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417화 (417/425)

417화

칠천명부에서 일어났던 일은 곧바로 극일가에 전해졌다.

명왕대법군 전원 매몰.

극일가의 무인들은 그 소식을 듣고 난 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명왕부에 대한 극일가의 완벽한 복수가 분명했다.

“역시 가주님이시군!”

“똑같이 복수할 줄 몰랐어.”

“정말 대단하지 않아?”

“그러게 말이네. 단번에 원수를 갚았어!”

극일가의 무인들은 가슴 한편에 묻어놓았던 슬픔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육천명부에서 매몰된 그들의 형제들을 이제 보낼 수 있었다.

이제 명왕부와의 마지막 일전만이 남아 있었다.

고진유는 태북천과의 일들을 마무리 지은 후 고촌으로 돌아왔다.

명왕부로 떠날 완벽한 준비가 되는 날, 출진하게 될 것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인양이 들어왔다.

“형, 뭐 하고 계세요?”

“그냥…….”

고진유는 의자에 앉은 채 멍하니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양은 미소를 지었다.

“심심하신가 보네요.”

“으음, 그렇다고 봐야겠지. 뭔가 딱히 할 게 없네.”

“맞네요. 우리야 무공이라도 수련한다고 하지만 형은 그것도 이미 넘어섰잖아요.”

“그건 아니지. 아직도 안 배운 것도 많고, 익힐 것도 많아.”

“형, 만일 그 말을 남들 앞에서 하면 뒤에서 욕 들어요. 알겠죠?”

“…….”

고진유는 의자에 바로 고쳐 앉았다.

“에고, 이젠 함부로 말도 못 하겠군.”

“당연하죠. 세상의 모든 눈과 귀가 고금제일인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어요.”

“인양아, 나중에 이 일이 끝나면 화산에서 조용히 지내야겠다.”

“형이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시겠죠. 근데…… 세상에서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 같은걸요.”

“하핫,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이 든다. 이래저래 무림에서 지내려고 하면 꽤 시끄러울 것 같지.”

고진유는 훗날에 아무리 생각해도 조용하게 지내지는 못할 듯했다.

“근데 무슨 일이야?”

“무림맹과 천검궁에서 연락이 왔어요. 시간에 맞춰 그곳에 도착하겠다고요.”

“수고했다.”

명왕부를 상대하기 위해 중원에서 가장 강한 곳이 한자리에 모이기로 했다.

“……진유 형, 우리는 그들을 당연히 이길 수 있겠지요?”

“당연해. 걱정 안 해도 된다.”

“걱정 안 해요. 고금제일인이 있는데 당연히 우리가 이기지 않겠어요?”

“고맙다.”

스윽.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밖에 나가볼까?”

“네. 진유 형.”

인양은 밖으로 그를 따라나섰다.

극일로 경내로 나온 두 사람.

주위로 극일가의 인물들이 보였다.

평온한 표정으로 시선이 마주치고, 고진유를 보며 인사를 했다.

그들 또한 고진유의 존재만으로 안전하다는 듯,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인양은 뒤를 따르면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치 친구인 듯 편안하게 대하는 고진유를 보며 그들 또한 편안하게 대했다.

‘후후후. 저들이 형을 안 좋아할 수 없지.’

* * *

고진유는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을 보았다.

신무신단을 만든 주국과 언종.

고진유는 먼저 주국의 술잔을 채웠다.

“두 분께서는 정말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허허허. 수고라고 할 게 있겠소이까. 남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데 어려운 일도 아니외다.”

“주 어르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주국과 언종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 둘만으로 많은 수량의 신무신단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우리가 필요한 신무신단은 모두 만들었소이다. 나머지는 급하지 않다고 하니 여유를 가지면서 만들도록 하지요.”

“네, 편할 대로 하시면 됩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주국의 말처럼 이번에 만든 신무신단을 마지막으로 명왕부로 들어갈 무인들의 수에 맞게 전부 나눠 돌아갔다.

주국은 술이 서너 잔 들어가자 얼굴이 붉어졌다.

“가주, 신무신단을 쌓아둔 창고가 불이 났을 때 깜짝 놀랐소이다.”

“그랬습니까?”

“당연히 놀라지 않을 수 없지요! 다시 만들면 되지만 신무신단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가주께서 불에 탄 물건들이 가짜라고 했을 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습니다. 역시 가주는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구려.”

엄지를 펼친 주국을 보면서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가주, 그 물건들은 어디에 두었소이까?”

“아무도 모르게 잘 놓아두었습니다.”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닌 가주가 하시는 일인데 잘 있겠지요. 혹시나 그것도 그들에게 알려질까 걱정이 됩니다.”

“하하, 그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그렇다면 신무신단을 어떻게 그들에게 전해줄 것이오? 혹시나 전해주는 과정에서 명왕부가 알게 된다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 같소이다.”

“그것 또한 염려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오?”

“이미 신무신단은 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벌써? 언제 그들에게 전해졌습니까?”

주국과 언종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신무신단이 극일가 밖으로 어떻게 나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두 분께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비밀리에 움직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여하튼 그들에게 모두 갔다고 하니 다행이외다. 저희도 그 많은 것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

언종이 손을 살짝 들었다.

“저어…… 극일가에서도 모르는 일이이죠? 어떻게 전달이 되었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가주. 이 사람도 궁금하외다. 극일가에서 물건들이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주국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두 분이 만든 그날 신무신단을 받은 뒤 사람을 시켜 곧바로 전달했습니다.”

“곧바로……?”

