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411화 (411/425)

411화

명왕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일천명부로 가는 길.

고진유는 한동안 조용히 말없이 걸었다. 뒤에서 인양과 녹림야검도 조용히 따랐다.

명왕이 극일가의 가주였던 전대의 인물이라 한다면 세상에 누가 그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슬쩍.

인양은 그의 기분이 어떠한지 계속해서 눈치를 살폈다.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친조부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아이고…….’

만일 자신이 그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쉽게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것이었다.

혹시 슬픔을 계속 참고 있는 게 아닌지 살펴보았다.

“저어…… 형, 진짜…….괜찮아요?”

“내가 걱정되는구나. 인양이 보기에 내가 지금 안 좋아 보여?”

“그건 아닌데…… 너무 힘든 상황이라서요. 웃으면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하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놀랄 일이긴 하지.”

“…….”

“하지만 두 사람은 걱정 안 해도 돼. 난 정말로 괜찮으니깐. 물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야. 이겨내는 것이지.”

“네, 알겠어요. 형은 강한 사람이니까요. 다행이에요.”

인양은 미소를 띤 고진유의 표정에서 안심이 되었다.

그는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형, 나중에 명왕부에 가서 명왕과 마주친다면 싸워야 하잖아요.”

“당연히 싸워야지 않겠어? 그가 예전에 누구였는지는 상관없어. 아버지와도 싸웠다면 이미 그는 명왕일 뿐이지.”

고진유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가 전대의 극일가 은룡투인이라 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될 뿐이었다.

“이번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자. 굳이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묵경 형에게도요?”

“후후. 그래.”

“알겠어요. 우리만 알고 있는 것으로  할게요.”

“저도 알겠습니다.”

인양과 녹림야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천명부로 도착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인양은 다시 물었다.

“형, 이번 일이 끝나면 바로 명왕부로 들어가는 거죠?”

“우선 완벽한 준비가 되어야겠지. 명왕부에는 거의 십만의 명족들이 있다고 했잖아. 우리 인원으로 함부로 들어갔다간 많은 희생을 당할 수 있어. 지금 그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세력은 향천과 극일가의 남은 세력들밖에 없어. 위험할 거야. 명왕부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무인들이 필요해. 신무신단의 도움을 얻을 수밖에 없어 보여.”

“그렇다면 신무신단이 준비되어야겠네요?”

“맞아. 어렵지만 할 수 없지. 명왕부에서 움직이기 전에 빨리 확보해야 해.”

고진유은 대답하면서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명왕에 대해 다시 생각이 떠올랐다.

‘휴우…… 생각을 지운다고 하는데도 잘 안 되는군.’

조금 전 괜찮다고 말을 했지만 한편으론 명왕에 대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자님, 신무신단을 복용한 무림인들의 도움보다는 명부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녹검 씨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명부에서 도움을 준다면 정말 고마울 따름이죠. 하지만 명부와 함께 움직인다면 과연 중원의 힘으로 이겼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힘들더라도 중원의 힘으로 명왕을 이겨야 나중에 어떠한 일들이 생기더라도 다시 이겨낼 수 있어요.”

“아하,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고진유는 미소를 띠며 녹림야검을 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거물이 되었다.

주위의 인물들은 자신이 옆에서 많은 도움을 줬기에 지금의 그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약간의 도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수많은 노력을 직접 옆에서 지켜보았다.

정파인들 사이에서 굳건하게 버티며 지낸 그의 노력을 주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스스로 깨우치고 변하지 않으면 절대로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아야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자신이 아는 인물 중 녹림야검을 능가할 무인은 없었다.

“아 참, 녹검 씨.”

“네. 공자님. 말씀하십시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녹검 씨의 이름을 모르네요.”

“아…… 그게…… 그냥 녹검 씨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지금까지 생사를 함께한 사이인데 이름이라도 알아야 하는 게 아니오.”

“그게…… 성은 대…… 이름은 현자…… 대현자입니다.”

