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418화 (418/425)

418화

고화유는 모든 상황이 명확해진 것을 느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이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제 해야 하는 건 어머니에 대한 복수였다.

그동안 잊지 못하고 늘 간직했던 마음의 상처가 어느덧 사라졌다.

“다행이야. 난 어머니가 우리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하기에 마음이 아팠어.”

“누나가 늘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어. 이젠 내려놓았으면 해요.”

“고마워. 지금은 정말 마음이 편해졌어.”

고화유의 표정은 편안했다. 고진유는 그녀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게 끝이 날 테니까.”

“그래. 알았어.”

그녀는 대답하면서 한 번 더 복수를 다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어떻게 명왕이 되었지?”

“전대의 명왕을 죽였다고 하더군요.”

“명왕을 죽였다고? 그럼 끝이잖아.”

고화유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명왕이 사라졌다면 극일가의 승리가 아닌가?

잘못 안 게 아니라면 명왕이 죽었을 경우 명부는 사라져야만 했다.

‘하긴 이해가 안 되겠지.’

고진유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어떤 걸 궁금해하는지 알았다.

“명왕을 죽일 때까지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그를 죽이고 나자 탐욕이 생긴 거죠. 명왕부에서 새로운 명왕으로 즉위하여 세상을 혼자 차지하고픈 욕망이 강렬해졌고…… 그 순간 그는 이미 명왕으로 변한 겁니다.”

“명왕에게 이긴 게 아니라 결국 명왕에게 졌다는 말이구나.”

“누나 말이 맞아요. 명부는 명왕만 다른 인물로 달라졌을 뿐이었던 거죠. 아니, 오히려 더 안 좋게 된 셈입니다. 명왕이 된 그는 극일가의 힘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렇겠지. 극일가의 가주였으니까…… 조부의 죽음에 대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게 이것 때문이었군.”

극일가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일이었지만 알릴 수 없었을 것이다.

전대 가주가 명왕이 되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가 명왕이 되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게 뭔지 알아요?”

“뭔데?”

“명부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극일가를 꺾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을 없애야 했습니다. 명부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제대로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 말입니다.”

고화유의 머릿속에서도 하나씩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명왕이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이 신무신단을 만드는 것이었군. 그게 지금에서야 성공한 것이고.”

“그렇다고 봐야겠지.”

“대단하구나.”

그녀는 감탄이 나왔다.

얼마나 오랜 시간 진행된 계획인가.

명왕은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다.

고화유는 얼굴에 웃음을 띠웠다.

“그런데 너 때문에 완전히 일이 틀어져 버렸구나.”

“하하.”

고진유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의 말처럼 명왕의 계획이 미세하게 빗나간 것이 철갑부터였다.

신무신단으로 인해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무신단은 모두 받았다고 했지?”

“응. 모두 받아 복용했을 겁니다.”

“정확히 언제 출발하지?”

“원래는 비밀리에 움직이고자 했는데, 그게 안 될 것 같아요. 여전히 본 가에 간자들이 숨어 있을 테니까.”

“그렇겠지. 완전히 잡아내기에는 부족하겠군.”

“이번 경우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면 모르겠죠. 우린 오 일 뒤. 명왕부로 갈 겁니다.”

“알았다. 드디어 가는구나.”

“마지막이야. 그동안 누나도 고생 많았어요.”

“고생은 내가 아니라 네가 했지.”

“두 분이 살아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

고진유는 그녀를 가볍게 앉았다.

그들은 정말로 끝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 * *

둥! 둥! 둥!

극일가 대광장에 모여든 수많은 무인들.

연단 가장 가까운 아래로 천무십이인의 무혼신녀부터 인양, 녹림야검, 고화유 등등 많은 이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연단 위에 한 사람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고묵과 함께 고진유의 신형이 연단에 나타났다.

대광장에 모인 모든 시선이 연단 위에 집중되었다.

고진유는 무심한 눈빛으로 아래에 모인 그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연단 아래에 모여 있는 수많은 이들은 개인의 영광을 위해 싸우고자 명왕부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스스로 운명이라 생각하겠지만, 세상을 위한 살신성인의 마음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진유는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에서 그들을 보기 위해 연단 끝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고진유의 행동에 연단 아래 대광장에 모여든 무인들은 숨을 죽이며 올려다보았다.

