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410화 (410/425)

410화

어머니를 죽인 원수.

눈앞에 선 인물이었다.

명왕이 그녀를 죽이고자 한 이유.

명왕의 유일한 적수는 은룡투인이기에.

어머니가 아들을 낳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고진유는 담담하게 그를 보았다.

“그렇군요. 당신이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군요.”

“…….”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방방 뜰 줄 알았건만…… 아니군.’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오히려 사신이 먼저 물었다.

“왜 말이 없지?”

“그대는 어머니가 출산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소?”

“맞다.”

“그렇다면 분명 어머니께서 쌍둥이를 출산했음을 알고 있지 않았소?”

“…….”

고진유는 그의 표정을 보며 알았다.

쌍둥이였음을 알면서도 그는 어머니만을 죽였다.

분명 명왕의 명은 사내아이가 태어났으면 함께 죽이는 것이었을 터.

쌍둥이 누나인 고화유가 살아난 것을 보면 출산 때까지 기다린 게 확실했다.

“왜 그때 사내 아기를 죽이지 않았소이까?”

“그러게 말이다. 처음에는 무조건 죽이려고 찾아갔지. 아무도 내 존재를 모를 것이라 확신했었다. 근데 그가 나의 존재를 알면서도 가만히 있더군. 바로 느낌이 왔지. 무슨 일을 꾸미고 있구나. 그 생각에 극일천주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했지.”

“아버지가 그대의 존재를 알고 계셨다는 말이오?”

“그렇다. 그 또한 은룡투인. 모를 리 없었겠지.”

“…….”

고진유는 알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했던 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질 사람은 본인이라 하셨다.

“그가 왜 오천공녀의 죽음을 버려두면서까지 그대를 몰래 숨겼는지, 이유를 이제 알았다.”

“그게…… 무엇이오?”

“명왕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그대이기 때문이다. 은룡투인의 전인.”

“…….”

“그는 명왕을 이기기 위해 새로운 은룡투인을 원했지.”

“왜…… 나를? 아버지께서 직접 하셔도 되었을 텐데…….”

“그대의 아버지가 명왕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는 이미 한 번의 패배를 당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당사자들 외 오직 나밖에 없지.”

“그건…… 처음 듣는 말이군요.”

명왕과 싸운 전대 은룡투인의 패배.

“휴우…….”

고진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당신도 명왕이 죽기를 바라는 것이오?”

“당연히. 내가 그를 죽일 수 있다면 죽였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그는 본인의 주군이신 전대 명왕을 죽였으니까.”

죽이고 싶지만, 문제는 실력으로 그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를 정말로 죽이고 싶소?”

“당연하다.”

“명왕을 어떻게 죽일지 생각해 봤소이까?”

“그렇다. 한 가지 방법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지. 새로운 은룡투인. 그대가 그를 죽일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온 것이다.”

“명왕을 이길 것 같소?”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지지는 않을 것 같군.”

사신은 있는 그대로 말했다.

명왕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인물이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오래전 자신이 살려준 사내 아기였다.

“은룡투인, 이제 그대는 어머니의 복수를 해야겠군.”

“…….”

그의 말처럼 복수를 위해 싸워야 했다.

이유가 어떻든, 아기였던 자신을 죽이진 않았지만 어머니를 죽인 건 사실이었다.

고진유는 사의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그렇지요. 우리의 인연은 여기에서 끝을 내야겠군요.”

우우우우웅-

은색의 매화가 사의검에서 피어올랐다.

떨어진 장소에서 인양과 녹림야검은 처음 보는 은빛 매화를 지켜보았다.

“진유 형은…… 또 한 단계 올라선 것 같아요.”

“방금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두 사람은 고진유의 무공을 보면서 감탄을 쏟아냈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강해질지 궁금할 정도였다.

“날마다 노는 것처럼 보였는데 언제 저런 수련을 하셨지?”

“그러게 말이다. 수련하고는 담을 쌓은 듯 보이면서. 진짜 대단하다.”

그들은 존경의 눈빛으로 은매화를 휘날리며 사신을 밀어붙이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 녀석…… 화산파 제자라고 했지?’

눈앞에 어지럽게 흩날리는 은빛 매화 뒤로 고진유가 보였다.

팟팟팟팟!

은매화를 상대로 힘들게 막아냈지만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우욱.”

충격이 심하게 느껴졌다.

호신강기가 충분히 막아낼 것 같았지만 은매화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한 고통을 주었다.

사신의 가슴에 매화 문양의 상처가 생겼다.

‘은룡투인…….’

한 번의 상처이지만 전신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고진유는 그런 그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파아앗!

호충신법을 펼치며 수십 명의 환영을 만들어냈다.

‘허억.’

눈앞에 나타난 수십 명의 고진유를 보면서 눈동자가 흔들렸다.

