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419화 (419/425)

419화

펄럭.

무림맹에서 출발한 무인들은 중원무군이라는 깃발 아래 함께했다.

중원무군의 수장은 당연히 고진유를 추대했다.

호북성 양양의 곡성으로 출발한 중원무군의 여정은 거침이 없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중원의 하늘 위로 수십 마리의 전서구들이 날아올랐다.

* * *

“크크큭…….”

명왕은 전서를 받았다.

곡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천검궁과 무림맹, 그리고 극일가에서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드디어 나오는군. 신무신단을 모두 만들다니.’

신무신단을 모두 불태우려던 계획이 실패했다.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었어. 역시 내 후손이라 머리 하나는 좋아. 마음에 들어.’

저벅.

그때, 명왕의 곁으로 명왕존이 다가왔다. 그의 손에도 전서가 보였다.

“또 여기에 오는 놈들이 있다는 것인가?”

“이번에는 마교에서 움직였습니다.”

“마교에서?”

명왕은 어이가 없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마교까지는 정말로 예상 못 했군. 신강에서 그놈들까지 나온다고?”

“그렇습니다. 사천성을 넘어 곧장 호북성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사천 무림에서 저지를 안 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사전에 서로 약속된 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잘됐군. 신경 안 써도 된다. 이번 기회에 마교까지 자동적으로 정리를 하면 되겠어.”

“…….”

“바로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본 명왕이 그놈들에게 질 것 같은가?”

“아닙니다. 그놈들은 절대로 명왕부를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크크크크. 그래?”

“…….”

“세상에 ‘절대’라는 말은 없다. 게다가 이건 ‘절대’ 또한 아니지. 네놈들이 똑바로 그들을 상대하지 않으면 질 수도 있을 텐데?”

명왕존의 표정이 굳어졌다.

명왕이 말한 의미.

질 수도 있는 주체는 네놈들이라는 뜻이었다.

‘우리와 함께 싸우지 않겠다는 말인가? 아니면 최선을 다하라는 뜻인가?’

“절대로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그들은 명왕궁까지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좋아. 그런 마음이라면 그놈들을 잡을 수 있겠군.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게야. 상대할 인물 중에는 극일가와 은룡투인이 있다.”

“명왕부의 힘을 믿고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리고 은룡투인은 저희가 아닌 명왕님께서 맡아주시지 않겠습니까?”

“본왕이?”

“그렇습니다. 명왕님께서는 예전에 이미 은룡투인을 이기지 않으셨습니까.”

“크크크크…….”

명왕은 괴소를 터뜨렸다.

‘이것 봐라? 아무도 모를 것이라 여겼는데 알고 있었군.’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땐 아무도 모르게 홀로 움직였었다.

“알아도 상관은 없다만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군.”

명왕존은 천천히 허리를 굽히면서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죄송합니다. 소신이 직접 목격했습니다.”

“내 뒤를 밟은 모양이군.”

“송구하옵니다. 갑자기 말없이 외부에 나가시기에 호위를 위해…….”

“호위는 무슨. 사실대로 말하라.”

“……그때 당시는 명왕님을 믿을 수 없었사옵니다.”

“호오…… 하긴. 맞는 말이지. 명왕을 죽인 극일가의 인물을 명부에서 쉽게 믿을 수는 없었을 테니. 지금은 어떤가?”

“믿습니다.”

“큭, 무엇을 보고 믿는다고 하지?”

“…….”

명왕존의 몸이 움찔거렸다.

“본왕에 대한 의심을 했으면 끝까지 의심을 풀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알겠사옵니다.”

“그대가 믿는지 안 믿는지 난 상관 안 해. 난 그놈과 극일가 전체를 죽일 테니까. 그리고 세상에 오직 나 홀로 존재할 것이다. 크하하하!!”

휘이이이익!

그의 대소에서 뻗어 나온 강한 힘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부복한 명왕존의 머리카락이 뒤로 휘날렸다.

부들부들.

명왕존은 방금 그의 눈빛에서 느꼈다.

그는 극일가의 은룡투인을 죽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을 죽이고자 했다.

그 속에는 명왕부도 있음을 알았다.

‘……극일가가 무너진다면 난 죽어도 상관없다.’

하나 명왕존의 모든 관심사는 오직 극일가의 멸문이었다.

* * *

집결지에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천검궁이었다.