“본인이 여러분에게 가장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고진유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대들이 명왕부로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인은 극일가의 가주이지만 여러분의 목숨을 함부로 다룰 수 없습니다. 그대들이 스스로 목숨을 내걸며 명왕부로 가는 것은 세상을 위해,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가는 것이지요 그대들의 숭고한 뜻에 또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진유는 포권을 하며 광장을 둘러보았다.

그들 또한 고진유를 따라 포권을 했다.

처음과 다르게 고진유의 목소리에는 점점 내력이 실렸다.

“그대들을 보면서 본인은 자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여준 마음이라면 우리는 명왕부를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두는 본인이 설 것입니다. 중원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명왕부는 우리들의 손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고진유는 말이 끝나는 동시에 사의검을 번쩍 위로 올렸다.

연단 아래서 보기에는 하늘 위에 뜬 태양을 찌르는 듯 보였다.

대광장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고금제일인 만세!!”

“가주님, 만세!!”

“와아아아아-!!”

극일가의 무인들도 허리에 찬 검을 뽑은 뒤 위로 들어 올렸다.

* * *

우우우우웅-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마기가 쉴 새 없이 휘몰아쳤다.

서장에서 넘어온 마교도의 무리들.

그들 앞에는 한쪽 팔이 보이지 않는 인물, 천마가 눈을 부릅뜨고 오로지 앞을 보며 달렸다.

마교에 돌아오자 몸을 숨겼던 수하들도 모두 복귀한 채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하들은 천마의 복귀를 환영했다.

하지만 천마는 다시 중원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실망한 표정이 그들의 얼굴에 나타날 때였다.

“명부 놈들과 싸울 것이다. 함께 갈 놈은 손을 들어라.”

그 순간, 그들의 눈빛에서 광기가 쏟아졌다.

번쩍!

수하들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손을 들었다.

손이 없으면 발이라도 누운 채 들어 올릴 기세였다.

원수를 갚을 기회.

중원인들과 함께 싸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한 번은 참아줄 수 있었다.

천마는 모여든 수하들에게 외쳤다.

“죽고 싶은 놈들만 갈 것이다!!”

두두두두-

이번에는 중원이 움직였다.

천검궁과 무림맹, 그리고 극일가의 무인들이 한곳을 향해 달렸다.

천검궁은 궁주 초정을 선두로 양옆으로 묵경과 금하희가 함께 달렸다.

세 사람 뒤로 따르는 일천 명의 천검궁인.

초정은 천검궁의 무인들 중 최고의 무인 천 명을 뽑았다.

그리고 고진유가 보낸 신무신단을 복용했다.

효능이 한 달 정도 유지된 후 반년 동안 내력을 펼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단번에 솟구친 내력에 의해 그들의 무력은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높아졌다.

묵경은 그들을 상대해 보면서 명왕부의 명족들과 충분히 싸울 수 있음을 확인했다.

초정은 수하들을 보며 안심이 되었다. 명부의 괴물들과 싸울 때 많은 희생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려 묵경을 보았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달리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든든했다.

강인한 그의 얼굴에 천하제일남의 얼굴은 묻힌 듯했다.

“묵 형, 고맙소이다.”

“무엇이 고맙다는 것이오?”

“천검궁과 함께하지 않소이까?”

“아! 하하하! 우린 한가족인데 당연한 게 아닙니까?”

전대 궁주 초일군이 죽은 이상, 당분간은 천무십이인 묵경의 존재만으로도 천검궁의 사기에 큰 힘이 되기 충분했다.

“이렇게 달리면 이틀 후 무림맹과 합류할 수 있을 겁니다.”

“알겠소이다!”

천검궁의 일천 무인들은 약속한 장소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호북성의 양양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중원 최고의 지역 중 한 곳이다.

양양의 중심에는 융중산이 있으며 그 아래에 무림세가가 있으니, 중원무림인들은 그곳을 가리켜 제갈세가라 했다.

무림맹주 남궁무명은 명왕부의 위치를 들었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위치는 융중산과 가까운 북쪽 방향인 곡성.

군사 제갈양도 순간 머뭇거릴 만큼 제갈세가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게다가 다른 명부와 달리 곡성 전체가 명왕부라 했다.

“이거 참…… 당황스럽군.”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더니 바로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었어.”

방에 모여 있는 세 명의 사내.

맹주 남궁무명.

군사 제갈양.

총군장 우종성.

세 명의 젊은 무인들은 극일가에서 날아온 전서를 읽었다.

“그곳이 명왕부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

“으, 하긴. 나도 그곳을 그냥 지나쳐 다녔어.”

“혹시 모르니 제갈세가에 연락을 띄워야 하는 거 아닌가?”

