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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415화 (415/425)

415화

장로전 앞은 침묵으로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고진유는 내력을 끌어 올렸다.

“부호위장, 그래도 앞을 막아서겠소이까?”

“…….”

권양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가주의 명을 들었지만 여전히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는 듯했다.

“그래도 가주의 명을 따르지 않는군.”

“그게…… 아니라.”

“시끄럽다. 그대는 지금부터 본 가에서 영구제명을 명한다.”

“…….”

“그리고 명왕의 첩자로 상대하겠다.”

고진유의 목소리에 노기가 뻗어 나왔다.

번쩍.

사의검에서 뻗어나온 검광은 권양도의 목을 단번에 베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

목이 잘린 권양도의 뒤로 호위대들의 눈이 커졌다.

다시 한 번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들도 본인의 앞을 막을 셈인가?”

고진유의 신형에서 뻗어 나온 투기에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잠겼다.

“물러나지 못할까?”

후다다닥.

호위대의 무인들은 살기 위해 옆으로 물러났다.

고진유는 그들을 향해 경고했다.

“그대들에게 마지막으로 살길을 열어주겠다. 스스로 모든 사실을 밝힌다면 어떻게 처리할지 참조할 것이다.”

“…….”

고진유는 물러난 그들의 사이를 지나며 장로전으로 들어섰다.

고묵은 뒤를 따르다 잠시 멈춘 채 호위대를 노려보았다.

“권양도의 목을 벤 것을 봤겠지?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 것이다.”

“알…… 겠습니다.”

호위대의 표정과 목소리는 이미 결정이 난 듯했다.

장로전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도하금의 거처로 향했다.

고진유는 안으로 알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

도하금은 인상을 쓴 채 안으로 들어선 고진유를 노려보았다.

“가주, 지금 무슨 짓이오?”

“이곳에 본 가의 배신자가 있다고 해서 만나러 왔소이다.”

“배신자? 누가 배신자라는 것이오?”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인지 모르겠소이다.”

“…….”

그는 고진유의 뒤로 모습을 드러낸 고묵을 보았다.

“이보게, 무슨 일인가?”

“원 호위장이 사실대로 말했소.”

“그가 대체 무슨 말을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네.”

“비겁하군요. 계속 변명을 하려는 것이오?”

“…….”

고묵의 목소리도 싸늘했다.

‘망할 놈들이…… 실패하다니…….’

도하금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그리고 비웃기라도 한 듯 고진유를 보며 말했다.

“……아쉽군. 그놈들을 죽이지 못했지만 신무신단은 전부 타버렸지. 그만큼 시간을 번 셈이고.”

“그건 상관없소. 다시 만들면 되지 않겠소?”

“…….”

“급한 일도 없소이다.”

“하하하하. 가주, 잘난 척하더니 이건 모르고 있었군.”

“뭘 말이오?”

“태북천은 그분의 사람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신무신단의 재료를 구할 수 없다는 말이다.”

“…….”

고진유는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그대가 가주라고 해도 암흑금상은 태북천을 따를 것이다.”

“……본인이 상천주이거늘. 그들이 본인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곳에 일하는 사람들은 전부 태북천의 사람이니까.”

“하…… 이건 생각지도 못했군요. 너무 쉽게 풀리기에 약간 무시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때릴 줄은 몰랐소이다.”

“모두 불에 탄 이상 극일가에서는 더는 신무신단의 재료들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거 참…… 이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무슨 뜻이지?”

“그대가 태운 창고 안에 두었던 상자 안에는 신무신단이 없소이다. 본인을 바보로 생각했소? 명왕을 치기 위해 중요한 신무신단을 겨우 한 명만이 지키는 그곳에 보관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본 모양이구려.”

“뭣이……?!”

도하금의 깜짝 놀란 눈이 커졌다.

만일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굳이 알려주지 말아야 할 사실을 알려준 셈이었다.

그는 환하게 미소를 띤 고진유를 보았다.

“본의 아니게 그대에게서 좋은 이야기를 들었소이다.”

도하금은 뒤로 물러서며 주위를 살폈다.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급해졌다.