뒤를 이어 무림맹에서 출발했던 중원무군이 곡성의 초입에 도착했다.

“하하하! 어서들 오시게.”

묵경은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중원무군의 인물들을 맞이했다.

“묵 형, 빨리 왔군.”

“다들 먼 길을 온다고 고생이 많았어.”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듯 반가웠다.

“무명, 자네 얼굴이 활짝 폈군? 맹주가 적성에 맞는 모양이야.”

“내 얼굴이 아무리 펴도 자네만 하겠나. 갈수록 반질거리는군.”

“하핫! 그게 타고난 거라 말이지. 이대로 중원에 나가면 수백 명이……!”

묵경은 순간적으로 뒤에서 노려보는 시선에 그대로 멈췄다.

‘앗…… 흥분해서 잊어버렸다.’

“푸흣, 묵경 오라버니는 여전하시네요. 어떻게 금 언니를 두고 그런 말을 하세요?”

일행 사이에서 당우희가 웃음을 터뜨리며 나왔다.

“응? 수백 명이 와도 금 소저에게는 안 된다고 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런가요?”

“당연하지. 난 세상에 오직 금 소저밖에 없다니깐.”

묵경은 환하게 미소를 띠며 금하희를 보았다.

“됐습니다.”

금하희는 연자련과 당우희와 반갑게 인사를 한 후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쩌업…….

묵경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들의 뒤를 보았다.

“형님, 전 이해합니다.”

장두총이 슬쩍 다가왔다.

두 사람 사이에 동병상련의 정이 느껴졌다.

“고맙다. 그래도 장 아우가 내 마음을 알아주니 다행이다.”

두 사람 옆으로 제갈양이 다가왔다.

“둘이서 죽이 잘 맞는구만.”

“뭐, 왜.”

“나중에 쫓겨나지는 마라.”

“내가? 쫓겨난다고? 내가 금 소저에게 얼마나 잘하는데?”

“그래, 그래, 알았다. 들어가기나 하자.”

제갈양은 그를 지나 진영의 중앙으로 들어갔다.

“묵 형, 우리도 들어갑시다.”

우종성은 미소를 지었다.

곡성의 하늘 위로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막사 위로 중원무군의 깃발이 펄럭거렸다.

두두두두-

중원무군의 진영으로 강한 진동이 불어 닥쳤다.

많은 이들이 웅성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지평선 너머로 나타난 먼지구름 사이에서 하늘로 솟구친 극일가의 깃발이 보였다.

남궁무명의 눈가에 감탄이 서렸다.

“여전히 극일가의 힘은 강하군.”

“그러게 말이야. 저게 절반 이상이나 당했던 곳인가?”

고도유와 함께 극일가의 무인들이 명부에 당했다고 들었지만, 극일가의 기세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달라지지.”

“그렇군. 그가 함께하는 극일가라면 당연히 천하제일이겠지.”

남궁무명의 말에 모두 인정했다.

중원무군의 진영으로 극일가의 본군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선두에서 달려오는 고진유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후후후. 고금제일인답다.”

전력을 다해 달리는 말 위에서 팔짱을 낀 느긋한 모습.

두 손으로 말고삐를 잡아도 흔들거리는 말 위였다.

하지만 고진유는 아래위로 움직이는 말 위에서 움직임도 없이 편안해 보였다.

이십여 장 남은 거리.

타아앗!

고진유는 말 위에서 갑자기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또 뭐야?”

“…….”

그들은 하늘로 솟구친 고진유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태양 속에 숨은 고진유의 모습은 마치 태양을 우러러보는 것과 같았다.

“허어…… 대단하군.”

이보다 강렬한 등장을 본 적이 없었다.

고진유는 그들 앞으로 천천히 내려앉아 환한 미소를 띠었다.

“묵경 형, 안 반가운 모양인가 보네요.”

“당연히 반갑지. 근데…… 좀 정상적으로 오면 안 되냐?”

“아…… 멋있지 않았나요? 좋아할 줄 알았는데.”

“어느 정도 적당히 하면 멋있지만 너무 과하면 그런 생각도 안 들어. 좀 이상해.”

“아하…… 그렇군요. 다음에는 조금 더 생각해 보겠어요.”

고진유는 묵경 뒤에 선 사저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호화 사저, 호청 사저, 잘 지냈어요?”