“…….”

“부모님께서 어진 사람이라 되길 원하시며 현자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춘당께서 미래를 보셨던 모양이군요. 녹검 씨는 대현자가 되기에 충분하죠.”

“크흠, 부끄럽습니다. 누가 녹림 출신의 산적에게 대현자라 부르겠습니까?”

“천하의 천무십이인 녹림야검을 산적이라 부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과히 현자로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공자님, 고맙습니다. 모든 게 공자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녹림야검은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이 된 그날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 * *

샤샤샤샤샤-

일천명부에 도착하는 순간, 주위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기척이 들렸다.

고진유와 인양, 그리고 녹림야검은 그들의 기척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천명부의 명천지에 들어선 뒤에도 멈추지 않고 중앙을 가로질렀다.

“형,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요?”

“조만간 나설 것 같군.”

고진유는 명부 안에서 수많은 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손을 들어 두 사람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두두두두-

관문 안에서 땅을 울리는 진동 소리가 점점 강해졌다.

“몰려오는 모양인데요.”

끼이이익-

관문이 열리고, 일백 정도의 일천명부인들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저놈들을 포위하라!”

적의 사내가 앞으로 서너 걸음 나오며 소리쳤다.

팟팟팟팟!

“크크, 은룡투인.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세 명으로 이곳으로 들어오다니. 죽고 싶은가?”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있군요. 본인은 고진유라 하오.”

고진유는 적의 사내에게 포권을 했다.

“은룡투인, 무슨 일인지 모르나 실수한 것 같군.”

“본인이 왜 실수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소이다.”

“…….”

은룡투인의 눈빛에서 강한 자신감을 읽었다.

적의 사내는 인상을 쓰며 손이 꿈틀거렸다.

당장에라도 수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고 싶었지만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망할…….’

이들을 공격하는 순간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부를 돌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건 당신이 아니라 일천명군께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소만.”

“명군님께서 네놈을 만나고 싶어 할 것 같은가?”

“오천공녀의 아들이 찾아왔다고 전해주시오.”

“…….”

“그가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본인은 물러가겠소.”

‘오천공녀의 아들?’

오천공녀가 누구인지 그는 잘 알았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 누구 맘대로 물러가겠다는 것이지? 여기에 들어온 이상 네놈은 죽은 목숨이다. 이놈들을 죽여라!”

적의 사내는 손을 들어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형, 어떻게 하죠?”

“신무신단을 복용한 것 같지는 않군. 우릴 죽이겠다는데 상대는 해줘야겠지.”

“알았어요.”

인양과 녹림야검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랜만에 싸움다운 싸움을 할 기회였다.

차아앗!

타아앗!

두 사람은 일천명부인을 향해 더 빨리 달려들었다.

‘이자들이……!’

적의 사내는 양쪽으로 흩어지면서 달려 나간 인양과 녹림야검을 보며 눈이 커졌다.

“크헉!”

“아악!”

두 사람이 펼친 무공에 수하들이 단번에 나가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예상치도 못한 장면이었다.

‘뭐지?’

그는 천무십이인의 위력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중원에서 그들끼리만 부르는 이름뿐이라 여겼다.

하지만 실제로 수하들을 상대로 일권과 살검을 펼치는 두 사람의 무공은 상상 이상이었다.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세 명만으로 일천명부로 찾아온 게 미친 짓이 아니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었다.

불쑥.

적의 사내는 앞에 나타난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쳤다.

퍽.

그의 주먹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보지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커어억!”

세상에 이보다 더 아픈 충격은 없을 듯싶었다.

몸 안에 있던 모든 오장육부의 장기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수하들이 돕기 위해 그를 향해 뒤에서 달려들었지만.

번쩍.

섬광이 수하들 앞을 가렸다.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다가오던 수하들이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잘…… 못 건드렸다.’

은룡투인의 무공이 이처럼 강할 줄 몰랐다.

스윽.