“도망갈 생각이오?”

파앗!

도하금이 창문으로 신형을 날린 순간,

‘이런……!’

“훗. 정말 도망가려고 할 줄은 몰랐소이다.”

어느새 그가 움직였던 창문 앞에 고진유가 서 있었다.

파아아앙!!

도하금은 손을 뻗으며 장법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고진유도 다가오는 그의 손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두 기가 부딪혔다.

“커어어억.”

도하금은 피를 토해내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끄으응…….’

바로 일어나고자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일어날 수 없을 것이오.”

“…….”

“그대의 내력을 모두 지웠소이다.”

“……나를 죽여라.”

“죽일 것이오. 당신들이 어떠한 짓을 했는지 극일가의 모든 이들에게 알린 뒤에. 그 뒤에 원하는 대로 해주겠소이다.”

* * *

아침이 밝았다.

밤새 불에 탄 창고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웅성웅성.

극일가의 인물들이 대연무장 앞으로 모였다.

가주 고진유의 명에 그들은 잠시 눈을 붙인 뒤 다시 나와야 했다.

대연무장 연단 아래에 무릎을 꿇은 두 명의 인물이 있었다.

장로인 도하금과 장로전 호위장 원저량의 모습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은 어떠한 이유인지 모르나 엄청난 죄를 지었음을 알았다.

연단 앞으로 고묵이 나섰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그의 한마디에 대연무장은 고요해졌다.

“여러분들은 여기 두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 것이오. 하지만 우린 모르고 있었소. 간자 도하금과 원저량은 명왕의 명을 받은 본 가의 배신자였소이다.”

“헉……!”

“세상에…… 장로님께서…….”

대연무장이 순간 탄식으로 가득했다.

“어제저녁 이들은 신무신단을 만들지 못하도록 의원들을 죽이고자 했으며 창고에 큰 불을 질렀소. 다행히 신무신단은 다른 곳에 있으며, 이들이 죽이고자 했던 두 분 모두 무사하오.”

고묵은 잠시 말을 멈추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늘 이들을 죽임으로써 경고하는 바요. 본인은 더는 본 가에 그들의 간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오.”

대연무장에 모인 극일가의 무인들은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보았다.

누구도 동정의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

고묵은 뒤로 물러나자 이번에는 고진유가 두 사람 앞으로 나섰다.

“본 가를 배신한 죄인들을 본인이 단죄할 것입니다.”

다른 인물이 아닌 고진유가 직접 나서겠다고 했다.

스르릉.

고진유는 사의검을 검집에서 당겼다.

“고통 없이 떠나게 해주겠소이다.”

“…….”

휘이익!

사의검이 떨어지며 두 사람의 몸을 지나갔다.

툭.

그리고 그들의 몸을 묶었던 포승줄이 끊어졌다.

극일가의 무인들은 두 사람의 목이 잘려 나갈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랐다.

“떠나라. 당장에라도 목을 베고 싶지만 오랫동안 함께했던 과거를 봐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어차피 그대들은 영원히 무공을 익힐 수 없으니.”

“…….”

“만약 본인의 앞에 한 번 더 나타난다면, 그때는 그대들을 묶은 줄이 아닌 목이 잘릴 것이다.”

도하금과 원저량은 침울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사방이 고요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샤샤샤샤-

극일가의 인물들은 옆으로 물러나면서 두 사람이 연무장을 지나갈 통로를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고개를 숙였지만 자신들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불쌍하면서도 경멸하는 눈빛.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자신들의 앞날에는 오직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게 보였다.

고진유는 연무장을 나서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고묵이 다가섰다.

“저들을 살려둬도 괜찮겠는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살아간들 본 가에 전혀 피해를 주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저…… 그리고 잠시 조용히 그분께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태북천,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명왕과 싸우기 전에 모든 것을 정리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묵이 다시금 연단 앞으로 나서는 동안 고진유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휘익.

대연무장 뒤편에서 사라진 고진유의 모습을 본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 * *

거리는 많은 장사꾼으로 항상 시끌벅적했다.