결국 그는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환영을 향해 살기를 뿌렸다.

퍽퍽퍽퍽!

살기를 맞은 환영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하지만 재차 그 자리에 환영들이 새롭게 나타났다.

“본체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는군.”

환영들이 동시에 내뱉는 목소리가 그를 감싸며 울렸다.

‘젠장…… 어디서 말하는지 알 수가 없군!’

휙휙!

좌우로 빠르게 몸을 돌리면서 본체를 찾고자 했다.

쉬이이이익-

순간, 앞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이건 진짜다. 피해야……!’

사신은 등골이 오싹한 예기를 느끼면서 몸을 틀었다.

스걱.

다행히 가슴을 피했지만 팔을 스치며 지나갔다.

‘어억.’

팔이 잘려 나갈 것 같은 고통이 전해졌다.

위이이이잉-

사신은 뒤로 물러나면서 크게 원을 그리며 휘도는 은매화를 보았다.

도저히 상대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거나 피할 수 없었다.

‘방법은…… 정면 승부밖에…….’

사신은 자리에 그대로 버티며 가장 깊은 몸속에서 명부의 원기까지 이끌어 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

폭풍 같은 열기가 사신의 전신을 뒤엎으며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야 제대로 싸울 모양이군.’

고진유는 그의 변화를 알아보았다.

상대가 모든 것을 드러낸다면 자신도 그에 맞게 상대하는 것이 무림의 예였다.

째애애애애앵-!

투룡기에 의해 전신의 은빛이 더 밝아지면서 투명해졌다.

한눈에 봐도 더 강해진 모습이었다.

고진유는 크게 숨을 내쉬며 내력을 폭발시켰다.

은광이 그의 전신에서 퍼져 나갔다.

쿠아아아아아-

은룡이 승천하듯 공중으로 솟구쳤다.

퍼어어엉!!

사신의 머리 위로 솟구친 은룡은 거대한 폭음과 함께 산산조각 터지면서 수백 개의 은매화로 변했다.

하늘에서 은빛 매화가 내리는 모습을 보자 황홀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샤르르르-

사신이 뿜어낸 열기에 닿은 은매화가 녹아들었다.

하지만 은매화를 녹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의 머리 위까지 휘날리며 떨어지는 은매화가 갑자기 비수가 변했다.

두두두두두두-

우박이 떨어지는 듯한 강한 소리가 그의 머리 위에서 울렸다.

그리고 단번에 수백 개의 매화비검이 떨어졌다.

쿠우우웅!

거대한 매화비검의 압력에 사신은 호신강막을 펼쳤지만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허어…….’

사신은 눈을 뜬 채로 누워서 하늘을 보았다.

어이가 없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은룡투인에게 이길 수 없는 것인가?”

스으윽.

옆으로 고진유가 다가왔다.

“움직일 수 있겠소?”

“……웃긴 놈이군. 죽일 듯 전력을 다해 쏟아냈으면서 움직일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냐?”

“죽을 정도는 아니지 않소? 마지막에 목숨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 내력을 거두었소이다.”

“왜…… 나를 살려줬지? 난 그대의 어머니를 죽였는데.”

“물론 당신이 죽인 건 맞소. 하지만 죽이고 싶어서 죽인 건 아니지 않소. 어머니도 사부님과 마찬가지로 결국 명왕이란 인물이 죽인 것이외다.”

“…….”

“그리고 어떻게 되었든지 당신은 나를 살려주지 않았소이까. 나도 한 번은 그대를 살려주겠소. 하지만 다음에 본인 앞에 나타난다면 그때는 살려둘 생각이 없습니다.”

“크크크…….”

사신은 웃음이 나왔다.

끄으으응.

그는 겨우 힘을 내며 상체만을 일으켰다.

바닥에 앉은 채 숨을 고르며 몸을 살폈다.

“혹시 명왕이 준 신무신단을 복용했소?”

“…….”

“그럴 거라 여겼소. 혹시 그것을 복용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있소?”

“독…… 약인가?”

“그건 아니고.”

고진유는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이…… 망할 새끼가…….”

밖으로 나가서 제대로 싸우기 위해 신무신단을 복용하면 된다고 했다.

스윽.

고진유는 그에게 해독제를 건네주었다.

“이건 해독제요.”

“……왜 이것을 나에게 주는 것이지?”

“살려줬는데 허무하게 죽도록 두고 볼 생각은 없소이다. 생색내는 것이니 그렇게 아시오.”

“훗…… 정말 웃긴 녀석이군.”

사신은 손에 든 해독제를 입에 넣었다.

청량한 느낌이 들면서 머릿속이 가벼워졌다.

“이젠 괜찮은가?”

“괜찮을 거요. 중원에서 계속 지내고 싶다면 신무신단이 있는데. 받으시겠소?”

“뭐냐? 또 신무신단이라니?”