고진유는 손가락 끝으로 그의 목을 가볍게 찔렀다.

“이번 한 번은 살려주겠다.”

“…….”

“이곳의 수장에게 전하라. 보고했는데도 만나고 싶지 않다면 떠나지. 다만 명왕부를 치기 전 가장 먼저 일천명부를 칠 것이다. 지금 바로 가서 똑바로 본인의 뜻을 알려.”

“…….”

적의 사내는 몸이 움찔거렸다.

백 명의 수하로는 상대조차 할 수 없음을 알았다.

“명군께 아뢰겠소이다. 기다려 주시오.”

“그렇게 하시오.”

적의 사내는 보고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섰다.

일각의 시간이 지났다.

고진유는 뒷짐을 쥔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 그가 나올까요?”

“안 나와도 상관없어. 귀찮겠지만 싸울 수밖에.”

“지금 바로요?”

“우리 세 명으로는 저들이 너무 많아.”

“난 또…… 바로 싸우는 줄 알았어요.”

“하하, 우리가 아무리 강해도 만 명은 될 텐데. 그들 모두 상대로 싸울 수는 없잖아.”

“형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인양은 아니라고 하지만 고진유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오는군.’

관문 안에서 다가오는 적의 사내의 기를 느꼈다.

그의 뒤로 거대한 기가 함께했다.

* * *

일천명부로 들어서기 위한 명천지 입구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수많은 일천명부인들이 몰려왔다.

저벅저벅.

그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고진유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사내의 정체를 알았다.

“일천명군이군. 나도 나가서 맞이해야겠지?”

고진유도 그를 향해 앞으로 나섰다.

마주 보며 서로 다가온 두 사람은 일 장 앞에서 동시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은 서로를 탐색하기로 하듯 전신을 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고진유라 합니다.”

“사실이군.”

일천명군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오천공녀를 닮았다.”

“아들이니 당연히 닮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녀는 딸을 낳은 뒤 죽었다고 들었는데.”

“쌍둥이였습니다. 제가 동생입니다.”

“쌍둥이라…… 그렇군.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겠군.”

일천명군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쌍둥이라는 사실을 숨겼음을 알았다.

“혹시 그대의 존재를 숨긴 이유가 있는가?”

“명왕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를 피하고자 한 이유가 무엇인가?”

“사내아이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명왕과 무슨 상관인가?”

“명왕은 은룡투인의 전인이 나오지 못하도록 사전에 막고자 했습니다.”

“크크크. 명왕이? 그도 두려운 게 있는 모양이군.”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기에 태어난 저의 존재를 지웠습니다. 다행히 전 살았지만 그분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니,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

일천명군은 눈썹에 진한 주름이 생겼다.

“무슨 말이더냐?”

“아버지께서는 저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그분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신을 막지 않았습니다.”

파아아앙-!

일천명군의 내력이 그의 몸 안에서 폭발했다.

고진유가 말한 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았다.

“내가…… 그렇게 부탁했건만…….”

그녀의 곁에서 물러나면서 간절히 부탁했다.

오랫동안 잘살기를 바랐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

일천명군은 고개를 숙인 고진유를 내려다보았다.

“너희를 낳다가 죽은 게 아니라 명왕이 죽인 것이더냐?”

“그렇습니다.”

부르르르-

일천명군의 전신이 떨렸다.

“내가…… 기필코 그녀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아닙니다. 명왕의 목숨은 제가 끊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오직 저만이 끝낼 수 있습니다.”

“……내가 명왕과 싸워 질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군.”

“그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를 죽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

고진유와 그의 뒤에 두 명을 보았다.

세 명의 인원으로 일천명부에 싸우고자 온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안으로 들어갈 텐가?”

“초대를 해주신다면 감사히 따르겠습니다.”

“당돌하군. 하긴 그녀도 언제나 당당했지. 자네들을 초청하는 바이다. 따라오게.”

“고맙습니다.”

고진유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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