고진유는 마을을 거닐면서 두리번거렸다.

‘……저곳이군.’

양쪽 길가 점포들 사이에서 흑색의 간판이 걸린 곳을 보았다.

스윽.

노파는 꾸벅꾸벅 졸다가 앞에 다가온 기척에 얼른 고개를 들었다.

노파의 눈앞으로 황금색의 둥근 물건이 나타났다가 바로 손바닥 안으로 사라졌다.

“방금 그것은…….”

분명 자신이 본 건 황금신패로 금상령패가 맞았다.

“……가주이십니까?”

“그렇소.”

노파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안을 가리켰다.

“저곳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알겠소이다. 수고하시오.”

고진유는 노파를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점포들 벽 사이로 작은 틈을 지나자 넓은 장소가 나타났다.

‘흠…….’

그곳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는 중년  사내들의 시선들이 느껴졌다.

고진유는 그들을 지나 안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벌떡.

그들 중 건장한 사내가 입에 씹고 있던 뼈다귀를 뱉어내며 일어섰다.

“어이, 형씨. 어딜 함부로 들어오는 거요?”

“본인은 고진유라 합니다.”

“…….”

사내는 순간 온몸에 경직됐다.

고진유는 손에 들린 금상령패를 마당에 모여 있는 사내들에게 보여주었다.

“죄, 죄송합니다. 상천주이신 줄 몰라 뵈었습니다.”

“괜찮소. 그대들이 본인을 한 번이라도 보지 않은 이상 어떻게 알겠소. 여기에 태 어르신께서 계시는지 모르겠소이다.”

“안에…… 계십니다.”

“그렇소이까? 본인이 잘 찾아왔군요.”

고진유와 사내들이 대화를 하는 사이 건물 안에서 노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고진유은 건물 안에서 나온 인물을 보았다.

태북천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말없이 찾아온 고진유를 보면서 좋지 않은 일임을 알았다.

“가주께서 오셨소이까?”

“어르신을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무탈하셨습니까?”

“노신이야 늘 똑같지 않습니까?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둘이서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있습니까?”

“따라오시지요.”

태북천은 고진유와 함께 정자에 앉았다.

길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였지만 조용했다.

차를 준비하는 동안 서로를 보기만 할 뿐 말을 꺼내지 않았다.

차를 준비하고 나서야 먼저 태북천이 말문을 열었다.

“이곳에 오신 이유를 알 듯합니다.”

“…….”

고진유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저 그가 따른 찻잔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때 모든 것을 밝혀야 했지만…….”

“……이해합니다. 당시에는 어르신께서 선택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처음 저를 만났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가주께서는 훌륭하게 자랐습니다. 돌아가신 전대 가주님께서 흐뭇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제가 어르신께 하나만 묻고자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말씀하시지요. 노신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태북천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가 자신을 죽이고자 무작정 온 게 아니라는 것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르신께서 누구를 선택하신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극일가의 가신이기에 외부의 인물을 섬길 수는 없을 것이라 봅니다.”

“가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외부의 인물을 모실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그러해야겠지요. 어르신께서는 여전히 암흑금상의 태부주가 아니겠습니까.”

“…….”

태북천은 초롱초롱한 고진유의 눈빛을 보았다.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지…….’

살려주겠다는 의지인가.

아니면 살려주는 대신에 아는 것을 모두 불라는 뜻인가.

그는 곰곰이 생각하면서 고진유와 여전히 시선이 마주쳤다.

“어르신, 이번에는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까?”

“…….”

“이젠 그는 본 가의 인물이 아닙니다. 스스로 본 가를 나선 뒤 본문을 배신한 인물입니다.”

태북천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주께서는 그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한때 조부였던 분이시더군요. 사실 벌써 두 번이나 만났소이다.”

태북천은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었다.

“만약 어르신께서 여전히 본 가의 인물이라고 여기신다면 한 번 더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소이다. 잘 생각해 보겠소이다.”

“고맙습니다. 잠시 생각할 동안 마을 객잔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젠 결정은 그의 뜻에 맡겼다.

‘내가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은 했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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