남궁무명과 우종성이 한마디씩 했다.

“그렇지 않아도 본 가 사람들은 본 가에서 물러났네.”

“그게 무슨 말인가?”

“그가 융중지난(隆中之亂)이라 적힌 서신을 본 가에 보냈다더군. 가주께서 그걸 보시고 말없이 아무도 모르게 본 가 사람들을 내보낸 모양이야.”

“다행이군.”

우종성과 남궁무명은 한시름 놓았는지 마음이 편해졌다.

“아, 그렇지. 천검궁에서도 출발했다는 연락이 왔네.”

“그들은 우리와 거리가 있으니 이틀 정도 여유가 있겠군.”

“그리고 천마교에서도 중원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이 왔어.”

“…….”

세 사람은 서로 얼굴을 보았다.

마교가 주는 이름의 무게는 그들이 느끼기엔 명부보다 무거웠다.

“얼마나 많이?”

“전부.”

“전부?”

“전부. 천마가 이놈들은 모두 죽는다 해도 명부 한 놈을 더 죽일 거라던걸.”

“…….”

제갈양의 말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들이라면 그럴 수 있었다.

“……우리도 곡성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겠군.”

“항상 준비는 되어 있지. 곧바로 출진 준비를 하겠네.”

드디어 기다렸던 출진이었다.

신무신단도 모두 도착해 복용한 뒤였다.

효과는 단번에 나타났다.

내력은 노력한 결과에 따라 두 배에서 세 배까지 높아졌다.

계속해서 유지가 되지 않은 게 아쉬웠지만, 그것만으로도 무림맹의 무인들은 만족했다.

“천검궁에서 나온 무인은 총 일천 명일세.”

“신무신단을 복용한 무림맹의 무인과 화산파, 그리고 남궁세가까지 합치면 삼천 명이다.”

“그럼 총 사천 명이군.”

제갈양은 탁자를 손가락을 탁탁 두드렸다.

“극일가는 어떠려나. 명부에 당했다고 해도 최소 일만 명 정도는 넘을 것 같은데?”

고진유에게 듣기로 극일가 총 무인들의 수는 삼만.

육천명부에서 당한 무인들의 수는 절반 정도였으니 일만 정도일 거라 예상됐다.

“아무리 많아도 이만이 안 되는군.”

“여기에 마교도가 있지 않은가?”

“그들은 일단 예외로 두세나.”

“음…… 제갈 형의 말이 맞네. 그게 좋겠어.”

마교의 존재가 그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줄지 몰랐다.

공통의 적을 상대한다고 하지만 중원 무림과 완전히 섞일 수는 없을 터.

‘어느 정도 통제는 가능하겠지만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니…….’

그렇다면 차라리 함께 싸우는 게 아니라 별동군으로 두는 게 더 나을 듯싶었다.

세 사람은 회의를 빨리 마무리 지었다.

이제 남은 일은 곡성으로 떠나는 것뿐.

스윽.

제갈양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번 일이 끝나더라도 앞으로 중원은 지금처럼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않겠나. 잘들 해보자고.”

“…….”

“나 참, 누구의 뒤통수를 치자는 말이 아니네. 자네들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않은가?”

고진유를 말함이었다.

“본인과 관련이 없으면 중원 무림의 일에는 관심이 없지. 이번 일도 사실 한번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일 테고.”

“그럴 거네.”

고진유에 대해 잘 아는 우종성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명부 일이 끝나면 그는 중원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야. 산에 호랑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나? 여태까지 조용하게 지냈던 곳까지 순식간에 튀어나올 거라고.”

“그걸 우리가 나서서 막는다는 말이군.”

“그런 것도 있지만, 우리가 피를 흘리며 지킨 무림을 지켜보기만 한 그들에게 줄 텐가?”

제갈양은 두 사람을 보면서 물었다.

스윽.

슥.

남궁무명과 우종성은 손을 내밀었다.

대답하지 않아도 함께하겠다는 뜻을 알았다.

“우리 딱 십 년만 제대로 해보세.”

“십 년? 이유가 있는가?”

“너무 오래하는 건 재미없으니까. 그리고 십 년이 지나면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모두 잊을 걸세. 그때부터 다른 곳에서 불만이 튀어나올 거야. 그럼 두 사람이 오 년씩 맡아서 하면 돼.”

“자네는?”

“자네들의 뒤를 봐줘야 하니 십 년 동안 군사를 맡아주지.”

“좋군.”

세 사람은 손을 부딪치며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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