“한 번 생산된 양 정도는 충분히 개인이 옮길 수 있더군요. 조용히 하오신문을 이용했습니다.”

“아하…… 허허, 저흰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오신문에서 정말 바쁘게 돌아다녔습니다.”

“가주는 이미 그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예상을 했군요. 우리와는 생각부터 다릅니다.”

“아니지요. 모든 것은 두 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허허, 저희가 없어도 가주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극일신단을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저를 너무 과하게 생각하신 게 아닙니까? 저도 못하는 건 못합니다.”

“허허허. 그렇소이까?”

주국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그가 자신들을 위하는 마음을 알았다.

“가주께서는 지금부터 힘든 싸움을 하시겠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 사람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싸움은 할 줄 모르지 않소이까?”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두 분께서는 편히 쉬고 계시면 됩니다.”

“가주라면 충분히 그들을 물리칠 것이외다.”

“감사합니다.”

세 사람은 한동안 서로 술잔을 나누며 마셨다.

* * *

똑똑.

고화유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야.”

짧은 한마디의 말.

“들어와.”

그녀의 목소리에 고진유가 안으로 들어섰다.

“안 자고 뭐 해요?”

“그냥, 이상하게 잠이 안 오네.”

“사형이 보고 싶은 모양이구나.”

“한 대 맞을까?”

“후후후.”

그들은 서로 농담처럼 가볍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소연이가 거의 출산할 때가 다 됐어.”

“그러게요. 산파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진하 언니가 벌써 구해놨어.”

“항상 고마운 분이시죠.”

고화유는 얼굴을 앞으로 내밀며 바짝 다가섰다.

“자, 무슨 일로 온 거냐?”

“그냥…….”

“뭐냐, 재미없게.”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싶어서요.”

“…….”

고진유의 말에 그녀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지. 계셨다면…….”

“우리가 평범했다면 서로 죽이는 일도 없었을 거고.”

“…….”

고화유는 그가 이상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았다.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일은. 그냥 일천명부에 갔더니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 인물화를 봤어요. 완전 누나와 똑같이 생겼더라고요.”

“당연하지. 나도 어머니 자식인데.”

“맞네.”

“야, 쓸데없는 말 계속하지 말고 네 마음에 담긴 말이나 풀어봐.”

“…….”

“네가 나를 찾아온 건 그 안에 든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게 아니었어?”

“귀신인가?”

“흥, 귀신이 아니더라도 네 얼굴을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거다.”

고화유는 미소를 띠며 고진유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건 굳이 다른 사람에게 알릴 필요는 없어요.”

“우리와 관련된 일이구나.”

“맞아요. 우리 가족 일이야.”

그녀는 가족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좀 더 일어났다.

“빨리 말해봐. 궁금하잖아.”

“또 흥분한다. 흥분 좀 하지 말고.”

“허, 알았다. 어서 말해봐.”

고화유는 일부러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뭐야.”

“들을 준비.”

“이걸 사형이 봤어야 했는데…… 아쉽군.”

퍽!

“으윽…….”

“이게 진짜, 자꾸 써먹기는.”

“누나.”

“빨리 말해.”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다고 했죠?”

“……?”

어머니의 죽음의 내막은 아버지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뜬금없이 찾아와서 다시 그에 대해 묻다니.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야?”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어요.”

쿵.

고화유의 심장이 떨어지는 듯했다.

“타…… 살이라고?”

그녀는 처음과 다르게 심장이 빠르게 뛰며 얼굴이 붉어졌다.

“누구지? 누가 어머니를 죽였어?”

“누나, 지금 너무 흥분했어. 이러면 이야기 못 해.”

“……하.”

고화유는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호흡을 했다.

흥분한 붉은 얼굴이 다시 하얗게 돌아왔다.

“됐어. 말해봐.”

“어머니를 죽이기 위해 살수를 보낸 인물은 명왕이에요.”

“그가…… 왜?”

고화유가 차분하게 물었다.

“어머니는 은룡투인의 전인을 낳을 수 있으니까. 명왕은 두려웠던 거지.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니.”

“그래서…… 사내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려고 죽였다는 말이지?”

“맞아요.”

“아버지도 계시잖아.”

“이미 졌으니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뭐……? 그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는데…….”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였죠.”

“그것도 이유가 있어?”

“명왕은 아버지의 아버지거든요.”

“……!!”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의 아버지란 자신에게는 조부란 말이었다.

“명왕이 조부라고……?”

하지만 고진유의 말을 믿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동생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동생을 숨기고 세상에 나가지 않으셨어…….’

그동안 아버지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명왕에게 이미 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극일가는 스스로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명왕이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건 당시엔 극일가가 필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털썩.

고화유는 힘이 빠졌다.

“어떻게…… 할아버지가…….”

“누나, 명왕은 조부가 아닙니다. 조부의 탈을 쓴 악마일 뿐이지.”

“…….”

“누나에게 이 사실을 말한 건 어머니가 우리를 낳다가 돌아가신 게 아니어서예요. 누나 때문이 아니니 더는 마음에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고마워.”

고화유는 어머니의 죽음을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아니라고 했지만 잘 잊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실을 알았다. 스스로 자책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고묵 숙부님은 알고 있어?”

“그분께만 이야기했어요. 명왕은 명왕일 뿐이라 하셨고…… 그 외에는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알겠어.”

고화유도 마음을 비웠다.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이 사라지는 순간, 그녀의 표정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명왕은 우리를 알고 있나?”

“굉장히. 두 번이나 만났으니까.”

“다른 말은 안 했고?”

“같이 세상을 지배하자고 하던데요.”

“지라아아아알…….”

그녀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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