“묵경 오라버니 말은 신경 쓰지 마. 난 멋있었다. 역시 호정 사제는 잘난 맛을 보여주는 게 제일 좋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 사제의 이런 모습이 제일 멋있어.”

“역시 두 분 사저가 저를 제일 잘 알아준다니까요.”

고진유는 그녀들과 인사를 마치며 주위에 모여든 인물들을 보았다.

“초정 형님도 도착하셨군요. 천검궁의 힘을 보태주어서 고맙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네. 오히려 우리가 더 고마운 일이지.”

“그런가요? 하하하.”

고진유와 그들이 서로 인사하는 동안 극일가의 무인들이 진영에 도착했다.

혁자영은 무혼신녀가 말 위에서 내리자 얼른 앞으로 나섰다.

“오셨습니까?”

“잘 지냈나? 오랜만에 보니 좋군.”

“고맙습니다.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조금씩 편안해져 가고 있었다.

제갈양은 얼른 그녀의 앞으로 다가서며 고개를 숙였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과할 정도의 공손함이었다.

“멀리 오시느라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괜찮다. 저번에 말했듯이 굳이 나에게 신경 안 써도 된다.”

“아…… 네에. 알겠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항상 공손하게 대하라고 하셨지요.”

“나중에 무림맹에 가서 한마디 해야겠군.”

“…….”

중원무군의 사기는 최고조로 올라섰다.

고진유의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등장은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상대가 명왕부가 하더라도 그와 함께한다면 절대로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갈양은 단 한 명의 존재만으로 사기가 올라온 것을 지켜보았다.

‘역시…… 기세는 수장의 능력에 따라 달린 것이지.’

* * *

곡성 임시 진영의 중앙 막사에 중원무군의 주요 인물들이 모였다.

현재 중원 최고의 인물들이 모두 한자리에 앉아 있었다.

고진유는 회의석상의 중앙에 앉은 채 그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제갈양은 일어나 지형도를 아래로 펼쳤다.

“여기를 보시지요. 명왕부로 들어가는 길은 이곳입니다.”

“군사는 그 지도를 어떻게 알았소이까?”

초정이 묻자 제갈양 대신에 고진유가 대신 대답했다.

“그건 본인이 명부에서 들은 내용을 군사께서 실제 지형을 본 뒤 그린 것입니다.”

“그렇군요.”

“군사께서는 계속 하시지요.”

제갈양은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맞소이다. 무군장께서 알려준 설명을 참고하여 본인이 곡성의 지형에 맞게 표시한 것이외다.”

“명부공옥지라고 쓰여 있군요.”

“그렇소이다. 명왕이 있는 명왕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제일관 명부공옥지를 지나야 합니다.”

“군사, 지도에는 명부공옥지를 지나면 막다른 장소이지 않소이까?”

“지도상으로 보면 그렇게 보일 겁니다. 하지만 명부공옥지에 들어서면 알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타악.

제갈양은 지형도 위에 지휘봉을 짚었다.

산과 산이 이어진 선으로 골짜기를 나타내는 곳이 확실했다.

“분명 이곳에 가면 명왕부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겁니다.”

“음…… 진정한 명부는 명부공옥지를 통과한 뒤 찾아야 한다는 말이군요.”

“그렇소이다. 명왕를 잡기 위해서는 들어가야 합니다.”

“만일 명왕부로 가는 길이 그곳이 아니라면?”

“…….”

초정의 질문이 다시 나왔다.

잠시 회의석상에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고요한 상태는 얼마 가지 않았다.

“초정 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확인하지 않은 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지요. 만일 우리가 당한다면 명왕부와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은 없으니까요. 무턱대고 들어갔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지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이지 않소이까?”

“혹시나 해서 확인을 위해 이미 두 사람을 안으로 보냈습니다.”

“두 사람을? 설마…… 권협과 살협이 명왕부에 갔다는 말인가?”

회의석상에 모이면서 천무십이인 중 인양과 녹림야검이 없는 사실을 알았다.

고진유의 말로는 잠시 볼일이 있어 어딘가 갔다고 했다.

근데 그들이 명왕부에 갔을 줄을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묵경의 표정에 걱정이 떠올랐다.

“위험하지 않을까?”

“인양과 녹림야검이 위험하다면 우린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고진유의 대답은 두 사람에 대한 최고의 믿음이었다.

“명부에서 알려준 명왕부가 맞기를 바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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