“내 건 다르오.”

“…….”

사신은 성심을 베푸는 고진유를 보았다.

“왜 이것을 주려고 하지?”

“그냥 주는 건 아니오. 그대가 아는 것을 모두 알려주시오.”

“그렇군. 공짜는 아니라는 말이군.”

사신은 고민에 잠겼다.

서로 동등한 입장이라고 했지만 그의 명을 받고 왔다.

사신의 임무는 실패했다.

명왕이 어떠한 인물인지 알고 있다. 어차피 돌아갈 수 없었다.

‘이번 기회에 세상에서 살아볼까?’

그가 준 신무신단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좋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겠지.”

“…….”

“그대는 명왕이 누구인지 아는가?”

“명왕의 신분 외에 다른 신분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맞다. 그는 정말로 웃긴 인물이지. 전대의 명왕을 죽인 뒤 새로운 명왕이 된 자였다.”

“…….”

“여기서 문제. 명왕을 죽일 수 있는 인물이 명부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

사신의 질문에 이미 답이 들어 있었다. 세상에서 명왕을 죽일 수 있는 인물은 오직 한 명밖에 없었다.

극일가의 가주이자 은룡투인.

고진유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누구를 말할지 이해했다.

“명왕은 한때 그대의 조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

“별로 놀라운 기색은 아니군.”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을 뿐이외다.”

“크큭, 그렇겠지. 은룡투인이란 인물이 명왕을 죽이고 명왕이 되었다는 건 믿기지 않은 일이지.”

“혹시 아버지께서는 그 사실을 알고 계셨소?”

“처음에는 몰랐지. 명왕은 극일천주에게 모든 것을 물려준 뒤 사라졌으니까. 그는 극일가를 떠난 뒤 이천명부에 들어와 명군을 죽이고 그 자리에서 스스로 이천명군이 되었지. 그리고 명왕에게 도전했다.”

“그가 명왕이 되고자 한 이유가 무엇이었소?”

“난들 알겠는가? 한 번도 그 부분에 대해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렇군요. 직접 만나서 물어보는 방법밖에 없군요.”

고진유는 가슴이 뚫린 듯 허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스윽.

그의 곁으로 인양과 녹림야검이 다가왔다.

두 사람도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심정이 어떠한지 알 듯했다.

“형…… 괜찮아요?”

“괜찮아. 고마워.”

고진유는 인양을 보며 웃어 보였다.

자신을 위해 다가온 두 사람이 고마웠다.

“난 됐어. 대충 예상은 했다. 아버지께서 예전에 한 번 지나가는 듯 말을 한 게 기억이 났거든. 조부는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 계시다고 했지. 난 그때 잘못 이해한 모양이야. 정말로 명부에 살아 있을 줄은 몰랐거든.”

“…….”

“이젠 그는 명왕일 뿐이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머니를 죽이고 나를 죽이고자 한 인물이지.”

“주화입마를 당했을까요?”

인양의 질문에 대답은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는 사신이 했다.

“주화입마라고 하기보다는 명왕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지. 전대 명왕을 죽인 뒤 그는 명왕이 되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축적된 명왕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버티지 못했어. 결국 그 또한 운명의 굴레에 빠진 것이지.”

고진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 인물은 명왕이자 자신의 조부였다.

“여기 받으시오.”

고진유는 그에게 신무신단을 건네주었다.

“이것인가?”

“문제는 없을 거고, 이곳에서 조용히 지내면 되오.”

“음…… 혹시 내가 도울 일은 없나?”

“도움을 주겠다고 했으니 나중에 필요할 때 이야기하겠습니다.”

“큭, 그렇게 하게.”

사신은 신무신단을 복용하자 몸에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이건 좋은데? 부상이 치유가 되는 것 같군. 하나 더 주면 안 되겠는가?”

“주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굳이 두 개를 복용한다고 해도 내력에는 영향이 없을 겁니다.”

“아쉽군. 좋다 말았네.”

사신의 표정은 말처럼 사실이었다.

약효가 몸에 퍼지면서 일어날 수 있었다.

“일천명군은 성질이 더러운 놈이다.”

“그렇습니까?”

“내가 알기에 그는 오천명부와 싸웠다지.”

“맞습니다. 일천명군은 어머니와 약혼 이야기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엄청나게 싫어하겠군. 만나기 싫으면 일천명군을 대신 죽여줄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쯧, 아쉽군. 그 정도는 충분히 죽일 수 있는데.”

사신은 정말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됐습니다. 입장을 바꿔 보면 화가 날 만한 하겠지요. 사내가 자신의 여인을 빼앗겼는데 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마음도 넓군. 여하튼 일천명부에 가거든 잘해보게. 난 그만 가겠네.”

“그렇게 하세요.”

휘이이익!

사신의 모습이 세 사람 앞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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