 후방을 보았다.

마교가 들어온 방향은 명부옥동의 반대 방향.

그들이 온 통로는 명왕부로 들어서는 비밀 통로였다.

당금의 명왕은 물론 명왕부의 명족들조차 알지 못하는 곳.

하지만 고진유는 명왕이 보냈던 사신에게 전해 들었다.

천마와 마교의 등장으로 명부옥동으로 밀어붙이는 명부심령군의 힘이 약해졌다.

“대체 어떻게 뒤에서 나타난 거지?”

명왕수의 얼굴은 완전히 구겨졌다.

후방에 나타난 마교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팽팽하게 대치하던 두 세력의 균형이 급격하게 한쪽으로 넘어갔다.

퍽퍽퍽!

캬아아아악!!

신무신단을 복용한 마교도들의 마성이 폭발했다.

“피, 피해라!!”

“으아악!!”

마교도들은 전신이 무기였다.

손이 없으면 입으로 상대를 물어뜯었다.

명왕수는 어이가 없었다.

위로는 중원무군.

아래로는 마교.

가운데에 갇힌 그들은 바닥에 쓰러져 가고 있었다.

타아앗!

명왕수를 향해 세 명의 인영이 달려들었다.

묵경과 인양, 그리고 녹림야검이 펼친 무공을 그는 피할 수 없었다.

“커어어억.”

어깨와 허리를 지나가는 두 자루의 검과 정확히 얼굴을 강타한 주먹.

명왕수의 얼굴이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무너지면서 목숨이 끊어졌다.

짧고 길었던 시간이 지났다.

명부심령군 또한 모두가 죽었다.

그들에게 항복이란 없었다. 수장의 명 없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이건만, 이미 명왕수는 죽은 뒤였으니까.

고진유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천마는 마교도들과 함께 바닥에 주저앉은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수고 많았소이다.”

“크크크…… 이 정도면 되지 않았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몸은 어떻소이까?”

“나도 그렇고 이놈들도 더는 움직일 수 없을 것 같군.”

“마음의 짐은 내려놓았습니까?”

“충분히.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오.”

마교도들은 신무신단의 내력을 단번에 마성으로 끌어 올려 사용했다.

천마의 말처럼 그들은 내력을 당분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여기에서 쉬고 계십시오.”

“같이 가지 못해 아쉽군.”

“말씀이라도 고맙소이다.”

고진유는 큰 도움을 준 그와 마교도들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